소설리스트

내일은 일인자-268화 (268/309)

268화. 예능과 현실 사이 (4)

‘별론데?’

모토니시의 투구를 지켜본 시카고의 3번 산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포심과 비슷한 궤적으로 날아가다 우타자 기준으로 몸 쪽으로 꺾이며 떨어지는 투심, 문제는 공의 변화가 아무리 늦게 일어나도 무브먼트가 적으면 배트에 걸릴 수밖에 없다는 거다.

이 정도 변화라면 다른 타자들도 한 두 번 지켜보면 어느 정도 눈에 익겠지, 투심보다 포심에 초점을 맞췄다.

[따악~!!]

“자 … 이 타구는 중견수 앞에 떨어집니다!! 2아웃 이후 출루, 산체스 선수가 오늘 경기 팀의 첫 번째 안타를 때려냅니다.”

“지금은 92마일, 투심으로 보이거든요. 몸 쪽으로 살짝 꺾였는데도 타격이 됐습니다.”

포수가 던진 공을 받아든 모토니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대로 던진 것 같은데 안타가 되다니, 다행히 자일스 포수는 문제점을 인지했다.

‘이건 우타자 상대로는 조금 위험하겠어.’

변화량이 적어 우타자에게 던졌다간 가운데로 몰릴 위험이 다분, 우타자 상대에겐 슬라이더, 좌타자 상대로 투심 위주의 볼 배합을 리드했다.

투심에 비해 스트라이크 존에서 확실하게 도망가는 모토니시의 슬라이더, 변화가 약간 빨리 일어나는 게 흠이지만 최고 91마일까지 나오는 구속으로 약점을 상쇄했다.

안타 한 개를 내줬지만 모토니시는 1회를 무실점으로 넘어섰고, 뉴욕의 1회 말 공격이 시작됐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어, 아니면 투심을 좀 더 떨어트리던가. 지금 같은 무브먼트라면 우타자에게 활용하기엔 조금 위험해.”

그 사이 모토니시는 자일스 포수와 대화를 나눴다.

이 정도면 통할 거라고 자신했는데 조금 더 옆으로 꺾어야 한다니, 투심을 더 떨어트리려면 그립을 약간 바꾸거나 손가락에 힘을 더 주는 방법이 있다.

그립을 바꾸는 건 제구가 흔들릴 위험이 있고, 악력은 선천적으로 타고나야 하는 일, 나름 노력은 하고 있는데 물이 없는 우물을 파고 있는 느낌이랄까.

일본에서 설렁설렁 해도 최고의 성적을 거뒀던 야구 천재는 고비를 넘길 때마다 나타나는 장벽에 한숨을 쉬었다.

[따아악~!!]

“자!! 멀리 가는 타구!! 중견수가 따라 붙지만 담장을 넘어 갑니다!! 스캇 햄프리의 리드 오프 홈런!! 올 시즌 6호 홈런입니다!!”

“지금은 투심인데 바깥쪽으로 도망치지 못했죠. 역시 용서가 없습니다.”

한숨이 끝나기도 전에 일어난 상대 투수의 불행, 나도 방심하면 저렇게 되지 않겠나.

하나만 파도 살아남기 어려운 메이저리그 세계, 투타겸업은 포기했지만 투구만이라도 제대로 하자는 각오를 다시 세웠다.

다음 타자 몬테로는 중견수 정면 아웃, 이인영이 타석에 들어섰다.

“자, 이인영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올 시즌 타율 0.342 - 홈런 12개 – 37타점, 올해도 변함 없는 활약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금 현지에서 재미있는 말을 하고 있는데요. 이인영 선수가 유독 월요일에 약했다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월요일이라고요?”

“예, 이인영 선수가 지금까지 금요일에 홈런 43개, 화요일과 수요일에도 각각 37개, 40홈런을 때려냈거든요. 그런데 통산 월요일 성적은 타율 0.284, 12홈런에 불과하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뭐 그런 것까지 따진답니까? 참 할 일도 없는 사람들이네요.”

박한우 위원은 현지 해설에 불쾌감을 보였다.

이번 시카고와의 3연전 첫 날은 금요일이었고 하루 쉰 다음 일요일과 월요일에 2 – 3차전을 치르고 있다.

현지해설이 맞다면 오늘 애재자는 죽을 쑨다는 건가. 그건 두고 봐야 하는 일, 이런 배경을 알 리 없는 이인영은 차분하게 공을 골라냈다.

[따아악~!!]

“아!! 좋아요!!!!”

“잡아당긴 타구가!! 우중간으로 멀리!! 팬들이 손을 뻗어 맞이합니다!! 이인영 선수의 시즌 13호 홈런!! 뉴욕이 2대 0으로 앞서나갑니다!!”

“지금은 뒷발이 들릴 정도로 파워 스윙을 했거든요. 확실히 자세를 수정하면서 힘을 더 싣는 스윙을 하고 있습니다. 타구 방향도 작년에 비해 우측으로 가는 게 더 많아요.”

3루를 통과한 홈런타자는 코치와 가볍게 손을 마주쳤다.

이인영은 경기 초반에 날린 홈런이 압도적으로 많다.

후반에 나오는 홈런도 좋지만, 이인영은 통산 98홈런을 1~ 3회에 쏟아냈다.

통산 홈런의 38%를 웃도는 수치, 어차피 칠 홈런이라면 초반에 치는 게 낫다. 그래야 팀 사기도 오르고 투수도 적극적인 투구를 할 수 있는 법, 앤더슨 감독은 환한 미소로 영웅을 맞이했다.

‘역시 이 친구는 빨라서 좋아.’

경기 초반에 집중타가 쏟아져 나오는 선수, 오늘의 오더는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인영은 몰려드는 홈팬들의 주문 쇄도를 외면하지 않았다.

[따아악~!!]

“자!! 이번엔 밀어냈고!! 그대로 좌측 담장 밖으로 사라집니다!! 이인영 선수의 연타석 홈런!! 시즌 14호!! 뉴욕이 6대 0으로 앞서나갑니다!!”

“밀고 당기고 아주 자유자재네요. 한 번 더 가도 좋지 않을까요?”

이어지는 5회 말 3번 째 타석, 배터리는 정면승부를 해줄까.

어차피 벌어진 경기고 도망쳐 봤자 나만 치욕스러울 뿐, 바뀐 투수 마크 다이어는 승부를 택했다.

‘던져 말어?’

산체스 포수는 곁눈질로 상대를 살폈다.

바닥에 붙어있는 앞 발, 이인영은 필라델피아 시절에도 변화구를 기다릴 때 앞발을 지면에 붙여두는 경우가 많았다.

한때 한솥밥을 먹었던 산체스가 그걸 모르겠나.

그럼 지금 빠른 볼을 던지면 통할까. 안 통했으니 지금까지 당하고 있는 투수들, 뭣보다 이건 투수가 빠른 볼 못 던질 거라는 자신감을 드러낸 자세다.

빠른 볼을 택했다가 계속 두들겨 맞은 시카고 배터리, 산체스 포수는 고민 끝에 변화구를 요구했다.

하지만 마크 다이어는 빠른 볼을 고집, 사인 교환이 어긋나자 산체스 포수는 마운드로 향했다.

“저 자식 지금 변화구 노리고 있다고”

“그러니까 빠른 볼 던져야지.”

“내가 저 자식이랑 5년 동안 같이 생활해 봐서 아는데, 지금 빠른 볼 던지면 맞아. 그러니까 내 말 대로 해.”

“헛소리하지 마. 변화구 기다리는 타자한테 변화구를 던지라고?”

“저 자식은 변화구에 그나마 타율이 떨어진다고, 내 말대로 하라니까.”

길어지는 면담, 주심이 주의를 주면서 경기가 재개됐다.

아직도 합의를 보지 못한 볼 배합, 산체스는 변화구를 요구했지만 다이어는 빠른 볼을 고집했다.

결국 산체스는 설득을 포기, 바깥쪽으로 빠져 앉았다.

[따아악~!!]

“자!! 설마!! 가나요?!! 또 가나요?!! 작별 인사도 없이 멀어져 갑니다!!!! 이인영 선수의 3연타석 홈런!! 오늘 말 그대로 광란의 축제를 벌이고 있습니다!!”

“지금 앞발을 보세요. 평소에는 하나 두울~ 셋인데, 지금은 하나 둘이거든요. 변화구를 기다린 것 같은데 앞발로 타이밍을 잡아버리네요.”

“이런 날은 도망쳐야 됩니다. 괜히 객기 부릴 필요가 없어요.”

타격이 되는 순간, 다이어는 산체스의 조언을 떠올렸다.

괜히 내 멋대로 했다가 얻어맞은 한 방, 이 홈런이 아니라도 승패는 이미 기울었지만 솔직히 기분은 좋지 않았다.

어쨌든 이 홈런으로 뉴욕은 9대 0으로 달아났고, 모토니시는 6회 초 마운드를 넘겨받았다.

메이저리그 통산 첫 번째 승리는 눈 앞, 코스나 구종 선정은 모두 자일스 포수에게 맡겼다.

와아아아~!!

빠른 볼로 카운트를 잡고 투심으로 마무리, 시카고는 이날 좌타자에 약점이 있는 모토니시를 잡기 위해 5명을 좌타자로 투입했지만, 생각보다 더 빠르고 많이 떨어지는 투심에 헛방망이를 돌렸다.

구속이 되는 선수라 제구만 받쳐주면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할 수 있는 투수, 특별석에 앉은 플레어티 단장도 만족감을 드러냈다.

‘됐다!! 해냈어!!’

6회를 삼자 범퇴로 마무리한 모토니시는 홈팬들의 박수를 받으며 마운드를 내려갔다.

메이저리그 진출 이후 첫 6이닝 이상 투구, 마음 같아선 더 던지고 싶었지만 앤더슨 감독은 교체를 지시했다.

이제는 편안하게 경기를 지켜볼 뿐, 뉴욕 타자들은 공세를 이어갔다.

[따악~!!]

“다시 외야로 날아가는 타구!! 펜스를 직접 때립니다!! 2루 주자는 홈으로!! 1루 주자는 3루까지!! 이인영 선수는 2루에 안착합니다!! 스코어 10대 0!! 이인영 선수는 오늘 4타수 4안타에 6타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가 이 선수가 월요일에 약하다고 했습니까? 아주 불타오르는 월요일이네요.”

“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애제자의 활약에 신이 난 박한우 위원,

앤더슨 감독은 잠시 교체를 생각했지만 철회했다. 이렇게 잘 맞는 날에 교체를 하는 건 선수의 불만을 살 수도 있는 일, 본인이 만족할 때까지 내버려뒀다.

“그만 쳐. 빈볼 날아가기 전에”

“어디 해 봐. 네 면상에 스윙을 날려줄 테니까.”

경기는 이제 8회 말, 산체스 포수는 친구에게 장난 섞인 경고를 날렸다.

점수 차는 벌어졌고 활약도 충분히 했는데 더 때리겠다고 나온 인간, 진짜 빈볼을 요구할까 했지만 섬뜩한 협박에 입을 다물었다.

내가 저 녀석 입장이라도 이런 날은 교체되기 싫겠지, 동업자라 이해해줬다.

“바깥쪽입니다. 카운트는 투 볼 노 스트라이크”

“이런 때는 프로라도 정말 던지기 싫을 것 같은데, 임선우 위원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렇죠. 이런 상황에서 올라오면 정말 던지기 싫습니다. 메이저리그에서 마지막 등판을 치렀을 때가 생각나네요.”

임선우 위원은 불편한 기억을 떠올렸다.

소속 팀이 9대 0으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감독에게 몸을 풀라는 지시를 받은 것, 평소라면 그러려니 받아  였겠지만 다음 날 선발 등판이 잡혀 있었다.

이렇게 약속을 뒤집어도 되는 건가.

구위가 떨어진 늙다리 투수의 입장은 들어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르지, 마지막까지 메이저리그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던 임선우는 그날 팀에 탈퇴를 신청했다.

패전처리로 끝난 메이저리그 커리어, 그럭저럭 괜찮은 경력을 쌓았지만 마지막을 떠올리면 정말 치욕적이었다.

실력이 없으면 냉정하게 버림 받는 세계, 마지막까지 버티는 게 명예라고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 그게 아니었다.

진정한 명예는 물러날 때를 인정하는 것, 은퇴하고 나서야 박수 칠 때 떠나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다. 버티는 게 능사가 아닌 그라운드, 올해 34살에 접어든 이인영 선수는 어떻게 커리어를 마무리 할까.

정말 10년 계약 다 채우고 42살에 은퇴하는 건 아닌지, 그때도 팬들과 구단의 박수를 받을 수 있을까.

복잡한 마음으로 타격을 지켜봤다.

따아악~!!

“와아아아아~!!”

설마 했던 4홈런 게임, 팬들은 최고의 활약을 보여준 뉴욕의 영웅에게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한때 과한 투자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이젠 연봉 6천만 달러가 아깝지 않은 선수, 햄스턴 구단주도 커튼 콜 대열에 합류 했다.

이날 뉴욕은 시카고를 상대로 14대 0 완승을 거뒀고, 6이닝 무실점 투구로 메이저리그 첫 승을 거둔 모토니시는 당당한 얼굴로 일본 기자들을 마주했다.

“모토니시 선수, 오늘 엄청난 마구를 던지셨는데 구질이 뭔가요?”

“마구라고요?”

“네, 3회 초에 산체스 선수를 삼진으로 처리한 그 공 말입니다.”

모토니시는 기자의 질문에 생각을 정리했다.

바깥쪽으로 떨어지며 가라앉는 투심을 가리키는 건가.

뭐든 마구라는 이름을 붙이는 일본 여론, 하지만 야구는 예능이 아니다. 일본에서 뛸 때 마구가 진짜 존재하는 줄 알았지만 그게 아니라는 걸 여기서 깨달았고, 입장을 명확히 했다.

“그건 마구가 아니라 무빙 패스트볼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투심이죠.”

“하지만 옆으로 휘면서 떨어지기까지 하던데요?”

“그런 공은 다른 투수들도 많이 던집니다. 그리고 우타자 상대로 던지기엔 아직 부족하죠. 마구라는 말로 제 부족한 실력을 포장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조금 더 노력해서 팬 여러분들께 좋은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인영은 이 인터뷰에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4월까지만 해도 투타겸업이니 뭐니 하며 허세를 떨던 애송이가 이제는 제법 야구선수다워졌다고 해야 하나.

아직 마음속으로 인정할 만한 레벨은 아니지만 프로 선수 대우는 해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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