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5화. 예능과 현실 사이 (1)
[모토니시 사부로, 메이저리그 진출 확정]
[어릴 적 꿈 이뤘다]
해가 지난 1월 2일, 뉴욕 구단은 한 선수의 입단을 공식 선언했다.
모토니시 사부로는 지난 4년 동안 일본 리그를 폭격한 괴물, 작년 시즌 성적은 마운드에서 11승 3패 평균자책점 2.04 – 타석에선 타율 0.335, 23홈런을 기록했다.
[타격 잠재력은 이인영과 비교될 정도]
[본인도 투수보다 타격을 선호 해]
일본 여론은 자국 선수를 포장하느라 유난을 떨었다.
메이저리그에서 안타 하나 못 때린 선수를 최고의 타자와 비교하다니, 뉴욕 여론은 비웃음을 날렸지만 햄스턴 구단주는 립 서비스에 열을 올렸다.
“리(Lee)가 두 명이 된다면 뉴욕의 30번째 월드시리즈 우승은 확정된 거나 다름없다.”
모토니시를 최고의 타자와 동급으로 쳐준 것, 물론 이인영은 코웃음 섞인 반응을 보였다.
[지금 당신들은 예능 프로그램을 찍고 있는 건가?]
웃자고 하는 짓이면 웃어줄 수 있지만, 진짜 그렇게 생각한다면 괘씸한 일, 립 서비스를 잘 모르는 이인영은 냉정한 평가를 내렸다.
[모토니시를 리차드 케이시와 비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헛소리 하지 마라. 아무리 높게 쳐줘도 이충재와 비슷한 수준이다.]
이충재는 유일한 한국인 투수 메이저리거, 평균 96마일이라는 놀라운 구속을 지녔지만 그게 전부다.
무브먼트가 너무 깨끗해도 좌우 제구를 찌를 수 있는 능력이 된다면 살아남았겠지,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소속 팀 세인트루이스가 월드시리즈에 진출했지만 로스터에도 포함되지 못한 신세, 수준급의 슬라이더를 가지고 있지만 빠른 볼로 카운트를 잡아내지 못하면서 구속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게 증명됐다.
모토니시도 일본에서 제구가 좋다는 평가를 받은 선수가 아니다.
그저 뛰어난 구속과 슬라이더로 많은 삼진을 잡아냈을 뿐, 메이저리그에서는 그런 투구가 통하지 않는다.
반면 리차드 케이시는 메이저리그에서 13년을 버틴 베테랑, 모토니시와 비교될 레벨이 아니다.
거기다 이인영은 7년 동안 메이저리그의 정상 급 타자로 군림한 선수, 그런 애송이와 비교하는 건 불쾌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타격 재능이 나와 동급? 웃자고 한 소리면 웃어줄게. 그래봤자 현실은 냉정하겠지만]
같은 팀이 됐는데도 용서가 없는 발언, 일본 여론은 한국인이라고 일본인 차별하는 거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지만 모토니시의 반응은 침착했다.
“그분은 메이저리그에서 7년 동안 정상에 군림했던 선수입니다. 제가 그 입장이라도 비교되면 기분 나쁠 것 같습니다.”
“이인영 선수와 만나면 어떤 말을 할 생각이십니까?”
“농담을 별로 안 좋아하시는 것 같으니 공손히 인사만 할 생각입니다. 괜한 말 했다가 밉보여서 좋을 게 없으니까요.”
일본 기자들은 이 기사를 그대로 내보냈다.
고참이라고 너무 무겁게 나오는 거 아니냐는 시위, 분위기를 살피던 햄스턴 구단주는 생각에 남겼다.
‘내가 괜한 소리를 했나? 그 친구를 비교 대상으로 삼을 필요는 없었는데 … ’
어린 선수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서였다고 해도 메이저리그 타석에 서보지도 못한 선수를 이인영과 비교하다니, 그 친구가 얼마나 자존심이 센 지는 햄스턴 구단주도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공식 석상에서 뱉은 말을 뒤집을 순 없는 일, 사람을 시켜 불만을 다독였다.
“당연히 립 서비스로 하신 말입니다. 불쾌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뭘 불쾌하게 생각한다는 겁니까? 웃자고 한 말이면 웃어주겠다고 했잖아요?”
이인영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과장이 섞인 예능은 같은 일이 반복되는 현실에 활력을 불어넣는 법, 정말 그 어린 선수가 나와 동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있다면 예능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일 뿐, 잠깐 욱했지만 내 실력을 보여주면 해결될 일이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어쨌든 시간은 흘러 2월 22일, 이인영은 스프링캠프에 발을 들였다. 작년과 크게 다르지 않은 면면, 그 사이에 섞여 있던 모토니시는 고개를 숙이며 악수를 청했다.
별 다른 반응 없이 손만 잡았다 놔버리는 슈퍼스타, 일본에서 최고 대접을 받으며 선수생활을 한 모토니시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메이저리그 구단주들도 날 영입하기 위해 온갖 아부를 떨었는데 이 사람은 무서울 정도로 냉정, 말을 걸 용기가 서지 않았다.
그 사이 일본인 기자들의 취재요청에 둘러싸인 앤더슨 감독, 사방에서 질문이 쏟아졌다.
“모토니시 선수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는 최고 100마일의 구속에 날카로운 슬라이더를 구사합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이 정도 재능을 가진 투수는 많지 않죠. 좋은 활약을 기대합니다.”
“이인영 선수의 생각은 다르던데요. 빠른 볼이 너무 깨끗하다고 하는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앤더슨 감독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솔직히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렇다고 솔직하게 말할 순 없는 입장 아닌가. 선수는 보는 각도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는 대답으로 본심을 덮었다.
“모토니시 선수를 어떻게 활용하실 생각입니까?”
“투수와 타격 모두 재능을 지닌 선수입니다. 다양한 포지션에 기용해 보고 결정을 내릴 생각입니다.”
인터뷰대로 앤더슨 감독은 모토니시에게 다양한 임무를 부여했다.
예능 프로그램이 연기자에게 다양한 도전과제를 던져주고 웃음을 이끌어내는 것처럼 수비 - 타격도 시켜보고 어느 날은 청백전 선발로 기용, 이게 정말 최선인가.
뉴욕 스포츠 전문 일간지도 이건 미친 짓이라고 못 박았다.
“리(Lee)의 말대로 야구는 예능이 아니다. 유망주를 현실적으로 활용해야 할 것 아닌가.”
재능이 있다고 모든 걸 할 순 없는 법, 본인이 타격을 좋아하면 타격을 중점으로 시켜야 할 것 아닌가.
계속 되는 참견, 입은 다물었지만 앤더슨 감독도 할 말은 많았다.
‘수비가 안 되는데 어떻게 야수로 돌려?’
NPB보다 한 차원 높은 타구가 날아오는 메이저리그, 기본적인 수비도 중요하지만 강습 타구에 대비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문제는 모토니시는 그런 기초적인 능력도 없는 상태에서 메이저리그로 넘어왔다는 것, 일본에서도 1루와 우익수를 잠깐 봤을 뿐 대부분 지명타자로 뛰었다.
문제는 뉴욕의 지명타자 자리는 마이크 서튼이 꿰차고 있다는 것 1루도 이인영이라는 확실한 주인이 있으니, 야수로 기용하려면 외야로 돌려야 한다.
하지만 외야 자리는 만석, 플레어티 단장은 모토니시를 타자로 영입하지 않았다. 100마일을 넘나드는 강속구와 하드 슬라이더를 보유한 투수로 키우는 게 목적, 하지만 본인은 타격을 더 선호한다.
본인이 부딪쳐보면 알겠지만 절대 만만치 않은 메이저리그, 플레이터 단장은 조만간 모토니시가 투수로 자리를 잡을 거라고 확신했다.
이건 구단이 강요할 게 아니라 본인이 깨달아야 하는 문제, 여론이 문제를 제기하든 말든 뉴욕은 자신만의 방식대로 모토니시를 육성했다.
[이충재, 드디어 각성?]
[작년보다 나은 구위 보여줬다]
한편, 한국 여론은 또 다른 메이저리그의 행보에 주목했다.
구속은 좋아도 제구가 형편없다는 냉정한 평가를 받은 이충재, 본인도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는지 오프 시즌 동안 나름대로 개선을 했다.
비교가 된 모토니시와 달리 투구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것도 긍정적인 신호, 자체 청백전에서 3이닝 동안 삼진 6개를 잡아내는 역투를 펼쳤다.
다만 장타를 2개(2루타, 홈런)나 허용한 건 옥의 티, 인터뷰에서도 제구에 좀 더 신경을 쓰겠다는 답을 내놨다.
“이인영 선수가 얼마 전 냉정한 말을 했는데 서운하진 않으셨습니까?”
“서운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사실인 걸요. 작년에 선배님하고 한 번 붙었을 때 확실하게 깨달았습니다. 제 공이 정면승부를 걸 만큼 위력적이지 않다는 걸요. 뭣보다 여기서는 그런 말을 해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미국은 철저한 개인주의 문화, 누구에게 문제가 있어도 내게 해가 되지 않는다면 참견하지 않는다.
저런 식으로 던지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는데도 그걸 지적하는 사람이 없다는 뜻, 문제가 있으면 바로 지적을 하고 관심을 주는 한국과 너무 다른 환경이라 이충재는 큰 문화 충격을 받았다.
내가 좀 더 성장하려면 뭘 더 보완해야 할까.
스스로 깨닫는 것 외엔 방법이 없는 환경, 내 문제는 남이 더 잘 알고 있지 않을까. 날 두들긴 선배가 그런 말을 해준 걸 고맙게 여겼다.
“그래서, 제구가 안 되는 문제는 알아내셨습니까?”
“네, 오프 시즌 동안 제 투구를 몇 번이나 돌려봤거든요. 그리고 몸이 주저앉는다는 걸 알아냈습니다. 의식하면서 던지고 있지만 아직은 잘 안 되네요. 그래도 나아지려고 계속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충재는 아직 부족하지만 언젠가는 팀의 한 축을 책임지는 선발로 자리 잡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
웃음기를 완전히 뺀 인터뷰, 작년 스프링캠프에서 기자들과 농담을 주고받았던 그 선수가 맞나.
이런 진지한 자세는 한국 여론의 기대치를 한껏 끌어올렸다.
‘개판이네. 아무도 말 안 해주는 거야?’
반면, 모토니시는 스프링캠프에서 문제점을 개선하지 못했다.
수비는 그렇다고 쳐도 마운드에서 공이라도 제대로 던져야 할 것 아닌가. NBP에서는 빠른 구속으로 타자를 억누르는 게 가능했을지 몰라도 메이저리그에서는 불가능한 일, 문제는 아무도 지적을 안 한다는 거다.
투구 폼이나 타격에 함부로 칼을 들이댔다가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하는 게 코치, 이런 환경 때문에 많은 코치들이 선수들의 방식에 참견을 하지 않는다.
알아서 하라고 방치하거나 잘 하고 있다고 립 서비스를 하는 게 전부, 메이저리그 7년 차에 접어들었지만 이인영은 이런 문화를 이해하지 못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요?”
“뭐가 말인가?”
“저 자식 말이에요. 저렇게 던지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참다 참다 잭 브라이드 코치를 붙잡았다.
투구가 아니라 예능을 하고 있는 모토니시. 저딴 식으로 던질 거면 대충 던져도 살아남는 NPB로 돌아가는 게 낫지 않나. 브라이드 코치도 문제점은 알고 있었다.
“자네도 여기 룰은 알고 있잖아? 참견하지 않는 게 상책이라고”
“그럴 거면 비싼 돈 들여 뭐 하러 영입했습니까? 단장님도 그렇게 하라고 지시했나요?”
브라이드 코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플레어티 단장은 명문 대학을 졸업한 경영인일 뿐, 선수의 재능을 정리해서 보고하는 건 아랫사람들이 할 일이다.
플레어티 단장이 오클랜드에서 막강한 투수진을 구축한 건 플레어티 단장의 안목뿐이었을까, 아니면 능력이 있는 아랫사람들 덕분이었을까.
실제로 뉴욕으로 건너오면서 플레어티 단장은 측근은 대거 교체했고, 오클랜드 시절처럼 유능한 모습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아랫사람이 확실히 해야 윗사람도 능력을 발휘하는 법, 이인영은 뉴욕의 코치진이 좀 더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하길 바랐다.
“그러다 잘 안 되면 내 가족은 누가 먹여 살리나?”
“짤리면 내가 월급 줄 게요. 그러니까 제발 일 좀 하라고요”
내가 어쩌다 이런 말까지 들어야 하나,
브라이드 코치는 자괴감을 느꼈지만 틀린 말도 아니라 모토니시에게 조금 더 관심을 기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