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일은 일인자-264화 (264/309)

264화. 거짓말은 안 한다 (15)

이곳은 뉴욕 맨해튼 영웅의 거리, 우승을 거둔 뉴욕 선수단은 사방에서 쏟아지는 색종이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브로드웨이를 가로질렀다.

경찰 추산 약 100만 명이 쏟아져 나온 길거리, 브로드웨이에서 월스트리트까지 약 5km 일대가 검은 물결로 물들었다.

“우리가 챔피언이다!!”

“와아아~!!”

햄스턴 구단주가 트로피를 높게 들어 올리자 사방에서 박수가 쏟아졌다.

이번 우승에 가장 많은 공헌을 한 인물, 참고로 이번 월드시리즈 1차전 티켓은 평균 3500달러로 책정됐다.

가장 싼 입석자리도 약 1100달러, 명당으로 불리는 더그아웃 뒤쪽 자리는 2인 기준으로 4만 5천 달러에 거래, 그나마 이건 예매를 했을 때의 가격이다.

티켓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에이전트를 거치면 입식 석은 1200달러, VIP 석은 5만 달러에 거래, 정말 이대로 팔렸다면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비싸게 팔린 표가 됐을 거다.

“그거 너무 비싸, 깎으라고”

하지만 햄스턴 구단주의 한 마디에 티켓 값이 조정됐다.

24년 만에 잡은 월드시리즈 우승 기회, 이런 중요한 무대에 구단이 팬들을 모셔오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측근들은 이미 돈까지 받았다며 반대했지만 햄스턴 구단주의 입장은 단호했다.

“티켓 값을 조정하면 약 3천만 달러를 환불해 줘야 합니다.”

“해 줘, 내가 그 정도 돈에 벌벌 떠는 사람으로 보이나?”

이렇게 팬들은 조금이나마 할인된 가격으로 월드시리즈를 관람했다.

메이저리그에서 이렇게 통 큰 구단주가 또 있을까. 다른 지역 여론이 권위적이니 뭐니 떠들어도 뉴욕 입장에선 둘도 없는 보스, 과감한 투자로 우승을 이끌어낸 햄스턴 구단주는 뉴욕 팬들의 지지를 한 몸에 받았다.

“와아아~!!”

또 다른 영웅이 모습을 드러내자 거리 일대가 발칵 뒤집혔다.

연장 12회까지 간 승부에 종지부를 찍은 이인영, 이번 월드시리즈는 4차전에서 끝났지만 모든 경기가 2점 차 안에서 승패가 결정될 정도로 치열했다.

특히 4차전은 9회 말 테드 반디의 극적인 동점 솔로 홈런, 이걸 다시 뒤집은 이인영의 홈런으로 더 큰 관심을 받았는데, 역전 홈런이 나온 12회 초의 평균 시청률은 31%까지 치솟았다.

4차전 평균 시청률은 무려 17%, 단일 경기 기준으로 월드시리즈 역대 시청률을 갈아치웠다.

이래저래 대단한 기록을 남긴 월드시리즈, 메이저리그 최고 명문 구단을 왕좌에 올린 이인영은 뉴욕 시민들에게 신적인 대우를 받았다.

최근 4대 스포츠에서 20년 동안 한 번도 우승을 하지 못한 뉴욕, 그 자존심을 세워준 시리즈라 이런 대접은 당연했다.

어쨌든 선수단은 인파로 가득 찬 거리를 지나 홈구장 햄스턴 스퀘어 가든에 입성, 선수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팬들과 우승의 기쁨을 나눴다.

“우리는 올해 29번째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내년 이 자리에 30번째 우승 트로피를 가지고 오겠습니다!!”

“와아아아~!!”

초반부터 세게 나오는 주장 마이크 서튼, 인터뷰 도중 서튼은 약간 울먹이는 모습을 보였다.

나이를 먹으면서 점 점 기량이 떨어지고 여기에 팀원과의 불화까지 겹치면서 팬들의 원성까지 들었던 입장, 심지어 굴러들어온 이인영에게 캡틴 자리를 내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소문에 시달리기도 했다.

우승만 한다면 그까짓 캡틴 자리 내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내심 서운했던 게 사실, 그래도 뉴욕의 캡틴은 서튼 뿐이라는 감독과 구단주의지지 덕분에 오늘 이렇게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다.

서운한 게 없다면 거짓말이지만 어쨌든 이렇게 자리를 채우고 환영해주는 팬들, 어떻게 감사를 표해야 할까. 내년에도 우승트로피를 가지고 오겠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계속 되는 인터뷰, 이인영이 마이크를 잡자 6만 여명이 일시에 환호성을 내질렀다.

좀 비싸지만 틀림없었던 우승 청부사, 환호성이 계속 되자 이인영은 오른 손을 들어 환호를 잠재우는 여유를 보였다.

“솔직히 여기서 할 말은 별로 없습니다. 저는 우승을 위해 이곳에 왔고, 그 약속을 지켰으니까요. 그게 전부에요. 무슨 말이 더 필요합니까?”

남자는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법, 약속을 지킨 이인영은 마이크를 내려놨다.

짧아도 반응은 상상 이상, 이때 사회를 맡은 에디 콜이 인터뷰를 요청했다.

에디 콜은 유명한 래퍼이자 뉴욕을 응원하는 열렬한 팬, 뉴욕에 우승을 안겨준 영웅을 이대로 자리로 돌려보내야 하나.

팬들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리(Lee), 저와 잠깐 대화 좀 나눌까요?”

“미안하지만 당신하고 할 말은 없어.”

“잠깐이면 됩니다. 아마 저뿐만 아니라 팬들도 궁금해 하는 질문일 겁니다.”

겨우 붙들어 세운 영웅, 그렇게 인터뷰가 시작됐고 팬들은 귀를 기울였다.

“당신은 팬들과의 약속을 지켰다고 했는데,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무슨 말을 듣고 싶은 겁니까?”

“마이크 서튼은 내년에도 30번 째 월드시리즈 트로피를 이곳으로 가져올 거라고 약속했습니다. 당신은 뉴욕과 10년 계약을 맺었으니, 그 말에 동조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미안하지만 계약서에 그런 내용은 없었어요.”

10년 계약서에 월드시리즈에 관한 내용은 없다.

그저 이인영은 많은 돈을 원했고 우승을 바랐던 뉴욕이 그만한 대가를 지불했을 뿐, 우승을 했으니 2년 후 옵트아웃을 실행하는 것도 내 마음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30번 째, 31번 째 월드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가져오라니, 그런 건 계약에 없는 내용이라고 선을 그었다.

“어쨌든 저는 내년에도 그 다음 해에도 뉴욕의 선수로 활약할 겁니다. 또 우승을 선물하겠다는 약속은 못 하겠지만, 뉴욕에서 뛰는 동안 겸사겸사 우승 몇 번 더 했으면 좋겠네요. 확신은 못 하겠지만요.”

사방에서 야유가 동시에 쏟아져 나왔다.

계약서에 없더라도 한 시즌에 6천만 달러를 받는데 우승이 몇 번 서비스로 따라 와야 되는 거 아닌가.

하지만 이인영은 지키지 못할 약속은 안 하는 편, 날 찬양하든 원망하든 그건 팬들의 자유지만 내년에도 우승하겠다는 말은 끝까지 하지 않았다.

사람이 분위기에 취하면 허풍도 부리곤 하는데 그런 게 전혀 없는 사람, 에디 콜은 불만을 표했다.

“당신은 분위기 파악을 너무 못하는군요. 이렇게 환호하는 팬들 앞에서 우승 약속하는 게 어렵습니까?”

“분위기에 휩쓸려 하는 연애는 오래 못 가는 법이죠. 정말 오래 가는 인연은 슬프고 힘들 때 서로 보듬어 주는 관계에서 시작합니다. 뉴욕이 29번째 우승을 차지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련과 고난이 있었습니까? 그걸 잊지 마세요. 우승만이 팬과 구단의 관계를 끈끈하게 만들어주는 건 아닙니다.”

구단이 어려울 때 응원해주는 게 진정한 팬이라는 메시지,

에디 콜은 두 손 두 발 다 들었지만 햄스턴 구단주는 이인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이야 웃으면서 말 할 수 있지만 24년 동안 그렇게 돈을 쏟아 부어도 우승을 못하자 팬들은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이인영은 6억 달러에 영입했을 때도 팬들의 반응은 기대 반, 걱정 반, 동양인들은 30살이 넘어가면 먹튀가 된다는 저주를 퍼부은 자들도 있다.

결국 우승을 했으니 다행이지만, 올해도 실패했다면 나는 통 큰 구단주가 아니라 있는 돈도 제대로 못 쓰는 얼간이라는 평가를 받았겠지.

내년에도 30번 째 우승 트로피를 가져오겠다는 서튼의 허풍보다 앞날은 아무도 모른다는 말이 더 가슴에 와 닿았다.

* * *

“생각해 보고 전화 드릴게요.”

[네, 좋은 대답 기다리겠습니다.]

이곳은 한국, 미국에서 돌아온 이인영은 평온한 나날을 보냈다.

이때 들어온 광고, 이인영 뿐만 아니라 오래 전부터 인연을 맺고 있는 보육원 아이들도 섭외 제의를 받았다.

라면을 맛있게 먹는 장면만 찍으면 되는데, 별로 어려울 것 없지 않나. 일단 아이들에게 제안을 했다.

“그 라면 맛없어요.”

“맛없다고?”

“네, 맛이 없는데 어떻게 맛있게 먹어요?”

돌아온 답은 당돌했다.

광고를 제시한 식품회사는 최근 무서운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데, 솔직히 맛이 있다기보다는 적극적인 봉사 활동과 이미지 전략으로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냉정하게 따지면 맛은 평범한 수준, 아이들의 말에 이인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솔직히 나도 그 회사보다는 경쟁 회사 제품이 더 맛있더라.”

“그렇죠? 저희도 그래요.”

정말 너무 솔직한 아이들, 맛없는 걸 어떻게 맛있다고 하나.

그건 거짓말이고 소비자를 우롱하는 행위, 이인영은 아이들의 뜻을 광고업체에 전했다.

발칵 뒤집어진 회사, 이번에 내놓은 신제품은 다를 거라며 설득에 나섰고, 보육원에 라면 20상자를 제공하기도 했다.

어찌어찌 겨우 진행된 광고 촬영, 이인영은 쉬는 시간에 기자들의 질문을 받았다.

“광고를 거절할 뻔 하셨다고요?”

“네, 맛없는 걸 어떻게 맛있게 먹냐고 하는데 제가 할 말이 없더라고요. 어쩌면 제가 거짓말을 잘 못하게 된 건 봉사활동이 계기가 됐을지도 모르죠.”

이인영은 첫 번째 봉사활동을 나갔던 그날을 분명히 기억했다.

다음에 다시 온다는 그 말, 남들에겐 인사치레처럼 하는 말이지만 저 아이들의 가슴엔 정말 크게 다가온다.

그래서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지금까지 노력하는 중, 한국에서 뛸 때만큼 자주 올 수는 없지만 적어도 오프 시즌만큼은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내가 뱉은 말은 반드시 지키는 편이고, 그러지 못할 약속은 아예 안 해버리는 성격, 이때 한 기자가 질문을 던졌다.

“그럼 이번 광고는 어떤가요?”

“뭐가 말입니까?”

“정말 맛있게 드시던데, 그 말에 거짓은 없는 거죠?”

이인영은 자기도 모르게 기업 관계자와 눈을 마주쳤다.

짧은 순간이지만 정말 많은 대화가 오간 장면, 한 번 퇴짜 당한 경험이 있는 기업 관계자는 잔뜩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이것만큼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예전보다 분명히 개선됐습니다.”

“하하~ 맛있다는 말을 해주셔야죠.”

“뭐든 처음부터 잘 하는 건 없는 거죠. 앞으로도 계속 발전하면 되는 겁니다. 이렇게 계속 발전하면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맛있는 라면이 되지 않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끝까지 맛있다는 말은 안 하는 슈퍼스타, 그런데 솔직한 내용을 담은 기사가 나가면서 매출량도 11%나 뛰었다.

거짓말을 잘 못하는 이인영의 이미지가 기대 이상의 효과를 거둔 것, 덕분에 한성그룹도 나날이 발전하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얻었다.

[저희와 전속 계약 맺으시죠.]

“꼭 그렇게 해야 되나요?”

[아니요, 저희도 오기라는 게 있습니다.]

한성 그룹은 10년 계약을 제안했다.

발전한 건 사실이지만 앞으로도 갈 길이 먼 게 사실, 뭣보다 냉정한 평가를 내리는 이인영을 모델로 세우는 게 마케팅 면에서도 이득이지 않을까.

당신 말대로 한국 최고의 식품기업이 될 때까지 노력할 테니, 그 역사와 함께 해 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뉴욕 팬들이 30번 째 우승을 요구한 게 얼마 전인데 이제는 식품기업까지 들러붙다니, 답을 망설이던 이인영은 그룹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기부를 생활화하는 한성그룹처럼 광고 계약으로 벌어들이는 수익은 기부하기로 결정, 덕분에 국내에서의 인기는 더욱 치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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