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일은 일인자-252화 (252/309)

252화. 거짓말은 안 한다 (3)

따아악~!!

“이런 맙소사!! 말도 안 돼!!”

이곳은 뉴욕의 구장 햄스턴 스퀘어 가든, 뉴욕의 에이스 리차드 케이시는 어렵게 경기를 끌고 갔다.

올 시즌 성적은 13승 7패 평균자책점 3.58,

나쁘지 않은 활약이지만 6년 전 맺은 8년 3억 1천만 달러 계약을 생각하면 팀 입장에선 뭔가 아쉬운 활약이다.

피안타율(0.221)에 비해 평균자책점이 높은 이유는 너무 많은 피홈런, 171이닝을 던지는 동안 피홈런 27개를 허용했는데 홈에서는 더 많은 홈런을 기록하고 있다(홈 17개, 원정 10개).

다른 투수들도 홈에서 유독 홈런을 많이 맞는 편, 경기가 끝난 후 리차드 케이시는 기자들 앞에서 불만을 뿜어냈다.

“뉴욕의 홈구장은 투수에게 너무 불리하게 적용됐습니다. 이런 환경에선 투수들이 자기 공을 던질 수 없죠.”

“구장을 더 넓혀야 한다는 뜻입니까?”

“정답입니다. 이런 구장에선 타자들도 제대로 성장할 수 없다고요.”

홈에서 고전하는 리차드 케이시는 다소 과격한 주장을 내놨다.

구장이 작다보니 타자들이 팀 배팅을 외면하고 바보처럼 홈런만 노리는 스윙을 한다는 것, 뭘 말하고 싶은지는 알겠는데 의도했든 아니든 결국 동료들을 험담하는 거 아닌가.

이 사건으로 리차드 케이시는 알 게 모르게 따돌림을 당했다.

‘그래서?’

하지만 케이시는 문제점을 인지하지 못했다.

원래 남들과 어울리기보다 자기만의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성격, 따돌림을 당해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홈런 7개 맞고 10개 치면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닙니다. 각 팀마다 추구하는 방향은 다르니까요.”

반면 이인영은 인터뷰에서 자신의 생각을 드러냈다.

구장을 보면 그 팀의 미래를 볼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애틀랜타는 작년 시즌 홈구장을 더 넓히는 공사를 진행했다.

티모시 그라함이라는 대형 신예의 등장 덕분, 그라함은 작년 시즌 16승 11패, 평균자책점 2.37을 거두며 신인왕과 만테냐 어워드를 동시에 석권했다.

애틀랜타는 그라함을 중심으로 투수진을 양성하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했고, 공격보다 투수진을 중심으로 전력을 정비하고 있다.

뉴욕은 그 반대, 10년 전부터 뉴욕은 메이저리그에서 손꼽히는 화력을 보유했고 지금도 야수 중심으로 팀 전력을 꾸리고 있다.

투수가 홈런을 많이 맞아도 우리 팀이 더 치면 된다고 생각한 것, 실제로 뉴욕은 172홈런을 허용하는 동안 223홈런을 때려냈다.

훨씬 남는 장사, 뭣보다 리차드 케이스는 자신이 맞은 홈런만 생각했다.

“리차드 케이시는 지금까지 26홈런을 얻어 맞았습니다. 그리고 뉴욕 타자들은 케이시가 등판한 경기에서 38홈런을 때려냈죠. 본인이 맞은 홈런만큼 동료들이 채워줬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동료들한테 홈런만 노리는 바보 같은 스윙을 한다니, 그게 할 말입니까? 케이시는 뉴욕에서 저 다음으로 많은 연봉을 받는 선수입니다. 그만큼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너만 잘하면 아무 문제 없다는 발언,

두 선수 사이에 뭔가 묘한 기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 한 기자가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에 나섰다.

“혹시 케이시의 발언에 불쾌감을 느끼신 겁니까?”

“솔직히 그 친구와 사이가 좋다는 말은 못하겠네요. 클럽하우스에서 언제나 이런 표정을 짓고 있으니까요.”

이인영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가뜩이나 험상궂게 생겼는데 더 호감이 떨어지는 인상, 거기다 주름이 패여 실제 나이보다 더 늙어 보인다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이런 말씀을 하면 케이시가 더 기분 나빠 하지 않을까요?”

“괜찮습니다. 그 친구 때문에 기분 나쁜 건 저도 마찬가지니까요.”

이인영은 올 시즌 36홈런을 기록하고 있다.

대략 42홈런 페이스, 그런데 케이시의 발언 때문에 개나 소나 홈런을 치는 구장의 40홈런 타자가 돼 버렸다.

기분이 좋을 리 없는 발언, 남이 한마디 하면 그대로 돌려주는 성격이라 참지 않았다. 그건 다른 동료들도 마찬가지, 내색은 안해도 이인영의 발언에 통쾌함을 느꼈다.

“야, 너 그거 알아?”

“뭐가?”

“그 자식이 너 안 좋게 말하고 다니는 거”

그러던 어느 날 이인영은 스캇 험프리의 말에 귀를 세웠다.

원래 서로 말도 안 하고 서먹서먹하게 지냈던 사이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완전히 돌아섰다.

하지만 내가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고 할 말 한 거 아닌가. 뭣보다 케이시는 이미 동료들의 신뢰를 잃은 몸, 그깟 헛소문 퍼트리고 다녀봤자 심리적 데미지는 전혀 없었다.

“기분 나쁘지 않아?”

“사람은 성공할수록 마음을 넓게 써야 되는 거야. 나는 그 자식보다 연봉을 2배나 받으니까, 마음이 2배 정도는 넓어져야지.”

“그런거야?”

“그래, 너도 연봉 많이 받으면 입 좀 무겁게 하고 다녀라.”

이인영은 스캇 험프리에게도 주의를 줬다.

촉새도 아니고 그런 안 좋은 소문을 먹이처럼 물고 다니면서 퍼트릴 필요는 없지 않은가. 이곳에 모인 선수들은 가족보다 많은 시간을 보내지만 일 때문에 한 자리에 모인 것 뿐이다.

사이가 좋든 안 좋든 서로 할 일 하고 헤어지면 끝, 평생 볼 사이도 아닌데 무리하게 친해질 필요도 없다.

마음에 안 들지만 케이시는 뉴욕의 1선발, 그럼 서로 할 일 하고 헤어지면 그만 아닌가. 친해질 생각도 없지만 무리하게 대립각을 세울 생각도 없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8월 23일, 뉴욕은 볼티모어 원정에 나섰다.

원정이라고 해봤자 뉴욕에서 비행기로 1시간 거리, 뉴욕 선수단은 가볍게 소풍 나온 기분으로 경기에 임했다.

“자, 1회 초 뉴욕의 선공으로 경기가 시작됩니다. 타석에는 스캇 험프리, 올 시즌 타율 0.266, 23홈런, 61타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눈에 띄는 건 역시 장타죠. 지금 4경기 연속 홈런을 기록하고 있는데, 그 중 3개가 리드오프 홈런입니다. 선구안은 아직도 개선이 필요하지만 장타만큼은 확실히 눈을 뜬 것 같습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험프리는 볼티모어의 선발 레온 블레빈의 2구를 잡아당겼다.

우측 담장을 훌쩍 넘어가는 시즌 24호 홈런, 장타 군단 뉴욕은 1회부터 그 위용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따아악~!!]

“자!! 다시 우측으로 날아가는 타구!! 우익수가 날아 오르지만!! 더 먼 곳으로 떨어집니다!! 이인영 선수의 시즌 38호 홈런!! 3년 연속 40홈런에 한 걸음 더 다가섭니다!!”

“바보같이 홈런 스윙만 하고 있죠? 안타를 쳤어야 했는데 말이죠.”

박한우 위원은 그새를 못 참고 핏대를 세웠다.

본인의 형편없는 실력을 탓할 것이지 누굴 탓하는 건가. 마침 카메라가 불펜에서 몸을 풀고 있는 리차드 케이시를 집중 조명, 카메라를 돌릴 순 없고 본인의 목을 돌렸다.

“야, 그만 치자. 저 자식한테 이 이상의 호의는 필요 없다고”

“저 자식을 위해서가 아니야. 우리를 위해서지.”

뉴욕 선수들도 더그아웃에서 뒷담화를 이어갔다.

우리는 케이시를 위해 홈런을 노리는 게 아니다. 팀 승리와 나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일 뿐, 뉴욕의 맹공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따아악~!!

경기는 어느덧 3회 초, 잘 던지던 리차드 케이시는 이스마엘 로스에게 좌중간을 넘어가는 투 런 홈런을 허용했다.

그리고 5회 초, 다시 이스마엘 로스에게 연타석 홈런(시즌 29호)을 허용하면서 스코어는 4대 3, 이 기회를 노리고 있던 박한우 위원은 혹평을 쏟아냈다.

“지금도 보세요 가운데로 몰렸잖아요. 케이시 선수가 올 시즌 9이닝 당 볼넷 비율이 2.6개인데, 이게 제구가 좋아서 나온 기록이 아닙니다. 지금처럼 가운데로 몰리면 어디서도 던져도 맞을 수 밖에 없죠.”

“확실히 좀 아쉽긴 하네요. 제구만 잡히면 더 좋은 투구를 할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반면 임선우 위원은 아쉬움을 표했다.

이스마일에게 맞은 홈런을 제외하면 5회까지 1볼넷 9탈삼진, 잘나가다 중요한 순간에 삐끗하는 게 문제다.

평균 직구 구속은 97마일에 이르지만 구위가 좋지 않아 정면 승부는 어려운 스타일, 다만 슬라이더가 최상급이라 타자를 코너에 몰아놓으면 삼진은 자동으로 따라온다.

다만 이런저런 이유로 1류로 성장하지 못한 케이스, 데뷔 이후 12년 동안 똑같은 모습이라 뉴욕 관계자들도 케이시의 성장은 포기했다.

남은 계약기간 2년 동안 부상이나 안 당하면 다행, 부상 방지를 위해 90개 내외의 투구수도 지켰다.

“자네는 여기까지야.”

“6회에도 던질 수 있다고요.”

“투구 수 87개야. 그 이상 던지면 자네도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잖아?”

개릿 앤더슨 감독은 5회를 마친 케이시에게 교체를 통보했다.

연타석 홈런을 얻어맞았으니 할 말도 없는 신세, 케이시는 더그아웃에 앉아 남은 이닝을 지켜봤다.

‘도대체 원인이 뭐야?’

케이시는 자신의 문제점을 나름대로 분석했다.

1200이닝을 소화한 투수를 기준으로 케이시는 통산 9이닝 당 탈삼진 12.14개를 기록했다.

현역 메이저리그 기준으로 1위, 전문가들이 이런 저런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지만 케이시는 탈삼진율 하나만으로 논란을 잠재웠고, 오늘도 5이닝 동안 삼진 10개를 잡아냈다.

구위만은 메이저리그 최상급인데 꽃을 피우지 못한 신세, 그에 비해 홈런을 펑펑 쳐내는 젊은 선수들을 보고 있으니 속이 쓰렸다.

[따아악~!!]

“오~!! 이 타구는 다시 한 번 외야로~~ 머~ 얼리~!! 넘어갑니다!! 앤서니 몬테로의 시즌 19호 홈런!! 뉴욕이 다시 점수 차를 벌리고 있습니다!! 오늘 뉴욕은 홈런만 4개!! 화력 군단의 위용을 여지 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몬테로 선수까지 20홈런 대열에 합류하면 뉴욕은 20홈런 타자만 6명이죠. 이런 팀이 홈런 스윙을 하는 건 당연한 겁니다. 참고로 누구 들으라고 하는 소리입니다.”

마지막까지 뒤끝을 발휘하는 박한우 위원, 하지만 뉴욕의 화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따악~!!

“그렇지!!”

“무조건 들어와!! 뛰라고!!”

이어지는 7회 초, 이인영은 1사 주자 1 - 2루에서 1루 라인 선상에 떨어지는 타구를 날렸다.

펜스 구석에 숨어버린 타구, 그 사이 주자들은 3루를 지나 홈으로 밟았다. 홈런으로 점수를 내던 뉴욕 타선이 득점권에서 집중력을 발휘하는 순간, 3루에 안착한 이인영은 덤덤한 얼굴로 배팅 장갑을 3루 코치에게 넘겼다.

오늘 혼자서 4타점 게임, 134경기 만에 130타점을 돌파했다.

시즌 초반 기세에 비하면 약간 아쉬운 페이스, 경기가 끝난 후 기자들 앞에서 아쉬움을 표했다.

“마지막 타석이 조금 아쉽습니다. 충분히 넘길 수 있는 타구였는데 3루타가 되고 말았죠. 1타점을 날려 먹었습니다.”

“지금 이 말도 케이시를 겨냥한 겁니까?”

바보같이 홈런 스윙만 한다고 동료들을 깎아내렸던 케이시, 혹시 이것도 케이시를 조롱하는 질문인가?

이인영은 이제 그만하라고 눈을 부라렸다.

“이봐요. 내가 그 친구를 마음에 안 들어 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런 식으로 계속 조롱할 생각은 없습니다. 지금 당신은 뉴욕에서 불화가 일어나길 바라는 겁니까?”

“아니요 … 저는 딱히 그런 의도로 … ”

“의도가 있든 없든 그런 질문은 답할 가치가 없습니다. 답 안 할 거예요. 이의 있습니까?”

입을 다문 기자, 다른 기자들의 질문을 받은 이인영은 자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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