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화. 거짓말은 안 한다 (2)
“정말 여기서 먹는 거야?”
“응, 너도 만족할 거야.”
이곳은 텍사스 시내의 어느 식당, 이인영은 대기석에 앉아 있는 가족 옆에 자리를 잡았다.
오클랜드에서 활약하던 시절 통역을 통해 알게 된 식당, 질 좋고 양 많은 스테이크를 42달러 이내 가격으로 먹을 수 있다.
작년 8월 22일 텍사스 원정 경기 이후 이게 4번 째 방문, 이인영은 태연하게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정말 여기서 먹는 건가?’
아무 생각없이 따라온 뉴욕 선수들은 어리둥절한 표정, 잠옷차림으로 나온 손님과 눈이 마주친 마이크 서튼은 고개를 돌렸다.
천하의 메이저리거가 이런 곳에서 식사를 하다니, 품위 있는 곳에서 식사를 하라고 구단에서 식비까지 지급 받는데 여기서 밥을 먹어야 하나.
그러건 말건 이인영은 손님들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눴다.
“당신도 여기 음식 좋아하나요?”
“그럼요. 뉴욕의 레스토랑에 비하면 훨씬 싸고 맛도 괜찮으니까요.”
뉴욕에선 60달러는 내야 상위 3%에 들어가는 소고기를 먹을 수 있다.
그에 비하면 이곳은 2/3 가격, 연봉을 6천만 달러나 받는 선수가 그것까지 따져가며 밥을 먹나. 손님들은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당신은 메이저리거잖아요. 이런 곳에서 저녁 먹어도 괜찮나요?”
“뭐 어때서요? 제가 한국에서 칼질 할 땐 돈까스 먹을 때 뿐이었다고요. 지금은 이런 곳에서 칼질 할 수 있으니 나름 성공한 거죠.”
“돈까스가 뭔데요?”
“그런 게 있어요. 궁금하면 나중에 한국 가서 드셔보세요.”
그 사이 자리가 난 가게, 앞장 선 이인영은 동료 선수들의 주문까지 도왔다.
“나는 12온스로 먹을까?”
“16온스 먹어, 그것도 부족할 수 있으니까.”
“장담할 수 있어?”
“어, 여긴 두께가 꽤 있는데도 안 질기고 부드럽거든.”
마이크 서튼은 어이가 없다는 미소를 지었다.
미국인인 내가 외국인이 된 느낌이랄까, 어쨌든 그동안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해결해 온 선수들은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식사를 시작했다.
“맙소사, 나는 지금까지 무슨 스테이크를 먹은 거지?”
“이게 42달러라고? 말도 안 돼. 신이시여 … ”
별 기대 안 했던 선수들은 호평일색, 스캇 험프리는 우리는 그동안 쓸데없는 곳에서 식사를 했다며 불평 아닌 불평을 늘어놨다.
내가 소개한 가게에서 친구들이 맛있게 먹는다면 그것도 뿌듯한 일, 이인영은 만족한 얼굴로 식사를 이어갔다.
“조금 부족한데? 20온스를 먹을 걸 그랬나?”
“그냥 소 한 마리를 네 입에 쑤셔 넣는 게 어때?”
“그럼 넌 안 먹겠다는 거야?”
“그런 말은 안 했어.”
기분이 좋아졌는지 농담까지 주고 받는 선수들, 그런데 식당에 와 있던 한 손님이 이 장면을 카찍어 SNS에 올리면서 사소한 논란이 일어났다.
잠옷차림으로 돌아다니는 손님과 함께 식사를 하다니, 이게 메이저리거의 품격인가? 뉴욕 구단은 선수들에게 제대로 식비를 지급하고 있는 건가? 일부 뉴욕 팬들은 구단의 품격을 떨어트렸다는 비판을 늘어놨다.
“음식이 싸고 맛있으면 된 거 아닌가? 비싸고 형편없는 레스토랑에서 먹는 것보다는 낫다.”
이인영은 바로 반박문을 내놨다.
메이저리거는 무조건 비싼 곳에서 격식 차리고 먹어야 되나, 거기다 경기에서 진 것도 아니고 뉴욕은 텍사스 원정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왔다.
뭘 먹든 맛있게 먹으면 그만이지 뭘 그렇게 따지나, 불만 있으면 앞으로 칼질 하러 텍사스로 가겠다는 충격적인 말을 뱉어냈다. 뉴욕을 떠나겠다는 말이나 마찬가지, 깜짝 놀란 팬들은 입을 다물었다.
‘나는 아무것도 못 보고 못 들었음.’
그건 햄스턴 구단주도 마찬가지,
뉴욕은 입단할 때 수염도 기르면 안 되고 선수들의 품위를 깐깐하게 따진다. 메이저리그 최고 명문 구단의 선수가 싸구려 식당에서 밥을 먹는다는 것도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그런데 이인영은 보란 듯이 잠옷 차림의 손님들과 함께 밥을 먹었다.
평소라면 입에서 불을 뿜어냈겠지만 상대가 너무 강력, 이인영 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동석했던 선수들도 아무 조치 없이 넘어갔다.
‘선수의 품격은 승리와 실력에서 나오는 법’
다음 날, 이인영은 아무 일 없었다는 얼굴로 경기에 나섰다.
한국에서 돈까스 썰던 놈이 미국에서 스테이크 썰게 됐으니 나름 성공한 거 아닌가. 그런데 별것도 아닌 일로 열 올리는 보수적인 팬들, 내친 김에 수염도 길러볼까 했지만 그건 안 어울릴 것 같아 그만뒀다.
“자, 이인영 선수가 오늘 경기 첫 타석을 맞이합니다. 시즌 타율 0.350 - 홈런 29개 - 110타점, 7년 연속 3할 – 30홈런 - 100타점 시즌을 눈 앞에 두고 있습니다.”
“스테이크 썬다고 이젠 많이 건방져졌죠. 그런데 건방 떨 자격은 충분합니다.”
“하하~ 왜 한 말씀 안 하시나 했습니다.”
박한우 위원은 오늘도 깨알같은 한 마디를 덧붙였다.
한국에서 연봉 2천 만 원 받던 선수가 이제는 연봉만 650억 원이니, 뭣보다 뉴욕이 원해서 모셔간 인물 아닌가. 천하의 햄스턴 구단주마저 입을 다물게 한 선수, 그 위상을 눈으로 확인했다.
따아악~!!
“와아아~!!”
첫 타석부터 좌중간으로 날아가는 장타, 타구를 감상하던 이인영은 느긋한 런 웨이를 시작했다.
어느 곳에서든 자기 몫을 했던 커리어, 세계 최고 대접을 받는 지금이라고 달라진 건 없었다.
“오늘도 스테이크 먹으러 갈까?”
“안 먹어.”
타석에 들어서던 마이크 서튼은 동료의 역린을 건드렸다.
스테이크 때문에 그 난리를 쳤는데 또 먹으러 가자니, 한 대 맞을 각오도 했지만 별 일 없이 넘어갔다.
실력으로 논란을 잠재운 하루, 이인영은 라커룸 앞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았다.
“올 시즌 뉴욕은 과거의 영광을 되찾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전문가들도 뉴욕을 월드시리즈에 가까운 팀으로 평가하고 있는데, 당신도 그렇게 생각합니까?”
“글쎄요. 그건 두고 봐야 할 일이죠.”
질문을 던진 기자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다들 뉴욕의 우승을 점치고 있는데 그 중심에 서야 할 선수가 이런 말을 하다니, 조심스럽게 대화를 이어갔다.
“뉴욕이 우승을 못할 수도 있다는 뜻으로 하신 말씀입니까?”
“전문가들도 뉴욕이 우승에 가깝다는 말을 했지 한다고 확신한 적은 없지 않습니까? 저는 예언가가 아니라 그런 질문에 확답은 못하겠습니다.”
우승은 실력 뿐만 아니라 운도 따라줘야 하는 법, 확실하지도 않은 일에 그렇다고 답하는 건 거짓말 아닌가.
이인영은 미처 못 다한 말을 이어갔다.
“다만 이것만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뉴욕은 지금까지 우승을 위해 노력해 왔고 구단도 투자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우승이 마음 먹는다고 이뤄지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노력은 해야 결실을 맺는 법이죠. 올해는 못하더라도 구단 관계자들과 선수들, 그리고 팬들이 간절히 원한다면 언젠가는 우승할 수 있을 겁니다.”
인터뷰 내용을 접한 팬들은 경악했다.
뭔가 불길한 서두라고 해야하나, 이러다 우승을 못하는 건 아닌지, 하지만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어쨌든 정말 솔직한 선수라는 건 분명, 어디까지 솔직해 질 수 있을까. 이를 시험하겠다는 용자들이 나타났다.
“이봐요 리(Lee), 테드 반디는 정말 뛰어난 선수죠?”
“네 그렇죠.”
“당신보다 낫다고 생각합니까?”
한 기자는 욕 먹을 각오로 질문을 던졌다.
테드 반디는 한 때 이인영과 라이벌리를 이룬 선수, 포스트 시즌에서도 맞붙었고 지금도 누가 더 뛰어난 선수인지를 두고 팬들은 논쟁을 이어가고 있다.
■ 이인영 – 타율 0.351, 30홈런, 112타점
■ 테드 반디 – 타율 0.349, 33홈런, 89타점, 21도루
올 시즌 성적도 겉만 보면 누가 낫다고 할 수 없는 수준, 그래도 전문가들은 언젠가는 테드 반디의 시대가 올 거라고 입을 모았다.
이유는 나이, 테드 반디는 올해 27살 밖에 안 된 젊은 선수고 이인영은 32세에 접어들었다.
거기다 메이저리그 커리어를 늦게 시작한 탓에 누적 스탯에서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는 입장, 그래서 뭐 어떻다는 건가.
이인영은 솔직한 심정을 내놨다.
“사실은 제 아들이 당신과 같은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오~ 그렇습니까?”
“네, 테드 반디와 저 중 누가 더 훌륭한 선수냐고 물어보더군요.”
“그래서 뭐라고 답했습니까?”
“지금은 아빠가 더 훌륭하지만 나중에 아빠가 나이가 들면 그 친구가 더 야구를 잘하게 될 거라고 했습니다.”
기자는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더 낫다.’ 이런 답이 날아올 줄 알았는데 의외로 담담한 반응, 이런 질문을 받은 게 기분 나쁘지 않느냐고 물어봤다.
“누군가와 비교당하는 건 유쾌한 일은 아닐 겁니다. 특히 당신처럼 최고의 자리에 오른 선수라면 더 그렇겠죠. 제가 이런 질문을 던진 게 기분 나쁘지는 않습니까?”
“아이들은 가끔 악의 없이 무례한 질문을 하곤 하죠. 당신도 기자 경력이 별로 안 된 것 같은데, 어쩌겠습니까. 어른인 제가 이해를 해야죠.”
한 방 먹은 기자는 멍한 표정을 지었고 그 장면을 지켜보던 뉴욕 선수들은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야구 실력만 뛰어난 게 아니라 말빨도 누구에게 안 지는 타입, 어쨌든 일과를 마친 이인영은 퇴근 길에 올랐다.
마침 내일은 쉬는 날, 최근 활동성에 물이 오른 아들을 전담 마크했다.
“아빠, 어제 그 사람 또 홈런 쳤데요.”
“그래?”
“아빠는 언제 홈런 쳐요?”
오늘도 시작된 악의 없는 무례한 질문, 이인영은 말없이 미소만 지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아들에겐 약간 무른 편, 저 녀석은 아빠와 다른 사람을 비교하는 게 아니다.
우리 아빠가 최고였으면 좋겠는데 다른 사람이 앞서가는 게 불만이겠지, 계속되는 독촉에 입을 열었다.
“아빠 얼마 전에 홈런 쳤잖아.”
“그 정도론 안 돼요. 더 많이 쳐야죠.”
역시 아빠가 다른 선수에게 뒤지는 게 싫었던 모양,
이인영은 어린 시절 아빠가 세계 최고의 야구선수인 줄 알고 자랐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의 충격이란, 그때부터 내가 최고의 선수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아이들에겐 아빠 엄마가 신과 같은 존재, 하지만 언제나 자식에게 위대하고 존경받는 존재가 될 순 없다. 때가 되면 나보다 덩치가 커질 녀석, 그때는 아버지보다 나은 아들이 되어야 하지 않겠나.
마음 속에 담아두고 있던 아들에게 전했다.
“넌 아빠가 언제나 세계 최고였으면 좋겠지?”
“네에~ ”
“그런데 언제까지 그럴 수는 없어. 나중에 넌 아빠보다 키도 더 커질 거야.”
“정말요?”
“그래, 그러니까 그때는 네가 아빠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지.”
재찬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빠는 세계 최고의 선수 그보다 더 뛰어난 선수가 되는 게 가능할까. 뭣보다 내가 아빠보다 더 커진다니, 상상하기 어려웠다.
“아빠 나 업어줘요.”
“왜?”
“아빠보다 더 커지는 게 어떤 기분인지 느껴보려고요.”
씩 웃던 이인영은 아들을 목덜미에 올렸다.
키가 190이 넘는 아빠, 그 위에 올라탄 재찬이는 희열과 무서움을 동시에 느꼈다.
정말 나도 나중에 이만큼 커질까. 나중에 아빠보다 더 커지는 날이 오더라도 지금은 아빠의 등에 업히는 게 더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