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화. 거짓말은 안 한다 (1)
[천재가 천재를 만난다]
[이인영 – 이충재 맞대결 예고]
8월 2일, 한국 여론은 코리안 메이저리그의 맞대결에 흥분했다.
4년 전 150만 달러를 받고 세인트루이스에 입단한 이충재, 한국 고교 유망주 중 가장 많은 계약금을 받은 덕분에 프로에서 공 하나 던지지 않고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
거기다 마이너리그를 3년 만에 졸업하고 메이저리그 무대에 데뷔, 첫 경기에서 1와 1/3이닝 동안 볼넷 2개, 1실점, 삼진 2개를 잡아내며 가능성을 보였다.
[이인영 시즌 42호 홈런]
[오클랜드 7연승 이끌었다]
하지만 넘을 수 없는 존재감을 지닌 어느 선수 때문에 이렇다 할 주목을 받지 못했다.
거기다 이인영이 10년 6억 달러라는 엄청난 계약을 맺으면서 이충재는 관심 밖으로 밀려난 신세, 그래도 올해는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3승 2패 평균자책점 3.70을 기록하며 조금씩 존재감을 끌어올렸다.
이인영은 메이저리그 직행은 하지 못했지만 어쨌든 자타 공인하는 천재, 이충재도 한국 야구를 빛낼 인재라 한국 여론은 두 선수의 맞대결에 관심을 보였다.
‘누구지? 이름은 들어본 것 같기도 하고 … 아닌가?’
반면 이인영은 이충재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스포츠 기사를 봐도 모든 게 날 중심으로 배치 됐고, 그 선수는 그냥 슥슥 스쳐 지나가는 존재였다.
내가 다니던 고교 직계 후배도 아니고 냉정히 따지면 남일 뿐, 그런데 내가 그 선수 프로필까지 꿰고 다녀야 하나.
거기다 그 선수는 내셔널리그 소속, 이충재가 승격되기 전 이인영은 아메리칸 리그로 트레이드 됐다. 그동안 서로 만난 일도 없고 솔직히 말해서 관심 자체가 없었다.
그런데도 좋은 선수이고 미래가 밝다며 립 서비스를 해줘야 하나. 솔직히 이충재보다 잠시 라이벌 관계를 이뤘던 테드 반디가 더 신경쓰였다.
“내일은 누가 등판한다고 했지?”
“몰라. 물어 봤어?”
“아니”
그건 뉴욕 선수들도 마찬가지, 평균 수명이 6년도 안 되는 메이저리그에서 풀타임 1년도 채우지 못한 선수를 누가 집중 해부하나.
뉴욕 선수단은 애송이는 제쳐두고 이름 있는 선수들을 집중분석했다.
“이인영 선수, 내일 드디어 한국인 투타 맞대결이 성사되는데요 이충재 선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하지만 이런 배경을 모르는 한국인 기자들은 이인영 앞에 이런 저런 질문을 던졌다.
아는 게 거의 없는데 무슨 답을 해줘야 하나. 일단 내일 경기를 앞두고 벼락치기는 할 예정, 사실대로 말하기는 그렇고 상대 선수를 칭찬할 때 흔히 쓰는 말에 살을 조금 붙였다.
“이충재 선수는 좋은 빠른 볼과 변화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코너를 활용할 줄 아는 공격적인 투구를 하죠. 직접 상대해 본 건 아니지만 특히 슬라이더가 빠르고 각도 예리해 타자들이 공략하기 까다롭다고 알고 있습니다.”
“굉장히 자세히 알고 계시네요?”
“그야 같은 한국인 선수니까요.”
이인영은 마음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내가 이렇게 거짓말을 잘하는 놈이었나. 어쨌든 기자들을 떨쳐낸 이인영은 차분하게 경기를 준비했다.
[이충재의 고속 커브, 슬라이더였나?]
다음 날, 이인영의 인터뷰는 한국 여론을 혼란에 빠트렸다.
이충재는 고속 커브를 던지는 걸로 알려져 있는데 이인영은 슬라이더를 언급, 뭐가 어떻게 된 건가.
그런데 이건 미국 현지에서도 논란이 있는 주제다.
보통 커브와 슬라이더를 다른 구종이라고 여기는데, 정확히 말하면 슬라이더는 빠른 볼과 커브의 중간에 걸쳐 있는 구질이다.
슬라이더 그립을 잡아도 손목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커브처럼 떨어질 수 있고, 커브 그립을 잡아도 어떨 때는 슬라이더처럼 휘는 게 그 증거, 투심과 체인지업을 명확히 구별하기 어려운 것처럼 구종을 칼처럼 구분하는 건 어렵다.
미국 전문가들 중에도 이충재의 커브를 슬러브로 보는 자들이 있으니, 이인영이 슬라이더로 칭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나 커브 던지는데’
반면 이충재는 대선배의 인터뷰에 약간 서운함을 느꼈다.
유치원에서 개를 그렸는데 곰을 그렸냐고 물어본 선생님, 그때 받은 충격은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다.
난 분명 커브를 던지는데 남들은 슬라이더라고 하고 있으니, 결국 내가 커브를 제대로 못 던진다는 뜻인가. 자신의 미숙한 실력을 탓했다.
어쨌든 1차전에서 패배한 세인트루이스는 절치부심하고 2차전을 준비, 반면 뉴욕 선수단은 더그아웃 근처를 어슬렁거리며 여유를 부렸다.
“자, 1회 초 뉴욕의 선공으로 경기가 시작됩니다. 선두 타자는 스캇 험프리, 올 시즌 타율 0.266, 홈런 13개, 40타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몸 쪽에 약점이 있다는 건 널리 알려져 있죠. 이충재 선수도 그걸 노려야 합니다.”
이명한 캐스터와 임선우 위원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박한우 위원은 홀로 생각에 잠겼다.
[코너를 활용할 줄 아는 공격적인 투구를 하죠. 직접 상대해 본 건 아니지만 특히 슬라이더가 빠르고 각도 예리해 타자들이 공략하기 까다롭다고 알고 있습니다.]
애재자가 이충재를 평가한 말,
저 친구가 코너를 활용할 줄 아는 투수였나? 박한우 위원은 이충재를 관심 있게 지켜봤지만 평가는 냉정하게 했다.
올 시즌 이충재의 9이닝당 볼넷은 2.40개, 이것만 보면 나쁜 편이 아닌데 이것만으로 제구를 평가할 수 없다.
가운데로 몰려서 맞은 안타와 홈런이 9이닝 당 볼넷에 포함되나?
투수의 제구를 논할 때 중요한 건 눈으로 보이는 볼넷 수치가 아니라, 볼넷을 주더라도 코너를 찌르는 능력이다.
정말 절묘하게 코너를 찔렀는데 주심의 손이 올라가지 않는다면? 그건 볼넷으로 기록되지만 투수의 제구력이 떨어져서 내준 볼넷이 아니다.
이렇게 숫자만으로 투수의 제구를 논하는 건 의미가 없는데, 한국 언론은 이충재가 뛰어난 제구와 구위를 갖춘 선수라고 띄워주고 있다.
거품을 걷어내면 실체가 약간 보이는 선수, 세인트루이스는 왜 이충재에게 뉴욕의 강타선을 상대하는 임무를 맡겼을까.
네가 정말 뛰어난 선수인지 시험해 보겠다는 뜻이지, 딱히 그 능력을 인정한 게 아닐 수도 있다.
여러모로 불안한 게임, 박한우 위원은 이 경기에 이충재의 미래가 달렸다는 걸 직감했다.
[딱~!!]
“아 … 이 타구는 내야를 빠져나가는 군요. 이충재 선수가 선두 타자에게 안타를 허용합니다.”
“볼넷을 주는 것보다는 낫죠. 어떤 상황에서도 씩씩하게 투구를 하면 되는 겁니다.”
안타가 나왔지만 임선우 위원은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한때 세인트루이스에서 뛴 적도 있고, 본인이 투수 출신이라 이충재에게 애정이 가는 게 사실, 이충재는 다음 타자 몬테로를 우익수 플라이로 처리했지만 표정은 어두웠다.
‘역시 메이저리그는 안 통하는 건가.’
마이너리그에서는 구속으로 찍어누르는 투구가 가능했지만, 메이저리그는 구속보다 구위가 받쳐주질 않으면 안 된다.
100마일을 던져도 볼 끝이 밋밋하면 얻어맞는 리그, 왜 나는 선발과 불펜을 오고 가는 걸까.
일부 한국인 네티즌은 인종차별이니 뭐니 하고 있는데, 정말 냉정하게 따져보면 나보다 잘 던지는 투수들이 많은 것 뿐이다.
유독 높은 백인선수 비율과 몇 년 전 일어난 유색 인종 선수간의 갈등 때문에 그런 면이 더 부각 됐을 뿐, 세인트루이스는 철저히 실력으로 선수를 선발한다.
오늘 이렇게 선발 자격을 얻은 것도 감독이 엄청난 호의를 베푼 것, 한국 여론이 코리안 메이저리그 투타맞대결이 성사됐다며 좋아할 때도 이충재는 진심으로 웃지 못했다.
본인의 실력이 메이저리그에서 어느 정도인지 깨달았으니 더 나아져야 겠지, 거기다 상대는 AL 최강의 공격력을 가진 뉴욕 아닌가.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풀지 못했다.
거기다 다음 상대는 이 어려운 메이저리그를 평정한 대선배, 루키의 얼굴은 눈에 띄게 굳어졌고 다리까지 덜덜 떨렸다.
“자, 이제 이인영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올 시즌 타율 0.349 – 27홈런 - 109타점, 코리안 메이저리거의 맞대결이 드디어 성사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오늘 이인영 선수가 멀티 히트 치고, 세인트루이스가 이겼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최상의 시나리오 아닌가요?”
“글쎄요. 실력 있는 자가 이기겠죠.”
“하하~ 박한우 위원님은 오늘 유독 까칠하시네요.”
이명한 캐스터는 곁눈질로 옆자리를 살폈다.
애재자만 너무 편애하는 거 아닌지, 이충재 선수도 좀 응원해 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만뒀다.
‘공은 빠르네.’
초구를 지켜본 이인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광판에 찍힌 구속은 96마일, 선발투수가 이 정도 구속이면 최상급이다. 구속만 따져보면 아시아에서 나오기 힘든 인재,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스트라이크와 볼의 차이도 확연, 가운데로 몰린 공을 잡아당겼다.
따악~!!
“그렇지!!”
“저 정도 애송이에게 끌려다닐 정도로 우리는 한가하지 않다고!!”
우중간을 가르는 장타, 1루 주자 험프리는 단숨에 홈까지 파고들었고 이인영도 2루에 자리를 잡았다.
기세가 오른 뉴욕 진영은 박수를 치며 실력을 과시, 반면 첫 경기를 내준 세인트루이스 진영은 침묵에 휩싸였다.
‘제구만 조금 다듬으면 괜찮을 텐데 … ’
세인트루이스의 존 에거스 감독은 입은 닫은 채 머릿속에서 계산기를 두들겼다.
메이저리그라고 모든 투수들이 꿈틀거리는 100마일을 던지는 건 아니다.
96마일 이상 빠른 볼을 쉽게 던지는 이충재는 분명 뛰어난 인재, 볼 끝이 좋은 건 아니라 구위로 타자를 찍어누르는 건 어렵지만, 좌우를 찌를 제구력이 받쳐주면 선발로 활약할 수 있는 재목이다.
다만 그게 쉽지 않다는 게 문제,
여차하면 이전처럼 불펜으로 활용할 수도 있지만, 그러기엔 잠재력이 너무 아까웠다.
“아~ 다시 볼이네요. 카운트는 쓰리 볼 노 스트라이크가 됩니다.”
“뉴욕 타선이 전체적으로 다 한 방이 있거든요. 우측으로 툭툭 밀어치는 스윙을 하고 있는데, 이충재 선수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뉴욕의 4번 타자 마이크 서튼은 차분하게 볼을 골라내며 루키를 궁지에 몰아넣었따.
이인영에 가려져서 그렇지 마이크 서튼도 타율 0.317 – 20홈런 – 73타점을 올리고 있는 강타자, 이 상황에서 변화구를 던지는 바보가 어디에 있나.
빠른 볼만 노렸고 그물에 걸려든 먹잇감을 놓치지 않았다.
따악~!!
이번에는 좌중간을 가르는 타주, 2루 주자 이인영은 3루를 돌아 유유히 홈을 밟았다.
순식간에 2대 0, 실력의 차이를 실감한 이충재는 자기 투구를 하지 못했고 2와 1/3이닝만 소화한 채 마운드를 내려왔다.
인종차별을 운운했던 한국 팬들의 입을 다물게 한 경기, 며칠 후 이인영은 박한우 위원의 전화 통화를 받았다.
[너 솔직히 마음에도 없는 말 한 거지?]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 녀석이 무슨 좌우코너를 잘 활용해? 사실을 말 해야지]
박한우 위원은 베이스볼 투나잇에서 선수의 장단점을 분석하는 코너를 진행하고 있다.
이충재는 공은 빠르지만 제구가 부족하다는 말을 하려고 했는데, 애제자가 좌우코너를 잘 활용한다는 말을 해버렸으니, 나는 팬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건가.
이충재가 무너진 이유를 설명해야 되는데, 메이저리그에서 현역으로 뛰고 있는 선수와 KBO에서만 평생을 뛴 내가 정반대 되는 주장을 하면 팬들은 누구의 손을 들어주겠는가.
박한우 위원은 진실만을 말하라며 애제자를 압박했다.
“저는 그런 말 한 적 없어요.”
[너 얼마 전에 그 녀석 좌우코너 잘 활용한다고 했잖아?]
“좌우코너를 잘 활용하면 성공할 선수라고 하지 않았나요?”
하지만 이인영은 너스레를 떨었다.
원래 사실과 사람의 기억에는 차이가 있는 법, 나는 그런 말 한 적 없다며 오리발을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