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일은 일인자-249화 (249/309)

249화. 일단 먹고 본다 (5)

[따악~!!]

“자!! 밀어낸 타구가!! 좌중간!! 좌익수가 잡아냅니다!! 그 사이 3루 주자는 홈으로!! 뉴욕이 오늘도 선취점을 안고 경기를 시작합니다!!”

“지금은 몸 쪽인데 이걸 좌중간으로 밀어냈거든요. 이인영 선수가 얼마나 영리한 선수인지 보여주는 타격입니다.”

박한우 위원은 애제자의 타격을 칭찬했다.

최근 몸쪽 공에 약점을 보이고 있는 이인영, 거기다 지금은 만루에서 타석에 들어섰다.

다른 타자들이라면 공을 최대한 홈플레이트 앞에서 때려내려고 했겠지, 하지만 이인영은 최근 되지도 않는 잡아 당기기를 포기했다.

공을 최대한 홈플레이트 쪽으로 끌어들이고 밀어내기, 이러면 담장을 넘길 순 없겠지만 외야로 보내 3루 주자를 불러들일 수 있다.

그날 볼이 안 좋아도 어떻게든 타자를 맞춰 잡아내는 투수처럼 타격감이 안 좋아도 타점을 올리는 타자가 있다.

만루 홈런은 아니지만 어쨌든 제 역할을 한 중심타자는 앤더슨 감독의 환영을 받으며 더그아웃에 입성, 동료들과도 하이파이브를 주고받았다.

‘이건 임시 방편일 뿐’

하지만 이인영은 희생플라이로 만족하지 않았다.

메이저리그에서 통산 266홈런을 날리는 동안 31개를 밀어서 넘겼는데 이번 시즌도 4개를 밀어서 담장 밖으로 날려보냈다.

문제는 4개가 모두 홈에서 나왔다는 것, 바깥쪽 공은 밀어내는 게 원칙이지만 몸쪽 공까지 그렇게 치는 건 곤란하다.

다만 뉴욕의 홈구장은 우타자에게 유리한 편, 깔끔하게 밀어내지 못해도 담장을 넘어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밀어치는 게 나쁜 것도 아니고 타점을 못 올리고 있는 건 아니지만, 잡아당기는 타격이 안 되다 보니 생산력이 확실히 줄어들었다.

어느 타자든 만루에선 홈런을 치길 바라지 희생플라이를 노리진 않는다. 다만 지금은 그게 안 되다 보니 임시방편으로 팀 배팅을 한 것, 타점 하나 먹었다고 의기양양하진 않았다.

‘그래도 괜찮아.’

그렇다고 침울해 하지도 않았다.

빠른 볼을 홈플레이트 쪽으로 끌어당겨도 타격이 된다는 건 투수가 변화구를 던져도 대응이 된다는 뜻이다.

빠른 볼에 타이밍만 맞추면 문제 해결, 더그아웃에서도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경기는 흘러 3회 말, 이인영은 두 번 째 타석을 맞이했다.

탬파베이는 4점을 내준 선발투수 벤 빈센트를 내리고 웨슬리 파셰로를 투입, 탬파베이의 감독 케빈 칸투는 빠른 볼 승부를 지시했다.

최근 빠른 볼에 감을 못 잡는 타자를 왜 두려워 해야 하나, 하지만 이인영은 빠른 볼을 모두 커트해 내며 승부를 5구까지 끌고 갔다.

‘이 정도면 변화구 던져도 되지 않나?’

5구는 커브를 택했지만 이것마저 커트, 타이밍을 이렇게 뒤에 두고도 컨택을 하는 게 가능한 건가.

어쨌든 변화구보다는 빠른 볼이 잡아낼 확률이 높겠지, 구위에 자신이 있는 웨슬리 파셰로는 빠른 볼 사인을 냈고 포수는 바깥쪽으로 빠져 앉았다.

[딱~!!]

“자, 다시 파울입니다. 카운트는 투 볼 투 스트라이크”

“다시 말씀 드리지만 이인영 선수는 상대를 괴롭히는 취미는 없습니다. 타격감이 좋을 때는 초구부터 달려들거든요. 그런데 본인이 타격감이 안 좋을 때는 이렇게 파울을 만들어 냅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맹수는 초식동물의 숨통을 단번에 끊어냅니다. 죽여도 이렇게 질질 끌지 않거든요. 이빨이 무뎌지다 보니 잡아 먹히는 쪽도 힘들어 지고 있습니다.”

“하하~ 그럼 투수들은 이인영 선수를 만날 때 단칼에 죽여달라고 부탁해야 하는 겁니까?”

“지금 승부를 보세요. 그렇게 흘러가고 있잖아요.”

7구까지 가는 승부, 웨슬리 파셰로는 미간을 찌푸렸다.

빠른 볼이 계속 커트 당하고 있는데 또 던져도 되는 건가. 그렇다고 변화구를 던지기엔 껄끄럽고, 역시 빠른 볼을 택했다.

따아악~!!

“와아아~!!”

좌측으로 밀어낸 타구, 마지막까지 추격에 나선 중견수는 몸을 날렸지만 공은 담장 너머로 사라졌다.

11경기 만에 나온 시즌 25호 홈런, 사방에서 환호성이 쏟아졌지만 이인영은 별 다른 세리머니 없이 홈을 밟았다.

내가 원해서 나온 밀어내기도 아니고 다른 구장이었다면 넘어가지 않았을 타구, 홈구장의 도움을 받은 홈런이라 숙제가 해결된 건 아니다.

‘몰라, 일단 춤 춰.’

더그아웃에 들어서자 뒤바뀐 태도, 이인영이 허리를 좌우로 꺾는 스탭을 밟자 동료들도 리듬에 몸을 맡겼다.

어쩌다 얻어걸린 홈런이지만 즐길 건 즐길 뿐, 숙제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 * *

“재찬아, 과자 많이 먹으면 안 된다.”

“네에~ ”

7월 12일, 혜진 씨는 아들과 함께 애틀랜타로 향했다.

내일 모레는 남편이 통산 7번째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을 치르는 날, 그동안 한국에서 생활하느라 남편의 활약을 축하해주질 못했다.

지금은 교직을 때려치우고 미국으로 넘어왔으니 얼마든지 가능한 일, 아침부터 과자에 푹 빠진 아들과 기싸움을 벌였다.

“지금 먹으면 안 된다니까.”

“그럼 언제 먹어요?”

“아빠가 홈런 친 다음에 먹어.”

혜진 씨는 나름대로 머리를 굴렸다.

요즘 홈런이 잘 안 나오는 남편, 그렇다고 홈런을 못 치길 바라는 건 아니지만 지금은 쓸데없는 군것질을 하는 아들을 타이르는 게 우선이라고 판단했다.

“그럼 저 과자 못 먹는 거예요?”

심술이 덕지덕지 붙은 얼굴, 혜진 씨는 뒤늦은 수습에 나섰다.

“넌 아빠가 홈런 못 칠 거라고 생각해?”

“ … 그건 아니에요.”

“그럼 아빠를 믿어 봐. 괜찮을 거야.”

재찬이는 일단 엄마의 술책에 넘어가 줬다.

내가 어리다고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건가. 홈런이 잘 안 나오는 건 어린아이도 알고 있는 상식, 이번 일은 아빠에게 일러바치기로 했다.

“아빠, 엄마가 아빠 홈런 칠 때까지 과자 먹지 말래요.”

“그래? 그럼 아빠는 어떻게 해야 돼?”

“그냥 저 과자 먹게 해주세요.”

아빠가 홈런을 치든 말든 재찬이의 목적은 과자, 치사하게 아빠의 권위를 빌릴 줄이야.

혜진 씨는 갈수록 영악해지는 아들을 복잡한 눈으로 바라봤다.

“애 먹던 걸 왜 못 먹게 해?”

“너무 먹으니까 그렇지.”

“먹는 거 가지고 뭐라고 하는 게 제일 치사한 거야. 얼른 먹어, 아빠가 허락할 게”

보란 듯이 엄마 앞에서 과자를 먹는 아들, 아빠는 모자(母子)의 기싸움에 흥미를 보였다.

“그런데 아빠가 좀 서운하다.”

“뭐가요?”

“아빠 홈런 잘 치잖아. 아빠가 홈런 못 칠 거라고 생각했어?”

“홈런이 매일 나오는 게 아니잖아요. 저도 아빠 힘들 게 일하시는 거 알아요.”

이인영은 자기도 모르게 코웃음을 쳤다.

코흘리개 녀석이 뭘 안다고 이런 말을 하는 건지, 네가 그걸 어떻게 아냐고 물었지만 돌아온 답은 명확했다.

“엄마가 아빠는 힘들게 일하시니까 집에 오면 말썽부리지 말라고 그래요.”

“정말 그랬어?”

“네~ ”

자연스럽게 맞닿은 부부의 시선, 연애하던 시절처럼 눈만 마주쳐도 불꽃이 튀는 건 아니지만 서로가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편안함을 느끼는 관계가 됐다.

그만큼 부부관계가 안정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것, 그 유대를 이어주는 어린 아들도 사랑스러웠다.

“내일 아빠가 홈런 3개 치면 어떻게 할래?”

“그럼 저 과자 매일 먹어도 돼요?”

“아니 그건 아니지, 엄마 말씀 잘 듣기”

“그럼 홈런 못 치면 저 과자 매일 먹을 거예요.”

못 말리는 아들 앞에서 아빠는 넉넉한 미소를 지었다.

도대체 누굴 닮아서 이러는 건지, 내 유전자가 반은 섞인 녀석이라 당신을 닮아서 그렇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어쨌든 그렇게 맞이한 생애 7번 째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이인영은 아메리칸 리그 대표팀의 2번 타자로 타석에 들어섰다.

“자, 이인영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올 시즌 타율 0.347, 25홈런, 101타점, 전반기에 100타점을 넘기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다만 최근 장타력이 조금 떨어져 있죠. 후반기 대 약진을 위해서라도 타격감을 찾아야 합니다.”

내셔널리그 대표팀의 선발은 LA 머린스의 에이스 킨사이드, 내게 홈런을 6개나 허용한 밥 줄 아닌가.

이인영은 초구부터 자신감 있게 스윙을 돌렸다.

따아악~!!

“어?!!”

“재찬아 저기 봐!! 저기!! 저기!! 홈런이다!!”

설마 했던 아빠의 홈런, 재찬이는 그래도 태연한 표정을 유지했다.

아빠가 홈런 3개 쳐야 엄마 말씀 잘 듣는다고 약속하지 않았나. 아직은 한 개, 심리적으로 흔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경기는 흘러 3회 초 아메리칸 리그의 공격, 이인영은 1사 주자 1 – 3루에서 두 번 째 타석을 맞이했다.

마운드에는 애틀랜타의 에이스 짐 에보츠, 킨사이드가 어떻게 두들겨 맞는지 지켜본 에보츠는 신중한 승부를 펼쳤다.

“바깥 쪽 볼입니다.”

“이인영 선수가 첫 타석에서 몸쪽 공을 호쾌하게 잡아당기지 않았습니까. 올스타전이라도 홈런 맞는 건 꺼림칙하겠죠.”

[따아악~!!]

“낮은 공을 걷어 올렸고!! 이 타구는 그저 지켜볼 뿐입니다!!!! 이인영 선수의 연타석 홈런!! 아메리칸 리그가 6대 0으로 앞서나갑니다!! 한 동안 잠잠했던 홈런 포가 여기서 터져 나오는 군요!!”

“이렇게 되면 올스타전 MVP도 노려볼만 하죠. 아니 거의 확정이라고 봐도 좋겠네요.”

설마 했던 연타석 홈런에 재찬이의 얼굴은 굳어졌다.

지금이라도 많이 먹어두는 게 좋지 않을까. 반쯤 비워낸 과자봉지를 허겁지겁 먹어치웠고, 엄마는 그 옆에서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과자 먹지 말라고 한 적은 없는데’

아빠는 그저 엄마 말 잘 들으라는 말을 했을 뿐, 얘가 뭔가 오해를 하고 있는 건 아닌가.

어쨌든 하는 짓이 귀여워서 내버려뒀다.

그렇게 경기는 흘러 5회 초 7대 2로 앞선 아메리칸 리그의 공격, 이인영이 타석에 들어서자 사방에서 견제용 야유가 쏟아졌다.

남의 집 잔치에 이렇게 찬물을 끼얹다니, 하지만 필라델피아 시절부터 애틀랜타에 강점을 보인 강타자는 이런 분위기에 익숙해 졌다.

뭣보다 관중석에 앉아 있는 아들이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상상만으로 입꼬리가 들썩거렸다.

따악~!!

우익수 쪽으로 날아가는 호쾌한 타구, 애틀랜타의 우익수 토드 드바인이 몸을 날렸지만 타구는 파울 라인 밖에 떨어졌다.

이게 최근 장타 가뭄에 시달리는 선수의 타격인가.

타격감을 회복한 지옥의 방망이, 마운드 위의 리차드 버웰(밀워키 소속)은 다시 몸 쪽 승부를 택했다.

올스타전이니 가능한 승부, 이인영도 도전을 받아들였다.

[따악~!!]

“자!! 다시 한 번 외야로!! 우익수가 뒷걸음 질 치면서 잡아냅니다!! 이인영 선수의 3번째 타석은 이렇게 끝나는군요.”

“그래도 타격감이 회복됐다는 걸 알 수 있는 경기였습니다. 본인도 만족하고 있는 것 같네요.”

이인영은 웃으면서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간만에 즐거웠던 게임, 뭣보다 가족들 앞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다는 게 뿌듯했다.

이날 아메리칸 리그는 9대 5 승리를 거뒀고, 올스타전 MVP 트로피는 모두의 예상대로 이인영의 손에 쥐어졌다.

기념촬영을 위해 가족들도 그라운드로 이동,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재찬이는 약간 굳은 얼굴로 카메라 앞에 섰다.

이어지는 인터뷰, 한 기자는 잔뜩 얼어붙은 소년에게 질문을 던졌다.

“훌륭한 아버지를 뒀는데, 나중에 어른이 돼서 아버지처럼 메이저리그를 정복해 볼 생각은 없나요?”

“정복하면 마음껏 간식을 먹을 수 있나요?”

예상을 벗어난 답에 관중석은 폭소에 휩싸였다.

어이가 없는 건 부모도 마찬가지, 누가 들으면 우리가 간식도 안 주는 나쁜 부모라고 생각할 거 아닌가.

그러건 말건 질문을 던진 기자는 환하게 웃으며 답을 줬다.

“여기서 성공하면 평생을 먹어도 다 못 먹을 간식을 얻게 될 거예요.”

“그럼 저도 아빠처럼 돼야겠네요.”

큰 웃음을 주고 퇴장하는 소년, 이인영은 아빠 미소를 지으며 그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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