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6화. 일단 먹고 본다 (2)
“자, 이제 경기는 8회 말로 접어듭니다. 8대 3으로 앞선 뉴욕의 공격, 브라이언 러시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이렇게 되면 이인영 선수는 교체네요. 앤더슨 감독이 승리를 확신한 것 같습니다.”
4월 13일, 뉴욕은 홈구장 햄스턴 스퀘어 가든에서 볼티모어를 맞아 2연승을 달렸다.
어제도 9대 2 승리를 거둔 뉴욕 벤치는 일찌감치 승리 분위기에 취했고, 이인영은 벤치에 앉아 남은 경기를 관람했다.
따악~!!
선두타자 브라이언 러시의 2루타, 볼티모어의 투수 제이슨 바스케스는 다음 타자를 내야 뜬공으로 처리했지만 연속 볼넷을 내주며 만루 위기에 몰렸다.
다음 타자는 앤서니 몬테로, 몬테로는 초구에 헛방망이를 돌렸고 다음 공은 파울 라인 밖으로 날려 보냈다.
“야!! 네가 퇴근 시간 앞당길 입장이냐?!!”
“좀 더 집중하라고!!”
뉴욕 벤치는 몬테로의 선전을 응원했다.
오늘 뉴욕의 선발 라인업에서 유일하게 안타가 없는 몬테로, 자극을 받았는지 몬테로는 떨어지는 유인구를 골라냈다.
[따아악~!!]
“자!! 밀어낸 타구가 우측으로!! 계속 뒤로 가는데요!! 어느 팬의 품속에 날아듭니다!! 앤서니 몬테로의 만루 홈런!! 뉴욕이 12대 3으로 앞서나갑니다!!”
“이렇게 되면 오늘 뉴욕은 선발 전원 안타를 달성하네요. 역시 공격력은 따라올 팀이 없습니다.”
뉴욕의 공세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다음 타자 이안 덱스터기 다시 한 번 오른쪽 담장을 넘기는 백투백 홈런을 날리면서 스코어는 13대 3, 특별석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햄스턴 구단주는 박수를 치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이런 때는 콜드 게임이 없는 게 아쉽지 않나?”
“급한 볼 일 있으시면 먼저 가시죠?”
“하하~ 그런 뜻으로 말 한 게 아니야. 나는 불펜을 의미 없이 낭비하는 게 싫을 뿐이라고”
“그건 저도 동감합니다.”
플레어티 단장은 구단주의 말에 맞장구를 쳐줬다.
오클랜드 시절부터 불펜 관리를 철저하게 한 플레어티 단장, 특히 이렇게 승부가 결정된 경기는 남은 이닝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도 문제다.
야구는 다른 4대 스포츠와 달리 휘슬이 없는 게임, 마지막 아웃카운트가 올라 갈 때까지 방심은 금물이다.
그렇다고 너무 힘을 빼서도 안 되고, 한 해 농사는 불펜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갈린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런 경기는 콜드 게임을 선언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진 않았지만, 9회에 극적으로 승부가 뒤집히는 것도 야구의 묘미 아닌가.
볼티모어가 승부를 포기하지 않았다면 이쪽도 최선을 다할 뿐, 개릿 앤더슨 감독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마일스 준비시키게.”
“알겠습니다.”
조용하던 불펜에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최근 3경기 동안 등판이 없는 에릭 마일스, 컨디션 조절하라는 뜻으로 호출을 했는데 불펜 투구 30개를 할 동안 8회 말은 끝나지 않았다.
스코어는 17대 3, 에릭 마일스는 이 정도면 내가 나설 의미가 있겠냐며 코치와 농담을 주고받았다.
“이제 그만 치라고 해요. 우리도 사생활이 있다고요.”
“그렇다고 여기서 번트 댈 순 없잖아? 칠 건 쳐야지”
크게 앞서고 있는 경기에선 번트도 마음대로 못 대는 게 야구의 불문율, 그럼 어쩌겠나. 상대 투수들을 마구 치는 수밖에, 밀어내기 볼넷이 나오면서 뉴욕은 8회에만 10점을 내버렸다.
“그만 치자, 이 정도면 됐어.”
“무슨 소리, 너희들 오늘 집에 못 가게 할 거야.”
마이크 서튼은 동료들의 농담을 뒤로 하고 타석으로 향했다.
오늘 활약은 솔로 홈런 포함 5타수 4안타 3타점, 시즌 성적도 타율 0.327, 4홈런, 8타점으로 올랐다.
수비가 떨어져 지명타자로 기용되고 있으니, 공격이라도 잘해야 재계약을 맺을 거 아닌가. 이런 날 성적을 끌어올려야 풍족해 지는 시즌, 점수 가 벌어졌다고 봐주는 건 없었다.
[따아악~!!]
“자!! 이건!! 설마!! 설마 했던 일이 벌어집니다!! 마이크 서튼의 만루 홈런!! 뉴욕은 이번 이닝에만 만루 홈런 2개를 뽑아냅니다!! 스코어 22대 3!! 믿을 수 없는 장면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거 백기 투항이라도 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이건 너무 심하네요.”
“어 … 그런데 지금 뭔가 충돌이 있는 것 같네요.”
2루를 돌던 마이스 서튼은 투수와 신경전을 벌였다.
타구를 너무 오래 응시했다는 게 투수의 불만, 마이크 서튼은 바로 응수에 나섰다.
“점수도 못 내는 것들이 뭐가 불만이야?!! 홈런 맞았다고 엄마한테 가서 이를 거냐?”
“뭐라고?!!”
경기 막바지에 벌어진 벤치 클리어링, 벤치에서 따분한 시간을 보내던 이인영도 동료들과 함께 사건 현장으로 달려 나갔다.
“더 맞는 게 싫으면 우리가 번트 대 줄게!!”
“너희들의 자존심이 허락한다면 말이야!!”
기세가 오른 뉴욕 선수단은 볼티모어 진영을 조롱, 이인영은 그 뒤에서 싸움을 부추겼다.
“휘슬 없는 경기에 번트가 웬 말이야? 끝날 때까지 치는 거지”
“그래!! 계속 쳐!!”
“한 50점내고 끝내자고!!”
“나는 불쌍해서 번트 대 줄래. 어린애들 괴롭히는 거 같아서 싫어.”
마르커스 홀먼은 번트 대는 자세로 볼티모어의 신경을 자극했다.
여기서 끝났다면 좋았을 텐데, 다음 타석에서 진짜 번트 대는 자세를 잡았고 빈볼이 날아오면서 전쟁이 터졌다.
9회 초, 에릭 마일스가 선두타자 빌 제임스에게 헤드 샷을 날리면서 다시 벤치 클리어링, 양 팀 합쳐 4명이 퇴장당하고 나서야 겨우 하루가 마무리 됐다.
이날 뉴욕은 장단 31안타를 퍼부으며 볼티모어를 25대 3으로 꺾었다. 한 이닝 17득점은 메이저리그 타이기록, 뉴욕이 22점 차 대승을 거둔 건 1931년 이후 92년 만의 기록이었다.
하지만 마르커스 홀먼이 번트 자세로 상대 팀의 심기를 자극한 건 좋지 못한 행동이었다는 평가를 받았고, 뉴욕 구단은 이에 반박했다.
“야구는 휘슬이 울리지 않는 게임이다. 기회가 났을 때 득점을 내는 건 당연한 거고, 마이크 서튼은 자신의 역할을 다했을 뿐이다. 그런데 볼티모어는 홈런 타구 좀 쳐다봤다고 시비를 걸었다. 이건 다 이긴 체스판을 뒤엎겠다는 어린애 같은 행동이고 우리는 나름대로 항의한 것뿐이다. 패배자 주제에 예의를 논하지 마라.”
한 이닝에 만루 홈런을 2개나 맞았으면 본인들의 형편없는 실력을 탓할 것이지, 왜 우리에게 시비를 거나.
패배자는 예의를 논할 가치가 없다는 플레어티 단장의 말에 많은 구단이 발끈했다.
이인영을 6억 달러에 영입하면서 공공의 적이 된 뉴욕, 그런데 이건 뉴욕이 바라던 바였다.
뉴욕은 오랫동안 메이저리그의 패자로 군림했고, 그동안 수많은 팀의 시기와 견제를 받았다.
다른 팀이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건 우리가 옛 위상을 회복했다는 증거, 햄스턴 구단주도 선수들에게 더 악독한 플레이를 요구했다.
따아악~!!
“와아아아~!!”
그리고 4월 15일, 오클랜드를 홈으로 불러들인 뉴욕은 6회 초까지 9대 1로 끌려갔다.
그런데 6회 말, 이인영이 쓰리 런 홈런(시즌 4호)을 날렸고 7회 초 브라이언 러시의 싹쓸이 2타점 적시타가 나오면서 9대 6까지 따라 붙었다.
작년 시즌, 월드시리즈 우승을 견인한 불펜 3인방을 모조리 팔아넘긴 존 캐넌 구단주의 실책이 여실히 드러난 장면, 그리고 9회 말, 거짓말 같은 동점을 만들어내면서 승부는 연장으로 이어졌다.
“자, 이제 뉴욕의 10회 말 공격으로 이어집니다. 선두 타자는 앤서니 몬테로, 오늘 5타수 2안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뉴욕이 8점 차 경기를 뒤집은 건 2011년 4월 17일, 템파베이와의 경기가 마지막이었거든요. 오늘 또 기적이 일어날지도 모르겠습니다.”
초구를 골라낸 몬테로는 2구를 받아쳐 좌익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를 날렸다.
점점 무르익는 역전승 무드, 하지만 후속 타자 랜디 퍼실이 병살타를 치면서 역전을 외치던 관중석의 기세는 가라앉았다.
“이 눈치 없는 자식아!!”
“안타를 못 치면 번트라도 대던가!!”
필라델피아보다는 못하지만 이 동네 팬들도 성깔이라면 알아주는 편,
랜디 퍼실이 불안한 눈으로 그라운드를 응시하는 사이 이인영은 다음 타석을 준비했다.
필라델피아에서 쓰레기들과 5년 하고도 반 시즌을 보냈으니 어지간한 야유나 욕설은 애교로 들릴 정도,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 연봉을 받는 자리에 올라섰지만 심적 부담도 느끼지 않았다.
병살타 이후 볼넷이 나오면서 2사 주자 1루, 대기 타석에 서 있던 이인영의 등장에 홈팬들은 박수갈채를 보냈다.
“자, 이인영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오늘 4타수 1안타, 그 1안타는 동점의 신호탄이 되는 쓰리 런 홈런이었습니다.”
“이인영 선수가 개막 후 13경기에서 모두 타점을 올렸거든요. 원래 찬스에 강했던 선수고, 또 뉴욕의 타선이 워낙 강하지 않습니까. 올해도 뭔가 일을 낼 것 같습니다.”
“매년 일 냈던 선수 아닙니까. 누가 들으면 올해만 잘 한 줄 알겠네요.”
“하하~ 네, 오늘도 박한우 위원님의 1일 1 칭찬은 건재합니다.”
“잘하니까 칭찬하는 거죠. 못하면 제가 칭찬을 하겠습니까?”
중계석에서 이런저런 말이 오가는 사이 이인영은 초구를 골라냈다.
약간 낮게 봤는데 올라가는 주심의 손, 사방에서 팬들의 야유가 쏟아졌지만 담담하게 다음 공을 기다렸다.
“아하~!!”
배트 끝에 걸리면서 파울, 내가 이걸 왜 건드렸을까.
거기다 금까지 간 배트, 더그아웃 앞에서 코치가 넘겨주는 배트를 손에 쥐었다.
딱~!!
3구는 파울, 생각을 정리하던 중 옛 동료의 트래시 토크가 날아왔다.
“역전 홈런을 쳐야지, 역시 삼진 당하는 게 싫은 거야?”
다른 홈런 타자들과 달리 유독 삼진이 적은 이인영, 거기다 밀어서 담장을 넘길 수 있는 파워 덕분에 히팅 포인트가 약간 뒤로 밀려 있는 경우도 많다.
특히 지금처럼 카운트가 몰린 상황에서는 그런 성향이 두드러지는데, 이런 태도 때문에 쓸데없는 오해를 산 적도 있다.
[아시아 감독들은 삼진이 많은 타자를 좋게 보지 않는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인영이 이런 타격을 하게 된 건 KBO 리그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는 주장을 내놨다.
삼진이 많은 걸 좋게 보지 않는 KBO 문화, 이인영이 이런 타격을 하게 된 것도 그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을까.
하지만 지금 타격은 내 방식대로 야구를 하면서 쌓은 노하우일 뿐, 바로 맞받아쳤다.
“투 스트라이크에서 삼진을 원하는 타자가 있냐? 당연한 걸 왜 물어?”
“그건 나도 아는데 너는 삼진을 피하는 타격을 하는 것 같아.”
“닥치고 지켜보기나 해.”
그렇다는데 어쩌겠나.
오클랜드의 포수 제임스 하딘은 바깥쪽으로 빠져 앉았다.
투 스트라이크라를 잡아냈지만 상대는 방심할 수 없는 타자, 2구처럼 볼에 배트가 나오길 바랐지만 그새 감을 잡은 이인영은 바늘에 걸린 미끼를 골라냈다.
‘이건 아니라고, 좀 더 적극적으로’
오클랜드의 보이스 감독은 배터리에 승부를 지시했다.
여기서 걸러도 다음 타자는 마이크 서튼이다.
이인영은 작년 시즌 월드시리즈 우승을 함께 한 선수, 그 위협감은 보이스 감독도 잘 알고 있었지만 상대 선수로 만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선수의 가치는 내 편일 때보다 남의 팀에 있을 때 깨닫는 법, 보이스 감독은 그 진리를 공 하나로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