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일은 일인자-244화 (244/309)

244화. there is no bargain (15)

“기름이 없네.”

“저기 주유소 있다.”

11월 12일, 이인영은 가족과 함께 대구의 밤길 속을 내달렸다.

오클랜드는 5차전 만에 시카고를 넉 아웃 시키고 팀 역사상 10번 째 우승을 차지, 별 부상 없이 시즌을 마친 이인영은 서둘러 귀국 길에 올랐다.

돈방석을 예고한 몸이지만 그렇다고 계약을 맺을 때까지 미국에 머물 순 없는 일 아닌가. 가족들과 여가를 누리면서 피로를 풀었다.

“자기야. 내가 기름 넣을게.”

“왜?”

“자기는 유명인이잖아. 누가 알아보면 골치 아프지.”

“나 참 별 걸 다 걱정하네. 내가 할게”

“됐다니까. 그 정도는 나도 할 줄 알아.”

차에서 내린 혜진 씨는 남편의 만류도 뿌리치고 주유기를 잡았다.

40여 년 만에 오클랜드에 우승을 안겨주면서 인기가 더욱 높아진 남편, 내가 에스코트를 해야지 누가 하나. 그렇게 이인영은 아내를 밖에 두고 자동차 안에서 아들과 시간을 보냈다 .

“야, 저 사람… 맞는 거 아냐?”

“그러네. 나도 TV에서 본 적 있어.”

그런데 마침 같은 주유소에 기름을 넣으러 온 손님들이 이 장면을 목격했다.

메이저리그의 슈퍼스타가 아내에게 주유를 시키다니, 이건 좀 비매너 아닌가. 이 사건이 인터넷 여론에 퍼지면서 팬들 간에 논란이 벌어졌다.

[여자가 기름 넣는 게 이상한 건가? 왜 다들 호들갑이지?]

-> 보통 그런 건 남자가 하지 않나?

-> 또 불편충 납시셨네. 기름 넣는 게 대단한 일이냐? 그리고 남편이 벌어다 주는 게 있는데 그 정도는 할 수 있는 거지.

-> 또 나왔다. 가부장적인 자세

-> 웃기고 있네. 이인영이 돈 잘 번다고 아내 부려먹는다고 말하는 게 더 정신병자 같은데? 여자가 기름 넣는 걸 남자가 부려먹는다고 생각하는 페미들!! 진짜 꼴보기 싫다!!

-> 그것도 싫으면 살림은커녕 손에 물도 못 묻히겠네. 그건 여성의 권리 주장이 아니라 꼴불견이다.

느닷없는 이인영의 가부장적인 태도, 논란이 커지자 혜진 씨가 직접 해명에 나섰다.

“저는 너무 유명해진 남편을 위해 대신 기름을 넣었을 뿐이에요. 자동차 밖으로 나가면 팬들이 사인해 달라고 요청할 텐데, 제가 기름 넣은 게 그렇게 이상한 건가요?”

정말 별것도 아닌 일로 남녀갈등 조장하는 사람들, 혜진 씨는 남의 남편 두고 가부장적이다 뭐다 하는 꼴불견들에게 불쾌감을 표했다.

“저는 남편이 뭐 시켜도 전혀 불쾌한 마음 없어요. 그러니까 남의 가정사에 이렇다 저렇다 참견 하지 마세요.”

한 방에 정리된 논란, 그냥 기름 좀 넣은 것 뿐인데 이게 그렇게 논란이 될 일인가. 이것도 너무 유명해진 탓이라면 그러려니 넘어가야겠지, 이후에는 최대한 일반인 눈에 띄지 않고 집에서 생활을 이어갔다.

“자기야 뭐하게?”

“내가 알아서 할게”

“딸기 먹게? 내가 해줄 게”

“됐다니까.”

집에서도 사소한 실랑이는 계속됐다.

엉덩이만 움직였다 하면 즉각 반응하는 아내의 레이더, 너무 무리하게 잘해주려고 하는 것 아닌가. 보다 못한 이인영은 아내를 앞에두고 설득을 이어갔다.

“나는 가정부하고 결혼한 거 아니야. 자기가 그렇게 하면 나도 불편해.”

“자기 한 해 동안 고생 많았잖아. 집에서만이라도 편하게 해주고 싶어서 그렇지.”

혜진 씨는 7년 동안 몸 담았던 교직을 그만두고 살림을 택했다. 일을 해봐서 돈 버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는데, 남편은 얼마나 힘이 들까.

일도 그만뒀겠다 내가 집에서 뭘 할 수 있을까. 남편을 잘 내조하는 것 뿐, 하지만 이인영은 그런 건 내가 당신에게 바라는 게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누가 더 힘들고 덜 힘들고가 어디 있어. 당신도 그동안 직장 다니고 애 보느라 피곤했잖아.”

“그래도 … ”

“그만, 거기까지, 우리 기록은 이어가자.”

연예 시작하고 지금까지 한 번도 싸워본 적 없는 부부, 좋은 기록은 이어가야 하지 않겠나.

연속 안타 행진보다 어쩌면 더 의미가 있는 기록, 그렇게 두 사람은 오늘도 평안한 나날을 보냈다.

“그런데 자기야. 정말 10년 5억 달러 채울거야?”

“당연하지. 왜?”

“10년 계약이면 자기 42살까지 야구해야 되잖아. 할 수 있겠어?”

“별 걸 다 걱정하네. 자기는 뷔페에 가면 음식 남길 것부터 걱정해? 일단 접시에 담고 보는 거지 뭐”

대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소규모 국지전은 계속됐다.

시즌을 마친 이인영은 여론을 통해 10년 5억 달러 밑으로 양보할 생각이 없다는 뜻을 재확인했다.

협상도 타협도 필요없는 마지노선, 일부 여론에선 10년 계약은 너무 부담스럽다는 목소리를 냈지만 그게 뭐 어쨌다는 건가.

아쉬운 구단, 10년이든 20년이든 나는 내 권리를 주장할 뿐이다. 기량 저하와 나이 때문에 10년을 못 채우면 나머지 연봉은 포기하면 되는 거 아닌가.

그런데 내가 10년 계약을 줄여줘야 하는 건가. 일단 먹고 본다는 남편의 말에 혜진 씨는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재찬이는 당신을 쏙 닮았어.”

“또 왜?”

“쟤도 일단 먹고 보자는 타입이잖아.”

이인영은 아들 쪽으로 눈길을 줬다.

엄마 아빠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소리 없이 딸기를 먹어치운 녀석, 아빠 눈치를 슬슬 보며 남은 것마저 욕심을 냈다.

“그래 먹어라. 먼저 먹는 게 임자지.”

허락이 떨어지자 3살 짜리 아기는 접시 하나를 깨끗이 비워냈다.

벌써부터 어른처럼 먹어대는데 내가 열심히 벌어야 가족들이 편안하게 지낼 수 있겠지. 10년 5억 달러에서 물러서선 안 되겠다는 다짐을 재확인했다.

* * *

“5억이요. 무슨 일이 있어도 5억이 필요합니다.”

[그건 무리야. 4억 달러로 하지]

“그 정도론 어림도 없습니다.”

이곳은 오클랜드의 플레어티 단장이 거주하고 있는 저택, 40년 만에 팀을 정상에 올려놨지만 플레어티 단장은 내년을 내다봤다.

우승 한 번 했으니 이젠 된 거 아니냐는 속 편한 소리를 늘어놓는 구단주, 하지만 플레어티 단장은 이 정도로 만족하지 않았다.

지금 주축 선수들은 30도 안 됐고 FA 자격을 얻으려면 최소 2~ 3년은 있어야 한다.

이인영만 붙잡아 두면 우승권 전력을 3년 동안 유지할 수 있다는 뜻, 이런 기회를 돈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나. 하지만 존 캐넌 단장은 4억 달러 이상은 투자할 수 없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자네가 어떻게든 설득을 해 봐.]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십니까? 그 친구는 누구하고 협상할 입장이 아닙니다.”

6년 동안 메이저리그 최고의 타자로 군림한 선수가 뭐가 아쉽다고 구단과 협상을 하나.

구단은 선수의 요구에 최대한 맞춰줄 뿐, 플레어티 단장은 존 캐넌 구단주에게 당신은 협상 대상을 잘못 찾았다며 불만을 늘어놨다.

“당신은 언제나 그런 식이었죠. 언제나 사람들에게 협상으로 포장한 양보만을 요구했으니까요.”

[또 돈 문제 건드리는 건가? 그 얘기는 그만하기로 하지 않았나?]

“저는 마땅한 권리를 요구했을 뿐입니다. 세상에 어느 단장이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월드시리즈 우승을 해내겠습니까?”

플레어티 단장은 3년 전, 구단주와 연봉 문제로 거친 설전을 주고받았다.

최근 4년 동안 팀 총 연봉 25~ 27위를 기록하고도 AL 서부지구 상위권을 놓치지 않은 오클랜드, 플레어티 단장은 구단주에게 팀에 투자를 못하겠다면 내 연봉이라도 올려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존 캐넌 구단주는 단장에게 그만한 연봉을 지급할 수 없다고 거부, 이 문제로 서로 욕설까지 주고 받으며 신경전을 벌였다.

결국 존 캐넌 구단주가 4년 2200만 달러를 보장하면서 없던 일이 됐지만, 지금도 앙금은 남아 있다.

언제나 남들에게 양보만을 요구하는 구단주, 플레어티 단장은 더는 당신과 일 못하겠다며 결별을 선언했다.

[이봐!! 1년 550만 달러 계약 남아 있는 거 잊었나?!!]

“그만 됐습니다!! 관뒀으니까!!”

플레어티 단장은 이렇게 6년 동안 몸담았던 오클랜드와 이별했다.

이인영은 그렇다 쳐도 만년 하위권이었던 오클랜드를 강팀으로 끌어올린 플레이터 단장까지 놓치다니, 오클랜드 여론은 존 캐넌 구단주를 상대로 시위를 벌였다.

투자를 안 할 거면 구단 팔고 꺼져버리라는 것, 하지만 존 캐넌은 구단 경영권을 포기하지 않았다.

“내가 일으켜 세운 구단이다. 망쳐도 내가 망칠 거다.”

심지어 논란이 될만한 말을 난사하기 시작, 폐점을 앞둔 재고 떨이처럼 투수들을 시장에 내놨다.

오클랜드의 목숨 같은 선수들을 시장에 내놓다니, 거기다 팀을 일으켜 세운 건 플레어티 단장의 능력이다.

팬들이 네가 뭘 했냐며 존 캐넌 구단주를 규탄하면서 오클랜드는 대혼란에 휩싸였지만, 플레어티 단장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우리와 함께 해보지 않겠나? 자네가 원하는 건 모두 들어주겠네.”

“좋습니다.”

이때, 뉴욕 고다마이츠의 구단주 팻 햄스턴이 손을 내밀었다.

올해도 월드시리즈 우승에 실패한 뉴욕, 햄스턴 구단주는 시어도어 시모어 사장을 구단 고문으로 돌리고 플레어티를 그 자리에 앉혔다.

오클랜드를 우승으로 이끌면서 능력을 인정받은 플레어티, 승리를 위해서라면 돈을 아끼지 않는 팻 햄스턴은 4년 6000만 달러를 보장했다.

어지간한 선수들 FA 계약에 버금가는 규모,

이렇게 뉴욕으로 갈아탄 플레어티 단장은 본격적인 우승 행보에 나섰다.

“우승을 하려면 그만한 투자를 하셔야 합니다. 5억 달러 준비해 주실 수 있습니까?”

“그 친구 잡으려고 하는 거 아닌가? 5억 달러가 아니라 6억 달러도 내 줄 수 있네.”

이인영을 잡기 위해 작년 FA 시장에서 철수해 버린 뉴욕, 우승만 할 수 있다면 그까짓 5억 달러가 뭔 대수인가.

군자금을 손에 쥔 플레어티 단장은 다음 날, 이인영의 에이전트 제프 메츠와 접촉했다.

계약 규모는 무려 10년 6억 달러, 깜짝 놀란 제프 메츠는 말까지 더듬거렸다.

“정말 아무 조건 없이 그 돈 주시는 겁니까? 이런 저런 제약 조건이 걸린 건 아닙니까?”

[나는 사람을 가릴 줄 아는 사람이네. 그쪽이 모시는 고객은 협상을 할 대상이 아니야. 우리가 모셔야와 할 사람이지.]

메이저리그 최고 타자를 상대로 협상을 하는 바보가 어디에 있나.

메이저리그 역사상 27회 우승을 달성한 뉴욕마저 무릎 꿇게 만든 이인영의 위상, 제프 메츠는 이 소식을 즉각 한국에 있는 고객에게 알렸다.

“10년 6억 달러라고요?”

[예, 트레이드 거부권도 약속했습니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죠.”

협상도 논의도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된 계약, 연봉 대박을 터뜨린 이인영은 아내를 품에 안고 기쁨을 만끽했다.

6억 달러라니, 5억 달러도 미친 척하고 불러본 건데 이게 가능한 금액이었나. 어쨌든 이 계약은 메이저리그의 생태계를 뿌리 채 뒤흔들었다.

“혹시 이번 계약은 마케팅 수단입니까?”

“마케팅이라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는 거야? 우리가 돈 낭비하는 것처럼 보여?!!”

햄스턴 구단주는 기자들의 질문에 불쾌감을 드러냈다.

다른 팀은 주축 선수와 2억 달러 계약도 못 맺는데, 뉴욕은 한 선수에게 6억 달러를 넘겨주다니, 갈수록 벌어지는 메이저리그 구단 간의 빈부격차를 드러낸 것 아닌가.

하지만 햄스턴 구단주는 헛소리 집어치우라며 일갈했다.

“우리도 사치세 감수하고 내린 결정이라고, 세금 안 내는 것도 아닌데 무슨 불만이 그렇게 많아?!! 그런 말은 거지 같은 구단한테 가서 하라고!!”

오클랜드처럼 구단주가 돈이 있어도 투자를 안 하는 구단도 있는데, 돈이 있는 구단은 투자를 하면 안 되는 건가.

이인영에게 6억 달러를 투자한 건 뉴욕이 그만큼 우승에 목마르다는 뜻, 이걸 왜 돈 많은 부자의 낭비로 이해하는 건가.

햄스턴 구단주는 투자도 안 하면서 인기 구단 수익을 빨아먹는 거지들이 말은 왜 그렇게 많냐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너희들은 사고 싶어도 못 살 선수야!! 6억 달러 투자할 수 있어?!! 저리 꺼져 얼간이들아!!”

기차화통을 삶아 먹은 성격은 여전, 이렇게 뉴욕은 통산 28번 째 우승을 위한 승부수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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