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3화. there is no bargain (14)
“자, 1회 초 시카고의 선공으로 월드시리즈 1차전의 막이 오릅니다. 선두 타자는 대니얼 말론, 올 시즌 타율 0.291, 홈런 22개, 72타점을 기록했습니다.”
“정규시즌 기록만으로는 평가할 수 없는 선수죠. 이번 포스트 시즌에서 9경기 동안 홈런 5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5개 중 3개를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기록했어요.”
시카고는 대니얼 말론의 활약 덕분에 월드시리즈에 올라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1차전부터 LA의 에이스 킨사이드에게 솔로 홈런을 치더니, 4차전에서도 킨사이드를 상대로 승부에 쐐기를 박는 쓰리런 홈런을 날렸다.
전부 바깥쪽을 던지다 맞은 홈런, 반면 몸 쪽 높은 공에는 4타수 무안타에 그쳤다.
정규시즌에서도 몸 쪽 높은 공에 약점을 보였던 대니얼 말론, 오클랜드 배터리는 철저하게 약점을 파고들었다.
“다시 몸 쪽입니다. 카운트는 원 볼 원 스트라이크”
“이 선수는 조금 특이합니다. 존을 벗어난 공에 스윙을 한 비율은 메이저리그 전체 21위인데, 존에 들어오는 공에 반응한 확률은 66위에요.”
“그런데 이걸 나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아마 저 뿐만 아니라 모든 전문가들도 그렇게 생각하겠죠.”
뛰어난 타자에게 정면 승부를 피하는 건 당연,
이인영도 올 시즌 존을 벗어난 공에 스윙한 비율 메이저리그 전체 11위를 기록했다.
선구안이 나빠서 볼이 될 공을 건드린 게 아니라 도망가는 걸 쫓아가서 때리는 쪽으로 타격이 진화했다는 뜻, 대니얼 말론도 그런 경우다.
이런 타자들에게는 바깥쪽으로 도망치는 볼 배합은 기를 살려 줄 뿐, 오클랜드 배터리는 집요하게 몸 쪽 승부를 택했다.
“조금 더 깊어도 괜찮아.”
3구도 몸 쪽 빠른 볼, 볼 판정을 받았지만 오클랜드의 보이스 감독은 태연했다.
포수 출신이라 투수들에게 몸 쪽 공을 자주 던지라고 교육하는 편, 특히 보이스 감독은 주축 타자를 상대로 더 많은 몸 쪽 공을 던져야 한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다.
타석에 선 타자는 공을 치려는 욕구와 몸쪽 공에 대한 위협을 동시에 품는다.
그렇다면 바깥쪽 유인구를 던져야 하나? 13년 동안 포수를 봤지만 그런 전략은 오히려 타자의 기를 살려줄 뿐이다.
이런 감독의 성향 때문에 오클랜드는 볼배합을 짤 때 몸 쪽 승부가 많은 편, 몸 쪽 공에 약점이 있는 대니얼 말론도 그런 배경은 충분히 숙지하고 타석에 섰다.
“와아아아~!!”
“맞췄다!! 맞췄어!!”
4구가 말론의 옆구리를 강타하자 오클랜드 팬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원정 팀 입장에선 꽤 불편한 장면, 다음 타자 애드리안 네드리는 홈런을 치자고 다짐했다.
‘잠깐, 감정적이면 안 돼.’
애드리안은 이내 마음을 다독였다.
타석에서 감정적으로 행동하면 찬스를 망칠 뿐, 홈런은 마음 속에만 두고 머릿속에서 안타를 치는 장면을 그렸다.
“낮은 공, 크게 헛칩니다.”
“이렇게 되면 바깥쪽으로 하나 빼지 않을까요?”
“글쎄요. 저라면 오히려 몸쪽으로 갈 것 같습니다.”
임선우 위원은 몸 쪽 빠른 볼을 예상했다.
몸쪽 빠른 볼을 던진 뒤 바깥쪽 느린 유인구로 타자를 잡아내는 건 일반적인 패턴, 그런데 오클랜드 배터리는 예상보다 일찍 유인구를 던졌다.
이게 뭘 의미할까. 임선우 위원은 선수시절 경험을 예로 들었다.
“양 팀 라인업을 살펴보면 월드시리즈 경험이 있는 선수는 이인영 선수 뿐이거든요. 그만큼 다들 약간 흥분한 상태라고 할 수 있죠.”
“그게 볼 배합에 영향을 미치는 겁니까?”
“동료가 몸에 맞는 볼로 나가면 후속 타자는 내가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을 품거든요. 그리고 저는 지난 챔피언십시리즈에서 보이스 감독과 배터리를 이룬 적이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잘 활용할 줄 아는 선수였어요.”
물론 이건 타자의 심리를 잘 파악해야 가능한 볼 배합, 임선우 위원은 당시 호흡을 맞췄던 보이스의 리드를 따라 상대 타선을 잠재웠다.
다른 건 몰라도 현역 시절 포수 리드 만큼은 정상급이라는 평가를 받은 보이스 감독, 오클랜드의 뛰어난 투수력은 단장이 선수를 잘 선택한 덕분일까.
임선우 위원은 보이스 감독이 투수력에 아무 영향도 주지 않았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늦었나?’
다음 공은 몸쪽 빠른 볼, 애드리안은 3루 파울 라인 쪽으로 날아간 타구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인구는 헛스윙, 빠른 공은 타이밍이 밀리면서 파울, 거기다 카운트는 노 볼 투 스트라이크,
오클랜드 배터리는 그렇게 조금씩 애드리안을 몰아세웠다.
“낮은 공!! 스윙입니다!! 삼구 삼진으로 위기를 넘기는군요!!”
“초구 스윙을 이끌어 냈던 그 공이네요. 약점을 드러내면 이렇게 당하는 겁니다.”
똑같은 공에 당한 애드리안은 아랫입술을 질근 씹으며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정규시즌 때도 내 약점을 파고드는 투구는 많이 경험했지만, 상대 투수들이 이 정도로 집요하진 않았다.
1번 타자 다니엘 말론도 약점인 몸 쪽을 집요하게 공략당했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 이게 포스트시즌인가.
메이저리그에 올라와 주전을 쟁취하는 과정도 만만치 않았지만 포스트시즌은 정규시즌과 차원이 다른 무대, 오늘도 쓴맛을 경험한 애드리안은 풀이 죽은 얼굴로 경기를 지켜봤다.
몸 쪽 공을 적극활용하는 볼배합으로 1회 초를 지워버린 오클랜드, 1회 말 공격이 시작되면서 관중석 분위기는 뜨겁게 달아올랐다.
“자, 이제 토드 리틀 선수의 타석입니다. 이번 포스트 시즌에서는 32타수 7안타, 그래도 볼넷을 6개나 얻어내면서 출루율은 0.342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 드렸지만 오클랜드도 이인영 선수를 제외하면 월드시리즈 경험이 없거든요. 챔피언십 시리즈까지 잘 해왔더라도 월드시리즈에서 활약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초구(스트라이크)를 지켜본 토드 리틀은 숨을 크게 골랐다.
프로 생활 7년 만에 맞이하는 무대, 야구를 시작한 6살부터 31살이 된 지금까지 오로지 이 순간만 바라보고 달려왔다.
드디어 꿈을 이뤘는데 왜 이렇게 긴장이 되는 건지, 6년 전 2할도 못 치고 벤치로 물러난 얼간이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더그아웃의 선수들도 긴장한 건 마찬가지, 반면 월드시리즈를 3번 째 경험하는 이인영은 덤덤한 얼굴로 차례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다들 긴장했군.’
토드 리틀은 2구를 공략했지만 내야를 벗어나지 못했다.
다음 타자 블루 포드도 2구만에 좌익수 플라이 아웃, 다들 신중히 볼을 보던 평소와는 다른 모습이다.
그러건 말건 나는 내 갈 길을 갈 뿐, 타석에서 자세를 잡았다.
“초구는 몸 쪽 깊숙하게 들어옵니다.”
“조심해야죠. 이 선수 몸 값이 얼마인지 알고 이러는 겁니까?”
“하하~ 몸 쪽을 던지는 건 투수의 권리 아니었습니까? 대니얼 선수도 몸쪽 공에 맞았는데요.”
“그것도 선수에 따라 다른 거죠. 대니얼 선수는 몸값이 싸지 않습니까.”
박한우 위원은 오늘도 노골적인 편파판정을 이어갔다.
여기서 부상 당하면 다 된 밥에 재 뿌리기, 이인영 선수에겐 우승보다 FA 계약이 더 중요할거라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몸쪽도 낮은 공은 위험하다.’
시카고의 포수 댄 핸더슨은 투수에게 신호를 보냈다.
올 시즌 이인영은 몸 쪽 공에 타율 0.323을 기록. 4할대 타율을 기록한 바깥쪽에 비하면 귀여운 수준이다.
그래도 몸 쪽 낮은 공은 4할을 기록, 그나마 만만한 게 몸 쪽 높은 공(0.222)과 바깥쪽 낮은 공(0.250)이다.
바깥쪽 가운데는 코스는 무려 0.422을 기록한 타자, 몸에 맞는 공을 주더라도 바깥쪽은 절대 주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앗!!”
“이봐!! 조심하라고!!”
다음 공은 얼굴 근처로 날아왔다.
몸 쪽 높은 곳을 노리다 보니 벌어진 일, 오클랜드 팬들은 야유를 퍼부었지만 지난 월드시리즈에서 똑같은 일을 경험한 베테랑은 차분하게 다음 공을 기다렸다.
한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승부, 상황이 불리해지자 오클랜드 배터리는 승부를 포기했다.
이렇게 첫 타석은 볼넷 출루, 이후 양 팀은 4회까지 0대 0 팽팽한 승부를 이어갔다.
이제 5회 초 시카고의 공격, 타석에 들어선 대니얼 말론은 초구를 기다렸다. 그런데 이번에도 갈비 뼈 쪽으로 날아온 위협구, 대니얼 말론은 이번에는 참지 않았다.
1루로 걸어가면서 투수와 신경전을 벌였고, 양 팀 선수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벤치클리어링이 일어났다.
“다들 왜 이래? 이게 월드시리즈라고”
이인영은 베테랑 답게 양쪽 선수들을 다독였다.
젊은 선수들이라 위협구를 고의로 던졌다고 생각하는데 이건 당연한 볼 배합, 나도 얼굴로 날아오는 공에 몸을 사리지 않았나.
흥분한 다니엘 말론에게도 한 소리 건넸다.
“네가 잘 치니까 몸쪽으로 던지는 거라고, 그걸 몰라서 화 내는 거야? 너희들도 제자리로 돌아가!! 쓸데없이 흥분하지 말고!!”
다니엘 말론은 아무 반응 없이 1루로 걸어 나갔고, 다른 선수들도 그 뒤를 밟으면서 심각했던 분위기는 거짓말처럼 풀어져버렸다.
몇 년 전만 해도 벤치 클리어링을 주도했던 선수가 이렇게 의젓한 반응을 보이다니, 싸우라며 소리를 지르던 오클랜드 팬들도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경기는 흘러 7회 말, 양 팀 선발투수들은 물러났고 불펜 싸움이 시작됐다.
오클랜드의 불펜은 설명이 필요없는 철벽, 스코어는 0대 0이지만 상대적으로 불펜이 허약한 시카고는 초조한 기색을 드러냈다.
현재 상황은 1사 주자 1, 2루 이인영이 타석에 들어서자 홈 팬들은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자, 이인영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오늘 1타수 무안타 볼넷 2개, 예상대로 심한 견제를 받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볼넷으로 걸어 나갈 선수는 아니죠. 볼도 안타로 만들 수 있는 선수라 이번에는 뭔가 해 줄 것 같습니다.”
시카고 벤치는 고민에 빠졌다.
상대는 위협구를 던져도 흔들림이 없는 타자, 거기다 실점 위기, 볼넷으로 거르고 만루 작전을 택할 것인가.
앞선 세 타석과 달리 초구는 바깥쪽으로 뺐다.
상대가 올 시즌 바깥쪽 코스에 0.422를 기록한 타자라는 걸 망각한 볼배합, 매섭게 돌아 나온 배트는 공을 좌익수와 중견수 사이에 떨어트렸다.
2루 주자가 홈으로 들어오면서 첫 득점, 중계카메라는 불펜에서 몸을 풀고 있는 마이클 알바레도 - 루이스 마르케스 콤비를 비췄다.
겨우 1점이지만 두 선수의 구위를 생각하면 1점도 내기 어려운 분위기,
오클랜드의 7회말 공격은 1득점으로 끝냈지만 마이클 알바레도는 98마일 빠른 볼과 슬라이더를 앞세워 시카고의 9회 초를 지워냈다.
바통을 이어 받은 루이스 마르케스는 올 시즌 평균자책점 1.11을 기록한 철벽, 포스트 시즌 8이닝 연속 무실점을 기록하며 승리를 지켰다.
투수전의 진수를 보여준 경기, 시카고도 훌륭한 게임을 펼쳤지만 오클랜드의 벽을 넘어서지 못했다.
하지만 진짜 주인공은 결승타를 뽑아낸 이인영, 기자 접견실에서 이런저런 질문을 받아냈다.
“5회에 심각한 상황이 있었는데 어떻게 흥분한 선수들을 다독인 겁니까?”
“다들 월드시리즈에선 흥분하기 마련이죠. 저도 한때는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중요한 무대에선 몸쪽 공이 더 많이 날아옵니다. 오클랜드도 그렇고 시카고는 젊은 선수들이 많습니다. 다들 경험이 부족하다 보니 그 사실을 모르고 있을 뿐이죠. 그 점을 강조했을 뿐입니다.”
“정말 그것 뿐인가요?”
이때 한 기자가 속마음을 캐물었다.
FA를 앞둔 이인영은 다치면 절대 안 되는 입장, 시리즈가 격화되면 위협구도 더 많이 날아오지 않겠나.
그래서 앞장 서 서 양 팀 선수들을 다독인 건 아닌지, 이인영은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 기자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지금 던진 질문은 위협구보다 더 섬뜩했어요. 그러니까 그만 하세요.”
선수가 유쾌한 반응을 보이면서 분위기는 훈훈해졌다.
우승도 좋지만 돈은 더 좋은 법, 이인영은 다치지 않고 이번 시리즈를 마무리 했으면 좋겠다는 소감도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