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화. there is no bargain (13)
“희라가 발목을 다쳤다고요?”
[네, 부모님께 연락을 드려야 할 것 같네요]
“네에 … 알겠습니다.”
이곳은 평범한 초등학교의 평범한 교실,
보건실에서 연락을 받은 혜진 씨는 긴장한 얼굴로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아이들이 놀다가 다칠 수도 있는데 가끔 당신은 뭘 하기에 애들 관리를 제대로 못 하느냐는 말을 들을 때가 있다.
나도 엄마라 아이 한 명을 컨트롤 하는 게 벅차다는 걸 알고 있는데, 30명 가까운 아이들을 한 사람이 어떻게 통제하나.
하긴 월급 받고 실면서 학부모에게 그런 꾸중 받는 게 뭐 대수인가. 요즘은 죄송하다는 말이 입에 붙을 정도, 하지만 학부모는 이번에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선생님은 제 아이에 관심이 없으신가요?]
“아니요 … 그게 아니라 ….”
[전에도 제 아이가 넘어져서 얼굴에 상처를 입었잖아요. 그런데 또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저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요?]
“죄송합니다. 앞으로 더 신경쓰겠습니다.”
여기서 항의를 안 하면 내 아이가 교사의 관심 순위 밖으로 밀려 날 수 있다는 학부모의 두려움, 결국 이날도 혜진 씨는 욕받이를 자처했다.
“너희들 그거 뭐니?”
소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교사용 화장실이 너무 멀어 잠깐 학생 화장실을 들렀는데 여자 아이들이 뭔가를 입에 바르는 걸 목격했다. 이런 경우는 몰수하는 게 학교 원칙, 하지만 아이들은 강한 거부감을 표했다.
“여기 학생 화장실이잖아요. 선생님이 여기 있어도 되는 거에요?”
“그래요. 여긴 저희들 공간이라고요. 그러니까 이건 무효에요.”
요즘은 10살짜리 아이들도 말 절대 안 듣는다.
나도 아이 키우는 입장이지만 어떨 땐 정말 미쳐버릴 지경, 모질지 못한 혜진 씨는 이날도 지난 싸움을 계속했다.
“저기요 선생님, 진도가 너무 늦는 거 아닙니까?”
“죄송합니다. 못 따라오는 아이들이 있어서 … ”
“그런 건 알아서 조절을 하셔야죠.”
여기에 직장상사의 잔소리는 덤, 하루 종일 치인 혜진 씨는 녹초가 된 얼굴로 귀가했다.
“어머니 저 왔어요.”
“그래, 일은 다 끝났니?”
“아니요. 내일 수업자료 정리해야 되요.”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봤다.
방학도 있겠다 교사는 느긋하게 돈 벌 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는데, 며느리를 맞이하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요즘은 학교 안에 CCTV까지 설치 해 교실을 감시한다고 하는데, 수업 분위기를 해치는 아이에게 교사가 실언을 했다가 감봉 조치를 당한 일도 있다.
교사가 통제권을 상실하면서 질서가 무너진 교실, 그런데도 책임은 져야하고 정신적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하겠나. 시어머니는 늦은 저녁을 먹는 며느리를 앞에 두고 이런저런 말을 이어갔다.
“내년에 교사 그만 두는 게 어떻겠니?”
“그렇지 않아도 그러려고요.”
혜진 씨는 속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남편이 올 시즌 좋은 성적을 거뒀으니 FA 대박은 틀림없다. 지금 학교에서 쏟는 노력의 반만 투자해도 남편과 아들에게 더 잘 할 수 있겠지.
좋은 선생님보다 좋은 아내와 엄마가 되는 길을 택했다.
“그런데 제가 살림하러 미국 가면 어머니 외로우셔서 어떻게 해요?”
“넌 그걸 말이라고 하니, 우리 인영이나 신경 써라. 네 남편한테 잘 하는 게 나한테 잘하는 거다.”
시어머니는 쿨한 반응을 보였다.
며느리가 남편 챙기라고 있는 거지 시어머니 시중들라고 있는 건가. 남편은 야구 감독하느라 집에 나가 있고, 친구들과 어울려 여행이나 다닐 생각, 다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손자와 헤어지는 건 아쉬웠다.
“우리 재찬이도 할머니랑 헤어지는 거 서운하니?”
간식거리를 우물거리던 아이는 여자들의 눈치를 살폈다.
엄마와 할머니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 과일을 다 먹어버렸는데, 나머지 하나도 내가 먹으면 안 되나? 그 식탐을 알고 있는 할머니는 큰 소리로 웃었다.
“그것도 먹어. 할머니는 재찬이가 먹는 거 보는 게 제일 좋아.”
기다렸다는 듯이 남은 과일을 독식하는 녀석, 그 모습을 지켜보던 혜진 씨는 화제를 틀었다.
“저 인영 씨 FA 계약 맺을 때 사표 던질 거예요.”
“그래, 그날 우리 집안 로또 터지는 거지, 오호호~ ”
오늘도 포스트 시즌에서 활약하며 몸 값을 끌어올린 아들, 오클랜드는 ALCS에서 3연승을 달리며 월드시리즈 진출까지 1승만 남겨두게 됐다.
무사히 시즌을 마친다면 돈 벼락은 확실, 남자를 잘 둔 여자들은 장밋빛 미래에 물들었다. 빨리 그날이 와야 할 텐데 왜 이렇게 시간이 안 가는 건지, 그래도 하루하루가 지날 때마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어머니, 저 그냥 내일 사표 던질래요.”
“그래도 되니?”
“남의 집 아이들한테 신경 쓰느니 남편한테 잘하는 게 낫죠. 저도 더는 이렇게 못 살겠어요.”
다음 날, 혜진 씨는 갓 뽑은 사직서를 들고 교무실로 향했다.
전보 서류 작성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던 교감 선생님은 느닷없는 사표 제출에 경악, 주위에 있던 선생님들도 뭔가를 수군거렸다.
“선생님,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시죠. 이건 안 받은 걸로 하겠습니다.”
“아니요. 이번 학기까지만 하고 그만두겠습니다.”
평소 이거해라 저거해라 시키던 교감이 이런 표정을 짓다니, 드디어 한 방 먹인 혜진 씨는 당당하게 돌아섰다.
교사가 되기 위해 그렇게 노력을 했는데, 합격 통보를 받았을 때보다 사직서를 낼 때의 쾌감이 10배 이상, 왜 진즉에 사직서를 내지 않았을까.
오늘의 일을 남편에게 보고했다.
“진짜 사직서 냈어?”
[응, 너~~ 무 좋았어]
이인영은 아내의 희열에 찬 목소리에 헛웃음을 지었다.
임용고시에 합격하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그걸 버리면서 희열을 느꼈다니, 하지만 혜진 씨는 이제야 내 인생을 찾은 것 같다며 기뻐했다.
[자기야, 내년부터는 내가 내조 잘 해줄게. 그럼 야구도 지금보다 더 잘하겠지?]
“돈 벌어오라는 소리로 들리는데?”
[뭐 어때? 돈 잘 버는 남자는 능력이 있다는 증거야.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
“내가 언제 섭섭하다고 했어? 자기가 여기 오면 나야 좋지”
가족도 없이 타향생활을 하는 게 내심 섭섭했는데, 아내가 교사를 그만둔다면 환영할 일, 능력있는 남자는 돈은 내가 벌겠다며 큰소리를 쳤다.
* * *
[시의회, 건설부지 승인]
[오클랜드 새로운 구장 얻는다]
오클랜드가 월드시리즈 진출을 확정 지은 10월 23일, 오클랜드 일대는 축제에 휩싸였다.
팀이 29년 만에 월드시리즈 진출을 확정지은 것도 있지만 20년 동안 발목을 잡고 있던 구장 신축 문제가 해결된 것,
그동안 오클랜드가 흥행 부진을 면치 못한 건 야구에 대한 열기가 부족한 탓이 아니다.
너무 낡은 구장과 시설 때문, 코리다 콜리세움을 공유했던 NFL 팀도 이 문제 때문에 연고지를 옮겼다.
비가 오면 물이 새는 구장을 지방정부에 2천만 달러를 내고 쓰라니, 이런 부당한 요구가 어디에 있나.
거기다 오클랜드 시의회는 구장 건축을 시의회가 주관해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했고, 오브라이언 커미셔너가 이에 격분하면서 실제로 연고지 이전이 추진될 뻔 한 적도 있다.
그렇게 NBA 구단에 이어 NFL 팀까지 이탈, 이제 미국 4대 스포츠 중 오클랜드에 연고지를 두고 있는 건 MLB뿐이다.
이게 지역경제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면 뇌가 없는 것, 그나마 남아 있던 야구 팀까지 빠져나가면 어쩌나 전전긍긍하던 오클랜드 시민들은 월드시리즈 진출과 신축 구장 확정에 환영을 표했다.
이제 우승만 하면 완벽, 구장 신축이 확정되면서 오클랜드에 큰 돈을 투자한 일본투자공사도 환영을 표했다.
그 뒤를 잇는 사업가들의 투자 러시, 이 와중에도 오클랜드 구단주 존 캐넌은 잘 되지도 않는 축구 사업에 신경을 기울였다.
존 캐넌은 개인 자산이 37억 달러나 되는 갑부, 오클랜드 외에도 영국 프로축구 구단을 굴리고 있는데 축구는 투자를 아끼지 않으면서 유독 야구에는 인색했다.
구장 이전이 승인되면서 급격히 활기를 띄고 있는 오클랜드, 지금이면 지갑을 열만도 한데 왜 축구에만 집착을 하는 건가.
사무국이 주는 지원금으로 근근이 연명하고 있는 오클랜드, 지역 여론은 존 캐넌 구단주가 투자 대진 매각을 택할 거라 예상했다.
처음부터 시세 차익을 남기는 게 목적이었겠지, 오클랜드 팬들도 다른 주인이 들어오는 게 낫다며 입을 모았다.
“그건 오해다. 구장 이전이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투자를 할 순 없었다.”
존 캐넌은 바로 반격에 나섰다.
4년 전에도 오클랜드 역사상 첫 1억 달러 계약을 호이싱튼에게 선물하지 않았다.
하지만 월드시리즈 진출에 실패하고 구장 이전도 마음대로 안 되면서 투자 의욕을 상실한 것 뿐, 지금이라면 지갑을 열 수 있다며 언론 플레이를 펼쳤다.
본심은 팔기 전에 구단 가치를 띄워놓으려는 계획, 그 속을 알고 있는 플레어티 단장도 구단주에게 큰 기대는 걸지 않았다.
괜찮은 투자자가 나타나 구단을 인수하길 바랄 뿐, 어쨌든 떨리는 마음으로 첫 월드시리즈를 맞이했다.
‘절대 못 팔아, 다 내가 키워낸 선수들이라고’
플레어티 단장은 작년에도 구단주와 거친 설전을 벌였다.
쓸 만한 불펜 투수를 팔아 현금으로 바꿔오라는데 그게 탱킹이지 뭔가. 플레어티 단장 덕분에 오클랜드는 탄탄한 불펜을 지켜냈고 이렇게 월드시리즈까지 왔다.
ALCS에서 17이닝 1실점을 기록한 오클랜드 불펜은 월드시리즈 진출 1등 공신, 그래도 오클랜드 팬들은 마음 놓고 웃지 못했다.
자본이 약한 팀은 월드시리즈 우승 후 주전 멤버를 팔아치우지 않나.
하지만 플레어티 단장은 얼마 전 여론을 통해 내가 단장으로 있는 한 어떤 전력 누출도 없을 거라고 공언했다.
“그 어느 팬도 우승 멤버가 1년 만에 해체되길 원치 않을 겁니다. 그건 저도 마찬가지고요. 사무실에 앉은 사람들은 이득을 내기 위해 머리를 굴리지만 저는 이득을 위해 팀의 미래를 팔진 않을 겁니다.”
오클랜드 팬들은 플레어티 단장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보냈다.
작년 시즌 월드시리즈 진출에 실패했지만 전력 누수를 최소화하고 이인영을 트레이드로 업어와 공격력을 강화한 단장,
없는 살림에서 이 정도 성적을 거둔 게 어디인가.
그에 비해 인기가 없는 집 주인, 존 캐넌 구단주는 플레어티 단장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일단 같은 자리에서 월드시리즈 1차전을 관람했다.
“팔려면 얼른 파시죠. 팬들도 그걸 바랄 테니까요.”
“구단주는 나야. 그건 자네가 간섭할 일이 아니라고”
“구단 가치를 끌어올린 건 겁니다. 당신은 그걸 누리고 있을 뿐이죠.”
“내가 아무 것도 안했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
“사실을 말한 것뿐인데 불편하셨습니까?”
한 뼘도 안 되는 거리에서 벌어지는 설전, 카메라 맨은 그 모습을 집중 조명했다.
너무 먼 곳이라 무슨 말이 오가는지는 모르겠지만 별로 밝지 않은 두 사람의 얼굴, 경기가 시작되자 카메라는 그라운드로 옮겨갔다.
‘자기야 잘 해.’
한편, 혜진 씨는 쉬는 시간을 틈 타 남편의 활약을 지켜봤다.
날 지긋지긋한 일상에서 해방시켜줄 왕자님, 사소한 플레이도 놓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