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일은 일인자-241화 (241/309)

241화. there is no bargain (12)

“이번에도 장난질 치겠지?”

“뻔한 거 아냐.”

ALCS 1차전을 앞둔 오클랜드는 비디오실에서 토론과 분석을 이어갔다.

이번에 만날 팀은 휴스턴, 휴스턴은 뉴욕과 5차전까지 가는 접전을 치르고 12년 만에 ALCS 무대에 올랐다.

오클랜드가 가장 경계하는 건 포수 윌리엄 알바레즈의 프레이밍, 포수들은 보통 양 무릎을 수평으로 맞추고 몸이 흔들리지 않는 자세에서 포구를 한다.

포구의 기본 동작이지만 이런 자세에서 낮은 공이 들어오면 볼로 판정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문제, 미트가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면 심판도 볼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처음부터 자세가 낮다면 어떨까. 실제로 포수 미트가 아래에서 위로 올라오면 심판은 그 공을 스트라이크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싱커나 투심을 잘 던지는 투수라면 이른 미트질이 효과를 볼 수 있는데, 실제로 지난 ALDS 4차전에서 알바레즈는 투심 위주의 투구로 뉴욕 타자들의 뚜껑을 열어버렸다.

뉴욕과 주심의 신경전은 덤, 그렇게 흥분한 뉴욕은 스스로 무너져 버렸다. 그렇다면 이번 ALCS는 어떨까. 알바레즈는 방망이가 잘 안 나오는 오클랜드 타선의 성향을 노리겠지.

분석을 끝낸 보이스 감독은 선수들에게 이번 시리즈에선 조금 더 적극적인 타격을 할 것을 요구했다.

하루아침에 쉽게 되는 일은 아니지만 어쨌든 대비는 해야겠지, 각자의 방식대로 연습을 하며 하루를 보냈다.

‘조금 더 높게 들어도 괜찮겠어.’

이인영은 레그 킥을 약간 높게 수정했다.

레그 킥의 높낮이는 타이밍을 잡는 방식일 뿐, 정말 중요한 건 높낮이가 아니라 몸이 열린 상태로 스탭을 내리면 안 된다는 거다.

투구에 딱 맞는 타이밍에 앞발을 내렸다고 치자, 그런데 허리와 엉덩이가 이미 돌아간 상태라면? 이런 자세로 타격을 해봤자 땅볼이다.

스텝이 열리지 않고 투수 쪽으로 뻗는 자세를 유지하는 게 중요, 감독의 분석대로 휴스턴 배터리가 투심과 싱커를 이용한 볼배합을 짜 온다면 앞발을 조금 더 올리는 편이 낮은 공을 타격할 때 효과적일 수 있다.

11년 동안 프로 생활을 하면서 축적한 노하우, 동료들과도 의견을 주고받으며 공략법을 찾아 나섰다.

“너희들 뜨거운 물에 안 들어가 봤어?”

“거길 뭐 하러 들어가? 뜨거울 텐데”

이인영은 발을 내려놓는 비결을 설명하느라 애를 먹었다.

한국이나 일본은 뜨거운 물에 몸을 불리는 문화가 발달했지만 미국은 그렇지 않다.

상체가 먼저 돌아가 버리면 스텝도 경로를 이탈하기 마련, 상체는 고정시키고 앞발을 뻗어야 하는데 그 느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인영은 욕조를 예로 들었다.

뜨거운 욕조에 텀벙텀벙 발을 담글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 신중하게 발을 뻗겠지, 너무 뜨겁다는 느낌이 들면 발을 빼겠지만 버틸만 하면 그대로 앞발을 쑥 밀면서 욕탕으로 들어갈 거다.

타석에서 투수 쪽으로 발을 뻗는 건 딱 그 느낌이다.

하지만 아무리 설명해도 말귀를 못 알아먹는 동료들, 설명을 하다 포기해버렸다.

“야, 그냥 가면 어떻게 해?”

“몰라, 집에서 뜨거운 물 받아놓고 연습해 보던가.”

말만 계속 떠들어 대면 뭐 하나. 뭐든 직접 해 봐야 하는 법, 어쨌든 하루 일과를 마친 선수들은 각자의 자리로 흩어졌다.

‘뜨거운 물에 발을 담는 느낌이라고?’

3루수 다비드 블루포드는 집에서 개인 훈련을 이어갔다.

이해는 안 되지만 어쨌든 위대한 타자의 비결이라고 하지 않나. 설마 한국인들은 펄펄 끓는 물에 발을 담는 짓은 하지 않겠지.

본인이 생각하는 기준의 뜨거운 물을 준비했다.

‘막상하려니까 겁나네. 설마 화상을 입는 건 아니겠지?’

블루포드는 닿을 듯 말듯한 거리에서 뜨거운 물과 신경전을 벌였다.

타석에선 과감하게 발을 뻗었는데 왜 이렇게 긴장이 되는지, 조심스럽게 발을 집어 넣었다.

제법 뜨겁지만 버틸만한 느낌, 그대로 물 속에 발을 넣었다. 생각보다 괜찮은 느낌, 이번엔 타석에 섰다는 기분으로 자세를 잡고 앞발을 들이밀었다.

이런 훈련은 생전 처음이지만 장난이나 쓸데없는 짓이라는 들지 않았다.

발을 빨리 뻗어야 한다는 생각에 몸이 열린 상태에서 타격이 된 건 아닐까. 브루포드는 올 시즌 17홈런을 때려냈는데 마이너리그 시절 최소 25홈런 이상은 쳐 줄 타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지난 4년 동안 때려낸 홈런은 65개 뿐, 나쁘지 않지만 뭔가 아쉽다. 파워가 부족한 건 아니고 문제는 역시 기술, 그렇게 계속 연습을 하면서 나름대로 방법을 찾았다.

* * *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곳은 ALCS 1차전이 열리는 오클랜드의 홈구장 코리다 팰리스 스타디움입니다. 저는 캐스터 이명한, 해설에는 박한우, 임선우 위원께서 도움을 주시겠습니다. 임선우 위원님”

“예”

“이번 시리즈를 놓고 전문가들이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지 않았습니까? 전직 메이저리거로서 오늘 경기 어떻게 보십니까?”

“오클랜드가 승리를 거두려면 역시 공격력이 받쳐줘야겠죠. 디비전 시리즈에서 경기 당 4.2점을 내긴 했는데 득점권 타율이 0.222에 그쳤습니다. 잔루도 무려 28개를 기록했고요. 한 방을 날려줄 타자가 이인영 선수 뿐이라는 것도 불안요소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는데 … 이인영 선수도 사람이 매 경기를 잘 할 순 없거든요. 득점권에서 얼마나 중심타선이 힘을 내주느냐, 승패의 향방은 여기에 달려있다고 봅니다.”

1회 초, 휴스턴의 공격으로 ALCS 1차전이 시작됐다.

오늘 오클랜드의 선발은 케네스 맥브라이드, 후반기에 약간 흔들리긴 했지만 16승 5패, 평균자책점 3.50을 기록하며 선발진의 중심을 지켰다.

구속이 얼마나 받쳐주느냐에 따라 갈린 경기, 케네스는 92마일 직구를 바깥쪽 걸치는 곳에 던져 팬들을 안심시켰다.

“이번에는 잡아주지 않습니다. 카운트는 노 볼 원 스트라이크”

“포수가 공을 받을 때, 미트의 가로 폭을 활용하라는 말이 있거든요. 지금도 그 원칙이 적용됐는데 주심의 손은 올라가지 않네요.”

“심판들도 프레이밍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습니다. 본인들의 밥줄이 걸린 일이거든요.”

잊을만 하면 나오는 프레이밍 논란, 주심을 속이기 위한 선수들의 노력이 계속되면서 판정을 기계로 대체하자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주심도 사람이라 눈 깜짝할 사이 들어오는 공을 놓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포수 미트를 봐야지 어쩌겠나.

이걸 기술로 인정할 것인가 반칙으로 규정할 것이냐를 두고 논란을 거듭하고 있는 여론, 오늘 경기 주심을 맡은 존 윌슨은 절대 속지 않겠다며 눈을 부릅떴다.

‘잘 좀 보라고, 스트라이크잖아.’

이에 맞춰 포수도 왼쪽 무릎을 땅에 대고 몸을 낮췄다.

이렇게 하면 바깥쪽 공이 볼 판정을 받을 위험이 높다는 주장이 있는데, 반대로 생각해보면 이렇게 해야 미트가 주심에게 더 잘 보인다.

공 하나를 두고 신경전을 벌이는 건 투수와 타자뿐만이 아니다.

속이려는 자와 속지 않으려는 자의 눈치 게임, 오늘 따라 인정없는 판정에 오클랜드 팬들은 불만을 쏟아냈다.

“그게 볼이면 뭘 던지라는 거야?!!”

“이러니까 너희들이 쓸모없다는 거야!!”

점점 심해지는 압박감, 하지만 존 윌슨은 꿋꿋하게 자신이 정한 스트라이크 존을 지켰다.

안타와 볼넷이 나오면서 무사 주자 1 – 2루, 위기에 몰린 케네스 맥브라이드는 깊은 숨을 골랐다.

오늘은 점수가 많이 날 것 같은 분위기, 내가 맞으면 동료들이 득점을 내면 되는 거 아닌가. 후반기 평균자책점 4.04를 기록한 케네스는 무실점에 집착하지 않았다.

[딱~!]

“3구 타격!! 유격수가 잡아 2루!! 다시 1루에서~ 아웃입니다!! 더블 플레이!! 2루 주자는 3루까지 가면서 2사 주자 3루가 됩니다!!”

“지금은 바깥쪽 높은 공이었는데 이걸 잡아당기네요. 좋은 타격이 될 리가 없죠.”

결정적인 순간에 나온 병살타, 위기를 넘긴 케네스는 다음 타자를 유격수 땅볼로 처리하고 이닝을 마쳤다.

이어지는 1회 말 오클랜드의 공격, 토드 리틀이 초구를 맞이했다.

“스트라이크!!”

제법 낮은 공이었지만 알바레즈는 처음부터 낮게 잡고 있던 미트를 올리면서 주심의 눈을 속였다.

1회 초, 바깥쪽에 짠물 판정을 보여줬던 그 주심이 맞나?

이렇게 최근 메이저리그는 가로 폭이 아니라 세로 폭을 활용하는 프레이밍이 인기를 끌고 있다.

가로로 움직이는 미트는 주심 눈에 보이지만 아래에서 위로 올라오는 미트는 잘 안 보이는 게 사실, 알바레즈 포수는 오늘은 양 쪽 무릎을 수평으로 유지했다.

주심에게 미트를 꼭꼭 숨겨둔 자세, 예상과는 전혀 다른 시나리오지만 토드 리틀은 차분하게 다음 공을 기다렸다.

‘어디 또 해보시지.’

포수가 몸의 중심은 높게 미트를 낮게 잡으면 높은 공을 포구하기 어렵다. 휴스턴 배터리는 오늘 낮은 공에 집중하겠다는 뜻이겠지, 경기 전 감독에게 적극적인 타격을 하라는 주문을 받았지만 경험이 많은 토드 리틀은 바로 전략을 수정했다.

차분하게 볼을 고르면서 카운트는 투 볼 투 스트라이크, 5구는 커트하면서 승부를 길게 끌고 갔다.

“높은 공, 골라냅니다. 풀 카운트, 토드 리틀 선수가 특유의 선구안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오클랜드 타선은 이게 강점이죠. 어떤 상황에서도 선구안이 흔들리지 않고 또 끈질기죠.”

휴스턴의 선발 앤디 플로레스는 약간 초조한 기색을 드러냈다.

지난 2027년 5월 16일, 데뷔전에서 오클랜드를 상대로 통산 첫 승리를 거뒀지만 그 이후로 무려 8연패를 당하며 고전했다.

이렇다 할 타자는 없는데 급하게 달려들지 않고 끈질기게 달라붙는 타자들에게 말렸다고 해야 하나.

올 시즌 정규시즌 맞대결에서도 3회까지 15타자를 상대하면서 7명을 풀카운트 승부까지 끌고 갔다.

오늘도 첫 타자부터 풀카운트, 또 악몽이 시작되는 건가.

프롤레스는 올 시즌 18승 8패, 평균자책점 2.93을 기록한 특급 선발, 위기 상황이라면 수백 번도 더 겪었지만 천적 앞에서는 약간 몸을 사렸다.

[딱~!]

“다시 파울입니다. 토드 리틀 선수가 플로레스를 철저하게 물고 늘어지고 있네요.”

“역시 천적이라는 게 있긴 있는 것 같습니다. 플로레스 선수가 올 시즌 이닝 당 평균 투구 수가 14.4개, 메이저리그 전체 3위였거든요. 그런데 한 타자 상대로 벌써 7개째입니다. 이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네요.”

“마침 히긴스 감독의 얼굴이 보이는데요. 뭐 … 플로레스를 1차전 선발로 내세운 건 이해는 가지만 출발은 좋지 않습니다.”

토드 리틀은 7구를 골라내고 1루로 걸어나갔다.

굳어지는 히긴스 감독의 얼굴, 그래도 다음 타자 블루포드와의 승부에 기대를 걸었다.

프로레스가 오클랜드 전에서 고전한 건 사실이지만 블루포드를 상대로는 12타수 1안타, 아주 강했다.

여기서 병살 잡고 다음 타자 막아내면 이닝 종료, 최상의 시나리오를 꿈꿨다.

‘뜨거운 물에 발을 담근다는 느낌으로’

한편, 블루포드는 어제의 느낌을 되새기며 타석에 들어섰다.

몸은 닫아두고 앞발은 투수 쪽으로, 약간 높게 든 앞발을 투수 쪽으로 내밀었다.

따아악~!!

“와아아~!!”

맞는 순간 정해진 타구의 종착점, 투 런 홈런을 날린 블루포드는 펄쩍 뛰며 1루를 밟았다.

4년 동안 찾아다녔던 답을 찾은 기분, 계기를 마련해 준 동료에게 하이파이브를 건넸다.

“답은 뜨거운 물이었어!!”

“뭐?”

이인영은 피식 웃으며 타석에 들어섰다.

설마 내 설명을 알아들은 건가. 무시할 줄 알았는데 알아들었다면 다행, 가르침을 주는 기쁨을 조금이나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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