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일은 일인자-240화 (240/309)

240화. there is no bargain (11)

“자, 이제 9회 초 오클랜드의 정규이닝 마지막 공격입니다. 캔자스시티는 예정대로 릴로이드 크루즈 선수를 올리는군요.”

“오늘도 열심히 뛰네요. 제가 볼 때 크루즈 선수는 체력의 절반은 여기서 소비하고 올라오는 것 같습니다.”

이곳은 ALDS 3차전의 무대 코튼 볼 스타디움, 3대 3 동점에서 캔자스시티는 마무리 릴로이드 크루즈를 투입했다.

현재 양 팀의 전적은 1승 1패, 2차전에서 1이닝 무실점 투구를 펼친 크루즈는 전속력으로 마운드로 달려 나가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키 198cm에 몸무게 127kg, 육중한 몸으로 달려오는 모습은 상대 팀에 이렇다 할 위협은 주지 못한다.

클로저라면 상대를 기죽이는 위압감을 보여줘야 되는데 뭔가 엉뚱발랄해 보인다고 해야 하나, 반면 이런 모습을 귀엽다며 좋아하는 팬들도 있다.

“헉~ 헉~ ”

체력이 떨어졌는지 2루 근처에서 거친 숨을 헐떡이는 크루즈, 대기타석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인영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정말 멋없다.”

천천히 걸어 나오는 게 100배는 더 위압감이 있어 보일 텐데, 클로저 치고 너무 귀여운 선수, 헐떡거리면서 연습을 투구를 하는 모습에 웃음보가 터질 뻔 했다.

하지만 이 경기는 팀의 ALCS 진출이 걸린 중요한 게임, 이빨을 드러내고 웃진 않았다.

“자, 오클랜드도 대타 존 고셀린 선수를 앞세웁니다. 이번 ALDS에서 첫 타석, 시즌 성적은 타율 0.263 – 홈런 5개 – 29타점을 기록했습니다.”

“지금은 다른 방법이 없죠. 오클랜드에서 안타를 확실하게 쳐 줄 수 있는 선수가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오클랜드는 올 시즌 당겨 친 타구 37%, 밀어친 타구 27%를 기록했다.

플라이볼 혁명이 시작되면서 많은 타자들이 너도 나도 풀 히팅을 하고 있다. 이런 시대에서 당겨 친 타구와 밀어 친 타구의 차이가 10% 밖에 안 된다니, 선수들이 팀 배팅을 했다는 뜻일까.

실제로 오클랜드의 보이스 감독은 우리 타선의 강점은 끈끈함이라고 밝혔지만, 본인도 이게 문제라는 건 알고 있었다.

‘모두가 영웅이 될 필요는 없지만, 한 두 명의 영웅은 필요하지.’

메이저리그라고 밀어치기가 쓸모 없진 않다.

실제로 3~ 40 홈런을 치는 타자라도 시즌 전체 안타의 20%는 밀어쳐서 만들기 때문이다.

문제는 오클랜드 타선에 영웅이 없다는 것, 지금 타석에 들어선 존 고셀린도 마찬가지다.

장타력은 잘 쳐봐야 한 시즌에 5~ 10홈런 정도, 그렇다고 발이 빠른 것도 정교함이 특별히 좋은 것도 아니다. 그런데 올 시즌 OPS는 무려 0.814, 51삼진을 당하는 동안 볼넷 41개를 얻어냈다.

수준급의 선구안을 갖추고 있지만 체력이 약하고 부상도 잘 입는 유리 몸, 이런 한계 때문에 지난 6년 동안 풀 시즌을 한 번도 치르지 못했다.

다음 타자 도트 리틀도 고셀린과 비슷한 유형,

다만 체력이 좋고 부상도 잘 당하지 않아 올 시즌 2할 7푼대 타율에 출루율 3할 4푼을 기록하며 리드오프를 책임졌다.

오클랜드는 승리를 위해 팀 배팅을 하고 볼넷을 얻어내는 선수들이 있지만, 희생정신만으로는 팀을 승리로 이끌 수는 없다.

누군가는 안타와 홈런을 쳐야 득점을 내는 법, 보이스 감독은 여기서 고셀린과 리틀이 출루하고 이인영이 마무리를 짓는 시나리오를 꿈꿨다.

“자, 다시 볼입니다. 카운트는 투 볼 노 스트라이크.”

“고셀린 선수는 팀을 위해서라면 머리로 날아오는 공도 피하지 않거든요. 이건 크루즈 선수가 오클랜드를 도와주고 있는 겁니다.”

“정말 박한우 위원님 말대로 뛰어오면서 체력을 다 소모한 건가요? 빠른 볼이 길을 못 찾고 있습니다.”

릴로이드 크루즈는 고셀린을 스트레이트 볼넷으로 내보냈다.

쳐 봤자 장타 안 나오는 선수에게 이런 투구를 하다니, 이후에도 제구가 흔들리면서 투 볼 노 스트라이크에 몰렸다.

‘내가 볼 땐 안 친다.’

이인영은 토드 리틀의 타격에 주목했다.

투 볼 노 스트라이크에서 타격을 망설이는 선수가 있을까. 그런데 저 선수는 진짜 안 친다. 모두가 알고 있는 리틀의 성향, 그런데도 크루즈는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했다.

“이런 맙소사!!”

“정신 차리라고!! 지금 올스타 선수를 상대하는 게 아니잖아?!!”

쓰리 볼이 되자 관중석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마운드에 올라와 볼만 7개 연속, 그런데 이걸 지켜보고 있는 타자의 인내심도 대단한 거 아닌가.

배트가 따라올 법한 공도 2~ 3개 정도 있었는데 그걸 다 골라내는 오클랜드 타선, 이인영은 그 인내심에 박수를 보냈다.

‘자, 이제 나한테 맞고 끝내자.’

결국 리틀까지 스트레이트 볼넷 출루, 이인영의 등장에 캔자스시티 진영은 바쁘게 움직였다.

올 시즌 213안타를 때려낸 선수, 방망이가 워낙 사나워 어중간한 공은 일단 건드리고 본다.

승부를 하자니 두렵고 만루 작전으로 가자니 정규이닝 마지막 공격이라 그것도 껄끄러운 게 사실, 캔자스시티는 일단 승부로 방향을 잡았다.

바깥쪽 빠른 볼을 적극적으로 때려내는 게 이인영의 성향, 다른 홈런 타자들과 달리 볼넷과 삼진이 적고 안타가 많다.

땅볼을 유도한다면 병살타로 위기를 넘기는 것도 가능하겠지, 포수는 바깥쪽으로 빠져 앉았고 크루즈도 고개를 끄덕였다.

[따악~!!]

“밀어낸 타구가!! 좌익수 앞에 떨어집니다!!!! 2루 주자는 3루를 돌아 홈으로!! 홈으로!! 들어~!! 옵니다!! 스코어 4대 3!! 오클랜드가 9회에 드디어 경기를 뒤집습니다!!”

“왜 플레어티 단장이 이인영 선수를 영입했는지 보여주는 장면이죠!! 이래서 안타를 치는 선수가 필요한 겁니다!!”

1루를 밟은 이인영은 더그아웃을 향해 손가락 세리머니를 날렸다.

오클랜드는 이동거리도 길고 야구를 하기엔 열악한 환경이지만, 영웅이 되길 마다하는 동료들 덕분에 스포트라이트는 확실히 받고 있다.

언제나 1인자가 되길 바라는 내겐 아주 적합한 환경, 나중에 어떻게 될진 모르지만 일단 이 분위기를 즐겼다.

올라오자 마자 볼넷 2개 적시타까지 허용한 크루즈는 이후에도 정신을 못 차리고 3실점, 홈에서 1승 1패를 거둔 오클랜드는 원정 경기에서 값진 1승을 챙겼다.

2년 연속 ALCS 진출까지 앞으로 1승, 결승타를 때린 이인영은 수훈선수 자격으로 기자들 앞에 섰다.

“제법 스트라이크 존에서 먼 공이었는데 당신의 배트는 용서가 없더군요. 처음부터 안타를 치겠다는 생각으로 타격에 임한 겁니까?”

“저는 언제나 안타를 노리고 타석에 섭니다. 공이나 보라고 구단이 저한테 돈 주는 거 아니지 않습니까?”

단순하지만 명쾌한 답변, 메이저리그 역사상 밀어치기로 이렇게까지 주목을 받은 선수가 또 있을까.

올 시즌 46홈런에 213안타, 3할 5푼이 넘는 타율을 기록한 이인영, 메이저리그 역사를 통틀어 이런 유형의 선수는 없었다.

당겨쳐야 높은 타율이 나오는 건 당연, 우리가 그동안 잘못 알고 있었던 건가. 당겨치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전문가들도 돌연변이 앞에선 할 말을 잃었다.

본인은 밀어치기의 중요성을 얼마나 높게 보고 있을까. 한 기자가 질문을 던졌고, 이인영은 나름대로 답을 제시했다.

“여러분들은 뭔가 큰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밀어치기가 제가 창시한 기술인가요? 아닙니다. 오래 전부터 선수들이 하던 타격이고, 제가 실전에서 활용하고 있는 모든 기술은 선구자들의 노력을 모방한 것에 불과합니다.”

창의성을 굉장한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창의성은 기존의 있던 기술이나 지식을 그럴듯하게 응용한 것 뿐,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이 괜히 있겠는가.

최근 당겨치는 기술이 강조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밀어치기를 안 하는 건 아니다.

여기까지 올라올 정도라면 밀어치기를 할 줄 아는 건 당연, 다만 이인영은 다른 선수들보다 밀어치기를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뿐이다.

바깥쪽 공을 지켜보고 볼넷으로 나가는 것보다, 때려서 안타로 만드는 게 낫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자신만의 타격 스타일을 정립, 내가 한 건 이게 전부다.

기존에 있던 타격 이론이나 기술을 내 방식대로 짜맞춘 것뿐인데, 그걸 대단한 것처럼 포장하고 우쭐거려야 하나.

이인영은 나도 당겨치는 걸 좋아하는 타자라고 선을 그었다.

“저도 잡아당긴 타구가 펜스 위로 넘어가는 걸 지켜보는 게 좋습니다. 다만, 그렇게 칠 수 있는 공은 한 경기에서 몇 번 오지 않죠. 그래서 짧은 안타를 치면서 투수가 몸 쪽 공을 던지도록 유도합니다. 그게 다죠. 저는 앞선 시대의 선수들이 닦아놓은 길을 걸어갈 뿐입니다.”

커브를 처음 던진 선수, 슬라이더를 처음 던진 선수, 한 구단이 50홈런을 칠 때 혼자서 60홈런을 넘긴 선수, 모두 다 야구의 새로운 시대를 인물들이다.

내가 그런 선수들에 비교될 수 있을까.

이인영은 내가 야구를 잘 하는 건 사실이지만, 한 시대를 이끌었다는 평가는 아직 이르다는 소감을 드러냈다.

“저는 앞으로도 많은 안타를 치고 많은 승리를 거두길 바랍니다. 물론 돈도 많이 벌면 좋겠죠. FA를 앞둔 올해는 제게 여러모로 의미가 깊은 시즌입니다. 저를 위해서라도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겸손함과 자신감이 교묘히 결합된 인터뷰,

이인영은 다음 경기에서도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노력했다.

“자, 이인영 선수가 오늘 경기 첫 타석을 맞이합니다. 이번 디비전 시리즈에서 11타수 4안타, 홈런 없이 3타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홈런이 없어 뭔가 밋밋해 보이지만 1차전과 3차전의 결승타를 모두 책임졌죠. 역시 임팩트는 확실한 선수입니다.”

“어제 인터뷰에서 선구자들의 기술을 답습했을 뿐이라고 하던데, 밀어치기를 기본으로 이런 성적을 낸 선수가 있었습니까? 이미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죠.”

박한우 위원은 오늘도 양아들 칭찬을 이어갔다.

박한우 위원도 선수 시절 밀어치기를 기본으로 2천 안타를 적립하며 나름 명성을 날렸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장타력 때문에 큰 주목을 못 받은 게 사실, 반면 애제자는 KBO 시절 포함, 11년 연속 30홈런을 넘겨버렸다.

올 시즌은 무려 46홈런, 한 시대를 대표할 자격은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던질 데가 없어.’

한편, 캔자스시티 배터리는 신중히 사인을 주고받았다.

상하좌우 약점이 없는 타자, 이런 타자들을 상대할 땐 타이밍을 뺏는 투구를 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어설픈 변화구를 던지다가 얻어맞는 경우가 많다는 것, 결국 빠른 볼을 던져야 하는데, 들어갈 엄두가 안 났다.

말 그대로 투구 자체가 꺼려지는 타자, 하지만 시간은 언제까지 투수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빨리 빨리 하자고”

인터벌이 길어지자 주심은 배터리에 경고를 줬다.

절벽에서 누군가가 등을 떠미는 느낌,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따아악~!!

좌측으로 밀어낸 타구는 점 점 투수의 시야에서 멀어졌다. 설마 했는데 담장 위로 사라진 타구, 홈런을 허용한 크리스 벤자민은 무릎을 붙잡은 채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XX 이건 말이 안 돼. 이거 누가 설명 좀 해봐.”

누가 밀어치면 홈런이 나오기 어렵다고 말 했나.

지금까지 그렇게 알고 야구를 했는데 어른의 거짓말에 속은 어린아이가 된 느낌, 유유히 베이스를 보는 타자를 멍하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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