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9화. there is no bargain (10)
“와아아~!!”
“이번에도 한 방 보여주라고!!”
이곳은 오클랜드의 홈구장 코리다 팰리스 스타디움, 이인영의 등장에 팬들은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오클랜드 이적 후 39경기에서 타율 0.365 - 홈런 11개 – 35타점, 오늘도 3회 두 번 째 타석에서 홈런을 날리며 시즌 43호 홈런을 적립했다.
메이저리그에서 홈런 치기 까다로운 구장으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이곳에서 이만한 페이스를 보여주다니, 필라델피아 팬들은 통곡을 하고 있지만 오클랜드 팬들은 비명을 지르며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뭐 봐?”
“그냥”
이 와중에도 딴 짓을 하는 팬은 있었다.
경기에 흥미를 잃은 한 여성 팬은 휴대폰을 만지작거렸고, 이때 좌측 펜스로 큼지막한 타구가 날아들었다.
“꺄악~!!”
타구는 깜짝 놀란 여성 팬의 휴대폰을 직격, 그 사이 이인영은 유유히 베이스를 돌아 동료들과 팔꿈치를 맞부딪쳤다.
쐐기를 박는 시즌 44호 홈런, 이날 시즌 100승을(43패)을 적립한 오클랜드는 일찌감치 포스트시즌 진출을 확정지었다.
리그 2위 텍사스와의 격차는 20경기, 남은 19경기에 전패를 해도 순위는 뒤집히지 않는다. 2년 연속 AL 서부 지구 1위를 확정, 관계자들은 한자리에 모여 기쁨을 나눴다.
“휴대폰이 박살났다고 했나?”
“예”
이때 축제에 찬물을 끼얹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핸드폰이 망가진 팬이 구단에 손해 배상을 요구한 것, 리그 우승을 했는데 그까짓 휴대폰 수리비용 갚아주면 되는 거 아닌가.
플레어티 단장은 보상을 약속했지만 이 소식을 들은 이인영은 불쾌감을 드러냈다.
“제 타석에 집중하고 있었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 텐데요? 저는 필라델피아에서 홈런을 200개나 쳤지만 그런 불상사는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내가 홈런을 쳤을 때 그 팬은 그때 도대체 뭘 하고 있었나.
그것도 안 따져보고 구장에서 벌어진 사건은 모두 구단에서 책임을 져야 하나. 이인영은 사건의 인과관계는 철저히 따져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제 타석이 따분했다면 야구장에서 나가면 되는 거 아닌가요? 제가 홈런을 치는 동안 그 팬은 휴대폰을 보면서 딴짓을 하고 있었다니 솔직히 기분이 좋진 않군요. 이런 팀을 위해 몸을 날리고 홈런을 칠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홈런 타구에 사람이 다치거나 물건이 박살 나는 사건은 가끔 있지만, 이걸 이런 식으로 해석하는 선수는 처음, 깜짝 놀란 플레어티 단장은 선수 달래기에 나섰다.
“수업하는데 딴짓하는 학생이 있으면 불쾌한 건 당연한 거 아닙니까? 제 생각이 이상한 건가요?”
“뭐 … 그건 … ”
약간 경우가 다른 것 같은데 뭔가 설득력이 있는 말, 속사포 공격은 계속됐다.
“이곳 팬들은 필라델피아만큼 열정적이지 않은 것 같습니다. 팬들이 정말 월드시리즈 우승을 원하는지도 의심스럽네요.”
“절대 그렇지 않아. 그건 자네가 오해하는 거네.”
오클랜드는 다른 지역에 비해 팬덤이 많이 고약하다.
어지간한 훌리건 저리가라 할 정도, 일례로 지난 1994년, 오클랜드가 월드시리즈에서 패배하자 팬들은 폭주족들과 손을 잡고 도심 한 가운데서 난동을 부렸다.
이건 빙산의 일각, 원정을 온 상대 팀을 붙잡아 감금한 사건도 있다.
다른 팀 유니폼을 입고 거리를 돌아다니면 두들겨 맞는 게 당연, 거기다 최근 구단에 수리비를 청구한 여성은 살해 협박을 당하고 있다며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홈런이 나왔을 때 잠시 딴 짓 한 것 뿐인데, 그게 맞아 죽을 일인가. 하지만 오클랜드 팬들은 죽어 마땅하다는 답을 내놨다.
리그 우승을 확정 짓는 자리에서 딴 짓을 하고 있었다니, 본인도 부주의한 잘못이 있는데 모든 책임을 구단에 돌린 것도 괘씸죄에 걸렸다.
“그건 성격이 고약한 거지 열정적인 게 아니죠. 어쨌든 제가 원하는 건 팬들의 간절함입니다. 단장님도 우승하고 싶어서 절 입한 거 아닙니까?”
“그건 당연하네.”
“그럼 팬들도 그만한 간절함을 보여달라 이겁니다. 져도 그만, 이겨도 그만이라면 저도 그런 자세로 경기에 임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절대 굽히지 않는 강경한 태도, 이때부터 오클랜드의 야구 문화는 조금 달라졌다.
맥주 한 잔 걸칠 수 있는 여유가 야구를 보는 묘미 아닌가. 그런데 이때부터 관중들은 쉴 새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경기가 너무 재미 없어!!”
“우리가 집중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적극적인 표현을 하면서 떠들썩해진 분위기, 덕분에 선수들의 움직임도 빨라 졌다.
[휴대폰은 잠시 넣어주십시오.]
이인영이 타석에 들어서자 전광판에 이런 문구가 새겨졌다.
얼마 전 휴대폰 격파 사건으로 난리가 났던 오클랜드 팬덤, 외야에 앉은 팬들은 알아서 휴대폰을 주머니에 집어 넣었다.
문제는 저 선수가 우리를 열광시킬 수 있느냐는 거겠지, 삼진을 당하거나 범타로 물러나면 야유를 퍼부어주겠다는 마음을 품었다.
“자, 이인영 선수가 오늘 경기 첫 번 째 타석을 맞이합니다. 올 시즌 타율 0.355 – 44홈런 – 115타점, 트레이드 이후에도 좋은 성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경기를 보고 있는 시청자 여러분들도 집중하세요. 잘못하면 홈런이 안방으로 날아갈 수도 있습니다.”
나름 치밀하게 준비한 개그인데 싸늘해진 중계석, 무안했는지 박한우 위원은 헛기침을 하며 경기에 집중했다.
따악~!!
“와아아~!!”
센터 쪽으로 향하는 타구, 캔자스시티의 중견수 헨리 해리슨은 추격을 포기하고 펜스 플레이를 노렸다.
‘절대 안 넘어가. 내가 중견수 경력 4년 차라고’
하지만 얄밉게도 담장을 살짝 넘어가는 타구, 한 방 먹은 해리슨은 무안한 얼굴로 캡을 눌러썼다.
“잘 따라가다 왜 갑자기 멈춘 거야?”
“이게 내 잘못이야? 내 잘못이냐고?”
“그게 아니라 너 정도면 충분히 잡을 수 있는 타구였잖아?”
해리슨은 백업을 들어온 우익수 자일스와 가벼운 말다툼을 주고 받았다.
해리슨은 홈런 헌터로 유명한 선수, 지난 6월 오클랜드와의 3연전에서 홈런 성 타구를 3개나 걷어내기도 했다.
그만큼 타구 판단 능력이 좋은 선수, 자일스는 만약을 위해 펜스 플레이를 들어왔지만 이 정도 타구는 해리슨이 잡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 네 논리라면 내가 잘못한 거네. 그렇다고 치자”
“무슨 답이 그래? 너한테 책임을 추궁한 게 아니잖아?”
“그냥 내가 잘못했다고, 그럼 끝난 거 아냐?”
점점 이상한 분위기로 흘러가는 외야, 반면 시즌 45호 홈런을 날린 이인영은 천천히 베이스를 돌아 홈을 밟았다.
최근 4경기에서 홈런 3방, 언제 터질지 모르는 대포에 캔자스시티 야수진은 긴장했다.
따아악~!!
“와아아아~!!”
어느덧 경기는 3회, 이인영은 두 번 째 타석에서도 센터 쪽으로 타구를 날렸다.
1회 말, 판단 미스로 홈런 타구를 그냥 지켜본 해리슨은 추격의 고삐를 놓치지 않았고 펜스 앞에서 힘껏 뛰어올랐다.
‘뭐야?!! 공은 어디 갔어?!!’
상황 파악이 안 된 해리슨은 주위를 두리번 거렸지만 타구는 글러브를 맞고 담장 밖으로 넘어갔다.
홈런 헌터로 악명이 높은 내가 이런 실수를 저지르다니, 해리슨은 그라운드에 머리를 박고 ‘이런 멍청이!!’를 연발했다.
반면 이인영은 2루를 지나며 해리슨의 어시스트에 경의를 표했고, 신이 난 홈팬들도 환호성을 지르며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이인영의 멀티 홈런에 힘 입은 오클랜드는 시즌 101승을 적립, 1931년에 거둔 107승 기록을 정조준 했다.
[오클랜드 시즌 104승]
[시즌 총관중 3백만 명 돌파]
오클랜드의 위대한 행보는 이후에도 계속됐다.
1990년에 세운 최다 관중 기록을 갈아치우더니, 시즌 160번째 경기에서 107승을 기록했다.
이제 남은 2경기에서 1승만 거두면 역대 최고 기록, 하지만 보이스 감독은 기자들 앞에서 기록에 집착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구단 신기록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저희의 최종 목표는 월드시리즈 우승입니다. 선수들을 무리시킬 생각은 없습니다.”
시즌 막바지라 체력 조절도 중요, 특히 최근 불펜진의 이닝 소모가 많다. 남은 2경기에선 철벽 불펜 3인조를 벤치에 앉힐 예정, 주전들도 대거 벤치에 앉혔다.
‘나는 나간다.’
하지만 이인영은 출전을 강행했다.
팬들에게 승리를 향한 열정을 보여달라고 그 난리를 쳤는데 내가 벤치에 앉으면 모양새가 좀 그렇잖나. 그라운드에서 몸을 풀며 경기가 열리길 기다렸다.
“망할 보이스!!”
“우리는 버리는 경기를 원치 않는다고!! 이 빌어먹을 자식아!!”
이때 관중석에서 불만 섞인 욕설이 날아들었다.
여기까지 와서 구단 신기록을 외면하겠다는 건가. 구단 신기록도 세우고 월드시리즈 우승도 해버리라는 아우성, 더그아웃 밖으로 나간 이인영은 있는 관중석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나가잖아!! 다들 진정하라고!!”
이 행동은 많은 팬들의 호응을 이끌어 냈다.
팬들이 원하는 걸 정확히 짚어내는 선수, 특별석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플레어티 단장은 군침을 삼켰다.
팀에 정말 필요한 선수인데, 구단 사정을 고려하면 장기 계약은 불가능하다.
오클랜드 역사상 가장 큰 계약은 1억 달러가 조금 넘는다. 얼마 전 필라델피아로 넘긴 호이싱튼이 그 주인공, 10년 최대 5억 달러를 요구하는 이인영의 요구는 절대 맞춰줄 수 없다.
하지만 상대가 다가가기 어려운 미녀라고 포기해버리면 거기까지, 정말 우리가 당신을 간절히 원한다는 걸 보여주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미리 포섭해 둔 팬들을 동원해 시위를 벌였다.
“우리를 버리고 갈 거야?!!”
“우리의 인연은 겨우 3개월이었어?!!”
1루 석에 자리 잡은 팬들은 있는 구애를 이어갔다.
하지만 이인영은 캡을 눌러 쓰며 정면을 응시할 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현재 상황은 무사 주자 1루, 뒤를 돌아볼 여유 따윈 없었다.
[딱~!!]
“1루수가 잡았고!! 2루에 송구!! 다시 1루에서~!! 세이프입니다!! 아~ 이게 병살이 안 되는군요.”
“이인영 선수가 움직이네요. 확신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오클랜드 벤치가 움직이기도 전에 이인영은 비디오 판독을 요구했다.
급하게 움직이는 비디오 판독실, 문제의 장면을 확인한 1루심은 아웃 판정을 내렸다.
공격뿐만 아니라 수비도 최상급이라는 걸 증명한 장면, 몸 값 올라가는 장면에 팬들의 목소리는 잦아들었다.
‘찬양은 이제 끝인가?’
고개를 돌린 이인영은 양 팔을 올리며 팬들의 호응을 유도했다.
오클랜드에 남는 건 어렵겠지만, 팬들의 찬양을 싫어하는 선수가 어디 있나. 구애가 계속되면 마음이 조금은 흔들릴지도 모르지, 이후에도 팬들은 응원을 이어갔다.
오클랜드는 2승을 추가하며 109승으로 시즌을 마무리, 구단 역대 최고 성적을 찍었고 이인영은 기자들 앞에서 시즌을 마무리한 소감을 밝혔다.
“오늘도 팬들의 응원이 대단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다음 시즌에도 이곳에 남고 싶다는 마음이 조금은 생긴 겁니까?”
“미인을 얻으려면 시간과 노력 그리고 돈이 많이 드는 법이죠. 겨우 그 정도로 제 마음이 흔들릴 거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입니다.”
마지막까지 굽히지 않는 연봉, 하지만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라 팬들도 뭐라고 하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