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7화. there is no bargain (8)
“자, 오늘 오클랜드는 케네스 맥브라이드를 마운드에 올립니다. 올 시즌 17경기 등판 12승 3패 평균자책점 3.26, 107과 2/3이닝 동안 볼넷 39개, 탈삼진은 89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최근 2경기에서 1패 평균자책점 7.14를 기록하고 있거든요. 오늘 경기는 부진을 떨쳐내야 겠습니다.”
“문제는 구속이죠. 역시 메이저리그는 구속이 안 따라주면 안 된다는 걸 보여주고 있습니다.”
케네스는 표정 없는 얼굴로 연습 투구를 이어갔다.
평균 구속은 92마일 정도지만 빠른 볼 무브먼트, 특히 우타자 바깥쪽으로 휘어져 나가는 역회전 움직임이 좋아 좌투수임에도 우타자에 강하다.
문제는 구속, 무브먼트는 메이저리그 최고 수준이지만 갈수록 빠른 볼 구속이 줄어들고 있다.
지난 경기 평균 구속은 겨우 89마일, 혹시 부상이라도 있는 건가. 속도가 받쳐주질 못하면 얻어맞는 메이저리그, 그걸 잘 알고 있는 케네스는 구속에 더 신경을 썼다.
‘이것도 본 모습이 아닌데’
경기를 지켜보던 오클랜드의 보이스 감독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상황에 따라 구속을 조절하며 타자의 타이밍을 뺏는 기술이 좋은 케네스, 컨디션이 좋을 때는 최고 96마일까지 나온다.
하지만 지금은 억지로 구속을 끌어올리는 느낌, 평균 구속은 92마일을 유지했지만 완급조절 능력이 받쳐주질 않으면서 타격을 허용했다.
[딱 ~ !!]
“타격!! 2루수 옆을 빠져나갑니다. 케네스 선수가 첫 타자부터 안타를 허용하는 군요.”
“완급조절로 타자를 잡아내는 투구의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네요. 이게 잘 먹힐 땐 괜찮은데, 구속을 조절하다 제구가 흐트러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이 바로 그런 경우죠.”
전반기까지 11승 2패 평균자책점 2.84를 기록한 케네스의 두 얼굴, 위기에 몰린 케네스는 경기 중반부터 활용하는 커브까지 꺼내 들었다.
‘이건 총체적 난국이군.’
하지만 마이크 스튜어트 포수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케네스는 카운트를 잡는 커브와 헛스윙을 유도하는 커브를 구분해 던진다.
카운트를 잡는 커브는 일반적인 궤적, 헛스윙을 유도하는 커브는 홈플레이트 앞에서 떨어지는 너클 커브, 하지만 스튜어트는 두 가지 커브의 차이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캔자스시티 타자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겠지. 빠른 볼은 완급조절이 안 되고 커브도 엉망진창, 지난 2경기와 다를 게 없다.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내야진과 베이스를 유린하는 주자들, 오클랜드는 1회부터 2점을 내줬다.
“자, 이제 오클랜드의 1회 말 반격이 시작됩니다. 선두 타자는 토드 리틀, 올 시즌 타율 0.276, 홈런 10개, 31타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겉보기엔 특이한 게 없는데 출루율이 0.358나 되죠. 오클랜드엔 이렇게 만만해 보이지만 무시할 수 없는 타자들이 많습니다.”
토드 리틀은 2구를 공략했지만 유격수 글러브에 걸렸다.
최근 10경기에서 출루율 0.314을 유지하고 있지만 타율은 0.194, 타격이 안 되는 선수를 누가 두려워 하겠나.
타격이 안 되면서 출루율도 계속 떨어지는 중, 대기 타석에서 몸을 풀던 이인영이 타석에 들어서자 관중석에서 환호성이 쏟아졌다.
“잘 보이지?”
“어, 이제는 안 뛰어다녀도 되겠네.”
오클랜드 비디오 룸 직원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믿기 어려운 사실이지만 얼마 전까지 오클랜드는 비디오 판독을 하지 못했다. 기계장치가 고장 났는데 구단에서 수리 비용 지불을 미루자 화가 난 정비자가 중요한 부품을 빼버린 것, 여비 장치가 있는 것도 아니라 원인을 찾는데만 며칠을 보냈다.
덕분에 비디오 룸 직원들은 방송국에서 내보내는 화면을 보고 더그아웃에 직접 사인을 줘야 했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판독 정확도까지 떨어져 손을 놔 버렸다.
구단 직원 입장에선 얼마 전 영입된 슈퍼스타보다 잘 보이는 화면이 더 반가운 게 사실, 이렇게 이인영은 웃지 못할 환경에서 오클랜드 데뷔전을 치렀다.
“바깥쪽, 볼입니다. 카운트는 원 볼 노 스트라이크”
“지금 보니까 흰 색 유니폼도 잘 어울리네요. 뭔가 잘 빠진 백조 한 마리를 보는 것 같습니다.”
“하하 ~ 그게 무슨 비유입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오늘은 다리도 유난히 길어 보이네요.”
이 와중에도 박한우 위원은 농담을 이어갔다.
메이저리그에서 촌스럽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오클랜드 유니폼, 그나마 오늘은 홈이라 괜찮지 원정을 가면 시멘트 색의 향연이다.
여기에 약간 가미된 노란색과 초록색까지, 안 어울리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히 봐줄 만 했다.
따악 ~ !!
“와아아 ~ !!”
가볍게 밀어낸 타구는 쭉 쭉 뻗어 펜스 하단을 직격했다.
1루를 통과한 이인영은 2루 앞에서 천천히 속도를 줄였고, 오클랜드 현지 해설위원은 극찬을 이어갔다.
“다들 코리다 팰리스 스타디움에선 장타를 치기 어렵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이 선수는 예외입니다.”
“그렇죠. 올 시즌 배럴(Barreled)로 분류된 타구는 대략 타율 6할, 장타율은 1.812을 기록했습니다.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많은 배럴 타구를 생산하는 선수가 누구일까요? 저희가 보고 있는 이 선수입니다.”
26 ~ 30도 사이에서 98마일 짜리 타구를 날리면 배럴 타구로 분류 되는데, 이런 타구는 높은 타율과 장타율을 보장하지만 홈런이 되기는 어렵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통계로 분석해보니 약간 다른 결과가 나왔다.
일례로 지난 7월 27일, 이인영이 기록한 시즌 31호 홈런은 타구 속도 118마일, 발사각은 무려 44도를 기록했다.
발사각이 이렇게 높은데 배럴 타구로 분류 되도 되는 건가.
하지만 분석 결과, 타구 스피드만 받쳐준다면 발사각이 50도까지 올라가도 배럴 타구로 인정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인영은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빠른 타구를 날리는 선수, 코리다 팰리스 스타디움은 홈런 치기 제일 어려운 구장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타구 속도가 받쳐주는 이인영에겐 별 문제 없는 환경, 플레어티 단장이 기를 쓰고 영입을 시도한 건 이런 배경 때문이다.
첫 타석부터 자신의 가치를 보여준 이인영, 하지만 후속 타선이 받쳐주질 못하면서 득점은 나오지 않았다.
거기다 2회에 들어서도 제구를 잡지 못하는 맥브라이드,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유격수 게릿 라이트가 무리한 송구를 하면서 추가 진루를 허용, 1사 주자 1루가 1사 주자 3루로 바뀌었다.
맥이 빠진 맥브라이드는 추가 실점을 허용, 관중석은 더욱 침울해졌다.
‘실책은 누구나 할 수 있어. 하지만 개선하려는 노력은 해야지.’
오클랜드 선수들은 경기 전 이인영이 라이트에게 던진 잔소리를 떠올렸다. 어쩜 이렇게 상황과 딱 맞아 떨어지나, 문제는 라이트가 시즌 초부터 같은 짓을 반복하고만 있다는 것, 나아질 희망이 전혀 없다.
언제까지 술 취한 놈에게 운전대를 맡길 건가.
방향감각을 상실한 송구는 이후에도 반복 됐다.
“1루로 송구!! 잡았습니다!! 와 ~ 이인영 선수가 이걸 잡아주는 군요!!”
“방송 중이라 이런 말씀 드리긴 뭣한데, 개처럼 던지고 찰떡처럼 받아냈네요. 저게 뭡니까 도대체?”
6회 초, 경기를 지켜보던 박한우 위원은 폭발했다.
무슨 X개 훈련 시키는 것도 아니고 저딴 식으로 송구를 하나. 하지만 훈련 대상이 된 이인영의 분노는 이 정도가 아니었다.
잡았기에 망정이지 빠졌으면 2사 주자 3루, 오늘 경기에서 보이지 않는 송구 에러까지 포함해 벌써 3번째다.
내가 저런 자식 뒤치다꺼리나 하겠다고 1루를 봐야 하나.
첫날부터 X 같은 하루, 이인영의 심기가 불편하다는 걸 눈치챈 토드 리틀은 어깨를 두들겼다.
“좋은 수비였어.”
“좋긴 뭐가 좋아?!! XX 같은데!!”
순식간에 싸해진 더그아웃 분위기, 게릿 라이트는 저게 자신을 향한 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저렇게 말할 것 까진 없지 않나. 그런데 여기서 이인영이 말싸움을 걸면서 불꽃이 튀었다.
“넌 네가 대단하다고 생각하냐? 어?”
“그게 무슨 소리야?”
“착각하지마 이 XX아. 이 무대는 너 같이 실력없는 놈이 성공하지 못하도록 안전장치를 갖추고 있으니까!!”,
발끈한 게릿 라이트는 벌떡 일어났지만 사방에서 선수들이 달려들면서 싸움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트레이드 이후 첫 경기부터 동료와 난투극이라니, 경기가 끝난 후 이인영은 기자들 앞에서 해명에 나섰다.
“다들 어린 시절 대통령이 되길 한 번씩 꿈꾸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죠. 자격 없는 자가 권력을 쥐지 않도록 사방에 안전장치가 돼 있으니까요. 야구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설픈 실력으로 메이저리그 최고가 되길 바라는 선수들이 있는데, 이 무대는 그렇게 만만하지 않습니다. 실력이 없으면 바로 마이너리그로 강등될 뿐이죠.”
“게릿 라이트를 두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당연한 거 아닙니까? 그 선수가 유격수를 보는 건 술 취한 놈에게 운전대를 맡기는 것과 다름 없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리는데 그 멍청이가 유격수를 본다면 저는 1루를 지키지 않을 겁니다.”
사실상 파업 선언, 플레어티 단장은 이인영을 다독였지만 돌아온 답은 단호했다.
지명타자나 외야수로 돌리라는 것, 게릿 라이트가 유격수에서 형편 없는 수비를 보여준 건 사실이라 할 말도 없었다.
결국 라이트는 다음 경기에서 2루수로 투입, 라이트는 이 조치에 충격을 받았다.
팀의 미래를 책임져야 할 나보다 반 시즌 뛰고 다른 팀으로 꺼질 선수의 말을 들어주다니, 단장에게 나는 그런 존재였나.
이후에도 불성실한 태도로 단장의 심기를 건드렸다.
‘아무리 귀여워도 이건 아니지’
플레어티 단장은 라이트를 2군으로 내려보냈다.
71경기에서 타율 0.244, 홈런 14개를 기록하고 있던 주전 유격수를 마이너로 보내다니, 라이트는 물론 오클랜드 팬들도 일시적인 징계로 받아들였지만, 10일 동안 콜 업 소식은 없었다.
라이트의 자리를 채운 건 벤치 멤버 아담 토버트, 토버트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신의 가치를 어필했다.
어깨는 아주 강하다고 볼 수 없지만 밸런스 잡힌 자세에서 던지는 송구가 인상적, 물론 타격이 떨어진다는 약점은 어쩔 수 없었다.
‘그건 내가 채우면 됨’
이인영은 오클랜드 이적 후 18경기에서 타율 0.396, 홈런 5개, 14타점의 고감도 타격을 선보였다.
이 기간 동안 팀도 14승 4패로 순항, 게릿 라이트는 처음부터 팀에 필요 없는 존재 아니었을까.
라이트의 승격을 요구하던 팬들의 목소리도 잠잠해 졌다.
그동안 군기를 잡을 선수가 없었던 오클랜드, 하지만 이인영이 보스 노릇을 하면서 클럽하우스 질서가 잡혔다.
방식은 다소 과격하고 폭력적이었지만 결과가 좋으면 OK, 이인영의 태도에 문제를 제기했던 목소리도 기어 들어갔다.
“라이트가 아직도 팀에 필요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강등시킨 것도 아닌데 그런 말은 왜 하십니까? 콜 업 여부는 단장에게 따지세요.”
이인영은 이후에도 라이트에 대한 질문은 차갑게 반응했다.
갈수록 미뤄지는 콜 업, 라이트는 여론을 통해 지난 일은 반성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