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일은 일인자-236화 (236/309)

236화. there is no bargain (7)

“사무국에서 이미 논의 중인 사항이다. 결정은 필라델피아가 아니라 사무국이 할 일이다.”

오클랜드의 단장 조 플레어티는 인터뷰를 통해 입장을 밝혔다.

연봉보조와 트레이드는 이미 양 팀이 합의를 거친 내용이다.

사무국이 오클랜드의 적자를 문제 삼으면서 연봉보조를 두고 협의가 길어지고 있는 것 뿐, 얼마 전 플레어티 단장은 사무국에 해명서를 제출했다.

오클랜드가 빚을 지게 된 배경은 이렇다.

일본투자공사가 10년 전 오클랜드 구단에 150억 엔을 투자했는데 5년 만에 47%의 손실률을 기록한 것, 깜짝 놀란 일본투자공사는 계약서 수정을 요구했고 오클랜드는 원금만은 어떻게든 상환 한다는 약속을 걸고 100억 엔의 투자금을 더 지원받았다.

구단 사정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만 올 시즌 구장 개보수 공사를 하고 일본투자공사에 원금을 상환하면서 부채가 다시 늘어났다.

이런 구단이 필라델피아에 3350만 달러의 연봉보조를 해 줄 수 있을까.

사무국이 연봉보조를 두고 트레이드를 막아선 건 이런 배경 때문, 어쨌든 오클랜드는 서류를 사무국이 요구한 서류를 뒤늦게 제출했다.

사무국에서 허락만 내리면 성사될 트레이드,

어린애들끼리 하는 구두 약속도 아니고 필라델피아는 사무국에 제출한 트레이드안을 부정하는 건가. 오클랜드는 사무국이 허락을 내리면 이인영은 오클랜드 유니폼을 입게 될 거라고 해명했다.

“흑자로 돌아섰다는 게 정말이라면 문제 없겠지.”

7월 29일, 오브라이언 커미셔너는 트레이드를 허락했다.

그쪽 야구 인프라는 뻔하지 않은가. 이런 환경에서 구단을 운영하는 게 쉽지는 않겠지, 다만 오클랜드의 적자 폭이 너무 커서 놀랐을 뿐이다.

서류나 절차만 따져보면 문제가 없는 트레이드, 사무국이 트레이드 허가를 내리면서 필라델피아 일대는 혼란에 휩싸였다.

하지만 법적 효력은 이미 발생했고 필라델피아와 연장계약을 논의하던 이인영은 오클랜드로 향하는 짐을 꾸렸다.

‘어차피 그 팀은 나 못 잡아.’

오클랜드는 적자를 10년 동안 갚고 있는 구단, 내게 대형 계약을 제시할 수 있을까.

올해가 아니면 월드시리즈 우승을 못 한다는 조급함 때문에 트레이드를 서둘렀을 뿐, 나는 조만간 시장에 나올 운명이다.

필라델피아가 날 정말 원한다면 시장에 나왔을 때 집어가겠지, 다섯 시즌 하고도 반 년을 더 보낸 도시에 이별의 메시지를 전했다.

[6년 전, 이 도시는 검증 안 된 한국인 선수에게 큰 기회를 주었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행복했고 나름대로 즐겁게 야구를 했습니다. 덤으로 여러분들에게도 좋은 추억이 되었다면 그걸로 만족합니다.]

이인영은 호이싱튼과 리치아디가 필라델피아에서 활약하길 기원한다는 말도 남겼다.

트레이드는 어느 쪽이 일방적으로 이득을 보는 것 보다, 양쪽이 이득을 위해 추진하는 사업이다.

호이싱튼과 리치아디가 성적 반등의 계기가 될지 누가 아나.

양 팀 모두 잘 나가서 월드시리즈에서 만나는 게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 이인영은 월드시리즈에서 다시 보자는 덕담 아닌 덕담을 뒤로 하고 필라델피아를 떠났다.

[우리가 곧 당신을 데려 올 거야]

[이게 끝이 아니야. 잠시 헤어지는 것 뿐이지.]

필라델피아 여론은 이게 끝이 아니라며 이별을 부정했다.

어차피 시즌이 끝나면 시장으로 나올 선수 아닌가, 그때 투자해서 다시 데려오면 그만, 이인영은 5억 달러 계약은 놓쳤지만 이번 트레이드 소동으로 가치를 한껏 끌어올렸다.

* * *

“그 친구 오늘 안에 오는 겁니까?”

“2시간 안에 도착할 겁니다. 라인업 카드 제출하세요.”

“알겠습니다.”

이곳은 오클랜드 클럽하우스, 제리 보이스 감독은 우승 청부사를 맞이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작년 시즌 월드시리즈 문턱을 앞에 두고 무너진 오클랜드, 오클랜드는 유독 월드시리즈와 인연이 없다.

마지막 월드시리즈 진출이 1989년, 무려 43년 전 일이다.

특히 아쉬웠던 시즌은 지난 2001년, 뉴욕과 7차전까지 가는 접전을 치렀지만 결국 패배했다.

더 웃긴 건 시리즈 총 스코어가 27대 24였다는 것, 뉴욕보다 3점을 더 내고도 월드시리즈 진출에 실패했다.

마지막 7차전에서 10대 4로 대패한 탓도 있지만, 이길 때 크게 이기고 접전에서 허무하게 무너진 게 가장 뼈아팠다.

작년 시즌도 비슷, 결국 접전에서 약하다는 걸 증명됐다.

21세기 이후, 오클랜드의 벼랑 끝 경기 승률은 제로(0승 20패), 반면 21세기 들어 월드시리즈 4번을 차지한 보스턴은 벼랑 끝 경기에서 17승 무패라는 엄청난 전적을 거뒀다.

운이 없었던 걸까. 아니면 결정적인 순간에 한 방을 날려줄 스타 선수가 없었던 탓일까.

어쨌든 21세기 들어 불운의 아이콘으로 낙인찍힌 오클랜드, 만년 2인자 자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승부수를 던졌다.

이인영을 영입하고도 지면 그건 정말 운명, 보이스 감독뿐만 아니라 이번 트레이드를 추진한 플레어티 단장도 영웅의 도착을 간절히 기다렸다.

[오클랜드, 어메리벌 역에서 총기사건 발생]

[현재 집계 : 사망 7명, 29명 부상]

하지만 이인영의 오클랜드 데뷔전은 무산 됐다.

캘리포니아에서 4번째로 큰 어메리벌 역에서 총기사건이 발생해 그 일대가 마비된 것,

캘리포니아 공항에 내린 이인영은 그 소식을 듣고 발길을 돌렸다.

용의자는 7명, 그 중 2명이 이미 역을 빠져나갔다는 정보를 접했다. 경찰과 대치중인 5명을 제외하면 2명의 예상 경로는 여전히 오리무중, 오클랜드 일대가 마비에 빠졌다.

[역시 너희들은 뭘 해도 안 돼]

[그러니까 만년 2인자지]

산호세 여론은 오클랜드의 비극을 비웃었다.

산호세와 오클랜드는 오래 전부터 악연이었고, 최근은 구장과 연고지 문제를 두고 대립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오클랜드가 악조건 속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고 있지만 산호세는 그 반대, 이런 배경 때문에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오클랜드의 연고지를 샌프란시스코나 산호세로 확대하려 했던 거다.

하지만 텃세를 앞세우며 오클랜드를 거부한 산호세, 이것 때문에 오클랜드는 좋은 성적을 거두고도 흥행에서 실패를 반복하고 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했던가.

이인영을 영입하면서 우승권에 더 가까워진 오클랜드, 산호세 팬들이 총기사건을 언급하며 시비를 걸자 양 팀의 대립은 더욱 격화됐다.

‘여긴 진짜 전쟁터구나.’

이인영은 오클랜드의 살벌한 분위기에 혀를 내둘렀다.

원래 치안이 안 좋은 동네라는 건 알고 있지만, 내가 발을 들인 공항 근처에서 총기 사고가 일어날 줄이야.

거기다 산호세에 자격지심을 느끼고 있는 오클랜드는 최근 팬덤이 아주 고약해 졌다.

구단 적자가 3천만 달러를 넘다니, 이인영을 영입하는 과정에서 재무지표가 공개된 오클랜드는 모든 팀의 웃음거리로 전락했다.

이 치욕을 갚는 방법은 월드시리즈 우승 뿐, 이인영은 이곳에서 내가 뭘 해야 하는지 단번에 이해했다.

“자네 얼굴을 이 곳에서 보길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르네.”

우여곡절 끝에 입성한 클럽하우스, 플레어티 단장과 보이스 감독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손님을 맞이했다.

분명 메이저리그 승률 1위를 달리는 팀의 주역들인데 왜 이렇게 초라해 보이는 건지, 거기다 클럽하우스 분위기도 별로 좋지 않았다.

“다들 똑바로 하자고!! 이렇게 해서 우승할 수 있겠어?!!”

문제의 사건은 7월 11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도 오클랜드는 메이저리그 승률 1위를 순항했지만, 수비수의 실책이 연달아 나오면서 7대 4 패배를 당했다.

이날 선발로 나선 리치아디는 경기가 끝난 후 클럽하우스에서 소리를 질렀는데, 딱히 누구에게 화를 낸 게 아니라 다른 선수들의 활약을 독촉한 것뿐이다.

문제는 이 자리에 리치아디보다 11살이나 많은 토드 리틀도 있었다는 것, 마침 그날 실책을 저질렀던 토드 리틀은 리치아디와 충돌했다.

“지금 그거 나한테 한 소리냐?”

“뭐가? 다 같이 잘 해보자는 뜻으로 말한 것 뿐이잖아. 왜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데? 뭔가 찔리는 게 있나 보지?”

“이런 건방진 자식이!!”

6년 차는 되어야 어른 대접을 받는 메이저리그 클럽하우스, 토드 리틀은 주제넘게 기어오르는 리치아디를 두고 보지 않았다.

서로 주먹질까지 하고 제법 심각했던 당시 상황, 오클랜드 구단은 벌금을 선고하고 주의를 줬지만 이후에도 두 선수는 틈만 나면 충돌을 거듭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하는 법,

오클랜드 구단은 토드 리틀과 리치아디를 방출 리스트에 올렸다. 리치아디는 트레이드 수단으로 써먹었지만 토드 리틀은 주전 좌익수라 일단 써먹어야 하는 상황,

이렇게 화려한 성적과 달리 오클랜드는 내부적으로 썩어갔다.

‘내가 뭘 어쩌겠어.’

이인영은 눈과 귀를 닫았다. 앞으로 석 달 뛰고 나갈 팀인데 내가 이래라 저래라 해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런데 실제로 겪어보니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니었다.

“자네도 같이 하는 게 어떤가?”

“난 쉬고 싶다고요.”

경기 전, 보이스 감독은 단체훈련을 주도했다.

7월 11일도 그렇고 최근 수비에서 구멍이 열린 수비진, 압도적인 승률에 가려져 있지만 오클랜드의 수비는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다.

정규시즌은 그나마 괜찮은데, 이 폭탄이 포스트 시즌에서 터지면 수습 불가능한 대재앙이 벌어진다.

보이스 감독은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단체 훈련을 진행했지만 유격수 게릿 라이트는 체력을 이유로 훈련을 거부했다.

“우리는 시애틀에서 홈으로 막 돌아왔다고요. 이런 상황에서 꼭 훈련을 해야겠습니까?”

이인영은 대놓고 훈련을 거부하는 선수는 처음 봤다.

수비를 정말 잘한다면 쉬고 싶다는 말도 이해는 되는데, 그렇게 수비를 잘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분위기를 살피던 굴러들어 온 돌이 행동에 나섰다.

“너 평소에도 그렇게 행동하냐?”

“뭐가?”

“사람이 실수는 할 수 있어. 하지만 실수를 개선하려고 노력은 해야지. 인생이 뷔페냐? 네가 좋으면 하는 거고 싫으면 안 하는 거냐?”

토드 리틀은 먼 거리에서 이 장면을 지켜봤다.

젊고 유능한 선수들이 많지만 다들 제멋대로 구는 오클랜드 선수들, 그나마 연차가 쌓인 토드 리틀이 리더 역할을 해왔지만 리치아디와의 충돌로 한계가 드러났다.

누구도 휘어잡지 못하는 문제아들을 휘어잡겠다고 나선 굴러들어온 돌, 신경 쓰지 않는 척 했지만 계속 눈길이 갔다.

“훈련 할 거면 하고 하기 싫으면 클럽하우스로 가. 훈련 하는 선수들 바보 만들지 말고, 저 선수들은 신이 나서 훈련 하는 줄 아냐?”

“예~ 알겠습니다. 아버지~ ”

게릿 라이트는 거수경례를 하며 클럽하우스로 향했다.

말씀대로 꺼져주겠다는데 누가 봐도 조롱의 의미가 담긴 행동, 이인영은 그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러니까 팀 분위기가 개판이지, 실전에서 얼마나 하는지 두고 보자며 이를 갈았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난 잘 하고 있어.’

시간이 되자 게릿 라이트는 그라운드로 나갔다.

다들 내 수비 능력을 지적하는데, 뭐가 그렇게 불만인가.

유망주 시절부터 뛰어난 운동 신경과 과감한 송구로 높은 평가를 받은 게릿 라이트, 하지만 메이저리그에 입성하면서 평가가 엇갈렸다.

운동 신경을 바탕으로 타구를 낚아채는 능력은 탁월하지만 방향 감각이 문제, 옆으로 몸을 날리고 턴을 하며 송구를 하는 유격수에게 방향 감각은 아주 중요하다.

이게 엉망이면 아무리 강한 송구를 날려도 옆으로 빠지기 일쑤, 차라리 수비 범위가 좁았다면 모를까. 게릿 라이트는 도저히 잡을 수 없을 것 같은 타구도 잡아내 1루로 송구했다.

그 과정에서 쏟아져 나오는 실책, 2루수는 수비 범위가 넓고 송구 거리가 짧기 때문에 게릿 라이트를 2루로 옮기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다.

하지만 라이트의 어깨와 수비 범위를 아깝게 여긴 플레어티 단장이 유격수로 밀어주면서 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이러니 선수가 단장 백을 믿고 감독의 훈련을 거부하는 거겠지.

성적만 번듯하면 뭐하나, 이런 팀은 중요한 순간에 무너지는 법, 이인영은 왜 오클랜드가 만년 2인자로 군림했는지 대략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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