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화. there is no bargain (5)
‘이거 생각보다 늦어지는데’
후속 타자 루이스 햄이 중견수 플라이로 물러나면서 경기는 연장으로 넘어갔고, 필라델피아 구단 부사장 조니 에버스는 10시가 훌쩍 넘은 시간을 체크했다.
아직 여론에 공개 된 내용은 아니지만, 얼마 전 필라델피아는 오클랜드 와 트레이드 논의를 한 적이 있다.
지난 2028년, 오클랜드는 해롤드 호이싱튼과 7년 1억 4천만 달러 계약을 맺었다. 호이싱튼은 오클랜드에서 7년 동안 30홈런 시즌 2번 포함, 매년 20홈런 이상을 쳐주는 장타력을 과시했고 골드 글러브도 2번 수상한 올스타급 자원이다.
장기계약을 맺은 이후에도 20홈런 이상을 치며 기대에 부응했지만, 끝내 오클랜드에 우승을 안겨주진 못했다.
작년 시즌도 ALCS에서 17타수 3안타에 그치며 침묵, 오클랜드는 월드시리즈로 가는 마지막 문턱을 넘어서지 못하고 무너졌다.
‘좀 더 강한 타자가 필요해.’
올 시즌 55승 32패, 메이저리그 승률 1위를 달리고 있는 오클랜드는 승부수를 던졌다.
호이싱튼을 필라델피아로 트레이드 시키고 매년 700만 달러의 연봉 보조까지 감수한 것, 그 대가로 이인영을 요구했다.
[유망주를 주셔야죠. 저희는 연봉보조는 필요 없습니다.]
“리치아디를 드리겠습니다.”
[리치아디라고요?]
“예, 이 정도면 좋은 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리치아디는 올 시즌 5승 4패, 평균자책점 3.45로 조금 아쉬운 투구를 하고 있지만 작년 시즌은 17승 9패, 평균자책점 2.47을 기록하며 만테냐 어워드 2위에 올랐다.
26살이라는 젊은 나이도 매력적, 이런 선수를 트레이드 시장에 내놓을 정도로 오클랜드는 선발진이 튼튼한 팀이다.
반면 타선은 2% 부족, 이인영이 들어오면 타선의 무게감이 확 달라진다.
문제는 연봉보조를 끼고 하는 트레이드라는 것, 연봉 보조를 끼면 사무국의 승인 절차가 필요하고 상황에 따라 거부될 수도 있다.
승인 절차가 길어지면 트레이드 상한 기간을 넘길 수도 있고 이래저래 서둘러야 하는 트레이드, 거기다 이인영은 트레이드 거부권을 가지고 있다.
본인이 싫다고 하면 필라델피아는 아무것도 못 건지고 이인영을 FA로 놔줘야 하는 상황, 선수 쪽이 9년 4억 5천만 달러 계약을 걷어차면서 협상 가능성은 없어졌다.
그렇다면 필라델피아는 선수를 우승 가능한 팀으로 가고 쓸만한 타자와 투수를 받아오는 게 나은 입장, 트레이드 거부권을 가진 선수를 설득해야 되는데 생각보다 길어지는 경기 때문에 협상은 늦어졌다.
10회는 양 팀 모두 별 다른 성과 없이 종료, 경기는 11회로 넘어갔다.
“자, 이제 경기는 11회 말 필라델피아의 공격으로 이어집니다. 대타 재크리 페레즈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여기서 출루가 되면 브런들 – 이인영 선수로 이어지거든요. 어떻게든 출루를 해야 됩니다.”
페레즈는 3루 쪽 번트를 시도했다.
현대 야구가 발전하면서 3루수의 수비 비중은 낮아지는 추세, 풀히터가 늘어나면서 유격수는 좀 더 깊은 곳으로 이동했고, 3루수는 이제 강습 타구와 번트만 신경 쓰면 된다.
거기다 메이저리그는 번트를 거의 안 대는 리그, 그 허점을 이용해 3루 쪽으로 번트를 대는 선수들이 가끔 있다.
하지만 냉정히 따지면 두 번은 안 통할 조잡한 작전, 페레즈는 배트를 거둬들이려 했지만 타이밍을 놓쳐 그대로 밀고 나갔다.
‘이건 아닌데.’
결과는 파울, 와이즈 감독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야수 재원이 넘쳐나는 필라델피아, 올해도 많은 마이너리거가 로스터를 거쳤다. 주인이 확실한 좌익수와 우익수를 제외하고 주전 중견수를 차지하기 위한 유망주들의 경쟁 최후의 승자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페레즈도 기대를 걸고 있는 유망주, 저 선수가 번트나 댈 입장인가.
기회를 줬는데도 저런 식이라면 마이너리그로 내려보낼 뿐, 질책의 눈빛을 발사했다.
딱~
결과는 2루수 땅볼, 그 장면을 지켜본 세스 브런들은 천천히 타석으로 향했다.
방금 전 페레즈가 보여준 타격은 만년 유망주로 4년을 보낸 내 모습을 복사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어깨를 움직여서 스윙을 하는 선수들이 있는데 브런들도 과거에는 그런 식으로 스윙을 했다.
하지만 4년 동안 방황하면서 하체의 중심만 잘 잡아내도 히팅 포인트는 따라온다는 걸 깨달으면서, 앞쪽 어깨는 홈플레이트 쪽으로 끌어 당기고 바깥쪽 공을 노리는 자세로 바뀌었다.
이렇게 하면 스트라이크 존 바깥쪽을 커버할 수 있고, 투수들이 몸 쪽 공을 던지도록 유도할 수 있다.
본인이 공을 던지는 것도 아닌데 스트라이크 존을 컨트롤 하고 있다는 뜻, 작년 시즌에 보여준 커리어 하이는 우연이었을까.
타석에서 자신의 실력을 증명했다.
[따악~!!]
“밀어 냈고!! 우익수 옆에 떨어지는 안타입니다!! 브런들 선수는 오늘 3안타 경기!! 필라델피아가 다시 주자를 내보냅니다!!”
“제가 그동안 브런들 선수는 빠른 공에 강하고 변화구에 약하다는 말씀을 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작년부터 확실히 뭔가 달라졌어요.”
“어떤 점이 말씀입니까?”
“어깨를 닫아두고 변화구를 밀어쳤거든요. 이건 처음부터 바깥쪽 공을 노리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이런 공은 공략이 안 되죠. 이렇게 스트라이크 존 바깥쪽을 커버하다가 몸쪽이 들어오면 배트를 그대로 쭉 밀고 나옵니다. 이인영 선수가 하는 방식과 아주 비슷해요.”
“이인영 선수가 메이저리그의 트렌드를 바꿔놨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죠. 예전엔 이렇게 치는 선수가 거의 없었어요. 정말입니다.”
임선우 위원도 박한우 위원의 해설에 동의했다.
바깥쪽을 노리고 밀어치는 스윙을 하다니, 예전이라면 전문가들이 다 비웃었을 거다.
하지만 스탯캐스트 인공지능이 조사한 결과, 올 시즌 100마일이 넘는 타구를 날린 선수는 이인영이 104개로 1위, 세스 브런들이 93개로 4위를 달리고 있다.
밀어쳐도 강한 타구가 나올 수 있다는 걸 통계로 증명한 것, 그렇다고 몸쪽을 못 치는 것도 아니라 샬롯 배터리는 브런들 – 이인영으로 이어지는 타선에 골머리를 앓았다.
‘몸 쪽 던지면 밀어칠 텐데’
한 두 번 당한 게 아니라 깊어지는 고민, 마음을 정한 투수는 고개를 끄덕였고 이인영도 투구에 맞춰 앞발을 내밀었다.
[따아악~!!]
“초구 타격!! 배트를 던졌고!! 이 타구는!! 담장 밖으로~ 사라집니다!!!! 4시간 23분의 혈투를 끝내는 홈런!! 이인영 선수가 시즌 29호 홈런을 끝내기로 장식합니다!!”
“후반기 첫 경기부터 멀티 홈런이네요!! 원래 후반기에 강한 선수가 앞으로의 활약이 더욱 기대가 됩니다!!”
끝내기가 확정되는 순간 필라델피아 선수단은 너나 할 것 없이 홈플레이트에 모여들었다.
먼저 홈을 밟은 브런들도 ‘들어오기만 해라.’라는 눈빛을 보내는 중, 하지만 오늘의 영웅이 별 다른 리액션 없이 홈 플레이트를 밟으면서 김이 새버렸다.
“야, 이런 때는 좀 기뻐해도 되는 거야.”
“몰라, 얼른 집에 가고 싶어.”
경기 준비하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6시간 39분을 야구장에서 보낸 하루, 세레머니고 뭐고 다 귀찮았던 이인영은 관중의 환호에도 대충 답하고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다.
반면 후반기 첫 경기부터 짜릿한 끝내기 승을 거둔 필라델피아 분위기는 축제, 관중들도 자리를 떠나지 않고 승리의 기쁨을 외쳤다.
‘왜 이렇게 가슴이 찔리지?’
이 광경을 지켜보던 존 에버스 부사장은 쓴웃음을 지었다.
오클랜드로 가라고 선수를 설득을 해야 되는데 트레이드를 발표하면 나는 관중들에게 맞아 죽는 거 아닌가. 하지만 이미 구단 관계자와 결론을 내린 일, 이제 와서 모든 걸 되돌리기엔 늦었다.
“자네, 부사장이 잠깐 만나자고 하는데”
“나는 집에 갈 테니까 할 말 있으면 전화로 하라고 해요”
한편, 이인영은 부사장의 호출을 거부했다.
피곤해 죽겠는데 사람을 오라가 라나 하다니, 계약에 관한 논의가 아니라면 나중에 하자고 물리쳤다.
“그 계약에 관한 거라고 하던데?”
“그럼 만나 봐야죠.”
결국 퇴근을 미루고 구단 부사장과 얼굴을 마주했고, 뜸을 들이던 에버스 부사장은 트레이드를 입에 담았다.
월드시리즈 우승권에 있는 오클랜드로 가는 길, 딱히 섭섭한 마음은 없었다.
‘내 가치는 시가(市價)로 인정받으면 돼’
원래 귀금속은 사고 팔 때 시가로 거래되지 않나.
필라델피아가 내 가치를 알아서 인정해주길 바랐지만 그게 안 된다면 시장으로 나와 가치를 인정 받으면 그만, 트레이드 거부권을 포기했고 필라델피아와 오클랜드는 트레이드를 서둘렀다.
물론 뒷사정을 모르는 필라델피아 팬들은 다음 날도 붉은 유니폼을 입은 이인영의 활약을 당연하게 여겼고, 이인영은 팬들에게 이별의 선물을 전했다.
[따악~!!]
“자!! 이 타구는!! 우익수 앞에 떨어집니다!! 2루 주자는 3루를 돌아 홈으로!! 홈으로!! 들어옵니다!!!! 오늘도 끝내기!! 이인영 선수가 이틀 연속 끝내기 안타를 터뜨립니다!!!! 필라델피아가 극적으로 후반기 2연승을 달립니다!!!!”
“이런데도 5억 달러 못 주나요?!! 필라델피아는 다시 생각해 보길 바랍니다!!”
설마 했던 이틀 연속 끝내기, 필라델피아 구단은 긴급회의를 열었다.
이 타이밍에 트레이드를 논의했다간 무슨 일이 벌어질까.
하지만 5억 달러는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심한 요구, 호이싱튼의 연봉보조 문제로 필라델피아와 오클랜드는 마지막 조율에 나섰다.
이게 마무리 되면 남은 건 사무국의 승인 절차 뿐, 필라델피아 구단은 마지막 설득에 나섰다.
“혹시 지금이라도 9년 4억 5천만 달러 받아들일 생각은 없나?”
“없습니다. FA로 풀리면 제 가치는 시가로 인정받겠습니다.”
결국 결렬된 마지막 협상 자리,
필라델피아 구단은 팬들의 폭동도 각오하고 트레이드를 추진했고 오클랜드가 OK 사인을 내리면서 이 문제는 사무국으로 넘어왔다.
오클랜드가 필라델피아에 지급할 연봉보조는 3350만 달러, 사무국은 문제를 제기했다.
“제가 알기로는 오클랜드 재정적자가 3640만 달러로 알고 있는데요.”
“예 … 그렇습니다.”
“이건 문제가 있는 거 아닙니까? 도대체 어떻게 팀을 운영한 겁니까?”
작년 시즌, 오클랜드는 메이저리그에서 적자 운영을 한 구단 다섯 팀 중 하나로 꼽혔다.
ALCS까지 진출한 팀이 마이너스 운영이라니, 거기다 더 심각한 건 적자 폭이다.
디트로이트는 적자 폭이 270만 달러, 다른 팀도 많아 봤자 400만 달러 정도다.
그런데 오클랜드는 어떻게 재정 운영을 했기에 이렇게 많은 적자가 난 건가. 그 구멍은 사무국에서 지원금으로 채워야 하는데, 오클랜드는 사무국이 요구한 자료를 제대로 제출하지 않았다.
만약 구단 자금을 다른 곳으로 끌어다 썼다면 이건 명백한 불법, 사무국은 관련 자료를 제출하지 않는다면 이 트레이드는 허락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그건 시즌이 끝나기 전에 제출하겠습니다.”
“안 됩니다. 이렇게 방만하게 운영을 하는 구단이 연봉보조를 3350만 달러나 해준다고요? 말이 되는 소리를 하세요.”
다 된 밥에 코 빠트릴 상황,
오클랜드는 갖가지 변명을 앞세웠지만 사무국은 자료를 제출하라는 입장만 반복했다.
이런 경우는 사무국도 처음이라 당황스러울 정도, 그렇게 기약없이 시간만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