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일은 일인자-233화 (233/309)

233화. there is no bargain (4)

“자, 이제 루이스 햄 선수의 타석으로 이어집니다. 올 시즌 타율 0.239, 홈런 24개, 63타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비해 타율이 많이 떨어졌다는 말이 있는데, 저는 조금 다른 시각에서 접근해보고자 합니다.”

박한우 위원은 루이스 햄의 타율을 두고 논의를 이어갔다.

작년 시즌 타율 0.274 - 46홈런을 때려낸 루이스 햄, 타율이 4푼 가까이 덜어진 이유가 뭘까.

작년 시즌 루이스 햄은 평균보다 높은 0.350의 BABIP을 기록했다. 그렇다면 타율이 하락한 건 BABIP이 평균으로 수렴한 탓인가.

일부 전문가들도 그렇게 문제를 단순화 시켰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었다.

[루이스, 작년보다 오른손 투수 상대한 비율 높아졌다]

작년 시즌, 루이스는 좌완을 상대로 타율 0.328, 장타율 0.682라는 경이적인 성적을 기록했다.

우투수 상대로는 0.252, 장타율 0.549, 이것도 나쁜 성적은 아니지만 어쨌든 루이스가 좌완에 특히 강한 모습을 보였다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올 시즌 루이스는 좌완 투수를 거의 만나지 못했다.

81경기에서 424타석을 소화, 좌투수를 만난 건 28타석에 불과했다.

이 와중에도 좌완 상대로 25타수 10안타, 홈런 3개를 때려냈는데 대타로 가끔 출장하는 것도 아니고, 선발로 고정된 선수가 이렇게 좌완을 못 만나는 게 가능한 건가.

사실 루이스 뿐만 아니라 모든 타자들이 좌투수를 상대하는 비율이 올해 들어 급격히 줄었다.

예전부터 희귀했던 좌완 선발, 여기에 사무국이 경기 시간을 줄이겠다며 좌완 스페셜리스트를 죄인 취급하면서 좌완 입지가 급격히 줄어버렸다.

점 점 늘어나는 좌타자에 비해 오른손 타자와 좌완 불펜이 설 자리는 점점 줄어들었고, 그 역효과가 올해 뻥 터져버렸다.

좌완이 거의 멸종해버린 메이저리그, 원래 좌완에 강했던 루이스는 올 시즌 타율에서 엄청 손해를 봤다.

먹이를 잃은 포식자의 개체수가 줄어들면서 멸종하는 자연의 이치라고 해야 하나, 그렇다면 이인영은 어떤가.

박한우 위원은 타율의 역설을 지적했다.

“작년 시즌 이인영 선수가 타율 0.397을 기록했거든요. 그런데 올 시즌은 0.345입니다. 좌완 투수도 줄었는데 타율이 5푼이나 떨어졌다는 건 이인영 선수의 실력이 줄었다는 뜻일까요?”

“생각해보니 그렇네요. 딱히 부진하다는 느낌은 없는데 말이죠.”

“그렇죠? 이 논리를 적용해 보면 루이스 선수의 지금 타율도 단순한 수치로 평가해선 안 됩니다. 타율은 요물이거든요. 작년에 3할 친 타자가 올해도 3할 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따악~!!]

“말씀 드리는 사이 외야로 뻗어나간 타구가!! 좌익수 글러브에 걸립니다!! 루이스 선수는 두 번 째 타석도 범타로 물러나는 군요.”

“지금도 강한 타구였는데 잡혔거든요. 루이스 선수의 진짜 문제는 작년이었다면 넘어가야 할 타구가 계속 잡히고 있다는 겁니다. 컨택은 어떻게든 되고 있어요.”

루이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작년 시즌 평균 타구 속도는 93마일, 올해도 93마일 근처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작년에 비해 왜 페이스가 떨어진 건가.

홈런은 둘 째 치고 요즘은 안타도 안 나오는데, 코치진도 그 원인을 찾아내지 못하면서 답답함만 더해졌다.

따악~!!

다음 타자 산체스는 좌중간을 가르는 2루타를 날렸다.

작년 시즌 35홈런을 날렸지만 타율은 0.233에 그친 선수, 올해는 타율 0.282, 홈런 20개를 치고 있다.

루이스가 까먹은 성적을 산체스가 채웠고, 이인영은 작년에 비해 타율 5푼 정도 낮아졌지만 홈런 페이스는 작년보다 10개 정도 많다.

하나를 덜면 하나가 채워지는 기이한 현상, 덕분에 필라델피아 중심타선의 공격력은 작년과 크게 다를 게 없다.

그런데도 4대 1로 뒤지고 있는 게임, 이런 게 야구 아닌가. 하지만 2년차 시즌에 접어든 루이스는 갑작스런 부진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넌 내가 부진한 이유가 뭔지 알겠어?”

“글쎄, 넌 원래 그런 스타일 아니었냐?”

얼마 전, 이인영은 루이스의 고민에 고개를 끄덕여 줬다.

야구를 더 잘 하고 싶어하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내 마음대로 안 된다.

작년에 비해 타율이 4푼 정도 떨어진 루이스, 그럼 5푼 이상 떨어진 나는 땅 파고 기어 들어가야 하나.

루이스는 루키 시절부터 정확도는 높은 평가를 받은 선수가 아니다. 올 시즌도 홈런을 24개나 때려내고 있는데 뭐가 불만인가.

이인영은 넌 원래 그런 선수였다고 단언, 타율보다 장타에 집중하라는 조언을 건넸다. 타율에 신경쓰다 보니 자기 스윙을 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 결국 답은 자신이 찾는 것, 그 이상의 조언은 해주지 못했다.

‘3할 4푼이든 4할이든, 내겐 큰 의미 없어.’

반면 이인영은 떨어진 타율에 미련두지 않았다.

대신 장타가 늘어나지 않았나. FA에선 타율이 아니라 경기를 뒤집을 수 있는 한 방이 가치를 얻는다.

와이즈 감독도 더 많은 홈런을 치라고 날 2번에 배치한 것 아닌가.

나는 그 기대에 부응하고 있을 뿐, 평소처럼 경기를 풀고 갔다.

따악~!!

“와아아~!!”

안타가 연달아 나오면서 스코어는 4대 2, 추격의 발판을 마련한 필라델피아는 6회 말 공격에서 1점을 더 추가했다. 하지만 7회와 8회, 득점권에서 타선이 침묵하며 팬들은 아쉬움을 삼켰다.

“자, 이제 9회 초, 샬롯의 정규이닝 마지막 공격으로 이어집니다. 로버트 필 선수가 올라오는군요. 올 시즌 38경기 등판, 1승 4패 19세이브, 평균자책점 2.92, 40이닝 동안 볼넷 14개, 탈삼진 49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와이즈 감독이 로버트 선수를 올렸다는 건 여기서 막고 마지막 이닝에서 승부를 걸어보자는 뜻이겠죠. 물론 잘 됐을 때의 얘기겠지만요.”

말이 끝나자 마자 로버트 필은 선두타자를 몸 맞는 볼로 내보냈다.

99마일 빠른 볼에 걸린 타자는 인상을 쓰며 1루로 진출, 의도하지 않은 상황이라 로버트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옷 잘 입으면 뭐하냐, 야구 선수가 야구를 잘해야지.’

이어지는 볼질, 이인영은 마음 속으로 불만을 중얼거렸다.

옷 잘 입는 선수로 선정됐다고 그렇게 자랑을 하더니, 로버트는 벌써 4패를 적립할 정도로 중요한 상황에서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평균자책점 2점대를 찍고 있지만 분식회계, 중요한 상황에서 불 지르고 널럴한 상황에선 무실점으로 막는 날이 반복되고 있다. 타선은 최강인데 투수진은 최하위, 필라델피아가 반등하려면 투수진의 분투가 필요했다.

[따악~!!]

“당겼고!! 파울 라인 벗어납니다.”

“1루수가 꿀보직이라는 말도 이젠 옛 말입니다. 제가 루이스 선수 타석 때 말씀을 드렸지만 이제는 좌타자 전성시대거든요. 올해는 특히 1루수의 수비 부담이 많아진 것 같습니다.”

때맞춰 다시 1루로 타구가 날아왔다.

2루 수가 잡기엔 너무 깊숙한 타구, 이인영은 몸을 날려 타구를 막아냈다.

로버트는 베이스 커버를 잠시 머뭇거렸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이인영은 2루로 공을 던졌다.

거리로 봐도 투수가 들어와 봤자 답이 없는 상황, 1루 주자는 2루에서 아웃 됐고, 그 사이 1루로 돌아온 이인영은 유격수 잉글리시아에게 송구하지 말라는 사인을 보냈다.

내친 김에 병살까지 노려봤지만 정황 상 무리,

필라델피아 팬들은 멋진 수비를 보여준 선수에게 박수를 보냈지만, 당사자는 몸에 묻은 흙을 털어내고 1루로 돌아왔다.

루이스는 후속 타자를 병살 처리하며 9회를 넘겼고 필라델피아는 정규 이닝 마지막 공격에 나섰다.

6번 타자 잉글리시아부터 시작되는 공격, 올 시즌도 0.320 고감도의 타격을 선보이고 있지만 2번에서 6번으로 내려왔다.

필라델피아는 2~ 5번에 클린업을 배치하고도 강타자가 남아도는 팀, 생산성이 조금 떨어지는 선수는 6번으로 밀려날 수 밖에 없다.

그래도 3할 2푼을 치는 타자가 6번이라니, 그렇다고 잉글리시아가 장타력이 떨어지는 선수도 아니라 샬롯 진영은 긴장감을 놓지 않았다.

따악~!!

“와아아~!!”

우중간을 시원하게 가르는 타구, 주력이 뛰어난 잉글리시아는 단숨에 2루까지 파고들었다.

3루까지 노려볼까 했지만 코치가 막아서면서 무산, 다시 찾아온 득점 찬스는 관중석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딱~!!]

“밀어낸 타구!! 2루수가 잡아 1루에 던집니다!! 그 사이 2루 주자는 3루까지!! 동점은 이제 눈 앞입니다!!”

“지금은 의도적으로 밀어치는 타격이죠. 필라델피아가 그동안 너무 안타에 의존하는 공격을 했는데 지금은 팀 배팅이 나왔습니다.”

7번 타자 앤서니 브라운이 제 역할을 해주면서 1사 주자 3루, 샬롯은 8번 로빈슨을 거르고 9번 로날드 휠러를 택했다.

병살로 경기를 끝내겠다는 의도, 약이 오른 로날드 휠러는 장갑 끈을 재정비 했다.

날 얼마나 만만히 봤으면 이런 작전을 택했겠나.

2구를 힘껏 잡아당겼고, 3루 주자 잉글리시아는 홈으로 돌진했다.

“아웃!!”

“놓쳤어!! 놓쳤다고!! 공 저기 있잖아!!”

“세이프!! 세이프!!”

여기서 난장판이 벌어졌다.

타구를 잡은 1루수가 홈으로 송구 했지만 포수가 공을 흘려버린 것, 주심은 아웃을 선언했지만 잉글리시아의 항의에 판정을 바로 잡았다.

그 사이, 1루 주자 로빈슨은 2루까지 진루했지만 3루를 노리다 런 다운에 걸리면서 아웃, 어찌어찌 동점이 됐지만 로빈슨의 무리수는 필라델피아 팬들의 뚜껑을 열어버렸다.

몇 번을 봐도 섭섭한 장면, 이인영도 내색은 안 안했지만 쓴 웃음을 지었다.

어쨌든 2사 1루에서 재개된 경기, 세스 브런들이 타석에 들어섰다.

[딱~!!]

“걸렸고!! 이 타구는 중견수 앞에 떨어집니다!! 그 사이 1루 주자는 2루를 지나 3루까지!! 필라델피아 타선이 마지막 기회를 살려내고 있습니다!!”

“아~ 많이 섭섭하네요. 로빈슨 선수가 욕심만 안 부렸어도 주자 들어오고 경기 끝나는 거 아닙니까. 정말 섭섭해요.”

“그래도 이인영 선수가 주인공이 될 기회는 왔잖습니까. 너무 섭섭해 하진 마시길 바랍니다.”

박수를 받으며 등장하는 이인영, 샬롯 선수들은 심각한 얼굴로 벤치 사인을 확인했다.

거르고 다음 타자 루이스 햄을 상대하고 싶지만, 샬롯은 이번 이닝에서 8번 타자 로빈슨은 고의사구로 걸렀다.

투구 없이 수신호로 타자를 거를 수 있는 건 한 이닝에 한 번으로 제한되는 게 규정, 여기서는 무조건 투구를 해야 된다.

이렇게 중요한 상황에서 중심 타자를 걸러버리면 홈 팬들은 얼마나 짜증이 나겠나. 극적인 장면 연출에도 방해되는 고의사구, 샬롯은 이인영을 거르고 루이스 햄을 상대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빌어먹을 고의사구!!”

“뒤로 빠져버려라!!”

“우우우~ 우~!!”

초구는 바깥쪽으로 빠지는 공, 사방에서 야유가 쏟아졌지만 원 볼을 적립한 샬롯 배터리는 다음 공도 바깥쪽으로 뺐다.

‘나 야구 안 해.’

여기서 또 기이한 장면이 연출됐다.

기분이 상한 타자가 배트를 집어던지고 맨손으로 타석에 선 것, 주심이 배트 잡으라고 경고를 줬지만 이인영은 반항했다.

“어차피 거를 건데 배트 쥐면 뭐해요? 이대로 있다가 걸어갈래요.”

기어이 배트 없이 자세를 잡는 타자, 주심은 할 말을 잃었고 자존심이 상한 샬롯 배터리는 벤치를 살폈다.

모양새는 안 나지만 지금은 거르는 게 현실적, 이렇게 이인영은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초로 배트도 없이 볼넷을 얻어낸 선수로 기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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