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화. there is no bargain (2)
“MLB도 NBA처럼 유동적인 FA 허용해야 한다.”
시즌을 앞두고 MLB 선수 노조는 FA 제도 개혁을 주장했다.
제한적 FA와 비제한적 FA로 갈리는 NBA,
루키 스케일 4년을 채우고 비제한적 FA 자격을 얻는 NBA 선수는 구단에서 퀄리파잉 오퍼로 1년을 걸어둘 수 있는데, 선수가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 선수는 시장에 풀리게 된다.
최소 6년을 채워야 FA 자격을 얻는 MLB에 비해 유동적인 조항, 덕분에 선수 이동도 활발하고 젊은 나이에 높은 연봉을 받는 선수들도 많다.
그에 비해 MLB는 선수가 한 팀에 머무는 기간이 너무 길고 전성기에 누려야 할 연봉을 받지 못하는 게 현실, 선수 노조는 FA 조항 개혁은 물론 스프링캠프 기간 단축까지 요구했다.
스프링캠프 기간이 다른 스포츠에 비해 너무 길다는 것, 시즌도 162경기나 하는데 스프링캠프를 한 달 동안 하는 건 욕심이라며 사무국의 정책에 제동을 걸었다.
“스프링캠프가 지역경제에 미치는 효과를 고려하지 않은 발언이다.”
하지만 오브라이언 커미셔너는 난색을 표했다.
1890년부터 시작된 스프링캠프 역사, 지난 2031시즌 그레이프푸프트 리그를 방문한 사람은 약 160만명으로 추정됐고 지역 경제 효과는 8억 달러를 넘겼다.
비교적 늦게 시작한 캑터스 리그(1946년 출범)도 거의 비슷한 경제 효과를 내고 있는데, 스프링 캠프를 유치하려는 각 지역의 경쟁도 치열하다.
애리조나는 올해 2만석 규모의 최신식 구장을 지어 손님을 유치에 열을 올렸고, 이에 맞서 플로리다는 선수들을 위한 편의 시설을 재정비했다.
스프링캠프가 지역경제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뻔히 알면서 선수 노조는 왜 이런 주장을 하는 건가.
콜로라도의 부사장 돈 데이비스는 선수들이 뭔가 오해를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선수들은 구단이 투자를 안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불평을 하기 전에 구단이 돈을 투자할 선수가 시장에 나왔는지 생각해 보길 바랍니다.”
올 시즌 41명의 FA 선수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1억 달러를 넘는 계약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최고 계약이 밀워키가 영입한 외야스 잭 브루스, 규모는 5년 9천만 달러에 그쳤다.
나머지는 안 봐도 뻔한 수준, 하지만 이건 구단이 투자를 안 한 게 아니라 쓸만한 젊은 선수들을 장기 계약으로 묶어버린 것 뿐이다.
세인트루이스의 젊은 거포 테드 반디도 10년에 3억 달러가 넘는 대형 계약을 맺지 않았나.
FA에 풀리는 선수들은 구단의 선택을 받지 못한 것 뿐, 선수 노조는 언론 플레이로 구단이 투자를 안하는 것처럼 포장하고 있는 게 아닌가.
스프링캠프를 단축하자는 말도 하루 이틀인가? 다 구단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 돈 데이비스 콜로라도 부사장은 높은 연봉을 받고 싶다면 언론 플레이가 아니라 실력으로 인정을 받아야 한다며 선수 노조를 저격했다.
시즌 시작 전부터 불꽃을 튀기는 구단과 노조, 예비 FA를 앞둔 이인영은 침묵을 지켰다.
‘불경기에도 수혜자는 있는 법’
내가 실력이 없어서 직장을 구하러 다녀야 할 입장인가.
경기가 어렵다 어렵다 하는데 필라델피아 구단 기념품 판매량은 2년 전에 비해 38%나 늘었다. 중계권 계약도 마찬가지, TNT와 2052년까지 44억 달러 계약을 체결하면서 돈줄이 열렸다.
필라델피아 뿐만 아니라 다른 구단도 수익이 상승세를 타고 있는데, 대형 FA 계약이 이뤄지지 않은 건 정말 구단이 돈을 안 쓰는 탓일까. 아니면 투자할 만한 선수가 없기 때문일까.
누가 앞길을 열어주면 5억 달러 계약이 터지는 것도 불가능은 아니겠지.내가 그 신호탄이 될 줄 누가 아나.
아무 불평 없이 경기에만 집중했다.
“오늘도 일찍 집에 갈 거예요?”
“응? 뭐라고?”
“집에 갈 거냐고요.”
그러던 어느 날, 이인영은 한 꼬마팬의 질문을 받았다.
주전급 선수들은 시범 경기에서 대충하고 집에 가는 게 일상, 이동할 때 팬들에게 서비스만 잘해줘도 그날 일과는 다 한 거다.
이인영도 어제 경기에서 2타석만 소화하고 퇴근, 하지만 꼬마팬은 그게 불만이었다.
“저는 당신 팬인데요. 시카고에 살아서 당신을 볼 기회가 거의 없어요.”
“그래? 그럼 오늘은 일찍 퇴근하면 안 되겠네?”
“맞아요. 티켓 값 50달러나 지불했으니까 일은 하고 가세요.”
당돌하지만 맞는 소리, 이인영은 꼬마 팬과 오늘은 9회까지 자리를 지키겠다고 약속했다.
5회까지 별 일 없이 진행된 게임, 스코어가 10대 4로 벌어지자 필라델피아의 피터 와이즈 감독은 주전급 선수들을 대거 교체했다.
“밤은 길다고, 우리 오늘은 거하게 마셔 볼까?”
“아직 대낮인데?”
“그러니까 긴 거지!!”
현재 시각은 오후 2시 15분, 선수들은 캠프 근처에서 유흥을 즐길 생각에 발걸음을 서둘렀지만 이인영은 교체를 거부했다.
“저 오늘은 9회까지 있어야 됩니다.”
“왜?”
“티켓 값 50달러 지불한 팬이 있거든요. 일은 하고 가라고 한 소리 들었어요.”
그렇다는데 뭐 어쩌겠나. 스프링캠프에서 떠나든 남든 그건 선수의 자유, 그렇게 이인영은 벤치를 지켰다.
경기는 이제 6회 말 필라델피아의 공격, 10번 타자 마틴 존슨이 타석에 들어섰다.
시범경기는 유망주들에게 기회를 주는 무대, 룰에도 약간의 변화를 줄 수 있다.
필라델피아는 타자 유망주가 많은 구단, 경기 전 피터 와이즈 감독은 상대 팀에 10번 타자를 운영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어차피 다 같이 먹고 살자고 하는 경기 아닌가.
시애틀은 제안을 받아들였고 덕분에 오늘 마틴 존슨은 2타수 2안타를 기록하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중, 3번 째 타석에서도 좌중간을 가르는 호쾌한 타구를 날렸다.
후속 타자 2명은 각 각 삼진과 내야 플라이 아웃, 이인영이 타석에 들어섰다.
“이 봐!! 이건 반칙이지!!”
“너는 퇴근할 시간이라고!!”
이때 시애틀 벤치에서 장난 섞인 야유가 날아들었다.
시범 경기에다 스코어도 10대 4로 벌어졌는데 저 친구가 타석에 서야 되나, 경기 전 필라델피아의 10번 타자 투입을 양보한 시애틀은 이 이상의 굴욕은 허락하지 않았다.
‘뭐래?’
하지만 이인영은 무시하고 타석에 들어섰고, 시애틀 벤치는 제이콥 에스파라자를 마운드에 내버려뒀다.
올해 스프링캠프부터 엄격하게 적용되는 투구 수 제안, 선발 투수는 70개를 넘길 수 없고 불펜 역시 35개로 제한된다.
현재 제이콥 에스파라자의 투구 수는 31개,
이닝을 마무리 하기엔 빡빡한 조건이지만 제이콥에게 많은 기대를 걸고 있는 설리반 감독은 이 승부에 기대를 걸었다.
‘얼마나 하는지 한 번 보자.’
한편, 이인영은 헬멧을 고쳐쓰며 자세를 잡았다.
제이콥은 작년 시즌 2승 2패, 평균자책점 4.15를 기록, 43과 2/3이닝 동안 삼진은 31개 밖에 잡지 못했지만 볼넷은 7개만 허용했다.
25살 어린 선수치고 나쁘지 않은 성적, 너도 나도 95마일 이상을 던지는 시대에서 볼넷은 불펜 투수의 숙명이다.
그런데도 볼넷이 7개 밖에 없었다는 건 주목할 부분, 선두 타자 마틴에게 장타를 허용했지만 흔들리지 않고 2아웃을 잡아냈다.
구위와 흔들리지 않는 정신력을 모두 갖춘 유망주, 이인영도 이 승부에 기대를 걸었다.
“스트라이크!!”
바깥쪽을 찌르는 101마일 빠른 볼, 폭발적인 구위와 예리한 제구는 늘어진 경기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딱~!!]
“파울입니다. 카운트는 노 볼 투 스트라이크”
“이 선수는 대학교 시절부터 구위로 유명했죠. 네브라스카 대학으로 옮겨간 3학년 시즌 때는 118이닝 동안 볼넷 12개, 삼진을 140개나 잡아냈는데, 4학년 시즌 때 평균자책점 3.93으로 다소 부진하면서 시애틀의 6라운드 41번 지명을 받았습니다.”
“따지고 보면 시애틀이 현명한 선택을 한 거죠. 구위가 살아난 것도 시애틀의 관리 덕분입니다.”
계약을 맺자마자 시애틀은 제이콥을 하와이 캠프로 보냈다.
대학교 시절, 부상을 안고 뛴 제이콥이 마이너리그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겠나. 그래서 많은 계약금을 안겨줘 심신의 안정을 찾도록 했다.
그 결과 제이콥은 하와이 교육 리그에서 평균자책점 0.60, 37이닝 동안 삼진 46개를 잡아내는 위력투를 선보였다.
마이너리그를 초고속으로 돌파한 제이콥은 작년 시즌 8월 2일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았고, 올해 더 뛰어난 구위를 갖춰 돌아왔다.
이인영을 상대로 2스트라이크를 잡은 게 그 증거, 하지만 작년 시즌 4할에 도전했던 수위 타자도 순순히 물러나진 않았다.
딱~!!
3구를 커트하면서 투구 수는 34개, 제이콥은 다음 공에 승부를 걸었다.
하지만 4구도 커트, 한계 투구 수에 이르렀지만 필라델피아의 와이즈 감독은 어떤 문제도 제기하지 않았다.
저 쪽이 양보를 했으니 우리도 성의는 베풀어야겠지, 필라델피아가 암묵적으로 동의하면서 맞대결은 이어졌다.
‘아직도 부족한가?’
타자가 5구를 골라내자 제이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학시절 때는 삼진을 미친 듯이 쓸어 담았지만, 메이저리그에선 그게 통하질 않는다.
작년보다 업그레이드 된 구위로 돌아 왔지만 상대는 메이저리그 수위 타자를 4번이나 차지한 선수, 어설픈 유인구는 통하지 않았다.
“이 봐!! 봐주면서 해!!”
“네가 희생하면 어린 선수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다고!!”
마침 필라델피아 진영에서 날아든 장난 섞인 목소리, 술 먹으러 간다고 한 녀석들이 왜 아직도 더그아웃을 기웃거리는 건가.
이인영은 피식 웃었지만 어느 때보다 진지한 제이콥은 이를 악물었다.
[딱~!!]
“좌측!! 다시 파울입니다. 이제 승부는 7구로 넘어가는 군요.”
“이인영 선수가 작년 38홈런을 치는 동안 삼진은 36개 밖에 안 당했습니다. 21세기에 홈런보다 적은 삼진을 기록한 유일한 선수거든요. 삼진을 잡겠다는 생각으로 덤벼들면 오히려 당합니다.”
“그래도 어떻게든 잡겠다고 달려드는 제이콥 선수의 도전정신은 칭찬 할 만 하네요. 젊음의 열기가 여기까지 느껴집니다.”
거칠어지는 제이콥의 호흡, 설리반 감독도 마른 입술을 깨물었다.
여기서 이인영을 잡아내고 자신감을 얻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마운드에 남겨뒀는데 괜히 무리를 시키는 것 아닌가.
하지만 되돌리기엔 너무 멀리 온 승부, 설리반 감독이 생각에 잠긴 사이 제이콥은 승부수를 던졌다.
딱~!!
외야로 날아가는 타구, 좌익수가 몸을 날렸지만 타구는 뒤로 빠졌다.
중견수의 백업 플레이가 늦으면서 주자는 여유 있게 2루까지 진출, 이인영은 가벼운 세리머니로 승리를 자축했다.
‘나는 아직 전성기라고’
어린 선수를 꺾을 때마다 내가 아직 팔팔 하다는 걸 증명하는 기분이랄까. 미국 나이로 30, 아직 젊지만 나보다 나이가 어린 선수들이 많아지면서 은근 신경이 쓰였다.
“어린 애 괴롭혀서 좋아?”
“내가 70되면 저 자식도 64살이라고, 무슨 나이를 따져?”
시애틀의 2루수 앤디 클락의 장난에 이인영도 농담으로 맞받아쳤다.
스포츠 세계에서 6살 차이는 꽤 크지만 인생으로 치면 별 거 아니다.
내가 70되면 저 자식도 64살, 같이 늙어갈 텐데 왜 여기서 나이를 따지나. 할 말을 잃은 앤디 클락은 글러브로 상대의 엉덩이를 치고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