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일은 일인자-229화 (229/309)

229화. 너보다는 낫다 (15)

딱~!!

테드 반디는 초구부터 강한 스윙을 돌렸다.

누가 봐도 담장 밖을 노리는 스윙, 이에 맞춰 필라델피아 내야진도 좌측으로 치우친 그물망을 쳤다.

“저 자식은 여기서 홈런을 칠 거야. 그리고 널 넘을 거라고”

1루 주자 조나단은 이인영을 옆에 두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테드 반디가 팀 승리를 위해 홈런을 노린다고 생각하고 있는 건가. 비웃음 섞인 답이 날아왔다.

“저 자식이 홈런을 노리는 건 네가 똥차라 그런 거야. 여기서 안타를 쳐봤자 네가 홈으로 파고 들 수 있겠어? 나라도 홈런을 노릴 거야.”

조나단은 리드 오프지만 주력이 그다지 좋지 않다.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대부분 주력이 좋을 거라고 생각 하는 팬들이 있는데 그건 오산, 가속력이 붙으면 그나마 나은 선수들도 있지만 생각보다 느린 주자가 정말 많다.

“내가 똥차인지 아닌지는 두고 보라고”

“그래, 그러니까 저 자식은 홈런 못 칠 거야.”

도발에 걸려든 조나단은 평소보다 리드를 벌렸고, 뭔가 눈치를 챈 산체스 포수는 2구를 바깥쪽으로 뺐다.

테드 반디는 우타자라 포수의 시야를 방해하지 못했고, 그렇게 번개 같은 견제구가 날아들었다.

‘달려 봤자 똥차지.’

꼼짝없이 걸려든 조나단, 이인영은 도망치는 주자를 직접 태그 아웃 처리했다.

여기서 홈런이 나와 봤자 스코어는 5대 4, 조나단의 본 헤드 플레이에 세인트루이스 진영은 할 말을 잃었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질책도 못하는 상황, 본인의 죄를 알고 있는 조나단도 구석에 틀어박혀 머리를 숙였다.

“스윙!! 크게 휘두릅니다. 카운트는 노 볼 투 스트라이크.”

“반디가 집중력을 잃은 것 같네요. 하긴 동점 주자가 사라졌으니, 본인도 어이가 없을 거예요.”

“그건 그렇고 조나단이 이렇게 무리하게 리드를 벌릴 이유가 없었는데, 쓸데없는 짓을 했어요. 리(Lee)와 뭔가 대화를 주고 받는 모습도 보였는데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현지 중계석에서도 논란의 장면을 두고 대화를 이어갔다.

온갖 추측이 난무하는 동안, 로버트 필은 테드 반디를 헛스윙 삼진 처리했다. 이번 시리즈에서 3번 맞대결해서 모두 완승, 이렇게 세인트루이스의 최후의 희망마저 무너져 버렸다.

4차전을 잡아낸 필라델피아는 월드시리즈 진출까지 1승 만을 남겨뒀고, 2홈런 4타점 게임을 펼치며 팀의 5대 3 승리를 이끈 이인영은 수훈 선수 자격으로 기자들 앞에 섰다.

초반은 오늘 경기의 활약에 대해 묻고 답하는 평범한 내용, 중반에 접어들면서 문제의 질문이 나왔다.

“7회 초에 승부를 결정짓는 중요한 일이 있었습니다. 당신은 주자와 어떤 얘기를 나누고 있었고, 조나단은 베이스에서 멀어졌죠. 당시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별 일 아닙니다. 조나단에게 냉정한 현실을 말해 준 것 뿐이죠.”

“냉정한 현실이라고요?”

“세인트루이스는 5대 3으로 뒤지고 있었습니다. 테드 반디의 동점 홈런이 유일한 희망이었죠. 2루타를 쳐봤자 발이 느린 조나단이 홈으로 들어올 수 있었을까요? 그런 똥차가 1루에 있다면 저라도 홈런을 노렸을 겁니다. 그렇게 말해줬더니 1루에서 멀어지더군요.”

가감없는 표현에 기자들은 발칵 뒤집혔다.

주자를 도발한 능력도 수준급이지만 그래도 그렇지 너무 원색적인 표현아닌가. 하지만 이인영은 똥차를 똥차라고 부르지 그럼 뭐라고 부르냐며 당당한 반응을 보였다.

“저희 팀은 세인트루이스와 달리 타격과 주루능력을 겸비한 선수들이 많습니다. 레벨이 다르다 이 말입니다.”

마지막까지 세인트루이스 선수단 가슴에 비수를 꽂는 발언, 필라델피아 극성팬들은 이 좋은 먹잇감을 놓치지 않았다.

똥차군단 또는 폐차군단이라 불리기 시작한 세인트루이스, 2031시즌 최고 승률 팀이지만 이번 위기는 넘기기 어려웠다.

쉴 틈 없이 이어지는 5차전, 빈틈 없이 들어찬 관중은 초대손님들을 몰아세웠다.

“홈런이나 치라고!! 너희들은 달리지도 못하는 폐차 군단이니까!!”

“기름 값도 못하는 자식!! 매연 풍기지 말고 폐차장이나 들어가라고!!”

어제 당한 능욕의 충격이 가시지 않은 조나단은 2구 만에 2루 땅볼 아웃, 다음 타자 테드 반디가 들어섰다.

테드 반디는 90피트를 3.76초에 통과하는 주력을 갖춘 선수, 전체 1위를 기록한 미네소타의 켈리 워싱턴과의 격차는 겨우 0.4초다.

조나단은 몰라도 나는 아직 튼튼한 자동차, 보란 듯이 우중간으로 타구를 날려 보냈다.

“계속 뻗어 나가는 타구!! 중견수!! 우익수!! 우익수가 펜스와 부딪치며 잡아냅니다!! 루이스 햄의 호수비!! 주자는 쓸쓸히 더그아웃으로 향합니다!!”

“루이스 햄 선수가 수비 범위가 넓은 선수가 아닌데, 마지막까지 타구를 쫓아가네요. 이렇게 발전하면 되는 겁니다.”

루이스 햄은 어깨를 들썩거리며 제 자리로 돌아갔다.

원래 우익수는 이인영의 자리, 하지만 수비 능력이 너무 떨어지는 동료를 위해 자리를 양보해 줘야 했다.

어깨 외에는 봐줄 데가 전혀 없는 루이스의 수비 능력, 타구 판단 능력도 떨어지는 선수가 이런 호수비를 보여줄 줄이야. 본인도 놀랐는지 홈런을 쳤을 때보다 더 기뻐했다.

세인트루이스의 1회 초 공격은 득점 없이 종료, 필라델피아의 1회 말 공격이 시작됐다.

“자, 브런들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이번 시리즈에서 17타수 9안타, 홈런 2개, 4타점, 이대로 시리즈가 끝난다면 챔피언십 시리즈 MVP가 유력합니다.”

“지금 컨디션이 워낙 좋기 때문에 승부를 하긴 어려울 겁니다. 특히 몸 쪽 공은 더 위험하죠.”

스윙이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브런들은 몸 쪽 공에 특히 강한 타자, 세인트루이스 배터리는 바깥쪽을 집중 공략했지만 스트라이크 존을 좁혀둔 브런들은 공을 따라다니지 않았다.

투 볼 원 스트라이크에서 4구를 잡아당겼지만 3루 땅볼, 브런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너 그래가지고 MVP 타겠냐?”

대기 타석에 선 이인영은 친구에게 시비를 걸었다.

3차전까지 11타수 2안타, 존재감이 없었던 이인영은 어제 2홈런 4타점을 쏟아부으며 챔피언십 시리즈 MVP 후보로 올라섰다.

브런들과 비교해도 뒤질 게 없는 활약, 브런들은 말 없이 씩 웃었고 이인영도 똑같이 행동했다.

다음 타자 잉글리시아가 볼넷으로 출루하면서 1사 주자 1루, 이인영이 타석에 들어서자 사방에서 환호성이 쏟아졌다.

“A nippy cool wagon(날렵하고 멋진 차)!!”

“No comparison with the jalopy(똥차들과는 비교 불가능)!!”

날렵하고 잘 빠진 기럭지에 언변도 막힘이 없는 선수,

필라델피아 팬들은 저런 신형 차가 세인트루이스 고물차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건 치욕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세인트루이스 선수단의 인내심은 이미 한계, 마음 같아선 빈볼을 던지고 싶었지만 지금은 승리가 우선 아닌가. 마운드를 지키는 팻 올슨은 냉정함을 유지했다.

“몸 쪽, 깊었다는 판정입니다.”

“어제 세인트루이스가 어설픈 바깥쪽 승부를 하다 얻어 맞았거든요. 차라리 몸 쪽으로 가는 게 낫다고 판단을 한 것 같습니다.”

“그건 그렇고 조심해 줬으면 좋겠네요. 내년 시즌 끝나면 FA 자격을 얻는 선수거든요. 몸에 흠집이 나면 곤란합니다.”

박한우 위원은 팻 올슨의 초구에 한 마디를 보탰다.

누구 말대로 날렵하게 잘 빠진 자동차, 싼 값에 팔려나갔다가 이제야 제대로 가치를 인정받았는데 흠집이 나면 곤란하지 않나.

하지만 팻 올슨은 다음 공도 몸 쪽으로 붙여 홈 팬들의 야유를 받았다.

‘그럴 수도 있지 뭐’

이인영은 표정없는 얼굴로 자세를 가다듬었다.

몸쪽 승부는 투수의 당연한 권리, 추돌사고만 일어나지 않는다면 얼굴 붉힐 이유는 없지 않나. 민감한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조금 빨리 출발해도 좋겠어.’

한편, 1루 주자 잉글리시아는 마음을 정했다.

2볼이라 카운트를 잡는 공이 들어가겠지, 그걸 저 자식이 놓치겠나. 볼넷이 되도 좋다는 생각으로 유인구를 던질 수도 있지만 그것도 내가 바라는 것, 상황을 살피다 2차 대시를 하면서 1루에서 멀어졌다.

“뛰었어요!!”

“2루에 던지지 못합니다!! 잉글리시아의 도루!! 필라델피아가 단숨에 득점권 기회를 맞이합니다!!”

“발은 빠르지 않아도 주루 센스는 좋은 선수거든요. 올 시즌 22도루를 하면서 도루사는 3개 밖에 없었습니다.”

쓰리 볼에서 승부를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세인트루이스 배터리는 1루를 채웠고 루이스 햄이 타석에 들어섰다. 올 시즌 46홈런을 날린 타자, 포스트 시즌 들어 페이스가 약간 죽었지만 그렇다고 만만히 볼 순 없었다.

볼질이 되면서 1사 주자 만루, 산체스가 타석에 들어섰다.

‘뭐야 이거?’

상황을 살피던 3루 주자 잉글리시아는 홈으로 뛰었다.

투수는 투구 동작에 들어간 경우 반드시 투구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보크, 위기에 몰린 탓에 긴장했는지 팻 올슨은 투구 도중 발을 빼는 실책을 범했다.

아차 한 팻 올슨은 어정쩡한 자세에서 공을 던졌고, 이게 포수 머리 위를 넘어가는 대형 사고가 터졌다.

3루 주자가 홈으로 들어오면서 득점, 팻 올슨의 홈 커버가 늦자 이인영은 3루를 돌아 홈까지 파고 들었다.

그 사이, 1루 주자 루이스 햄도 3루까지 진루, TNT 파크는 홈 팬들의 함성으로 뒤흔들렸다.

“자, 다시 한 번 보시죠. 이게 홈 스틸인가요 아니면 실책인가요?”

“투구가 됐기 때문에 홈 스틸이라고 봐야죠. 거기다 이인영 선수와 루이스 햄 선수가 모두 한 베이스 이상 진루했기 때문에 트리플 스틸입니다. 제가 메이저리그에서 트리플 스틸을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국내 야구에서도 거의 안 나오는 장면 아닌가요?”

2018년 이후 13년 동안 KBO에서 종적을 감춘 트리플 스틸, 메이저리그도 무려 20년 만에 벌어진 일이다.

어이 없는 실책에 정신적으로 완전히 무너진 세인트루이스,

반면 상대의 실책을 절묘하게 파고들어 추가 점을 확보한 이인영은 홈팬들의 환호성을 받으며 더그아웃에 입성했다.

‘Big nippy Wagon’이라는 찬사가 쏟아지는 관중석, 여기에 산체스가 희생플라이를 날려주며 스코어는 3대 0으로 벌어졌다.

이 와중에도 테드 반디는 어떻게든 분위기를 돌려놓기 위해 노력했지만 8회까지 4타수 무안타, 그 사이 필라델피아는 잉글리시아의 적시타, 루이스 햄의 추가타로 2점을 더 획득했다.

스코어는 이제 5대 0, 세인트루이스 더그아웃엔 패배의 그림자가 필라델피아 더그아웃엔 월드시리즈 진출이라는 빛이 쏟아져 내렸다.

“자!! 이제 아웃 하나!! 차분하게 하자고!!”

경기는 이제 9회 초, 이인영은 약간 흥분한 동료들을 진정시켰다.

3년 만의 월드시리즈 진출이 눈 앞, 본인도 살짝 흥분했지만 자세를 낮춘 채 타구를 기다렸다.

타석에는 공교롭게도 테드 반디, 시즌 내내 온갖 조롱을 퍼부었지만 그렇게 할 가치는 있는 선수였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게 경의를 표하는 거겠지, 방심 따윈 하지 않았다.

따악~!!

1루 강습 타구, 글러브로 타구를 막아낸 이인영은 직접 베이스를 찍었다.

올 시즌 최고의 활약을 펼친 양 선수의 희비가 엇갈리는 순간, 주위를 에워싼 카메라 기자들도 이 장면을 놓치지 않기 위해 쉴 새 없이 셔터를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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