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일은 일인자-228화 (228/309)

228화. 너보다는 낫다 (14)

“자, 이제 이인영 선수의 타석입니다. 이번 챔피언십 시리즈 성적은 8타수 2안타, 다소 심심한 성적을 거두고 있습니다.”

“그래도 1차전에서 타점을 올렸고 찬스에 강한 선수거든요. 지금도 주자가 나갔기 때문에 기대를 걸어보겠습니다.”

하지만 이인영은 첫 타석부터 좌익수 플라이로 물러났다.

3년 전 포스트 시즌 활약에 비하면 밋밋한 활약, 다른 선수들이 잘 해 주면서 부진이 눈에 띄진 않았지만 일부 팬들은 아쉬움을 드러냈다.

반면 세인트루이스의 간판 스타 테드 반디는 4타수 2안타 2타점의 맹활약, 세인트루이스는 3차전에서 귀중한 1승을 챙겼다.

볼넷 하나 얻어내고 3타수 무안타로 물러난 3번 타자의 부진이 뼈아팠던 경기, 경기가 끝난 후 일부 기자들은 이인영에게 부진의 원인을 물었다.

못 할 수도 있는데 매번 그 이유를 묻는다면 피곤한 일, 잠시 생각을 정리하던 이인영은 나름대로 답을 내놨다.

“누구는 4할 치고도 2패 하는 팀에 있는데, 저는 2할도 못 치면서 2승하는 팀에 있지 않습니까? 그럼 된 거죠 뭐”

무적의 논리에 기자는 할 말을 잃었다.

이인영은 이번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11타수 2안타, 2할도 못치고 있다.

반면 테드 반디는 12타수 5안타 활약, 하지만 시리즈는 필라델피아가 2승 1패로 앞서고 있다. 내가 부진해도 2패에 몰린 세인트루이스에서 분전하고 있는 테드 반디에 비하면 나은 상황, 개의치 않는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섰다.

심리적으로 여유가 있는 입장, 평소처럼 다음 경기를 준비했다.

솔직히 포스트 시즌에서 부진한 것보다 더 신경 쓰이는 건 내년 시즌, 지난 5년 동안 최고의 선수로 활약했는데 내년에 삐끗하면 FA 대박이고 뭐고 없다.

그렇게 때를 놓쳐서 큰 돈 못 만지고 은퇴한 선수가 몇 명인가.

밀워키의 거포로 활동했던 찰리 해리슨이 좋은 예,

해리슨은 2027시즌 46홈런 122타점을 기록하며 날아올랐고, 그해 이인영을 밀어내고 내셔널리그 MVP를 수상했다.

이후에도 꾸준히 홈런 포를 쏘아 올렸지만 FA 자격을 앞두고 부상을 당하면서 101경기 26홈런 79타점에 그쳤다.

수비가 떨어지는 선수라 공격으로 모든 걸 증명해야 하는데, 하필 당한 부상이 거포에게 치명적인 목이라 커리어에 위협이 될 거라는 진단을 받았다.

결국 소속 팀과의 재계약에 실패하고 FA 재수를 선택, 목 부상에 발목이 잡히면서 27홈런 72타점에 그쳤다. 결국 FA 대박과는 영영 이별, 텍사스의 4년 6000만 달러 계약을 받아들였다.

올 시즌은 144경기를 출장하며 타율 0.311, 35홈런으로 활약, 지난 3년 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목부상도 어느 정도 털어냈다.

하지만 이미 4년 계약을 맺은 입장, 다시 FA 계약을 얻으면 37살이다.

이렇게 타이밍이 나쁠 수 있는 건가. 운이 없으면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는 법, 포스트 시즌에서 부진하지만 팀은 2승 1패로 앞서고 있지 않나.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않았다.

“누구는 4할 치고도 2패 하는 팀에 있는데, 저는 2할도 못 치면서 2승하는 팀에 있지 않습니까? 그럼 된 거죠 뭐”

이어지는 4차전, 테드 반디는 이인영의 인터뷰를 떠올리며 쓴 웃음을 지었다.

내가 잘해도 팀이 패하면 무슨 소용인가.

2할을 쳐도 이기는 팀에 있어야 의미가 있는 법, 3차전에서 좋은 활약을 했지만 만족할 만한 타구는 나오지 않았다. 높고 빠른 공은 여전히 약점, 대응책을 찾아나섰다.

1회 초 세인트루의 선공으로 경기가 시작, 선두 타자는 땅볼로 물러났고 테드 반디가 타석에 들어섰다.

“초구는 약간 높았다는 판정, 역시 빠른 공이네요.”

“정말 집요하네요. 테드 반디 선수가 6월까지만 해도 높은 빠른 볼을 상대한 비율이 30% 정도였거든요. 그런데 9월에 39%, 포스트 시즌 들어서는 40% 이상으로 올라왔습니다.”

“메이저리그가 힘으로 승부를 한다는 말이 있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죠. 어느 리그보다 선수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이번 시즌만 해도 6명의 스타 선수들이 은퇴를 택했어요.”

박한우 위원은 메이저리그가 얼마나 가혹한 환경인지 강조했다.

점 점 높아지는 빠른 볼 구속과 비율, 이인영보다 2년 앞서 메이저리그를 밟은 나오이 츠토무는 시즌이 끝나자마자 일본 복귀를 선언했다.

6년 동안 보스턴에서 928안타를 쳐내며 나름 활약했지만, 재계약에 실패하고 오클랜드에서 재기를 노렸다.

하지만 올 시즌 성적은 타율 0.247 - 홈런 12개 – 49타점, 전체 타석의 34%를 삼진으로 적립했다.

빠른 볼에 전혀 대응을 못한 결과, 다른 선수들도 빠른 볼에 적응을 못하면서 은퇴를 택했다.

테드 반디는 젊은 선수라 아직 눈에 띄지 않지만, 올 시즌 높은 공에 32%라는 높은 삼진율을 기록하고 있다.

테드 반디가 이번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4할이 넘는 타율을 기록하고 있지만 5안타 중 장타는 1개 뿐, 똑딱질이 팀에 무슨 도움이 되겠나. 삼진을 각오하고 타이밍을 더 앞에 뒀다.

“스윙!! 크게 헛칩니다.”

“지금은 낮게 들어왔거든요. 높은 빠른 볼을 의식하다 보니 타이밍이 어긋난 것 같네요.”

“정말 타격 어렵습니다. 이런 무대에서 4할에 도전했던 이인영 선수는 정말 대단한 거죠.”

“하하 ~박한우 위원님은 어떤 말씀을 하던 이인영 선수로 끝을 맺으시네요.”

“당연하죠. 제 최애선수인데요.”

한국 중계진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테드 반디는 3구를 타격했다.

방망이 윗부분을 때리면서 땅볼, 2루수가 처리하면서 투 아웃이 됐다.

1루까지 전력 질주한 테드 반디는 더그아웃 행, 삼진을 각오해도 안 되는 건가. 아쉬움을 삼키며 다음 타석을 기약했다.

이어지는 필라델피아의 공격, 최근 타격감이 뜨거운 세스 브런들이 타석에 들어섰다.

직접 스윙을 해보면 알겠지만 가슴 높이까지는 자신이 원하는 스윙을 할 수 있다.

가슴 높이까지는 팔꿈치가 몸에서 많이 떨어지지 않는데, 결국 높은 공을 타격할 땐 팔꿈치가 몸에서 많이 떨어지는 게 문제다.

어깨 높이 위로 들어오는 공은 건드리지 않는 게 최선, 브런들은 그 원칙을 지켰다.

[따악 ~!!]

“자!! 이 타구는 강하게 맞았지만 파울 라인 밖으로 벗어나는 군요. 다시 타석으로 돌아옵니다.”

“요즘 국내 야구에서 인앤아웃 스윙을 강조하는데, 브런들 선수의 타격을 보세요. 타이밍이 앞에 있죠. 이런 타격을 하려면 스윙이 밖에서 안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박한우 위원은 오늘도 깨알 상식을 풀어냈다.

스윙이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면 몸의 무게중심이 유지되기 때문에 힘이 있고 자연스러운 스윙이 가능하다.

그런데 인앤아웃 스윙이 무슨 정석인 것처럼 포장하는 국내 야구 코치들, 결국 국내 야구 선수들 히팅 포인트는 대부분 뒤로 밀려 있다.

이인영처럼 타고 난 파워를 갖춘 것도 아닌데, 이런 식으로 코칭을 하면 장타가 나오나. 많은 선수들이 이인영의 스윙을 참고하면서 타율과 장타력을 다 잡으려고 하는데, 그건 어려운 일이라고 못 박았다.

삼진을 죄처럼 여기는 문화도 바뀔 때, 메이저리그 선수들처럼 삼진을 각오하고 스윙을 돌릴 것을 강조했다.

따악 ~!!

“와아아 ~!!”

브런들은 3구를 받아쳐 외야로 보냈다.

체격은 작아도 배트에 걸리면 장타, 시원시원한 타격에 필라델피아 팬들은 찬사를 보냈다.

이번 시리즈만큼은 내가 일인자, 브런들은 어깨를 들썩이며 1루에 자리를 잡았다.

‘일단 강하게 친다.’

후속 타자 잉글리시아도 타이밍을 약간 앞에 잡았다.

시즌 초반에는 잘 먹혔던 밀어치는 타격, 하지만 빠른 볼 승부가 늘어나면서 후반기에 성적이 폭락했다. 예전으로 돌아가면서 회복되고 있는 페이스, 헛스윙이 나와도 자기 스윙을 했다.

[따악 ~!!]

“1루수가 몸을 날렸지만 잡지 못합니다!! 그 사이 주자는 2루를 지나 3루까지!! 잉글리시아는 1루에 자리를 잡습니다!! 무사 주자 1 – 3루!! 이인영 선수가 오늘 경기도 득점권 기회를 잡습니다!!”

“이인영 선수도 이렇게 시원하게 타격을 했으면 좋겠네요. 그깟짓 삼진 당해도 상관 없습니다.”

이번 시리즈에서 2할도 못 치는 3번이지만 홈팬들은 박수를 치며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이인영은 덤덤한 얼굴로 자세를 잡을 뿐, 바깥쪽 공을 밀어내는 타격도 포기하지 않았다.

‘임팩트가 문제다. 그것만 해결하면 돼’

내가 힘이 없어서 공을 못 밀어내고 있는 건가.

문제는 손목, L자로 굽힌 손목은 임팩트까지 풀리면 안 된다. 이걸 풀어버리면 아무리 힘이 좋아도 공에 힘을 싣는 건 불가능, 힘이 아닌 기술적인 문제라 경기 전에도 문제점을 체크했다.

문제는 역시 높은 공, 높은 공은 타점을 앞에 두기 때문에 손목 각도를 유지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타이밍을 뒤에 두고 공을 밀어내고 있는 것, 남들 눈엔 미련해 보이겠지만 지금까지 이렇게 해 왔는데 어쩌겠나.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초구를 기다렸다.

[따아악 ~!!]

“어?!!”

“자!! 밀어낸 타구가 계속 뒤로!! 좌익수는 계속 뒤로 ~!!!! 넘어 ~갔습니다 ~!!!! 이인영 선수의 선제 쓰리 런 홈런!! 세인트루이스 진영에 제대로 찬물을 끼얹는 한 방입니다!!!! 그토록 기다렸던 한 방!! 3차전에 터져 나옵니다!!!!”

“다시 말씀 드리지만 이 타격은 이인영 선수만 할 수 있는 겁니다!! 이 경기를 보고 있는 프로 선수들도 따라하지 마십시오!!”

사방에서 쏟아지는 환호성, 먼저 홈을 밟은 브런들과 잉글리시아는 경의의 하이파이브를 권했다.

이인영은 두 선수의 머리를 가볍게 치고 더그아웃 행, 마중을 나온 와이즈 감독은 다시 하이파이브를 권했지만, 이인영은 감독의 가슴에 가벼운 주먹을 날렸다.

‘우리는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어.’

필라델피아 선수들은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기다리면 언젠간 터질 선수, 첫 타석부터 대형사고를 터뜨린 이인영은 표정 없는 얼굴로 음료수를 들이켰다.

밀어쳐서 홈런이 나왔다는 건 오늘 세인트루이스 투수들은 살아남기 어렵다는 뜻, 3차전까지 당한 굴욕을 회수했다.

따악 ~!!

“와아아아 ~!!”

3회 말 2번 째 타석도 좌중간에 떨어지는 깨끗한 안타, 바깥쪽 승부가 통하지 않자 세인트루이스는 철저하게 낮은 공을 택했다.

높은 공에 비하면 훨씬 치기 쉬운 코스, 이인영은 5회 말 3번 째 타석에서 낮은 공을 외야로 날려버렸다.

센터 쪽 담장을 넘어가는 홈런, 답이 없는 스윙에 세인트루이스 벤치는 한껏 위축됐다.

따악 ~!!

하지만 정규 시즌 승률 1위 팀은 순순히 물러서지 않았다.

6회 초 공격에서 2점을 추가하며 스코어는 5대 3, 추격권을 유지하면서 긴장감 있는 경기를 유지했다.

경기는 어느덧 7회 초, 1사 주자 1루에서 세스 브런들이 타석에 들어섰다.

“자, 여기서 다시 투수가 교체되는 군요. 로버트 필 선수가 올라옵니다.”

“예상했던 대로죠. 이번 시리즈에서 벌써 3번째 승부입니다.”

번디가 타석에 들어서면 자석처럼 마운드로 끌려가는 로버트 필, 앞선 두 타석에서 테드 반디는 모두 범타로 물러났다.

이번에도 같은 결과가 나올까.

5대 1에서 추격을 허용한 필라델피아가 심적으로 쫒기는 상황, 상대의 추격 의지를 꺾기 위해서라도 로버트가 여기서 반디를 처리해 줘야 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