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일은 일인자-227화 (227/309)

227화. 너보다는 낫다 (13)

“이거 정비 제대로 안 한 거 아닙니까?”

이어지는 챔피언십 시리즈 2차전, 1루로 나간 이인영은 세인트루이스 관리 팀에 불만을 제기했다.

잔디와 흙의 높낮이가 너무 차이가 나면 번트나 파울 타구가 나왔을 때 공이 파울 라인 밖으로 나갔다가 페어 지역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

시즌 내내 느꼈지만 세인트루이스 구장관리는 좋다고 할 수 없는 편, 그동안은 말 없이 넘겼지만 이번에는 넘어가지 않았다.

“도대체 뭐가 문제라는 겁니까?”

“이거 봐요. 잔디하고 흙 높이가 너무 차이가 나잖아요. 이러면 타구 제대로 처리 못 합니다.”

관리 팀장은 코웃음을 쳤다.

20년 넘게 근무하면서 이런 불만을 제기하는 선수는 처음, 그냥 세인트루이스를 심리적으로 흔들겠다는 짓 아닌가.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말라며 일축했다.

“이 봐, 내가 1루수만 10년을 넘게 본 사람이야. 당신이 타구 직접 잡아 봤어? 문제가 있으면 시정을 해야지 그게 무슨 태도야?”

“왜 그렇게 사사건건 걸고넘어지는지 모르겠군요. 그냥 우리가 싫다고 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뭐 이런 인간이 관리자를 보고 있는 거야?!! 얼른 이거 시정 하라고!! 관리를 이 따위로 해놓고 뭘 잘났다고 떠들어?!!”

경기 전부터 과열되는 분위기, 깜짝 놀란 필라델피아의 피터 와이즈 감독은 그라운드로 튀어나왔고, 세인트루이스 구단 책임자도 현장으로 출동했다.

하지만 세인트루이스는 끝내 문제를 시정하지 않았다.

우리 팀 선수가 문제를 제기했다면 받아들였겠지만, 상대는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있는 이인영 아닌가. 이것도 우리를 흔들기 위한 수작이라며 고집을 피웠다.

‘그래 마음대로 해라. 어느 쪽이든 피를 보겠지’

이인영도 더는 따지고 들지 않았다.

말이 안 통하는 짐승에 따져봤자 뭐가 달라지겠나. 엉망인 그라운드는 2차전 승부에 어떤 변수로 작용할 것인가.

4회 초 필라델피아의 공격에서 문제가 터졌다.

산체스가 잡아당긴 타구가 파울 라인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온 것, 세인트루이스의 3루수 조나단은 성급한 판단을 내렸다가 내야 안타를 내주고 말았다.

1사 주자 1 - 3루에서 희생플라이가 나오면서 스코어는 4대 2, 필라델피아는 오늘도 경기를 유리하게 끌고 나갔다.

어떻게든 따라가야 하는 상황, 마음이 급해진 테드 반디는 팀의 4회 말 반격에서 바깥쪽 도망치는 공을 무리하게 건드렸다.

그라운드 상태를 알고 있는 이인영은 타구를 향해 대시, 타구가 라인을 벗어나기 전에 낚아챘다.

앞에서 달려오던 테드 반디는 속도를 죽이지 못했고, 루상에서 격한 충돌이 일어났다.

아웃처리 됐지만 불편한 시선을 주고 받는 두 선수, 필라델피아의 선발 어빈 칼데론은 이 장면을 그냥 두고 보지 않았다.

다음 타자 조나단에게 등에 맞는 빈 볼을 선물, 한껏 민감해져 있던 양 팀은 거친 설전을 주고 받았다.

“어딜 보고 던지는 거야 멍청아!!”

“네 머리다!! 아깝군!! 머리를 맞고 죽어버렸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야!!”

산체스 포수도 조나단의 가슴을 밀치며 험악한 분위기를 주도, 주심의 중재에 따라 일단 조용히 넘어갔지만.

조나단은 주루 플레이 중 2루수 잉글리시아에게 슬라이딩 태클 날려버렸다. 바로 전쟁 시작, 양 팀 선수들이 한꺼번에 몰려나오면서 패싸움이 시작됐다.

“이런 맙소사!!”

“안 돼!! 안 된다고!! 자네는 안 돼!!”

이인영은 잉글리시아의 발목을 노린 조나단만 노렸다.

저 선수의 출장정지는 필라델피아에 치명적, 현장으로 출동한 코치들은 필사적으로 중요 인물을 끌어안았다.

그 사이 제 2군이 앞장 서서 난투극을 주도, 주심이 살인 태클을 날린 조나단을 퇴장 조치 했지만 싸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1루 그물망 쪽으로 자리를 옮긴 양 선수단은 다시 패싸움을 시작, 어빈 칼데론이 테드 반디에게 주먹을 날리면서 불길에 기름이 쏟아졌다.

“너 이리 안 와?!!”

“죽어라 이 젖먹이야!!”

헤드락에 태클 주먹이 난무하는 난투극의 현장,

사방에 배치된 경찰들은 흥분한 팬들을 막아서느라 현장에 개입하지 못했다.

결국 양 팀의 구단 경호원이 나서 사태를 수습, 데이비드 셰퍼 감독은 필라델피아 진영을 향해 너희들은 야구 선수가 아니라 갱단이라며 독설을 퍼부었다.

“너 지금 뭐라고 했어?!!”

이번엔 필라델피아의 와이즈 감독이 발끈했다.

우리 팀 선수들이 모욕을 당했는데 감독이 가만히 있을 수 있나. 불뚝 나온 배를 흔들며 돌진, 주심은 양 팀 감독에 퇴장 명령을 내렸다.

겨우 수습된 혼란에 다시 불씨를 던진 죄, 하지만 와이즈 감독은 더그아웃으로 물러설 때까지 세인트루이스 진영을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어쨌든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2차전도 4대 3 필라델피아의 승리로 종료, 경기가 후 세인트루이스 구단 관계자는 불만을 쏟아냈다.

경기 전부터 구장 관리가 어떻다고 불만을 쏟아낸 필라델피아 진영, 패배한 팀이 이런 불만 쏟아내봤자 변명 밖에 안 되겠지만, 이인영의 고압적인 태도에 의문을 표했다.

“정말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선수들이 최고의 경기를 할 수 있도록 그라운드 관리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선수는 경기 전부터 우리 팀 관리자를 불러 고압적인 자세로 이런 저런 요구를 하더군요. 그것 때문에 우리 팀 선수들도 모두 민감해져 있었습니다. 심리전을 하는 것 같은데, 억지도 정도 껏 부렸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일어난 벤치 클리어링은 모두 필라델피아의 책임이라는 겁니까?”

“당연합니다.”

이 소식을 접한 이인영은 코웃음을 쳤다.

최고의 경기를 위해 그라운드 관리에도 최선을 다한다고? 최고는 다 죽었냐며 비아냥 거렸다.

“저는 오랫동안 1루수를 봤고, 그라운드 상태에 따라 타구가 어떻게 흐를지 대략 알고 있습니다. 어제 경기에서 파울 타구가 라인 안쪽으로 들어오는 장면이 있었죠? 저는 그렇게 될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 테드 반디와의 충돌도 그라운드 상태와 연관이 있는 겁니까?”

“당연하죠. 타구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먼저 가서 잡는 건 당연한 거 아닙니까? 다만 테드 반디에게 이렇다 할 감정은 없습니다. 달려오던 상황이라 멈추기는 어려웠을 테니까요. 하지만 세인트루이스 정비팀의 수준은 논외 수준입니다. 제가 단장이라면 모조리 해고 시켰을 텐데 말이죠.”

그라운드 정비가 이렇게 논란이 된 적이 있었나.

맞고 아니고를 떠나서 문제가 될 장면이 몇 번 있었던 게 사실, 3차전을 앞둔 필라델피아의 홈구장 TNT 파크도 바쁘게 움직였다.

상대 팀 보다 뭐든 깐깐하게 구는 우리 팀 선수가 문제, 관리 총책임자 에릭 데이비스는 검사까지 받았다.

“어때? 이 정도면 만족할 만 한가?”

“나쁘진 않네요.”

이인영은 태연하게 총책임자와 농담을 나눴다.

경력 17년 차라 이 일에 나름 자부심과 고집도 있는데, 사실 그라운드 상태를 가장 잘 아는 건 선수다.

그 눈 높이에 맞춰주는 건 만만치 않은 작업, 하지만 이인영도 근거 없이 꼬투리를 잡는 성격은 아니다.

문제가 있으면 인정하고 시정할 줄 알아야지 내가 맞다고 고집을 피우면 결국 본인이 손해, 나는 프로로서 할 일을 하는 것 뿐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괜찮아요. 제가 이 팀에서 5년 동안 뛰면서 그라운드 때문에 얼굴 붉힌 적은 별로 없으니까요.”

“그거 다행이군. 앞으로도 문제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주라고”

에릭 데이비스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돌아섰다.

와이즈 감독도 데이비스의 어깨를 치며 격려, 경기장 구석으로 자리를 옮긴 구단 정비 팀은 차례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곳은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3차전이 열리는 필라델피아의 홈구장 TNT 파크입니다. 저는 캐스터 이명한, 해설에는 박한우 – 임선우 위원께서 도움을 주시겠습니다. 임선우 위원님”

“예”

“얼마 전 그라운드 정비를 두고 양 팀이 설전을 주고 받지 않았습니까? 전 메이저리거로서 이번 사건은 어떻게 보십니까?”

“글쎄요. 누구 편을 든다 이런 건 아니지만, 그라운드에 누구보다 민감한 건 선수들이거든요. 여기에 문제를 제기하는 게 간섭이다 갑질이다라는 말을 한다면 선수 입장에선 할 말이 없습니다. 당연히 요구해야 할 권리인 거죠. 저는 이인영 선수가 아무 이유 없이 문제를 제기하진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 의견에 표 하나 보탭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박한우 위원도 양아들 편을 들었다.

점입가경으로 치닫는 양팀의 기싸움, 2패에 몰린 세인트루이스는 필승을 다짐하며 1회 초 공격에 나섰다.

‘어라?’

첫 타자는 2루 땅볼, 프랭크 토마스는 갑자기 튄 바운드에 대응하지 못했다.

일단 막고 던지는 게 상책, 공을 잡자마자 턴 하면서 1루로 송구했다. 간발의 차이로 아웃, 이인영은 토마스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 것도 한 번에 못 잡아?!!”

“그라운드 상태가 나빠서 그래!!”

아웃이 됐으니 웃고 떠들 수 있는 상황, 중요한 경기를 치르고 있지만 2승을 선점한 필라델피아 진영엔 여유가 넘쳤다.

‘정비가 필요해.’

토마스는 이에 그치지 않고 정비팀이 앉아 있는 곳에 손가락으로 뭔가를 주문했다.

그냥 장난이었지만 정비팀은 민감하게 반응, 이닝이 끝나자 마자 서둘러 그라운드를 쓸고 닦았다.

“야, 네가 쓸데없는 짓해서 사람들이 고생하잖아.”

“이런 분위기를 주도한 게 누군데? 너잖아?”

마지막까지 투닥거리는 두 선수, 덕분에 더그아웃 분위기는 훈훈해졌다.

이어지는 필라델피아의 1회 말 공격, 1차전에서 5타수 4안타, 2차전에서 5타수 2안타를 기록한 세스 브런들이 타석에 들어섰다.

땅볼을 치면 정비 팀이 고생을 하겠지, 최대한 먼 곳을 노렸다.

“다시 바깥쪽입니다. 카운트는 투 볼 노 스트라이크”

“브런들 선수가 확실히 컨디션이 좋네요. 원래 바깥쪽에 약점이 있던 선수인데, 올해만 따져보면 그런 약점마저 극복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3할에 30홈런을 칠 수 있는 거겠죠. 3할이 정확성만 높다고 이룰 수 있는 기록이 아니거든요.”

[따아악 ~!!]

“자!! 말씀 드리는 사이!! 외야로 뻗어 나가는 타구!! 좌측으로 계속 날아가 담장 너머로 사라집니다!! 세스 브런들의 리드 오프 홈런!! 필라델피아는 오늘도 선취점을 올립니다!!”

“분위기가 완전히 필라델피아 쪽으로 기울었네요. 세인트루이스가 정규시즌 승률 1위 팀인데, 시리즈 내내 끌려다니고 있어요.”

브런들은 3루를 앞에서 다이아몬드 스텝을 밟았다.

또 시작된 도발, 하지만 연패를 당한 탓에 세인트루이스 여론도 마냥 지역 연고 팀에 호의적이지는 않다.

이인영의 경고대로 정말 구장 관리에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닌지, 쓸데없는 일에 신경을 쓰면서 선수들이 경기에 집중을 못 하고 있다.

패배한 자에게 변명은 필요 없는 법, 데이비스 셰퍼 감독은 경기 전 선수들에게 집중력 있는 플레이를 요구했다.

언론 플레이에 놀아나는 건 아마추어, 선두 타자 홈런을 허용 했지만 세인트루이스의 선발 데이브 왓슨은 다음 타자 잉글리시아를 2루 땅볼로 처리했다.

다음은 문제의 그 인물, 상대하기 껄끄럽지만 그렇다고 도망치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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