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일은 일인자-226화 (226/309)

226화. 너보다는 낫다 (12)

[애는 아빠랑 놀면서 성장하는 거다]

[테드, 우리 한 번 놀아볼까?]

10월 8일, 필라델피아는 밀워키를 꺾고 챔피언십 시리즈에 진출했다.

그 다음 날 9일, 세인트루이스는 LA 머린스를 물리치며 남은 한 자리를 차지, 세인트루이스의 홈구장에서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1차전이 열리게 됐다.

필라델피아가 가장 껄끄럽게 여기는 선수는 역시 테드 반디, 23살의 이 젊은 선수는 올 시즌 타율 0.339, 홈런 46개, 117타점을 올리며 MVP 후보로 급부상 했다.

지난 9월 23일에 열린 모의 투표에서 양 선수는 1위 표를 28장씩 양분, 최종승자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시비 걸기 좋아하는 필라델피아 여론은 넌 아직 이인영에게 안 된다며 자극하는 발언을 쏟아냈지만, 테드 반디는 점잖은 대답을 내놨다.

“저는 아직 23살입니다. 이 나이에 최고의 선수와 비교되는 건 영광입니다.”

이인영은 테드 반디의 답에 입꼬리를 들썩였다.

23살에 최고의 선수와 비교될 정도니, 내가 성장하면 너보다 낫다는 뜻 아닌가. 답변은 경기장에서 하 그만,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곳은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1차전이 열리는 스테이트팜 아레나입니다. 저는 캐스터 이명한, 해설에는 박한우 – 임선우 위원께서 도움을 주시겠습니다. 임선우 위원님”

“예”

“주위가 온통 붉은 색으로 덮였는데 옛 기억이 떠오르지 않으십니까?”

“그렇네요. 벌써 10년이 훌쩍 넘은 일이지만요.”

지난 2018년, 임선우 위원은 필라델피아 유니폼을 입고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를 치렀다.

상대는 세인트루이스, 선발 경쟁에서 밀려 불펜으로 활약했지만 3경기에서 7이닝 6탈삼진 무실점 활약을 펼쳤다.

무려 13년 만에 돌아온 무대, 홈 팬 원정 팬 가릴 것 없이 붉은 색으로 갖춰 입은 장관은 예전과 다를 게 없다.

월드시리즈에 진출하진 못했지만 좋은 기억이 깃든 무대, 후배도 이곳에서 좋은 추억을 얻고 가길 바란다는 말을 남겼다.

“넌 쟤 아빠가 아니야!!”

“다른 자식 찾아 보라고!!”

평소 온순한 세인트루이스 팬들도 이날 따라 격한 응원을 이어갔다.

도대체 누가 누굴 가르치겠다는 건가. 테드 반디는 이미 MLB를 대표하는 선수, 아빠와 놀면서 걸음마를 배울 나이는 지났다며 이인영을 저격했다.

“나도 오래 놀아줄 생각 없어.”

이인영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생수를 들이켰다.

내가 테드 반디를 애 취급한 것도 아니고, 필라델피아 기자들의 공격에 발끈한 건 세인트루이스 팬들 아닌가. 심적으로 몰린 쪽이 괜히 발끈하는 법, 별로 심한 도발도 아니고 그러려니 받아들였다.

‘나는 엘리트야. 잡것들 하고 놀아줄 여유 없어.’

1회 초 필라델피아의 선공, 세스 브런들은 송진이 잔뜩 뭍은 헬멧을 눌러쓰며 타석에 섰다.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유산된 자식을 언급한 쓰레기와 충돌했지만, 너무 속상해 할 것 없다며 마음을 다독였다.

미국 상위 1% 안에 드는 내가 그런 잡것들 욕설에 흔들리면 어쩌자는 건가. 누구보다 꿋꿋하고 열심히 살겠다는 의욕은 더욱 견고해졌다.

“자, 브런들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올 시즌 타율 0.314, 홈런 34개, 82타점, 디비전 시리즈에서도 9타수 3안타, 2타점을 올리며 활약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올해의 필라델피아 MVP를 꼽는다면 브런들 선수를 택하고 싶습니다. 다른 선수들도 잘 해줬지만, 올해의 브런들 선수는 정말 대단했거든요.”

박한우 위원은 브런들을 한껏 치켜세웠다.

2년 전만 해도 관심 받기 좋아하고 진지하지 못했던 브런들, 이 때문에 수비 실책도 많았고 필라델피아 여론은 뺀질이라는 조롱을 날렸다.

하지만 올해의 브런들은 뭔가 달랐다. 묵묵히 자기 일에 집중하며 타선의 선봉장 역할을 했고, 실제로 커리어 하이 시즌을 만들어 냈다.

유산으로 자식을 잃는 슬픔까지 겪었고, 시즌 막판에 안 좋은 일도 있지만 마음을 추스르고 이렇게 경기를 한다는 게 대단한 것 아닌가.

촐랑이 이미지는 이제 옛 말, 필라델피아 여론도 긍정적으로 돌아섰다.

[따아악 ~!!]

“외야로 가는 타구!! 좌익수가 손을 뻗지만 닿지 않습니다!! 펜스를 직접 때리는 안타!! 브런들은 1루를 지나 2루!! 2루까지 들어갑니다!! 선두 타자 2루타!! 필라델피아가 1회부터 득점권 기회를 맞이합니다!!”

“브런들 선수의 첫 타석 타율이 0.382라는 말씀을 드리려던 참이었는데 한발 늦었네요. 역시 초구를 노렸습니다.”

다음 타자는 잉글리시아,

올 시즌 홈런 28개, 2루타 33개를 때려내며 무시할 수 없는 갭 파워를 보여줬다.

정규시즌 막판에 타격감이 흐트러졌지만 디비전 시리즈에서 10타수 4안타를 기록하며 페이스를 되찾은 상황, 이인영 – 루이스 – 산체스로 이어지는 중심 라인도 위협적, 도망칠 구멍이 막힌 세인트루이스 배터리는 승부를 택했다.

‘놀아 줄 아빠가 많아서 좋네.’

잉글리시아는 높은 공을 밀어내 중견수 앞에 떨어트렸다.

2루 주자가 홈으로 들어오면서 득점, 딱히 내가 아니라도 동료들이 상대 선수들과 잘 놀아주고 있지 않나.

편안한 마음으로 첫 타석을 맞이했다.

첫 타석은 좌익수 플라이, 두 번 째 타석은 2루 땅볼, 그 사이 라이벌 구도를 이루고 있는 테드 반디는 2안타를 적립하며 앞서나갔다.

5회 초 현재, 경기는 4대 1 필라델피아의 우세, 이인영은 1사 주자 1루에서 3번 째 타석을 맞이했다.

“오늘은 애들이랑 놀아줄 컨디션이 아닌가 보지?”

세인트루이스의 포수 존 스파이비는 입 털기를 시도했다.

우리도 알 거 다 아는 어른인데 무슨 자격으로 우릴 어린애 취급하는 건가. 나이가 들어서 애들의 체력을 못 따라가는 거 아니냐는 식으로 도발을 걸었다.

“그래서 다른 녀석들이 너희하고 놀아주고 있잖아? 너는 아빠하고 놀 기운도 없나 보지?”

이인영도 지지 않고 맞받아쳤다.

테드 반디만 팔팔하지 나머지는 활기가 없는 세인트루이스, 존 스파이비도 2타수 무안타로 침묵 중이다.

어른이 놀아줘도 쭈뼛거리는 애들이 있지 않나. 네가 딱 그 수준이라며 자존심을 밟아줬다.

[따악 ~!!]

“당긴 타구가!! 우중간에 떨어집니다!! 1루 주자 잉글리시아는 2루를 돌아 3루!! 송구가 뒤로 빠지면서 홈까지 내달립니다!! 이인영 선수의 적시 2루타!! 필라델피아가 5대 1로 경기를 벌립니다!!”

“첫 두 타석에서 조용했는데 한 건 해내네요. 그건 그렇고 세인트루이스가 이렇게 수비가 허술한 팀이 아닌데, 집중력이 너무 떨어진 것 같습니다.”

중계 플레이가 매끄럽지 못하면서 또 실점,

신이 난 필라델피아 팬들은 좌익수 테드 반디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네 아빠가 누군지 말 해 봐!!”

“너 같은 어린 놈과 놀아주는 걸 고맙게 여기라고!!”

“네가 3억 1천 만 달러라고?!! 돈 낭비야!!”

“오버 페이!! 오버 페이!!”

테드 반디는 지난 9월 18일, 세인트루이스와 13년 3억 1천만 달러 대형계약을 체결했다.

23살에 장래가 촉망받는 선수가 너무 싸게 계약을 맺은 거 아닌가.

세인트루이스 팬들은 찬사를 보냈지만 꼬투리를 잡은 메뚜기 떼는 평화로운 야구의 도시에 재앙을 선물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열 받는 말만 골라서 하는 놈들, 평소 말도 없고 묵묵히 자기 할 일에 집중하는 테드 반디도 살짝 흥분했다.

“자, 이제 6회 말 세인트루이스의 반격으로 이어집니다. 필라델피아는 투수를 교체하는 군요. 야쿠보우스키 선수가 내려가고 로버트 필 선수가 올라옵니다.”

“정규 시즌 때도 이런 장면을 본 적이 있죠. 와이즈 감독의 의도는 분명합니다. 높고 빠른 볼, 테드 반디 선수가 같은 작전에 또 당할지, 팬 여러분들도 주의 깊게 보시기 바랍니다.”

기술적으로 높은 빠른 볼에 약점이 있는 테드 반디, 경기 중후반에 강속구 투수를 내보내면 범타로 물러나는 일이 잦다.

이것 때문에 이인영은 테드 반디가 포스트 시즌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못할 거라고 예상, 내 눈은 정확했는가.

선발 야쿠보우스키도 구속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지만 빠른 공을 높게 던지지 못해 안타를 허용했다.

와이즈 감독이 선발 투수를 일찍 내린 건 여기서 반디를 잡아내 세인트루이스의 추격 의지를 꺾겠다는 뜻이겠지,

이 교체는 어떤 결과로 이어질 것인가. 이인영은 허리를 굽힌 채 빠른 타구에 대비했다.

[딱 ~!!]

“초구 타격!! 파울입니다. 98마일, 역시 빠른 공이군요.”

“제가 전에도 말씀드린 것 같은데, 이인영 선수도 지금처럼 스윙이 어퍼로 나오다가 왼쪽 어깨를 감아주면서 높은 공을 잡아채거든요. 그런데 반디 선수의 스윙을 보세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일관적입니다. 스윙 궤적에 변화가 없어요.”

“그러니까 이게 장점이면서 단점인 겁니다. 자세가 일관적이기 때문에 스윙 범위에 들어온 공은 여지없이 걷어 올리거든요. 그런데 지금처럼 높고 빠른 공이 들어오면 답이 없습니다. 맞아봤자 깎여 맞으면서 땅볼이 되는 거죠.”

“그런데 빠른 공을 저렇게 계속 높게 던지는 것도 쉽지 않거든요. 로버트 필 선수가 반디 선수 상대로 자신감이 있네요.”

2구도 높게 들어오면서 땅볼,

파울 라인을 벗어났지만 반디는 노 볼 투 스트라이크에 몰렸다.

또 높은 빠른 공을 던질 것인가. 아니면 위험을 감수하고 떨어지는 유인구를 던질 것인가. 필라델피아 배터리는 빠른 볼을 택했다.

“와아아 ~!!”

“네 아빠가 누군지 말 해 봐!!”

“그 이름은 로버트 필!!”

“아빠가 여러 명이라 좋겠어!! 네 엄마한테 진짜 아빠가 누구냐고 물어봤냐?!!”

헛스윙을 돌린 반디는 원정 팬의 조롱을 받으며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정규시즌의 치욕을 그대로 재현, 어떻게 내 스윙 범위를 벗어나는 존만 골라 던질 수 있나.

더군다나 로버트 필은 제구가 좋다는 평가를 받는 선수가 아니다. 하지만 세상에 천적은 있는 법, 쓰레기들의 조롱에 울분을 삼켰다.

그 사이 필라델피아는 7회에 한 점을 더 추가, 승패가 기울자 와이즈 감독은 주전을 대거 교체하는 여유를 부렸다.

그래도 만약을 대비해 브런들과 이인영은 교체하지 않았고, 브런들은 8회 초 다섯 번 째 타석에서 홈런을 때려냈다.

오늘 5타수 4안타 - 2타점 경기, 1억 달러 조금 넘는 선수가 이렇게 활약 해주는데, 3억 달러 짜리는 뭘 하고 있는 건가.

공교롭게도 브런들과 반디의 포지션은 좌익수,

필라델피아 팬들은 테드 반디를 향해 오버 페이를 연호했고 어린 선수의 멘탈은 부서진 시멘트처럼 떨어져 나갔다.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1차전은 7대 1, 필라델피아의 완승으로 종료, 수훈선수로 선정된 세스 브런들은 기자들 앞에 섰다.

여론은 이인영과 테드 반디의 맞대결에 기대를 걸었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진짜 영웅은 따로 있었던 것, 세스 브런들은 나쁘지 않은 기분이라며 야심을 드러냈다.

“솔직히 제가 정규시즌 MVP를 수상하는 건 무리겠죠. 하지만 챔피언십 시리즈 MVP라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시리즈만큼은 테드 반디도 팀 동료도 넘어서겠다는 뜻, 이인영도 도전을 받아들였다.

친구라는 놈이 자식을 잃었다고 축 처져 있으면 지켜보는 쪽도 마음이 불편하다.

차라리 저렇게 자신감을 드러내는 게 나은 편, 누가 더 나은 선수인지 붙어보자며 선의의 경쟁을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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