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화. 너보다는 낫다 (8)
[이인영 트레이드 거부권 획득]
[이제 선택권은 선수 몫]
시간은 흘러 8월 1일, 트레이드 기간이 종료되면서 이인영은 트레이드 거부권을 손에 쥐었다.
2년 전부터 잊을 만하면 언급 된 트레이드 루머,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처럼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동안 필라델피아 구단은 다른 구단과 트레이드를 수도 없이 논의했지만, 올 시즌은 시도 조차 못했다.
팀이 지구 1위에 올라서고 포스트 시즌 진출 청신호가 들어왔는데 주축 타자를 팔아넘기는 팀이 어디에 있나.
이제 필라델피아에 남든 떠나든 그건 선수의 몫, 논란에서 자유로워진 이인영은 경기에만 집중했다.
“자, 이인영 선수가 오늘 경기 첫 타석에 들어섭니다. 시즌 타율 0.379, 홈런 25개, 81타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출루율이 0.468에 장타율은 무려 0.712거든요. 작년에도 0.702, 메이저리그에서 12년 만에 장타율 7할을 기록했는데, 올해는 좀 더 높은 기록을 세우고 있습니다.”
올 시즌 메이저리그 평균 장타율은 0.414, 5할 만 넘어도 어지간한 팀에서 중심타선 대우를 받는다.
600경기 이상을 소화한 현역 선수들 중 통산 장타율이 6할을 넘기는 선수는 이인영이 유일,
54홈런을 친 작년과 달리 이번 시즌은 라인 드라이브 타구와 빠른 발로 장타율을 유지하고 있지만, 위압감은 작년과 큰 차이가 없었다.
[따악~!!]
“밀어낸 타구가 좌익수 앞에 떨어집니다!! 첫 타석부터 안타!! 오늘 타격 컨디션도 맑음입니다!!”
“장타율을 오해하시는 팬들이 있는데, 홈런 많이 친다고 장타율이 오르는 게 아닙니다. 장타율은 총루타수를 안타로 나눈 거기 때문에 안타를 쳐도 장타율은 높아지게 돼 있어요. 이인영 선수가 작년에 비해 홈런 페이스는 살짝 떨어졌지만 타율과 안타 페이스는 작년보다 더 좋거든요. 그러니까 장타율이 7할을 넘기고 있는 겁니다.”
박한우 위원은 잔소리를 덧붙였다.
작년보다 홈런이 줄었는데 왜 장타율이 7할이냐며 우기는 팬들이 있는데, 거기에 대고 무슨 말을 하겠나.
본인들이 찾아보지 않는다면 친절한 누군가가 해명을 해 줘야겠지. 박한우 위원은 오늘도 양아들의 대변인을 자처했다.
‘그런데 홈런 페이스가 예전 같진 않긴 하네.’
그래도 내심 걱정이 되긴 했다.
전반기 90경기에서 홈런 25개를 쳐낸 선수가 후반기 14경기에서 홈런 제로, 안타가 안 나오는 게 아니라 큰 걱정은 안 됐지만, 팬들이 7할 장타율에 의문을 제기할 정도로 장타가 줄어들긴 했다.
오늘은 한 방 나왔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이인영은 이 날도 5타수 2안타를 기록하고 하루를 마무리 했다.
“이인영 선수, 최근 홈런이 잘 안 나오는 것 같다는 팬 여러분들의 의견이 있는데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겁니까?”
“그것보다 제 머리 어땠나요? 문제 있는 겁니까?”
이인영은 기자들의 질문을 엉뚱한 방향으로 끌고 갔다.
타석에서 헬멧을 벗었을 뿐인데 갑자기 일어난 탈모 논란, 나는 지금까지 별 생각없이 지내왔는데 주위에서 더 난리다.
그래서 오늘은 팬들의 정확한 진단을 받아보기 위해 타석에서 헬멧을 자주 벗었는데, 기자들은 어떻게 봤을까.
엉뚱한 질문에 몇 몇 기자들은 폭소를 터뜨렸다.
“제가 보기엔 아무 문제 없는 것 같은데요?”
“그래요? 그럼 됐습니다.”
머리에 이상이 없다는데 홈런 안 나오는 게 그렇게 큰 고민인가. 홈런은 언젠간 나온다며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저는 머리 빠지는 거 별로 신경 안 씁니다.”
“정말입니까?”
“그깟 머리 빠져도 제가 어지간한 남자들보다 낫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요.”
사람은 능력으로 인정받는 세상, 세계 최정상급 타자에 올라선 내가 그깟 머리 좀 빠졌다고 주눅 들 거라고 생각하나.
자신감이 죽어버리면 그건 죽은 인생, 이인영은 주위 사람이 날 어떤 시선으로 바라봐도 당당하게 행동할 거라는 입장을 밝혔다.
[리(Lee)는 태어날 때부터 3할 타자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필라델피아 지역 신문이 흥미로운 기사를 내보냈다.
커리어를 샅샅이 살피면서 밝혀낸 사실, 기자는 공식 기록이 남는 고등학교 기록부터 지금까지 모든 경기를 살펴봤다.
지난 2017년, 이인영은 고교 전국 대회 첫 2경기 동안 6타수 2안타를 기록했다.
한 타석만 더 아웃 됐다면 7타수 2안타, 0.286로 타율이 내려 갔겠지만 다음 경기에서 4타수 2안타를 기록했다.
그 이후에도 수많은 경기를 치렀지만 고등학교 통산 타율이 3할 3푼 밑으로 내려간 적은 한 번도 없다.
그건 프로도 마찬가지, 데뷔전부터 안타를 쏟아내더니 타율 0.342를 찍어버렸다. 부상으로 많은 경기를 출장하진 못했지만 어쨌든 놀라운 기록, 그 다음부터는 설명이 필요 없다.
한국에서 통산 타율 0.380을 기록한 선수, 심지어 메이저리그에 데뷔 이후에도 통산 타율이 3할 4푼 밑으로 내려간 적이 없다.
현재 메이저리그 통산 타율은 0.359, 시간이 지날수록 떨어지긴 커녕 꾸준히 오르고 있다.
투수의 분업화가 이뤄진 시대에서 이게 가능한 기록인가. 어떻게 보면 그 어떤 홈런타자보다 더 위대한 업적을 세운 것, 심지어 좌타자인데 좌투수 상대로 통산 0.354을 기록하고 있다.
우투수와의 격차는 겨우 9리, 역대 메이저리그에서 2000타석 이상을 소화한 선수 중, 이 정도 균형감을 갖춘 선수는 단 4명 뿐이다.
말이 필요 없는 안타 기계,
전문가들도 역대 최고의 컨택능력을 갖춘 선수라는 평가에 동의했다.
“그래봤자 안타는 안타다. 안타가 팀 승리에 얼마나 도움이 되겠나.”
이때 LA에서 비꼬는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주인공은 마이클 헤인스, 시즌 초반 약간 헤멨던 마이클 헤인스는 시즌 성적을 0.286, 28홈런으로 끌어올렸다.
시즌 초부터 이인영과 말싸움을 주고 받은 사이, 타율 경쟁은 불가능하지만 홈런이라면 어떻게든 되지 않겠나.
마이클 헤인스는 지금 시대에서 타자는 타율이 아니라 홈런으로 인정을 받는 시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내가 너보다 낫다는 소리, 이인영은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줬다.
[따악~!!]
“이번에는 2루 옆을 빠져 나가는 안타입니다!! 이인영 선수는 오늘도 멀티 히트!! 9경기 연속 멀티 히트 행진을 이어갑니다!!”
“안 된다 절대 불가능하다, 말이 많았는데 가능한 거였네요. 누가 현대 야구에서 4할이 불가능하다고 했습니까? 이 선수가 그 말에 도전장을 던지고 있습니다.”
8월 들어 불타오르는 타격감,
104경기에서 356타수 135안타를 기록한 안타 머신은 8월 들어 77타수 39안타를 기록했다.
433타수 174안타, 시즌 타율은 0.401로 올랐다.
124경기를 넘긴 시점에서 4할 타율을 유지한 선수는 1996년 니콜라스 키텔 이후 처음,
니콜라스는 9월 중순까지 0.397를 유지했지만 마지막 일정에서 타율이 급격히 떨어지며 0.382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그래도 역사에 남을 시즌이었다는 건 분명, 이인영의 메이저리그 4할 도전기는 어떤 결과를 맞이할 것인가.
다른 선수들이 홈런을 펑펑 쳐대는 와중에도 이인영은 무자비한 안타 행진으로 여론의 주목을 끌었다.
[이인영, 8월 타율 0.508로 종료]
[통산 7번째 월간 MVP 수상]
물론 8월 MVP도 이인영의 몫, 8월 동안 홈런 8개를 뽑아낸 마이클 헤인스는 2위에 머물렀다.
그렇게 홈런을 잘 때려내는 양반이 왜 팀의 패배는 막지 못한 걸까.
마이클 헤인스가 날아다니는 동안 LA는 12승 14패, 반타작도 거두지 못했다. 반면 필라델피아는 18승 7패를 거두며 내셔널리그 중부지구 1위를 유지, 이인영은 8월에 결승타 6개를 뽑아내는 대활약을 펼쳤다.
“안타는 팀 승리에 도움이 못 된다고 누가 그러지 않았나요? 팀 승리도 놓치고 MVP도 놓쳤네요.”
유리한 입지를 선점한 MVP는 바로 언론 플레이를 펼쳤다.
홈런만 칠 줄 알지 팀 승리에 도움이 못 되는 LA의 어떤 선수,
망신을 당한 헤인스는 이를 갈았고, LA의 에이스 킨사이드도 이인영의 활약에 박수를 보냈다.
“4할 타율 꼭 달성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유가 뭐죠?”
“그 녀석이 높은 곳에 올라가야 떨어트렸을 때 더 큰 쾌감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킨사이드는 이인영에게 홈런만 6개를 허용할 정도로 약한 모습을 보였다.
LA가 8월 들어 주춤했지만 포스트 시즌 진출에는 별 무리가 없다.
그건 필라델피아도 마찬가지, 4할 달성 도전장을 던지면서 여론의 스포트 라이트를 받고 있는 호적수, 이런 때 포스트시즌에서 떨어뜨려야 더 큰 쾌감을 느낄 수 있지 않겠나.
이인영도 바로 답장을 보냈다.
“24승 달성하고 지옥으로 떨어져라. 내가 살짝 밀어줄게.”
올 시즌 통산 2번 째 20승 달성에 도전하고 있는 킨사이드, 20년 만의 24승 달성이 유력하다.
높은 곳에서 밀어주고 싶은 건 나도 마찬가지, 누가 더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지 두고 보자며 불꽃을 튀겼다.
* * *
“야, 너 소식 들었냐?”
“뭐가?”
“킨사이드 체포됐데, 지금 난리 났잖아.”
시간은 흘러 9월 7일, 이인영은 클럽하우스에서 놀라운 소식을 접했다.
지난 5일, 킨사이드가 자택에서 체포됐다는 것, 더 놀라운 건 그 뒷배경이다.
지난 2월 26일, 스프링캠프를 마치고 돌아가던 킨사이드는 기둥을 들이받는 사고를 냈는데 다행히 인명 사고는 없었지만 킨사이드는 6개월의 보호 감찰, 벌금을 350달러를 내고 풀려났다.
구단에서 어떻게든 덮었지만 또 이런 일이 벌어진 것, 도대체 운전을 어떻게 하길래 머그샷까지 찍은 건가.
관련 규정에 따라 재판이 열릴 때까지 자세한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일각에선 음주운전을 하다 사고를 낸 게 아니냐는 주장까지 나왔다.
사실이라면 시즌 아웃은 당연, 상황에 따라 영구제명도 가능하다.
여론의 관심은 킨사이드의 입에 쏠렸고, 9월 9일 문제의 슈퍼스타는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집 근처에 주유소가 있어서 잠깐 갔다 오면 괜찮을 줄 알았습니다. 구단과 팀 동료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합니다.”
혈중 알코올 농도 0.08%를 넘기지 않아 기소는 면한 상황, 그렇다고 해도 메이저리그 사무국의 처분까지 피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메이저리거의 품격을 떨어트린 행위, 오브라이언 커미셔너는 킨사이드에게 30경기 출장 정지 처분을 내렸다.
사건을 덮기에 급급했던 LA 구단도 벌금형을 당했고, 이렇게 킨사이드는 생애 최고가 될 수도 있었던 시즌을 자기 발로 차버렸다.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선수, 욕할 가치도 없다는 생각에 입을 다물었다.
밀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지옥으로 떨어진 바보, 반면 이인영은 더 높은 곳을 향해 묵묵히 발을 내디뎠다.
[따악~!!]
“강한 타구!! 아~ 이게 우익수 정면으로 가는 군요!! 너무 아쉽습니다.”
“이렇게 되면 시즌 타율 0.396네요. 시즌 막판이라 타율 1리 올리는 것도 만만치 않은데, BABIP 신의 가호가 있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8월 말까지만 해도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만만치 않은 4할 도전기,
타율 0.396, 35홈런, 118타점, 출루율 0.472, 장타율, 0.720
이 성적 앞에 누가 불만을 표하겠나. 전문가들은 성공하든 실패하든 올 시즌의 활약은 메이저리그 역사의 전설이 될 거라며 입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