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화. 너보다는 낫다 (4)
따악~!!
“와아아~!!”
계속 되는 경기, 이인영의 홈런으로 4대 4 동점을 만든 필라델피아는 5회 초, 한점을 추가하며 경기를 뒤집었다.
하지만 시카고도 6회 말, 윌리엄 스튜어트의 적시타가 터지면서 다시 동점, 양 팀은 7회에 다시 한 점을 주고받으며 긴장감을 유지했다.
“자, 여기서 소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세인트루이스의 테드 반디 선수가 오늘 4홈런 11타점을 기록했다는 군요.”
“오~ 그렇습니까? 이거 이인영 선수도 바짝 긴장해야 되겠는데요.”
“잠깐만요. 4홈런이면 홈런은 이미 역전된 거 아닙니까?”
이때 한국 중계석은 타구장 소식에 귀를 기울였다.
데뷔 시즌에 36홈런을 기록한 테드 반디, 22살 밖에 안 된 선수가 그런 파워를 발휘할 줄 예상한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하지만 세인트루이스의 감독 데이비드 셰퍼는 이런 전개를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5년 전, 셰퍼 감독은 팀 배팅 코치였는데, 여드름 자국이 채 아물지 않은 어린 선수의 타격을 보고 경악했다.
“자네 몇 살이라고 했지?”
“열일곱 살이요.”
“하하~ 지금 메이저리그에서 쳐도 25개는 칠 것 같은데?”
당시 셰퍼 코치는 테드 반디가 메이저리그를 뒤흔들 대선수가 될 거라며 떠벌리고 다녔다. 하지만 누구도 그 말을 믿지 않았다.
1더블A에서 68경기 동안 홈런을 하나도 기록하지 못한 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25~ 30홈런을 치다니, 립 서비스가 너무 과한 거 아닌가.
하지만 4년 동안 실력을 갈고 닦은 반디는 셰퍼 감독의 말을 허풍에서 예언으로 바꿔버렸다.
올 시즌은 65경기 만에 100안타를 돌파, 약간 아쉬운 평가를 받은 정확도까지 갖춰버렸다.
오늘 4홈런, 11타점 활약을 하면서 시즌 성적은 타율 0.349 – 24홈런 - 70타점으로 상승, 이인영의 MVP 2연패를 저지할 선수로 떠올랐다.
이인영을 응원하는 한국 팬 입장에선 마냥 기뻐할 수 없는 전개, 그건 해설위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자, 8회 초 필라델피아의 공격입니다. 선두타자는 잉글리시아, 오늘 4타수 2안타, 시즌 타율은 0.372까지 올랐습니다.”
“이인영 선수가 올 시즌은 3관왕 달성이 쉽지 않을 것 같네요. 작년 시즌은 이렇다 할 라이벌도 없었는데, 올 시즌은 뛰어난 타자들이 너무 많아요.”
“그건 이인영 선수도 바라던 바겠죠. 다른 선수들도 다 잘해야 본인이 최종 승자가 됐을 때 더욱 빛나는 거 아니겠습니까? 이인영 선수도 한 경기에서 4홈런 치고 그러면 되는 겁니다.”
잉글리시아는 다섯 번째 타석에서도 안타를 추가했다.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타격 페이스, 다른 선수가 부진해서 내가 잘되길 바라는 게 진정한 스타인가. 이인영은 그런 어부지리는 사양했다.
‘네가 3안타 치면 나는 4안타 친다.’
초구는 바깥쪽 빠지는 볼, 약간 높게 들어온 몸 쪽 공을 외야로 날려 보냈다.
‘잡는다!! 잡을 수 있어!!’
시카고의 우익수 페렌자는 펜스를 향해 전력 질주 했다.
넘어갈 것 같진 않은 타구, 그런데 워닝 트랙에 도달하자 생각이 바뀌었다. 점프하지 않으면 무조건 넘어갈 타구, 온 힘을 다해 날아올랐다.
“와아아~!!”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슈퍼 캐치, 1루를 지나 2루로 향하던 이인영은 허공에 소심한 발길질을 날렸다.
비거리는 그저 그랬지만 워낙 빨랐던 타구, 야수가 잡을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내가 잡았어!! 잡았다고!!”
한편, 2루수에게 공을 넘긴 페렌자는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커버를 들어온 중견수가 알려주기 전까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채지 못했다. 본인도 믿을 수 없는 나이스 캐치, 다음 루이스 햄도 땅볼로 물러나면서 필라델피아의 8회 초 반격은 득점 없이 끝났다.
이날 경기는 9회 말, 시카고의 끝내기 안타로 종료, 최선을 다했지만 패배한 필라델피아 선수단은 말없이 클럽하우스로 향했다.
‘하아~ 그때 내가 실책만 안 했어도’
세스 브런들은 마음속으로 자신을 질책했다.
그때 그 형편없는 송구만 아니었다면 대량 실점은 없었을 텐데, 몇 번을 생각해도 아쉬웠다.
친구의 홈런성 타구가 잡혀서 패배한 건가 아니면 내 실책 때문인가.
분명한 건 필라델피아는 패했다는 것, 이런저런 변수가 뒤섞여 결과가 나는 것 아닌가. 경기 중 브런들의 실책을 질책했던 이인영도 이번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 몇 시 출발이지?”
“지금 가야 돼.”
필라델피아 선수단은 패배의 아픔을 다독일 여유도 없이 세인트루이스로 이동했다.
6일 동안 쉴 틈 없이 이어지는 원정 일정, 선수들이 공항으로 가는 길을 서두르는 사이 클러비들은 선수들이 쓸 짐을 트레일러로 옮겼다.
평소라면 비행기 안에서 카드 게임을 하며 돈을 낭비 했겠지만 이날은 유독 조용한 분위기, 그만큼 오늘 패배는 선수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연패에 빠진 건 아니지만 다 잡았던 경기를 놓친 아쉬움은 그만큼 큰 법, 이인영은 이런 분위기를 긍정적으로 여겼다.
‘이 팀도 많이 달라졌네.’
메이저리그에 처음 입성했을 때만 해도 필라델피아 선수단은 패배에 이렇게 민감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평소처럼 맥주를 즐기고 카드 게임으로 돈을 날리는 일상, 어느 선수는 총괄 매니저에게 유명 가수의 콘서트 티켓을 끊어달라고 요구했다.
패배 자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해야 하나.
그 때에 비하면 지금은 정말 많이 바뀐 것, 2년 전 맛 본 월드시리즈 우승은 분위기 전환의 계기가 됐다. 계속 이겨 봐야 승리를 갈망하는 법, 다음 경기는 더 나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패배는 잊고 잠시 눈을 붙였다.
* * *
“매일 떠오르는 태양에 경의를 표할 인간이 몇 명이나 있겠는가. 대단한 일도 반복되면 인간은 싫증을 느끼기 마련이다.”
필라델피아와 세인트루이스의 일전을 앞두고, 필라델피아의 지역 기자 숀 말컴은 기사를 내보냈다.
이인영은 메이저리그 데뷔 시즌부터 지금까지 누구보다 뛰어난 활약을 했다. 평균 타율 0.356, 매년 30홈런을 넘기는 파워, 뛰어난 주루 플레이와 수비 능력, 스타성까지 뭐 하나 빠질 게 없는 선수
그런데 세인트루이스 여론은 이젠 테드 반디의 시대가 시작됐다는 뉘앙스의 기사를 내보냈다.
이인영이 지금까지 얼마나 위대한 시즌을 반복했는지 잊은 건가?
하지만 태양은 내일도 그 다음 날도 어리석은 인간들에게 빛을 선물할 뿐, 이인영은 별 다른 반응 없이 시리즈 1차전을 맞이했다.
‘태양도 언젠가는 지는 법, 하지만 오늘은 아니다.’
어느덧 프로 경력 10년 차, 내가 언제까지 지금 기량을 유지할 수 있을까. 적어도 오늘 당장 떨어질 실력은 아니다.
언젠간 젊고 실력 있는 선수들이 나타나 내 자리를 차지하겠지만, 30살 밖에 안 된 내가 새파란 놈들에게 가려져야 하나.
첫 타석부터 실력을 발휘했다.
[따악~!!]
“잘 맞은 타구가!! 유격수 위로 넘어갑니다!! 2루 주자는 홈으로!! 홈으로!! 들어옵니다!! 필라델피아가 이인영 선수의 적시타로 선취점을 획득하는 군요!!”
“이인영 선수야말로 진정한 태양입니다. 이렇게 꾸준한 선수가 세상에 어디에 있습니까? 테드 반디 선수를 깎아내리는 건 아니지만 이 선수가 앞으로 5~ 6년 동안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죠.”
“하하~ 박한우 위원께서 지금 화가 많이 나셨습니다.”
“이인영 선수는 태양 맞습니다. 올 시즌도 내년에도 변함없이 팬들에게 즐거움을 주겠죠.”
임선우 위원도 한마디 거들었다.
메이저리그에서 10년을 보냈으니 저곳에서 살아남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살아남는 것도 어려운데 5년 차 시즌까지 최고의 성적을 유지하고 있는 선수, 이게 태양이 아니면 뭔가.
그 어떤 위대함도 반복되면 싫증을 느끼는 게 인간, 숀 말컴의 기사는 임선우의 가슴을 관통했다.
‘나도 잊지 말라고, 언젠간 태양이 될 남자니까.’
계속 되는 필라델피아의 공격, 타석에 들어선 루이스 햄은 의욕을 끌어올렸다.
테드 반디의 활약에 가려져서 그렇지, 루이스 햄은 4월만 해도 여론의 관심을 독점했다.
4월에만 12홈런, 5월에 잠시 주춤했지만 6월부터 페이스를 회복했다.
현재 성적은 타율 0.271, 홈런 20개, 68타점
최근 10경기 성적만 따지면 27타수 10안타, 타율 0.370에 홈런 1개, 9타점의 맹활약이다. 홈런이 잘 안 나오고 있지만 출루율은 0.450, 타격 기술이 발전한건 아니지만 경험이 쌓이면서 볼을 보는 능력이 좋아졌다.
‘내가 만만하냐? 만만하냐고?’
요즘 필라델피아를 상대하는 투수들은 3번 타자 이인영을 거르고 루이스에게 승부를 거는 경향이 있다.
처음엔 자존심이 상했지만 이런 것도 활용하는 게 내 역할, 덕분에 타율과 출루율이 급격히 상승했다.
아직 미숙하지만 언젠간 메이저리그를 대표할 선수, 자신감을 가지고 초구를 기다렸다.
“지켜봅니다. 카운트는 원 볼 노 스트라이크”
“루이스 선수가 5월 이후 달라진 게 바로 이런 점이죠. 초구를 성급하게 건드리고 유인구에 속는 패턴이 사라졌습니다.”
“루이스 선수는 빗맞아도 담장을 넘길 수 있는 파워가 있거든요. 그리고 타율이 낮은 것도 아닙니다. 2할 7푼이면 지금 시대에선 준수한 거죠.”
“컨택률도 79%, 평균에 거의 비슷합니다. 장타력이 약간 주춤하고 있는데, 임선우 위원의 말씀대로 이 선수는 정확히만 쳐도 담장을 넘길 수 있거든요. 안타가 꾸준히 나오고 있으니 조만간 소식이 있겠죠.”
말이 끝나기 무섭게 루이스는 2구를 잡아당겨 좌측으로 보냈다.
3층 덱 8번 째 열에 떨어지는 대형 홈런, 8일 만에 홈런을 추가한 루이스는 먼저 홈을 밟은 이인영과 손을 맞부딪쳤다.
1회부터 3대 0으로 앞서나가는 필라델피아, 세인트루이스의 데이비드 셰퍼 감독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중심이 저렇게 앞으로 쏠렸는데 파워를 내는 게 가능한가.
테드 반디의 활약도 놀랍지만 상식을 거스르는 루이스의 파워도 대단, 우리 팀은 아니지만 마음속으로 경의를 표했다.
‘어디 보자고, 얼마나 하나’
이어지는 세인트루이스의 1회 말 공격, 1루에 자리를 잡은 이인영은 자세를 낮췄다.
테드 반디는 타구를 띄우는 선수가 아니다. 강하고 빠른 타구로 장타를 생산하는 유형, 옆으로 몸을 날릴 수 있도록 대비했다.
따악~!!
2루 쪽으로 날아오는 강한 타구, 잉글리시아는 사이드 스텝을 밟으며 거리를 좁혀나갔다.
글러브 끝에 걸린 타구, 앉은 자세에서 1루 송구를 했지만 간발의 차로 아웃을 놓쳤다.
드디어 1루에서 만난 이인영과 테드 반디, 두 선수는 한 마디도 주고받지 않았다.
전쟁은 이제 막 시작됐을 뿐, 대화는 몸으로 주고받으면 충분했다.
‘한 번 던져?’
마침 마운드의 존 이스터는 1루수와 눈빛을 주고받았다.
테드 반디는 도루도 할 수 있는 선수, 요즘 사무국은 빠른 경기를 추구한다며 견제구도 제한을 가하고 있다.
그리고 요즘은 견제가 뛰어난 투수가 별로 없는 것도 사실, 이런 환경 덕분에 테드 반디는 리드를 조금 넓게 잡는 편이다.
그 허점을 노린 견제, 이스터는 머릿속의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