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일은 일인자-217화 (217/309)

217화. 너보다는 낫다 (3)

“조금 뒤로 돌려 볼까요?”

“어느 부분이죠?”

“여기입니다.”

6월 27일, 메이저리그 닷컴은 지난 26일에 열린 필라델피아와 시카고의 경기를 분석했다.

이날 경기에서 이인영은 4타수 4안타를 기록하며 시즌 타율을 0.367로 끌어올렸는데, 스트라이크 존 상하좌우를 가리지 않는 타격으로 모두를 경악하게 했다.

배팅 기술만 따지면 의심할 바 없는 현역 메이저리그 최강자, 6년 전 유니폼을 벗고 해설위원으로 전향한 마리아노 스넬은 이인영의 스윙을 분석했다.

“이것 보시죠. 홈플레이트에서 거의 6~ 7인치는 벗어난 볼이거든요. 다른 선수가 이 공을 쳤다면 아마 파울이 되거나 배트가 부러졌을 겁니다. 하지만 결과는 보시다시피 홈런이죠.”

“저렇게 홈런을 칠 수 있는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보시면 손이 먼저 나가고 그 다음에 하체가 따라 움직이죠. 거기다 상체를 조금 더 세우고 있습니다. 손을 더 잘 쓰기 위한 자세죠.”

마리아노 스넬은 현역 시절 배트 스피드로 명성이 자자했다.

일반적인 선수의 배트 스피드가 92마일 정도, 반면 스넬의 최고 배팅 속도는 99마일까지 나왔다.

특히 몸 쪽 깊숙한 공도 두들기는 공격적인 배팅이 인상적이었던 선수, 통산 타율은 0.277로 높지 않았지만 홈런을 344개나 기록하며 장타력을 인정받았다.

몸 쪽 공이라면 누구보다 잘 쳤던 스넬, 스넬은 이인영이 3번째 타석에서 쳐낸 홈런을 최고의 장면으로 뽑았다.

“이건 제가 현역시절 몸쪽 공을 홈런으로 연결했을 때의 모습입니다. 어떤가요? 비교해보면 거의 비슷하지 않습니까?”

“확실히 그렇군요. 그런데 리(Lee)는 메이저리그에 데뷔했을 때 배트 스피트가 느리다는 지적을 받았거든요. 데뷔 시즌 때와 지금을 비교해보면 어떻습니까?”

“한 단계 더 발전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배트 스피드 뿐만 아니라 모든 점에서 말이죠. 인정하기 어렵지만, 리는 제가 현역시절 써먹었던 기술을 저보다 더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3할 6푼이 넘는 타율에 많은 홈런까지 치고 있는 거죠. 약점이 없습니다. 그를 만나는 모든 투수들에게 행운이 있길 바랍니다.”

약간 느리다고 지적을 받은 배트 스피드까지 보완해 버렸으니 이 선수를 누가 막을 수 있겠나.

이인영을 만나는 투수들에게 행운을 빈다는 말은 다음 경기에서 바로 증명됐다.

“자, 이인영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올 시즌 타율 0.367, 홈런 22개, 71타점, 올해도 몬스터 시즌의 조짐이 보이고 있습니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이젠 바운드 볼도 쳐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타격이 완전히 맛이 들었어요.”

“하하~ 무슨 장맛도 아니고 맛이 들었다고 하십니까?”

“비유가 그렇다는 겁니다. 별것도 아닌데 그냥 넘어가시죠.”

[따악~!!]

“말씀 드리는 사이!! 밀어낸 타구가!! 외야로 뻗어 나갑니다!! 중견수!! 중견수가!! 펜스 앞에서 잡아내는군요!! 아~ 이게 잡히나요?”

“아웃은 됐지만 이인영 선수의 파워와 기술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이네요. 투수도 흠칫 했을 겁니다.”

시카고 벤치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게 넘어갔으면 1회부터 3대 0, 어제와 달리 이인영은 하체가 먼저 움직이고 손을 먼저 쓰는 기술로 바깥쪽 코스를 공략했다.

공을 최대한 깊숙이 끌어들여 치는 특유의 타법, 다른 선수라면 파울이 되거나 내야 플라이가 됐을 텐데 홈런성 타구가 나왔다.

어제 몸쪽 승부를 걸었다가 제대로 당한 시카고 배터리는 돌다리도 두들겨 가는 분위기, 첫 타석은 잡아냈지만 다음 승부는 장담하기 어려웠다.

어쨌든 경기는 흘러 2회 말 시카고의 공격, 1대 0으로 뒤진 필라델피아는 1사 주자 1 - 2루 위기에 몰렸다.

‘아~ 이건 아니잖아.’

이인영은 좌익수 세스 브런들의 플레이에 실망했다.

외야 깊숙한 곳에 처박힌 타구, 여기까진 그러려니 할 수 있다.

문제는 컷 오프, 외야 송구 중 가장 질이 나쁜 게 컷 오프맨의 머리를 넘기는 송구다.

낮게 송구를 하는 게 컷 오프 플레이의 기본, 그래야 바운드 볼이 되더라도 유격수나 다른 내야수가 공을 처리할 수 있는데, 유격수 머리 위를 넘기는 송구 때문에 내야수는 모두 바보가 됐다.

보이지 않는 실책으로 2루 주자와 1루 주자는 모두 득점, 1사 주자 2루에서 시카고의 공격은 계속 됐다.

[따악~!!]

“아~ 이 타구는 다시 우익수 깊은 곳으로 날아가는군요. 2루 주자는 홈으로!! 타자 주자는 1루를 돌아 2루!! 3루!! 내친 김에 홈까지!! 홈에서 승부~!! 아웃입니다!! 아웃!!!! 필라델피아가 추가 점은 막아냅니다!!”

“지금은 사실 릴레이가 매끄럽진 않았는데, 오드레이 선수가 조금 무리를 했네요.”

임무를 완수한 2루수 프랭크 토마스는 1루수 이인영과 손가락 세리머니를 주고 받았다.

눈에 띄진 않았지만 이인영은 트레일 맨 역할을 완벽히 수행해 냈다.

트레일 맨은 컷오프 맨 뒤에 머무르며 송구를 할지 말 것인지, 던지면 어느 베이스로 던져야 하는지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당연히 내야와 볼의 움직임을 빠르게 판단해야 하는데, 외야수의 송구가 나쁘면 컷 오프 맨이 송구를 하지 못하도록 저지해야 한다.

‘이건 좀 위험한데.’

사실 이인영은 토마스의 홈 송구를 저지하려 했다.

우익수 루이스 햄은 송구는 괜찮지만 수비 범위나 기본적인 외야 수비 능력이 떨어진다.

지금도 마찬가지, 글러브로 잡을 게 아니라 손으로 잡고 바로 던져줘야 할 것 아닌가.

약간 늦었지만 어쨌든 토마스에게 제대로 전달된 송구, 거기다 토마스는 후속 동작을 위해 가슴 높이에서 송구를 받아냈다.

이 정도면 홈에서 승부해도 되겠지, 이인영이 OK 사인을 내리면서 홈 승부가 이뤄졌고 결과는 아웃, 얼핏보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 가치를 알고 있는 필라델피아 코치진은 박수를 보냈다.

“야, 너 그렇게 송구하면 안 돼. 알고 있잖아?”

“알았어 미안해.”

“그리고 너도, 바로 던져 줘야지 거기서 글러브로 잡으면 안 되잖아?”

“미안해. 주의할 게.”

이닝이 끝난 후, 이인영은 브런들과 루이스를 붙잡고 주의를 줬다.

정말 기본적인 플레이인데 그걸 망각하면서 안 줘도 될 점수를 줬다.

승부의 세계에서 승패는 이런 사소한 실책에서 결정되는 것, 다들 집중하자며 분위기를 다독였다.

잔소리라도 틀린 말은 아니지 않은가. 잘못된 점은 모른 척 넘어갈 게 아니라 바로잡는 게 낫겠지. 하루 이틀 벌어진 일도 아니라 선수들도 다들 납득했다.

‘이제 저 선수 없으면 안 된다.’

필라델피아의 피터 와이즈 감독은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이인영의 가치를 높게 평가했다.

다들 높은 타율과 화려한 타격 기술에 주목하고 있지만, 저 선수의 가치는 그렇게 간단히 평가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누구보다 야구를 잘 이해하고 실전에서 적용하고 있는 선수, 지금 로스터에 포함된 선수들은 주변에서 누가 뭐라고 할 수 있는 레벨이 아니다.

10만대 1이라는 바늘 구멍을 뚫고 올라온 선수들, 세계에서 야구를 제일 잘하는 사람들만 모인 곳이 메이저리그 더그아웃이다.

그 플레이에 질책을 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게 쉬운 일인가. 실제로 지적을 했다가 충돌이 일어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인영이 제기하는 문제는 다른 선수들도 납득하고 있다.

목소리에 권위가 실려 있다는 뜻, 사실상 클럽하우스의 리더 아닌가. 저 선수가 떠나면 필라델피아 벤치에서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선수가 있나?

문제는 이런 사정을 구단 관계자들은 잘 모르고 있다는 것, 얼마를 주고 잡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그냥 대체 불가능한 선수다.

놓치고 후회해 봤자 무의미, 경기가 끝나면 다시 한 번 구단을 설득해 보기로 했다.

“자, 이제 3회 초 필라델피아의 공격으로 이어집니다. 선두 타자는 산체스, 첫 타석에서 3루 땅볼로 물러나면서 시즌 타율은 0.221로 내려 앉았습니다.”

“홈런은 많이 쳐주고 있는데 타율이 너무 낮죠. 2할 5푼 정도는 쳐줬으면 좋겠는데 제가 너무 무리한 욕심을 부리는 건가요?”

[따아악~!!]

“말씀 드리는 사이!! 초구 타격!! 배트를 내던졌습니다!! 한참을 날아가는 이 타구는 외야 깊숙한 곳으로 사라지는군요!! 산체스 선수의 홈런으로 필라델피아가 한 점을 만회합니다!! 시즌 19호 홈런!!”

“역시 파워 하나는 대단하네요. 걸리면 용서 없습니다.”

홈을 밟은 산체스는 더그아웃에서 동료들과 하이파이브를 나누며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포수가 2할 2푼 치면 어떤가. 홈런 페이스는 무려 44개, 마침 눈에 띈 이인영에게 장난을 걸었다.

“내가 다른 건 몰라도 파워는 너보다 낫지 않을까?”

“20개 짜리가 22개 짜리한테 개기는 거냐?”

이인영은 산체스의 하극상을 용납하지 않았다.

나보다 홈런도 적은 자식이 무슨 근거로 나보다 파워가 낫다는 건가. 다음 타석에서 두고 보자며 전의를 불태웠다.

초반에 수비 실책이 겹치면서 끌려 갔지만 필라델피아는 산체스의 홈런으로 분위기 반전에 성공, 4회 초 공격에서 선두 타자로 나선 세스 브런들은 좌익수 앞 안타로 수비 실책을 만회했다.

“자, 이제 잉글리시아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오늘 첫 타석은 2루 땅볼, 시즌 타율은 0.367로 내려 앉았습니다.”

“올 시즌 타율왕은 필라델피아 집안 싸움이라고 봐도 좋겠네요. 딱히 다른 경쟁자들이 안 보입니다.”

“글쎄요. 세인트루이스의 테드 반디 선수가 시즌 타율이 0.344까지 올라왔거든요. 아직 시즌 중반이라 어떻게 될지는 장담 못하겠습니다.”

말이 끝나자 마자 잉글리시아는 2구를 받아쳐 중견수 앞에 타구를 떨어트렸다.

임팩트는 떨어져도 꾸준한 안타로 커리어하이 시즌을 만들어 가는 중, 좋은 경쟁자가 생긴 이인영도 의욕을 끌어올렸다.

‘다 이긴다. 너희들보다는 내가 낫다고’

시즌 초반엔 LA의 마이클 헤인스와 라이벌 구도를 이뤘지만 그 딴 녀석은 이제 잊었다.

타율 0.277에 12홈런에 그치고 있는 녀석이 나와 비교될 수 있나.

시즌 20홈런을 터뜨린 산체스와 잊을만하면 한 발 앞서나가는 잉글리시아도 좋은 라이벌, 그래도 최후에 웃는 자는 나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 자식은 답이 없다.’

한편, 시카고 배터리는 철저한 바깥쪽 승부를 택했다.

바운드 볼 빼고 다 때려내는데 뭘 어떻게 하나, 4대 1로 앞서고 있지만 여기서 한 방 맞으면 4대 4 동점, 함부로 들어가긴 어려웠다.

이번에도 바깥쪽으로 제법 벗어난 공, 원 볼 원 카운트에서 크리스 베일의 94마일 빠른 볼을 외야로 밀어냈다.

약간 힘이 부족해 보이는 타구, 전력을 다해 1루로 뛰었지만 펜스 앞에 앉아 있던 꼬마 팬 덕분에 수고를 덜었다.

‘화도 못내겠네.’

우익수 루이스 페렌자는 화를 내려다 글러브에 주먹을 박아 넣었다.

상대는 꼬마인데 화를 내서 어쩔 건가. 거기다 워낙 낮고 빠르게 날아온 타구, 타이밍에 맞춰 점프를 하려 했는데 꼬마 팬의 손이 더 빨랐다.

‘아주 멋진 수비였다.’

한편, 이인영은 1루를 돌면서 외야를 향해 손가락 세리머니를 날렸다.

잡힐 수도 있었는데 꼬마 팬의 순발력 덕분에 얻어 걸린 홈런, 역시 나는 운이 따라주는 놈이라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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