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화. 너보다는 낫다 (2)
[다들 땅콩을 드세요.]
6월 11일, 이인영은 땅콩 회사와 광고 계약을 맺었다.
메이저리그와 땅콩의 인연은 무려 9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 간다.
‘날 야구장으로 데려다주오.’라는 노래의 가사에도 땅콩을 사달라는 내용이 들어 있을 정도, 하지만 다양한 먹거리가 발명되면서 땅콩 소비량은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
한때 최고 7백 2십만 봉지까지 팔렸던 땅콩은 최근 4~ 5백 만 봉지로 감소, 메이저리그 구단에 땅콩을 납품하는 회사는 고심 끝에 이인영을 광고 모델로 세웠다.
“이인영 선수는 더그아웃에서 어떤 간식을 드십니까?”
“땅콩이요.”
계기는 정말 사소했다.
2시간을 넘게 하는 야구 경기, 관중들이 심심한 입을 달래기 위해 간식을 먹는 것처럼 선수들도 주전부리로 허기를 달랜다.
과자나 초코바 해바라기 씨 등, 많은 간식거리가 있지만 이인영은 땅콩을 많이 먹는 편 특별한 이유가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솔직한 답을 내놨다.
“땅콩이 근육 증강에 좋다는 기사를 봤거든요.”
“당신은 평소에도 그렇게 세세하게 건강을 관리합니까?”
“글쎄요. 일부러 관리하는 건 아니고 평소에도 좋아했습니다. 몸에 좋다는 말을 듣고 더 많이 먹게 된 것 뿐이죠.”
땅콩 납품 회사는 이 인터뷰에 주목했다.
먹기만 해도 건강에 도움이 되고 뭣보다 값이 싸지 않나. 여기에 밀어 쳐도 홈런을 때려내는 이인영의 이미지가 대중에 영향을 줬다.
필라델피아 홈 구장 TNT파크의 땅콩 판매량은 일주일 만에 43% 증가, 덕분에 이인영은 짭짤한 부수입을 올렸다.
“정말 땅콩 많이 먹어요?”
“그런데?”
“그럼 증거를 보여줘요.”
그러던 어느 날, 이인영은 구단 사인회에서 꼬마 팬의 질문을 받았다.
이 사람이 야구를 잘하는 건 정말 땅콩 덕분인가, 나도 훗날 야구 선수가 되고 싶은데 땅콩이 비결이라면 지금부터 먹어야겠지.
그런데 꼬마는 땅콩을 좋아하진 않았다. 광고 찍고 돈 벌려고 거짓말을 한 건 아닌지, 꼬마 팬의 당돌한 질문에 슈퍼스타는 헛웃음을 지었다.
“여기 땅콩 좀 주세요.”
“하하~ 네~ ”
회사 관계자는 허허 웃으며 땅콩 봉지를 전달했다.
평소처럼 시작된 간식먹기, 하지만 꼬마 팬은 의심의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겨우 그것만 먹어도 돼요? 좀 더 먹어야 효과가 있는 건 아닌가요?”
“한꺼번에 많이 먹는 것보다 꾸준하게 먹는 게 중요한 거야.”
“꾸준하게요?”
“그래, 내가 야구를 잘하는 이유는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기 때문이야.”
땅콩이 몸에 좋다고 한 번에 많은 양을 털어먹고 당분간 안 먹어도 되는 건가. 몸에 좋은 음식도 조금씩 꾸준히 먹어야 효과를 보는 것처럼, 뭐든 꾸준히 해야 실력이 느는 거다.
이인영은 지금까지 그 원칙을 깨지 않았다.
하루에 조금씩 매일 반복되는 훈련, 그런데 그것도 못해서 뒤처지는 사람들도 많다. 뭔가를 잘하고 싶다면 꾸준히 하는 게 비결, 그제야 꼬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 나 땅콩 사줘요.”
“정말 먹을 거니?”
“네에~ ”
사인회가 끝난 휘, 꼬마 팬은 땅콩을 손에 쥐고 관중석에 앉았다.
평소 과자만 먹는 아들이 이렇게 변하다니, 누군가를 동경하게 되면 변하는 건가. 엄마는 열심히 입을 움직이는 아들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자, 1회 초 뉴욕 고다마이츠의 공격, 크리스 영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올 시즌 타율 0.202 - 홈런 8개 - 19타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추락이 너무 급격하네요. 이런 선수가 꾸준히 출장 기회를 얻고 있다는 건 뉴욕의 현 상황이 그만큼 참담하다는 걸 증명하는 거겠죠?”
지난 2025년, 크리스 영은 35홈런 – 28도루를 기록하며 아메리칸 리그 신인왕을 차지했다.
타율이 낮고 선구안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았지만 어쨌든 다음 해에도 22홈런을 기록하며 주전 자리를 확보, 2027년에는 31홈런 33도루를 기록하며 MVP 투표 4위에 올랐다.
2028 시즌이 끝나고 뉴욕과 6년 9500만 달러 대형계약을 맺었지만 이때부터 내리막길, 작년 시즌은 타율 0.202, 홈런 12개라는 충격적인 성적을 찍었다.
2할을 겨우 넘는 타율은 올해도 그대로, 앞으로 3년 5000만 달러 계약이 남아 있는데 트레이드도 못 하니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뉴욕 고다마이츠 구단주 팻 햄스턴은 ‘우리는 돈을 주고 쓰레기를 처리해주고 있다.’라며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냈다.
‘내가 쓰레기라고?’
크리스 영은 구단주의 잔소리에 불만을 품었다.
날 원해서 계약을 맺어놓고 그런 소리를 하면 뭐 어쩌라는 건가. 코흘리개 말장난도 아니고 되돌릴 수 없는 계약, 구단주는 물건을 사고 마음에 안 든다며 환불을 요구하는 어린애 같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물론 뉴욕 여론은 팻 햄스턴 구단주와 같은 생각, 궁지에 몰린 크리스 영은 언제 쫓겨날 지 모르는 신세에 놓였다.
[뉴욕, 올해는 이인영 영입할까?]
[가능성은 충분하다.]
공교롭게도 최근 뉴욕은 트레이드 루머에 휩싸였다.
팻 햄스턴 구단주가 크리스 영을 방출하고 이인영을 영입할 거라는 소문, 뉴욕 고다마이츠는 월드시리즈 28회 우승을 달성한 메이저리그 최고 명문 팀이지만 최근 21년 동안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다.
그 사이 지역 라이벌 보스턴은 4번이나 우승을 차지, 뉴욕은 언제나 최고의 팀이라는 자존심에 금이 가버렸다.
어떤 출혈을 감수해서라도 명문 구단을 재건해야 하는 상황, 물론 필라델피아 팬들은 그런 소문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힘 내라고 쓰레기!! 충분히 할 수 있잖아?!!”
“넌 원래 타율은 형편 없었잖아?!! 홈런이라도 많이 치라고!!”
응원과 비난이 묘하게 섞인 관중석, 분위기에 휩쓸린 크리스 영은 바깥쪽 공을 힘껏 잡아당겼다.
“아~ 이런 멍청이가!!”
“네가 아웃을 당할수록 우리가 불안해 진다고!!”
“이 쓰레기야!! 너 같은 건 우리도 원하지 않아!!”
결과는 중견수 플라이, 이인영은 입꼬리를 들썩였다.
역시 재미있는 필라델피아 팬들, 다음 타석에서 내가 홈런을 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어쨌든 뉴욕의 1회 초 공격은 득점 없이 종료, 필라델피아의 1회 말 공격이 시작됐다.
1번부터 6번까지 빈틈 없이 채워진 핵타선, 선두 타자 세스 브런들은 중견수 플라이로 아웃 됐지만 후속 타자 잉글리시아가 볼넷으로 출루했다.
“자, 이인영 선수가 오늘 경기 첫 타석을 맞이합니다. 시즌 타율 0.351, 홈런 17개, 43타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프트가 의미가 없다는 건 뉴욕도 알고 있겠죠. 역시 내야진은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외야에는 약간 변화가 있네요. 그래봤자 넘기면 그만입니다.”
작년 시즌, 이인영은 당겨친 타구가 42%, 센터로 보낸 타구 33%를 기록했다.
몸 쪽 공을 잡아당기면서 플라이볼은 47%까지 증가, 하지만 올해는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당겨친 타구는 37%, 센터로 보낸 타구는 35%, 밀어친 타구가 28%, 땅볼 비율도 33%에서 41%로 늘었다.
땅볼이 나오면 어떤가. 치고 열심히 달리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가진 선수, 여느 좌타 거포들과 전혀 다른 성향을 보이기 때문에 시프트가 큰 의미가 없다.
그렇다고 장타력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라 깊은 곳에 자리를 잡은 외야진, 덕분에 가볍게 밀어쳐도 안타가 나오고 있다.
다른 건 몰라도 정확도 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선수, 그 진가는 첫 타석부터 발휘됐다.
[따악~!!]
“밀어낸 타구가!! 다소곳하게 외야에 안착합니다!! 이인영 선수는 오늘도 안타를 추가!! 27경기 연속 안타 행진을 이어갑니다.”
“이명한 캐스터께서 말씀 잘하셨네요. 지금 안타는 화려한 화장을 한 미녀보다는 청순한 아가씨로 비유할 수 있겠습니다.”
“하하~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만큼 기본기에 충실한 스윙이라는 뜻이죠. 아니, 제가 말을 잘못한 것 같습니다. 화려한 미녀가 맞겠네요.”
박한우 위원은 메이저리그의 타격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KBO에는 아직 생소한 무빙 패스트볼, 투심을 던지는 선수도 별로 없다.
빠른 볼이 크게 변하지 않기 때문에 한국 타자들은 중심을 먼저 이동시키고 타격을 하는데, 이러면 몸의 중심이 앞쪽으로 이동하면서 타격이 된다.
메이저리그는 그 반대, 공이 워낙 심하게 변하기 때문에 팔꿈치를 몸에 붙여놓고 짧게 치는데 중심도 앞발이 아닌 뒷발에 남아 있다.
이론이 그렇다는 거지, 그걸 실전에서 응용하는 게 쉬운 일인가.
경이롭다는 말 밖에 안 나오는 양아들의 타격 실력, 겉보기엔 심심한 안타지만 박한우 위원은 이런 타격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소감을 남겼다.
따악~!!
“와아아~!!”
이인영은 2번 째 타석에서도 바깥쪽 공을 밀어냈다.
툭 건드린 것 같은데 쭉 뻗어나가는 타구, 시대를 거스르는 타격에 뉴욕 선수단도 할 말을 잃었다.
‘더는 안 되겠다.’
경기는 흘러 6회 말 필라델피아의 공격, 타석에는 이인영, 뉴욕의 포수 마이크 서튼은 몸쪽을 요구했다.
바깥쪽을 계속 공략당하고 있으니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투수도 고개를 끄덕였다.
[따아악~!!]
“때렸고!! 배트를 던졌습니다!! 계속 뒤로 가는 타구!! 담자~ 앙!! 넘어갔습니다!!!! 이인영 선수의 시즌 18호 홈런!! 오늘 3타수 3안타!! 그 어떤 공도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하지 못합니다!! 스코어 8대 2!! 필라델피아가 점수 차를 더욱 벌립니다!!”
“더는 방법이 없네요. 어떤 코스로 던져도 다 때려내고 있습니다.”
뉴욕의 감독 댄 오글리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관중의 환호를 업고 베이스를 도는 주자와 표정 없는 얼굴로 포수가 던져준 공을 받아든 투수, 이런 장면이 오늘만 네 번 째다.
맞았다 하면 외야로 뻗어 나가는 필라델피아 타선, 땅볼만 때리고 있는 뉴욕 타자들과 너무 비교되는 거 아닌가.
이인영 한 명 영입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닌데 본질을 잘못 짚고 있는 구단주, 참을성 없는 여론도 쉴 새 없이 선수단을 쪼아대고 있다.
메이저리그 최고의 명문 팀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된 건지, 오글리 감독은 아무것도 못하고 팀의 패배를 지켜봐야 했다.
“오늘로 6연패 째입니다. 뭔가 대책이 필요한 거 아닙니까?”
“대책을 알고 있다면 벌써 했겠지요.”
경기가 끝난 후, 오글리 감독의 인터뷰가 도마 위에 올랐다.
선수들이 제 역할을 못해주는데 뭘 어쩌라는 건지, 이때 한 기자가 민감한 질문을 던졌다.
“크리스 영을 방출하고 리(Lee)가 영입되면 상황이 나아질 거라고 생각합니까?”
“선수 한 명 영입한다고 바뀔 팀이 아닙니다. 구단주는 물론이고 프런트도 뭔가 생각을 잘못하고 있습니다.”
오글리 감독은 소신을 드러냈다.
선수가 몸값을 못 해도 구단주가 쓰레기라며 대놓고 욕을 하는 게 옳은 일인가.
도움은 못 줄망정 팀 분위기를 흐리는 구단주, 거기에 동조하며 맞장구를 치는 여론과 팬들, 뉴욕을 망친 건 코치진도 선수들도 아니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화가 머리 끝까지 난 팻 햄스턴 구단주는 오글리 감독을 해임, 배리 오스만 코치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