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일은 일인자-215화 (215/309)

215화. 너보다는 낫다 (1)

[미국인 72%, 이인영 모른다]

[필라델피아는 81%가 안다고 밝혀]

새로운 시즌을 앞두고 이인영은 의문의 1패를 당했다.

20년 전부터 NFL과 NBA에 밀리고 있는 MLB, 당연히 스타 선수들의 인지도도 바닥을 기고 있다.

이인영은 ESPN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포츠 스타 129위에 머물렀는데, 이건 LA 머린스의 슈퍼스타 킨사이드(110위) - 헤인스(117위)보다도 낮은 수치다.

LA는 메이저리그에서 손꼽히는 대형구단으로 그만큼 인지도도 높은 편,당연히 케이블 중계를 통해 창출하는 수익도 필라델피아와는 비교가 안 된다.

성적은 1위를 찍었는데 팀 때문에 인지도가 떨어지다니, 그것보다 100위 안에 메이저리거가 한 명도 선출되지 못한 건 굴욕 아닌가.

내 위치는 지금 어디쯤 있는 건지, 이인영은 기사를 통해 정보를 수집했다.

“나는 NBA에선 중위권도 안 되는구나.”

필라델피아의 농구 선수 블레이크 빌은 작년 시즌 평균 14.3득점, 7.3리바운드, 1.8 블록을 기록하며 쓸 만한 포워드 자원으로 활약했다.

그래봤자 올스타에도 못 뽑힌 선수, 이런데도 미국 전역에서 30%의 높은 인지도를 기록했다.

그런데 메이저리그 정상에 오른 나는 전체 미국인의 28%만 알고 있다니, 야구가 그 정도로 비인기 종목이 된 건가. 조금 씁쓸한 마음으로 스프링캠프에 참가했다.

“비인기 종목 선수에게 인터뷰 요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시즌을 앞둔 인터뷰에서도 한 건 크게 터뜨렸다.

사실 야구는 NBA에 비해 지역색이 강한 스포츠다. 시즌이 시작되면 반년 동안 필라델피아 경기가 계속 TV에서 나오는데, 야구에 관심 없는 팬들도 한 번은 보지 않겠나.

그리고 시청률로 따지면 농구나 야구나 큰 차이가 없다.

작년 월드시리즈 1차전 시청률과 NBA 인기구단 개막전 시청률이 거의 동등한 수준, 거기다 경기 수도 메이저리그가 월등히 많기 때문에 수익적으로 따져도 그렇게 밀리지 않는다.

다만 메이저리그는 지역 특색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전국구 스타를 배출하기 어려울 뿐, 165만 필라델피아 시민 중 81%가 날 알고 있다는 건 엄청난 거 아닌가.

420만을 넘어가는 LA에 비하면 절반도 못 되는 수준이지만, 이런 환경에서도 이인영은 대체 선수대비 수익 전체 3위를 찍었다.

■ 킨사이드 – 1억 3천만 달러

■ 헤인스 – 1억 2천만 달러

■ 이인영 – 1억 달러

경기 입장권 – 기념품 - 유니폼 판매 등으로 필라델피아 구단에 제공한 이익만 1억 5천만 달러, LA에서 뛰었다면 2억 달러를 넘겼을지도 모른다.

불리한 환경에서도 이만한 가치를 창출했다는 것만 봐도 그 선수의 가치를 증명한 것 아니겠나.

한 기자는 당신은 연봉 5천만 달러를 받을 자격이 있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수치를 보세요. 필라델피아는 당신 덕분에 작년에 1억 5천만 달러를 벌었습니다. 그런데 매년 5천만 달러도 안 준다면 불공정한 거래지요.”

필라델피아 여론도 이인영의 가치를 높게 평가했다.

우리 품에 들어온 게 행운인 선수, 10년 4억 5천만 달러 정도는 받을 가치가 있는 선수라며 구단을 계속 압박했다.

“그래 봤자 3위는 3위다.”

그런데 이때, LA에서 도발이 날아들었다.

도발의 주인공은 LA의 슈퍼스타 킨사이드 – 헤인스 콤비,

필라델피아 기자들은 이인영이 LA에서 뛰었다면 킨사이드와 헤인스의 수익 가치를 넘어섰을 거라며 두 선수의 심기를 건드렸다.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건가. 필라델피아는 LA의 절반도 못되는 지역, 누가 그런 가난한 동네에서 뛰라고 했나? 우리는 명문 팀의 선택을 받았고 이인영은 그러지 못한 것 뿐이라며 비교를 거부했다.

[그렇게 좋은 환경에서 왜 우승을 못 하지? 우리는 2년 전에 한 번 했는데 말이야.]

이인영도 트위터를 통해 대포를 날렸다.

그렇게 좋은 환경에서 야구를 하는데 왜 매년 포스트 시즌의 들러리가 되는 건가.

4년 전부터 라이벌리를 이루고 있는 LA와 필라델피아, LA는 그딴 구단과 비교되고 싶지 않다며 불쾌한 반응을 보였지만, 최근 전적만 따지면 LA는 필라델피아에 밀리고 있다.

거기다 2년 전 필라델피아는 통산 3번째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지만 LA는 40년 넘게 무소식, 이인영은 LA 구단이 돈은 많이 쓰지만 선수들의 효율성이 너무 떨어진다며 코웃음을 쳤다.

[네가 얼마나 잘 한다고 그래?]

-> 리그 MVP 2회 수상했다. 너는 1번이잖아? 뭘 잘났다고 떠들어?

갈수록 유치해지는 난타전, 마이클 헤인스는 다른 선수는 몰라도 너보다는 잘 할 수 있다며 발끈했다.

[내가 슬럼프에 빠지고 부상을 당해도 너보다는 잘 한다]

-> 나보다 못하면 어쩔 건데?

-> 네 가랑이 사이로 기어들어 갈게. 대신, 내가 너보다 잘 하면 네가 내 가랑이 밑으로 기어들어 가라

-> 좋았어. 그 말 잊지 말라고, 개인방송으로 생중계 하자.

요즘은 메이저리거들도 개인방송으로 팬들과 소통하는 시대, 메이저리그 슈퍼스타가 누군가의 가랑이 사이를 기어가는 광경을 볼 수 있는 건가.

많은 팬들이 관심을 보이면서 두 선수의 자존심 싸움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 * *

[루이스 햄 시즌 12호 홈런]

[메이저리그 전체 1위 질주]

뚜껑이 열린 2030시즌, 헤인스와 말싸움을 벌인 이인영의 존재감은 루이스 햄의 독주에 묻혀버렸다.

루이스 햄은 4월 한 달 동안 타율 0.284, 홈런 12개, 22타점을 퍼부으며 돌풍을 일으켰다.

무려 81홈런 페이스, 이인영도 타율 0.323 - 홈런 5개 - 14타점으로 활약했지만 작년보다 못한 존재감에 고개를 숙였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인기 좀 끌어보겠다고 유치한 말싸움까지 했건만, 성적이 안 따라주니 아무 소용이 없다.

헤인스도 타율 0.303 – 5홈런 – 12타점으로 그저 그런 활약, 어느 한쪽이 치고 나가야 자극을 받을 텐데, 그런 것도 아니다.

눈에 띄려면 루이스 햄을 제치는 수 밖에, 5월 첫 경기부터 의욕을 끌어올렸다.

“자, 1회 초 필라델피아의 선공으로 경기가 시작됩니다. 선두 타자는 세스 브런들, 올 시즌 타율 0.302, 홈런 5개, 10타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필라델피아의 올 시즌 공격력은 정말 대단하죠. 아직 시즌 초반이지만 20홈런 페이스를 달리고 있는 선수가 6명입니다. 투수력은 여전히 약간 떨어지는 편이지만 공격력으로 모두 만회하고 있어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브런들은 초구를 잡아당겼다.

좌익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 17경기 연속 안타 행진을 이어가게 된 브런들은 1루 코치와 가볍게 주먹을 맞부딪쳤다.

다음 타자 잉글리시아도 올 시즌 타율 0.378의 고감도 타격감을 자랑하는 선수, 피츠버그의 선발 클리포드 갈랜드는 깊은 한숨으로 긴장감을  다독였다.

‘너무 똑같은 장면 아냐?’

대기 타석에 서 있던 이인영은 잉글리시아의 안타에 박수를 보냈다.

나는 작년보다 못한 활약을 하고 있는데, 동료들이 너무 잘해주면서 존재감이 묻혔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이기는 팀의 일원이 되는 것도 기쁜 일, 무사 주자 1 – 3루에서 첫 타석을 맞이했다.

[딱~!]

“파울입니다. 카운트는 노 볼 원 스트라이크”

“지금은 타이밍이 약간 늦었네요.”

“이인영 선수가 올 시즌은 출발이 조금 느린 편인데요. 박한우 위원께선 그 원인이 뭐라 생각하십니까?”

“일부 전문가들은 스탠스를 문제 삼고 있는데, 이인영 선수는 작년에도 좁은 스탠스에서 스트라이드를 하는 폼으로 54홈런을 쳤습니다. 그건 문제가 아니에요.”

박한우 위원은 지금처럼 하면 된다고 논란에 선을 그었다.

타율 0.323 - 홈런 5개 – 14타점, 한 달 동안 이 정도 쳤으면 훌륭한 거 아닌가.

그런데 무슨 큰 부진이라도 빠진 것처럼 소란을 떨고 있는 전문가들, 확실히 작년에 비하면 홈런 페이스가 떨어져 있지만 지켜보면 올라올 선수라고 굳게 믿었다.

‘내가 이렇게 했었나?’

한편, 초구를 때린 이인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좌타자는 무게 중심이 왼쪽 다리에서 시작해 오른 다리로 옮겼다가 다시 왼쪽으로 와야 되는데, 지금은 오른쪽 발에 먼저 무게중심이 실리는 느낌, 결국 공을 홈플레이트 앞에서 때려내겠다는 욕심이 강한 거다.

하체에 좀 더 신경을 쓰고 타격을 해야 되는데, 실전에서 그럴 여유가 어디에 있나.

내 몸이 오프 시즌동안 기울인 노력을 기억하고 있다면 자연스럽게 회복되겠지, 욕심을 버리고 공을 밀어친다는 생각으로 타격을 했다.

[따악~!!]

“밀어냈고!! 이 타구는 좌중간에 떨어집니다!! 3루 주자는 홈으로!! 1루 주자는 2루를 지나 3루까지!! 공은 계속 굴러갑니다!! 그 사이 이인영 선수는 2루까지!! 1루 주자마저 홈으로 들어옵니다!! 이인영 선수의 2타점 적시 2루타!! 필라델피아가 3타자 연속 안타로 선취점을 기록합니다!!”

“이인영 선수는 역시 이렇게 밀어치면서 감을 잡는 선수죠. 지금부터 잘하면 됩니다.”

박한우 위원은 박수를 보냈다.

작년 시즌, 양아들은 잡아당기는 타격으로 장타력을 극대화했다. 하지만 이게 매번 잘 되는 것도 아니고, 저 녀석은 국내에 있을 때부터 밀어치는 방식으로 타격감을 조율해 왔다.

밀어쳤지만 잡아당길 때보다 훨씬 좋아진 타구, 이대로 지켜보면 3할 중반대 타율에 30홈런 이상은 충분히 해줄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안 되네? 왜 안 되지?’

타석에 들어선 루이스 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상체가 앞으로 쏠리니 뭐니 말이 많은 전문가들, 보란 듯이 장타쇼를 선보였지만 최근 몇 경기에서 공이 뜨질 않고 있다.

더 큰 문제점은 높은 공에 약점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 지난 경기에서도 공 22개를 봤는데 14개가 높게 들어왔다.

낮은 공은 파워로 걷어 올렸지만 높은 공은 속수무책, 원인은 역시 경험과 기술 부족이었다.

홈런을 잘 치는 비결이 뭘까. 홈플레이트 앞에서 공을 치고 타구를 외야 펜스 얕은 곳으로 보내면 되나?

경험이 없는 타자들은 공을 홈플레이트 앞에서 치려고 하지만 경험 많은 타자들은 굳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

아무리 공을 띄워도 공에 전달된 파워가 부족하면 홈런은 나오지 않는다. 예를 들어 홈 플레이트 앞에서 공을 치더라도 손목을 늦게 돌리면 스윙 속도가 느려지며 타격이 된다. 이런 타구가 멀리 날아갈까?

타구에 힘을 싣는다는 건 스윙 속도가 빨라질 때 공을 때려낸다는 말과 일치한다.

공을 좀 더 깊숙이 끌어들여 타격을 해도 스윙 스피드가 극대화 되는 지점에서 타격이 된다면 그 공은 힘을 얻고 날아간다.

방금 전 이인영이 보여준 타격이 그 좋은 예, 하지만 아직 경험과 기술이 부족한 루이스 햄에겐 그 기술이 없었다.

높고 빠른 공을 기술이 아니라 타이밍과 힘으로 밀어내려 하고 있는데, 스윙이 느려지는 구간에 타격이 되면서 땅볼만 양산하는 중, 결국 루이스 햄은 이 날도 장타를 때리지 못했다.

따아악~!!

반면, 이인영은 3타수 3안타(1홈런), 4타점 게임을 펼치며 부활했다.

자기 스윙이 어느 타이밍에 힘을 얻는지 완벽히 감을 잡은 것, 5월 활약으로 시즌 성적을 0.349, 13홈런, 30타점으로 끌어올렸다.

[나 먼저 간다~ 천천히 오라고~ ]

페이스가 약간 떨어진 마이클 헤인스를 도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대결은 이제 막 시작됐을 뿐, 6월에도 부지런한 타격으로 페이스를 유지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