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화. 몬스터 시즌 (6)
[이인영 선수 40홈런 미리 축하합니다.]
[50홈런까지 가자.]
시즌 129번째 경기를 앞두고 필라델피아 클럽하우스는 한국 팬들이 보낸 선물 때문에 몸살을 앓았다.
현재 이인영은 39홈런을 기록 중, 산술적으로 48홈런까지 가능하다. 기왕 가는 길 좀 더 멀리 가도 괜찮겠지.
이인영은 팬들이 쓴 손편지를 읽어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이거 먹어도 돼?”
“먹는 건 상관없는데 팬들한테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어라.”
동료 선수들은 팬들이 보낸 과자에 관심을 보였다.어차피 혼자서 다 먹지도 못하고 팬들도 동료들과 나눠 먹으라고 적지 않았나.
허락이 떨어지자 사방에서 손이 달려들었다.
“야, 이거 신기하네. 아무리 먹어도 배가 안 불러”
“먹는데 에너지가 더 소모되는 것 같아.”
선수들은 과자 양에 불만을 제기했다.
한국인들은 과자로 다이어트를 하는 건가. 아무리 먹어도 배가 안 차는 마법의 과자,
하긴 한국에서도 양이 적다고 말이 많은데 저 덩치 큰 녀석들 간에 기별이라도 되겠나?한 번 먹으면 멈출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팅 빈 봉지만 높이 쌓였다.
‘오늘은 배를 채울 수 있을까.’
경기를 앞두고 이인영은 외야로 나가 몸을 풀었다.
과자를 먹고 먹어도 허기를 호소한 동료들, 그건 야구에 대한 욕심도 마찬가지다.20홈런 치고 30홈런 쳐봤자 허기는 심해질 뿐, 오늘 40홈런 친다고 달라지겠나.
언제쯤 배가 가득 차는 경기를 할 수 있을까.
구멍 뚫린 욕심 주머니에 의욕을 들이부었다.
1회 초 뉴욕 퀸스의 공격은 득점 없이 종료, 필라델피아의 1회 말 공격이 시작됐다.
“자 세스 브런들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올 시즌 타율 0.269, 18홈런, 58타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즌 초반의 부진 때문에 타율을 너무 깎아 먹었죠. 그래도 후반기 성적은 타율 0.297, 7홈런, 나쁘지 않아요.”
브런들은 초구를 잡아당겨 좌중간으로 보냈다.
가볍고 경쾌한 발걸음, 올 시즌 13홈런을 기록하고 있는 잉글리시아도 바통을 이어받았다.
연속 홈런이 나오면서 순식간에 2대 0, 흥이 오른 필라델피아 팬들은 3연속 홈런을 연호했다.
“자, 이제 이인영 선수 타석입니다. 올 시즌 타율 0.340, 39홈런, 93타점, 40홈런 100타점 고지가 눈 앞에 있습니다.”
“초구부터 나가도 괜찮습니다. 바르가스 선수는 지금 정신이 없거든요. 이런 때 우루루 몰아 붙여야 됩니다.”
바르가스는 발을 풀며 시간을 끌었다.이런 때는 타이밍을 끊어주고 가는 게 최선, 홈 팬들이 욕설을 퍼부었지만 무시했다.
‘역시 날 잘 알고 있네.’
초구를 지켜본 이인영은 방망이를 겨드랑이에 낀 채 배팅 글러브를 단단히 조였다.
내가 우중간을 노린다는 건 배터리도 알고 있다.
결정구를 던진다면 바깥쪽 체인지업이겠지, 그렇다고 여기서 몸 쪽 빠른 볼을 던지겠나. 조금 이르지만 다음 공에 승부를 결정지었다.
[따악!]
“2구 타격! 아~ 잘 맞았지만 좌익수가 처리합니다. 이인영 선수의 첫타석은 이렇게 끝나는군요.”
“노렸던 것 같은데 너무 떴죠. 타이밍은 나쁘지 않았는데 말이죠.”
타구를 지켜본 이인영은 피식 웃으며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제대로 읽은 볼배합, 타이밍도 좋았는데 아웃이라니, 아쉽지만 그러려니 넘어갔다.
따아악!!
와아아~!!
이인영이 주린 배를 움켜쥐는 동안 동료들은 축제를 벌였다.
후속타자 오스틴 카터, 산체스가 홈런을 치면서 한 이닝에만 홈런 4개, 왠지 나만 따돌림 당하는 기분이랄까.
덕분에 다음 타석에서 뭔가 보여주겠다는 욕심은 더욱 커졌다.
뉴욕 퀸스가 2회 초 공격에서 2점을 만회하면서 스코어는 4대 2, 화력이 강한 필라델피아도 전면전을 피하지 않았다.
[따아악!!]
“어? 이 타구는 다시 한 번 담장을 넘어 갑니다!! 세스 브런들의 투 런 홈런!! 멀티 홈런으로 시즌 20호 홈런을 달성합니다!!”
“드디어 우리가 알고 있는 브런들 선수로 돌아왔네요!! 퀸스의 추격을 뿌리칩니다!!”
2회도 끝나지 않았는데 벌써 홈런 다섯 개, 제대로 분위기를 탄 홈 팬들은 여섯 번째 홈런을 기대했다.
하지만 잉글리시아는 좌익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로 만족, 뉴욕의 선발 바르가스는 더는 버티지 못하고 강판 됐다.
마운드를 이어받은 투수는 애런 힉스,최고 99마일을 던지는 투수지만 이인영은 손꼽히는 빠른 볼 포식자, 현지 중계석도 승부의 향방에 흥미를 보였다.
[딱!!]
“오? 정면승부인데요. 파울입니다.”
“힉스 선수도 자신의 구위가 어디까지 통하는지 시험해보고 싶겠죠. 이인영 선수는 그 기준이 될 자격이 있습니다.”
이인영을 잡아낼 수 있다면 어떤 타자도 잡아낼 수 있겠지, 겁이 없는 루키는 다음 공도 가운데로 밀어 넣었다.
따악!!
와아아!!
우중간으로 날아가는 타구, 팬들은 그라운드를 가르는 2루타를 기대했다.
하지만 펜스를 두려워하지 않는 우익수의 호수비는 환호를 실망으로 바꿨고, 이인영은 쓴 웃음을 지으며 물러났다.
이런 날은 담장을 넘기는 게 답, 안타를 칠 공간은 얼마든지 있지만 오늘 따라 그 자리가 너무 좁아 보였다.
“자네 공은 이곳에서 충분히 통해”
“정말 그렇게 생각합니까?”
“그럼, 저 자식을 잡아냈잖아.”
한편 뉴욕 퀀스의 조 원스턴 감독은 위기를 마고 내려온 힉스를 칭찬했다.수비 도움을 받았는데 그렇게 생각해도 되나.
감독이 정말 날 믿는다면 다음 승부도 맡겨주겠지.
하지만 힉스에게 두 번째 기회는 오지 않았다.
윈스턴 감독은 5회 말 1사 1루에서 제프 하긴스를 투입, 하긴스는 정교한 몸쪽 제구로 초구를 잡아냈다.
“스윙 헛칩니다. 카운트는 노 볼 투 스트라이크”
“브런들 선수가 오늘 연타석 홈런이 있는데 너무 욕심을 부리는 것 같네요. 지금은 공과 배트의 차이가 제법 있습니다.”
브런들은 옆으로 휘며 떨어지는 체인지업을 억지로 걷어 올렸다.
결과는 내야 플라이체인지업이라기보다는 투심에 가까운 궤적 아닌가. 다음 타자 잉글리시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타석에 섰다.
눈에 띄는 타격실력은 아니지만 예리한 눈썰미로 투구 궤적을 읽어내고 대응하는 선수, 바깥쪽으로 흘러가는 볼을 참아내며 볼 카운트 싸움을 유리하게 끌고갔다.
“이걸 골라냅니다!! 볼넷 출루, 2사 주자 1 - 2루에서 이인영 선수가 들어섭니다.”
“또 투수교체네요. 러스 그레인 선수가 올라옵니다.”
“이게 원스턴 감독이 생각한 최선의 투수교체인가요? 그레인 선수가 이인영 선수를 압도할 무기가 있을지 모르겠네요.”
이인호 위원은 성급한 투수교체를 지적했다.
수준급 체인지업을 장착한 하긴스를 놔두는 게 나았을 텐데, 물론 아들을 돕는 교체라 다른 말은 덧붙이지 않았다.
‘역시 그냥 그러네.’
초구를 지켜본 이인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는 있었지만 기대치를 벗어나지 않는 수준, 윈스턴 감독은 도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저 선수를 마운드에 올린 건가.
다음 공은 바깥쪽 높게 들어왔지만 그대로 밀어버렸다.
따아악!!
와아아~!!
맞는 순간 알 수 있는 종착점, 담장 위로 사라진 타구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시아 선수 최초 단일 시즌 40호 홈런, 빠르게 베이스를 통과한 이인영은 앞선 주자들과 대기록을 축하했다.
13년 만에 등장한 필라델피아의 40홈런 타자, 팬들은 커튼 콜을 요구했지만 이인영은 자리를 지켰다.
“야, 안 나갈거야?”
“아직 이닝 많이 남았잖아. 여기서 커튼 콜 외치는 건 좀 이르지.”
별로 보여준 것도 없는데 거드름을 피우나. 다음 타석에서도 신중한 타격은 계속됐다.
[따아악!!]
“이번에는 당겼고!! 야수들은 모두 일시 정지!! 그대로 계시면 됩니다!! 이인영 선수의 시즌 41호 홈런!! 잡히면 넘기면 된다는 걸 보여주고 있습니다!! 스코어 13대 6!! 필라델피아는 오늘 홈런만 7개를 퍼붓습니다!!”
“야, 이쯤에서 한 마디 줄 법도 한데 제가 할 말까지 다하시네요.”
박한우 위원은 이명한 캐스터에게 불만을 쏟아냈다.숨도 안 쉬고 쏟아붓는 멘트, 다 해 먹고 속이 시원하냐며 웃음을 유발했다.
어쨌든 어마무시한 홈런 쇼를 보여준 이인영은 팬들의 커튼 콜에 반응했고, 그렇게 하루일과를 마무리했다.
이어지는 인터뷰, 한 자리에 모인 기자들은 앞다퉈 질문을 던졌다.
“이인영 선수, 경기 전 한국 팬들이 보낸 선물을 받으셨다고 들었는데, 그게 오늘 경기 활약에 뭔가 도움이 된 겁니까?”
“예, 확실히 배는 고파지더군요.”
이인영은 오늘 클럽하우스에 일어난 일을 설명했다.
한국인들은 다이어트 식품으로 과자를 먹느냐는 웃지 못할 소동, 어쨌든 선수들은 먹어도 먹어도 배 고파야 하는 존재들 아닌가.
50홈런까지 가 보라는 팬들의 독촉, 그 응원 확실히 전해 들었다며 감사를 표했다.
“오늘 경기로 당신은 pWAR 8.0을 넘어섰습니다. 이게 구단을 압박할 지표로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때 한 기자가 엄청난 질문을 던졌다.
WAR가 선수의 가치를 평가하는 수치라는 건 널리 알려져 있지만 모든 구단이 동일한 방식으로 WAR를 계산하는 건 아니다.
어느 구단은 타격을 가장 중시하고 다른 구단은 주루 – 수비 등 종합적인 가치를 WAR에 포함 시키길 원할 수도 있지 않나.
당연히 각 구단마다 계산하는 WAR는 차이가 있고, 필라델피아 구단이 쓰는 계산법은 pWAR라고 불린다.
계산법은 절대 비밀, 그런데 기자가 그 내용을 알아냈다고?
이인영은 구단 관계자와 시선을 마주했다.
구단에서 여론에 이미 공개한 사실이라면 괜찮은데, 누군가가 유출한 내용이면 문제가 있는 거 아닌가.
아니나 다를까, 구단 총괄 매니저 제프 클렌탁이 마이크를 잡았다.
“당신이 어디서 그 정보를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선수의 가치를 평가하는 나름의 기준을 두고 있습니다. 리(Lee)가 올 시즌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건 저희도 알고 있으니 그 이상의 질문은 사절하겠습니다.”
필라델피아 구단은 FA 선수의 예상 계약 규모를 정확히 맞춰내 여론을 놀라게 한 적이 있다.
좋은 선수를 잡고 못 잡고를 떠나, 선수 가치를 측정하는 기술만큼은 수준급이라는 뜻, 그런데 이인영에게 7년 2억 4천 만 달러를 투자 못하겠다는 건가?
pWAR가 8.0이라는 게 사실이면 이건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다.
지난 2019년, FA 계약으로 10년 3억 2천만 달러를 받아낸 선수가 pWAR 5.7을 기록했다. 그런데 8.0이면 얼마를 줘야 하는 건가.
거기다 아직 많은 경기가 남은 시즌, 남은 게임에서 가치를 더 끌어올리면 구단은 답이 없다.
막말로 내가 4~ 5억 달러 달라고 하면 어떻게 할 건가. 이인영은 이 사건으로 내 가치가 생각보다 더 대단하다는 걸 깨달았다.
‘미친 척 하고 5억 불러?’
구단에서 정말 내 가치를 그 정도로 평가했다면 최소 4억 달러는 줘야 하는 거 아닌가.
4억 달러 짜리로 평가해 놓고 제시한 계약은 2억 달러 남짓, 이건 뭔가 불공평한 거 아닌가.
세상에 그 어느 멍청이가 최고급 상품을 반값 할인에 내놓나. 에이전트도 같은 생각이었다.
[4억 달러 까지는 아니더라도 3억 5천만 달러는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남은 경기에서 몸값 좀 끌어올려야겠네요.”
남은 게임은 약 30 경기, 그 정도면 50홈런 채울 수 있지 않나.
잘하면 그 이상도 가능, 예비아빠는 이후 몸 값 올리기에 열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