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화. 몬스터 시즌 (2)
[메이저리그의 풍운아, 그라운드에 돌아온다]
개막전을 앞두고 세인트루이스의 한 선수가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
2023년, 드래프트를 받고 시카고에 입성한 알렉스 시세이가 그 주인공,
시세이는 2년 후 메이저리그에 승격해 6월 한 달 동안 타율 0.387, 우익수와 2루 유격수를 오가며 활약, 빠른 발로 팀에 스피드를 불어넣기도 했다.
하지만 시세이의 활약은 오래 가지 못했다.
실력은 확실했지만 공황장애 때문에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심지어 대기타석에서 공황발작으로 쓰러지기도 했다.
이후 치료를 받으며 메이저리그 복귀를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 시카고에서 방출되고 2년 동안 이런저런 직업을 전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메이저리그 복귀를 희망한다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우리가 받아주겠다.”
눈치를 살피던 세인트루이스가 손을 내밀었다.
정신적 어려움만 극복할 수 있다면 성공할 수 있는 선수, 시세이는 3년 만에 복귀한 스프링캠프에서 타율 0.343, 홈런 1개, 4타점을 올리며 가능성을 보여줬다.
[얼마 못 간다]
[반짝하고 다시 공황, 이게 반복이지 뭐]
하지만 많은 팬들은 부정적인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잠깐 활약하다 벌벌 떨며 무너지는 게 시세이의 전형적인 패턴 아닌가. 병을 앓는 게 죄는 아니지만 멘탈이 가장 중요한 야구에서 공황장애는 치명적인 약점, 그 선수의 야구 재능은 인정했지만 이번에도 다르지 않을 거라며 고개를 저었다.
[시세이 개막 후 7경기 연속 안타]
[타율 0.375, 주전 자리 굳힌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예상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
지난 4월 3일, 팀이 4대 2로 뒤진 상황에 대타로 나와 만루 홈런을 때려버린 것, 중요한 상황에서 벌벌 떨던 그 선수가 맞나?
비운의 천재의 영화 같은 복귀에 메이저리그 팬들은 열광, 여론도 시세이의 다음 행보에 주목했다.
다음 상대는 필라델피아, 그런데 경기를 앞두고 또 울렁증이 도졌다.
‘왜 이러지? 정신 차리자.’
공황발작은 평소 괜찮아도 언제 재발할지 모른다.
증세가 없어도 언제든 다시 재발할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악순환이 반복, 실제로 시세이는 운전석에서 공황발작이 재발해 운전대를 놔버렸다가 큰 사고를 당할 뻔한 적도 있다.
잘 하고 있지만 이러다 또 한순간의 물거품이 되는 건 아닌지, 감독에게 말도 못하고 벌벌 떨다 2루수로 선발 출장했다.
“자, 1회 초 필라델피아의 선공으로 경기가 시작됩니다. 선두 타자는 루이스 햄, 올 시즌 타율 0.286, 홈런 2개, 2타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데뷔 시즌인데 어린 선수가 생각보다 잘 해주고 있죠. 20-80 스케일에서 순수 파워 80점 만점을 받은 만큼 파워도 대단합니다. 잠재력을 발휘한다면 매년 30홈런도 칠 수 있는 재능을 가진 선수라고 할 수 있죠. 다만 주루나 수비는 그렇게 눈에 띈다고 할 순 없습니다.”
루이스는 바깥쪽 공을 밀어 내 중견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를 날렸다.
굳이 당겨 치지 않아도 담장을 넘길 수 있는 선수, 와이즈 감독은 차세대 거포를 향해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다음 타자는 부상을 털고 복귀한 세스 브런들, 팀이 위기 상황에 몰리면서 시세이의 울렁증은 더욱 심해졌다.
‘제발 나한테 오지 마라. 제발’
브런들은 초구를 잡아당겼지만 좌익수 정면, 시세이가 안도의 숨을 내쉬는 동안 이인영이 타석에 들어섰다.
올 시즌 9경기에서 타율 0.333, 홈런을 3개나 기록하고 있는 선수, 세인트 루이스 외야진은 깊숙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딱~!!]
“2루 정면으로 가는 타구!! 2루수가 잡아서 태그!! 다시 1루에서~ 아웃입니다!! 아~ 이인영 선수가 여기서 병살 … 아?!! 아니군요!! 지금 태그가 안 된 것 같습니다!!”
“그러네요. 이렇게 되면 2사 주자 2루에서 경기가 재개됩니다.”
시세이는 2루심의 판정에 어리둥절했다.
분명 태그가 됐는데 안 됐다니, 항의하고 싶었지만 쉽게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거기다 아무 반응이 없는 벤치, 결국 아무 말도 못하고 판정을 받아들였다.
‘사실 태그 됐는데’
반면, 2루에 안착한 루이스 햄은 마음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손에 무좀이 걸린 게 아니라면 분명 느낌이 왔을 텐데 아무런 항의도 하지 않는 시세이, 벤치도 멀뚱히 눈만 뜨고 있다.
이런 바보들 상대로 지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일, 다음 타석에서도 집중력을 발휘하며 볼넷을 얻어냈다.
이어지는 세스 브런들의 타석, 초구를 잡아당겼지만 유격수 글러브에 걸렸다.
2루로 맹렬히 돌진하는 주자, 루이스 햄은 깊숙한 태클로 베이스 커버를 들어온 시세이를 위협했다.
“공을 떨어트리는 군요!! 시세이 선수가 송구를 받아내질 못합니다!!”
“자 … 지금 세인트루이스 벤치에서 태클이 너무 과하지 않았느냐고 항의를 하는 것 같은데요. 하지만 2루심은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세인트루이스의 감독 존 네프탈은 2루심에게 손가락질까지 하며 항의를 이어갔다.
공황장애가 있는 선수에게 저렇게 위협적인 태클을 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것, 루이스 햄은 그 옆에서 조롱 섞인 말을 흘렸다.
“내가 그런 사정까지 봐주면서 야구해야 되나? 웃기는 양반이네”
다른 선수들도 살인 태클 위협에 시달리며 수비를 한다.
그런데 상대가 공황장애를 겪고 있다고 태클도 살살 해야 하나? 여기가 무슨 봉사단체도 아니고, 그런 걸 왜 따지냐며 시세이를 바라봤다.
“당신도 내가 배려해주길 원하는 거야? 그건 아니잖아?”
시세이는 아무 말도 못했다.
태클이 무서워 공을 받아내지 못한 건 사실, 하지만 내 약점을 드러내는 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
결국 주자 모두 세이프가 되면서 1사 주자 1 - 2루, 이인영이 타석에 들어섰다.
‘2루가 구멍이군.’
한 눈에 봐도 멘탈이 나간 게 보이는데 봐줘야 하나. 2구를 힘껏 잡아당겼고 시세이는 반응하지 못했다.
2루 주자가 들어오면서 필라델피아의 선취득점, 이후에도 시세이는 어이없는 내야수비로 세인트루이스 팬들을 당황하게 했다.
지난 7경기와는 너무 다른 모습, 존 네프탈 감독도 그제야 심각성을 느끼고 시세이를 교체했다.
이날 경기는 필라델피아의 6대 3승리로 종료, 경기 후 세인트루이스 여론은 발끈했다.
[태그가 안 됐다.]
[왜 시세이와 세인트루이스 벤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나?]
중계진은 문제의 장면을 몇 번이나 돌려봤고, 태그가 안 됐다는 걸 밝혀냈다.
중계진도 알 수 있는 일인데, 최신식 카메라와 장비를 갖춘 분석 팀이 이걸 그냥 넘어갔다?
아웃을 당하고도 태연하게 행동한 루이스 햄이 아니라, 멍청하게 가만히 있었던 세인트루이스가 비난을 받아야 하는 상황, 존 네프탈 감독은 기자들 앞에서 해명에 나섰다.
“시세이는 그동안 누구보다 자신감 넘치고 적극적인 플레이를 했습니다. 태그가 됐다면 분명 항의를 했겠죠. 하지만 그 선수는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비디오 화면을 돌려보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분석 팀을 통해 확인은 해 봐야 했던 거 아닙니까?”
“그건 … 죄송합니다. 모든 건 제 책임입니다.”
네프탈 감독은 모든 책임을 뒤집어 썼지만 여론은 시세이를 맹공했다.
태그를 하고도 항의를 하지 않다니, 이런 선수가 어디에 있나. 공황장애라는 변명이 통하지 않는 그라운드, 여론이 싸늘하게 돌아서면서 시세이는 궁지에 몰렸다.
‘봐주는 거 없음’
‘우리는 그런 거 몰라’
시리즈 2차전을 결장한 시세이는 3차전에서 다시 우익수로 출장했다.
필라델피아 배터리는 몸 쪽 승부로 시세이를 위협, 겁을 먹은 시세이는 불리한 볼 카운트에서 헛스윙을 연발했다.
점 점 거세지는 팬들의 야유, 반면 기세를 잡은 필라델피아는 7회까지 14안타를 퍼부으며 세인트루이스 마운드를 폭격했다.
“자, 8회 초 12대 3으로 앞서나가는 필라델피아의 공격입니다. 선두 타자는 이인영 선수, 오늘 3타수 1안타 1볼넷, 2득점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점수 차도 벌어졌고 여기서 시원하게 한 방 날려줬으면 좋겠네요.”
세인트루이스의 투수 샘 오닐은 96마일 몸 쪽 빠른 볼을 던졌다.
보호대를 찼지만 인간이라면 위협을 느낄만한 공, 그래도 이인영은 별 다른 반응 없이 다음 공을 기다렸다.
2구는 바깥쪽 빠른 볼, 역시 배트는 나오지 않았다.
[따아악~!!]
“3구 타격!! 우측으로 높게 솟아 오른 이 타구는!! 담장 너머로 사라집니다!! 이인영 선수의 시즌 4호 홈런!! 필라델피아가 13대 2로 앞서나갑니다!!”
“이야~ 위협구를 던져도 흔들리지 않는 이인영 선수의 정신력을 칭찬해야겠네요. 진짜 위대한 선수는 이런 겁니다.”
30, 40홈런을 치는 선수라고 두려움이 없겠나.
익숙해 졌다고 해도 인간이라면 빠르게 날아오는 공에 위협을 느끼기 마련, 그래도 선수들은 몸을 날려 타구를 막아내고 공을 때려낸다.
그 어려운 걸 해내는 선수들이 여론의 주목을 받고 대접을 받는 게 공정한 세상, 박한우 위원은 공황장애에 시달리는 시세이를 동정했지만 존경하진 않았다.
이후 시세이는 급격히 추락, 5월 초에 마이너리그로 강등됐고 다시는 그라운드로 돌아오지 못했다.
비운의 천재의 안타까운 몰락, 많은 팬들이 아쉬움을 표했고 선수들도 각자 나름대로 입장을 표했다.
“시세이의 몰락은 안타깝지만 그건 누가 대신 극복해 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다시 돌아온다고 해도 본인이 이겨내야겠죠. 저 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들도 그라운드에서 두려움을 느낍니다. 100마일로 날아오는 위협구, 공격적인 태클, 강습 타구, 그 밖에 이런저런 이유로 선수생명을 위협받죠. 이 무대에서 성공하려면 재능도 중요하지만 두려움을 이겨내는 강인한 정신도 필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시세이는 치명적인 결점을 가진 선수였죠. 동정은 표하지 않겠습니다.”
이인영은 다소 냉정한 반응을 내놨다.
위협을 느끼며 경기를 하는 건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 그런데 내가 그 선수를 동정해야 하나.
패자에 대한 동정은 패자를 더욱 비참하게 할 뿐, 모른 척 하고 돌아올 시간을 주는 게 낫다는 입장을 표했다.
“당신도 두려움을 느낍니까?”
“당연하죠. 타석에서 100마일로 날아오는 공을 보면 평범한 사람들은 당장 도망치겠죠. 그리고 다시는 타석으로 돌아가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공을 쳐내죠. 그러니 많은 연봉을 받는 겁니다. 제가 너무 많은 돈을 요구한다는 기자들도 있는 것 같은데, 그런 말 함부로 하는 거 아닙니다.”
이인영은 이 자리에서 일부 기자들을 공격했다.
나는 연간 3천 3백만 달러를 받으면 안 되는 건가. 내가 이 자리에 서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련과 노력을 했는지 모르니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것,
무섭다며 도망치는 선수는 동정을 해주면서 두려움도 이겨내며 성적을 거두는 내가 대우를 받는 게 부당하다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어디에 있나. 매년 3할 중반을 넘나드는 타율에 30~ 40홈런을 치고도 제대로 된 평가를 못 받는 내가 더 불쌍하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분명히 말하는데 7년 2억 4천만 달러 이하로는 양보할 생각 없습니다. 이건 제가 정한 최저선이고 여론에서 왈가왈부 할 일 아닙니다. 이상입니다.”
이후 이인영은 5월 초까지 27경기에서 타율 0.332, 홈런 9개, 27타점을 올리며 맹활약했다.
4년 연속 3할, 30홈런, 100타점을 향해 순항하는 선수, 이런 선수가 연봉 3천만 달러 이상을 받는 게 부당한가.
너무 비싸다며 푸념을 늘어놓던 기자들도 입을 다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