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화. 안 되면 되게 하라 (7)
[LA 머린스 7월에도 20승 달성]
[6년 연속 포스트 시즌 청신호]
중반을 넘어 후반기로 달려가는 시즌,
6월 27경기에서 20승 7패를 거둔 LA 머린스는 7월 들어 20연승이라는 성과를 이뤄냈다.
최근 50경기 성적은 45승 5패, 믿을 수 없는 연승 행진에 고무된 LA 여론은 올해는 월드시리즈 우승이 가능하다는 자신감을 드러냈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 안 한다.”
필라델피아 여론은 소문난 찬물을 끼얹었다.
LA가 잘 나가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불안요소도 많은 게 사실, 한 기자는 구체적인 지표를 앞세웠다.
■ 20연승 기간 기록
= 홈런(MLB 1위), 득점(MLB 9위), 최소 실점(MLB 1위), 선발 평균자책점(NL 1위), 불펜 평균자책점(NL 7위)
홈런이 1위인데 득점은 MLB 전체 9위, 최소 실점 1위를 기록했지만 연승 기록에 집착하다보니 선발진에 너무 가혹한 짐을 짊어지웠다.
이렇게 달려버리면 후반기에 무슨 일이 벌어질까. 하지만 주포 헤인스와 에이스 킨사이드는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라며 콧방귀를 뀌었다.
“필라델피아는 우리를 질투하는 거다. 헛소리는 신경 쓰지 않겠다.”
작년 시즌 NL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필라델피아에게 일격을 당한 LA는 필라델피아를 은근 의식했다.
우리가 너무 잘 나가니까 배가 아파서 그런 거겠지, 구단 관계자들도 월드시리즈 우승을 위해 고삐를 틀어쥐었다.
‘마음에 안 들지만 우리 편이 된다면 든든한데 …’
LA는 타선 보강을 노렸다.
이인영도 그 중 한 명, 지난 2년 동안 우리에게 얼마나 큰 망신을 준 선수인가. 하지만 LA는 홈런 1위를 기록하는 동안 총 득점은 9위에 그칠 정도로 밸런스가 무너진 공격을 선보였다.
현재 타율 0.349, 홈런 22개, 63타점을 기록하고 있는 이인영은 그 빈틈을 채워줄 수 있는 선수, 거기다 트레이드가 성사되면 앞으로 3년 반 동안 2500만 달러에 써먹을 수 있는 메리트도 있다.
유망주를 내주고 데려올 가치가 있는 선수, 트레이드 기간이 끝나기 전 정식으로 제안을 했다.
“지금 장난하는 겁니까?”
필라델피아 구단은 발끈했다.
애틀랜타에 6경기 뒤진 2위를 달리고 있지만 그렇다고 시즌을 포기할 단계도 아니다.
그런데 다 끝났다는 것처럼 트레이드를 요구하는 LA, 다른 선수는 다 팔아도 이인영은 못 판다는 입장을 밝혔다.
“가치가 있을 때 파시죠. 솔직히 그 쪽에서 잡을 수 있는 선수가 아니지 않습니까?”
LA의 로버트 단장은 도발을 이어갔다.
이인영에게 대형 계약을 제시한다고 했다가 철회한 게 누구인가.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하고 눈치만 살피고 있는 필라델피아 구단, 이인영은 연간 최소 3천만 달러 이상의 계약을 원하고 있는데 필라델피아가 그 요구를 들어줄 수 있나.
가치가 있을 때 팔아야 유망주도 얻어올 수 있는 법, 거부할 수 없는 조건을 제시했다.
“유도니스, 크레이머, 발바르도, 케빈, 리오스 이렇게 5명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국제계약 슬롯도 양보하죠.”
모두 유망주 랭킹 상위권을 차지한 인재들, 여기에 국제계약 슬롯까지 양보했으니 사실상 유망주 6명을 받아내는 것과 다름없다.
공격력만 강화하면 무서울 게 없는 LA, 빈약한 팜과 대형계약 실패로 위기에 처한 필라델피아, 트레이드를 추진할 가치는 충분하지 않나.
하지만 필라델피아도 나름대로 반격에 나섰다.
“지금 이인영 선수는 발바닥 부상을 안고 뛰고 있습니다.”
“뭐라고요? 그게 사실입니까?”
“예, 두 달도 더 지났습니다. 그래도 좋다면 트레이드 추진하겠습니다.”
로버트 단장은 입을 다물었다.
발바닥 부상을 안고도 그런 괴물 같은 성적을 내다니, 대단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하자가 있는 상품이라 구입을 망설였다.
“30일까지 아직 시간이 있으니 좀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유야무야 넘어간 트레이드 논의,
이후 이인영은 7월 27일까지 타율 0357, 홈런 1개, 5타점을 기록하며 몸값을 더욱 끌어올렸다.
[그는 온 몸으로 돈, 돈, 돈을 외치고 있다]
[이제는 구단이 응할 때]
3년 연속 3할, 30홈런 달성이 확실한 선수, 공격뿐만 아니라 7월 27일 기준으로 UZR + 5.2 DRS도 2를 넘기고 있다.
이제는 연장계약을 논의해도 될 때 아닌가, 하지만 LA와 트레이드를 진지하게 논의한 필라델피아 구단은 여론의 주장을 외면했다.
“이인영 선수, 트레이드 소문이 돌고 있는데 알고 계십니까?”
“네, 소문은 들었습니다.”
28일, 경기를 앞둔 이인영은 기자들과 인터뷰를 나놨다.
LA가 유망주 5명을 제시했다는 구체적인 정보가 입수된 상황, 이것 때문에 필라델피아 일대는 난리가 났다. 본인은 트레이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걸까. 이인영은 솔직한 답을 내놨다.
“LA는 강팀입니다. 제가 없어도 어떻게든 되겠죠. 하지만 필라델피아는 제가 떠나면 큰 일 날 팀입니다. 어느 쪽을 택할지는 분명한 거 아닙니까?”
“필라델피아에 남고 싶다는 뜻입니까?”
“당연하죠. 그리고 개인적으로 LA 별로 마음에 안 듭니다. 뭣보다 관중들이 재미가 없어요. 필라델피아 팬들처럼 톡톡 튀는 맛도 없고요.”
이 인터뷰는 필라델피아 팬들의 호응을 끌어냈다.
이 정도면 구단도 답을 할 때가 된 거 아닌가. 하지만 필라델피아 구단의 총 책임자 스마일 컴퍼니는 입장을 보류했다.
그렇게 계속 된 양 팀의 눈치 싸움, 먼저 꼬리를 내린 쪽은 LA였다.
[LA 4연패, 타선의 부진 치명적]
[투수진도 붕괴 조짐 드러냈다]
LA는 홈에서 열린 콜로라도와의 4연전에서 내리 참패를 당했다.
홈런포가 실종 되면서 평균득점은 2점으로 하락, 선발 이스더가 연패를 막기 위해 출동했지만 홈런 3개를 두들겨 맞고 무너져 내렸다.
콜로라도가 실책을 2개나 저지르며 기회를 줬는데도 7대 5 패배, 수준 이하의 경기력에 홈팬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산호세에 15경기 앞선 지구 1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LA의 목표가 지구 1위는 아니지 않은가. 반면 필라델피아는 3승 1패를 거두며 애틀랜타를 5경기 차로 따라붙었다.
급해질 게 없어진 필라델피아, 스마일 컴퍼니 관계자들은 LA의 트레이드 요청을 두고 논의를 거듭했다.
“저쪽에서 유망주를 5명이나 내주는 건 우리에게 분명 이득입니다.”
“문제는 팬들의 반발이겠죠. 일단 올 시즌은 이대로 가고 트레이드는 다음 시즌에 추진하는 게 좋겠습니다.”
포스트 시즌 진출 가능성이 열려있는데 주축 선수를 팔아치우는 바보가 어디에 있나.
다만 회사 관계자들은 트레이드 가능성은 열어뒀다.
올 시즌은 부상 때문에 약간 가치가 떨어진 상품, 2억 달러 이상을 주고 잡는 것도 생각했지만 내부회의에서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내년에는 건강할거란 보장도 없고, 일이 잘 못 되면 유망주를 얻어낼 카드로 쓸 수도 없지만 어쨌든 올 시즌은 같이 갈 수 밖에 없는 사이 아닌가.
고심 끝에 LA의 트레이드 요청을 걷어 차버렸다.
“이인영 외에도 데려올 타자는 얼마든지 있다.”
자존심이 상한 로버트 구단주는 보란 듯이 샬롯에 유망주 5명을 내주고 데이브 마르티네스를 영입했다.
그래 봤자 이인영에게는 미치지 못하는 존재감, LA는 이후에도 추락을 거듭하며 12연패를 기록했다.
[우리는 LA의 추락이 즐겁다.]
[이인영이 갔어도 연패 막기 어려웠을 것]
신이 난 필라델피아 여론은 LA를 깎아내리는 기사를 쏟아냈다. 그까짓 유망주 몇 명으로 구단 관계자들을 설득하려 하다니, 유망주 10명을 줘도 이인영은 못 데려간다며 목소리를 냈다.
‘우리 코가 석잔데 누굴 욕 하냐.’
하지만 이인영은 여론과 거리를 뒀다.
아무리 연패를 당해도 LA는 그동안 벌어둔 승리 덕분에 포스트 시즌 진출을 걱정할 입장은 아니다.
하지만 필라델피아는 언제 고꾸라질지 모르는 신세, 남의 불행에 히죽거릴 때가 아니라 중립을 지켰다.
[이인영, 그동안 부상 숨기고 뛰었다]
이와 별개로 그동안 잘 숨겼던 부상이 탄로 났다.
구단이 트레이드를 논할 때 주고받은 정보가 흘러나간 것, 하지만 이인영은 별 거 아니라는 입장을 표했다.
“다들 제가 엄청난 투혼이라도 하는 것처럼 포장을 하더군요. 그런데 그 정도 부상은 많은 선수들이 안고 가는 겁니다. 딱히 주목 받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당신은 왜 그렇게 발을 자주 다치는 건가요? 한국에서도 그러지 않았습니까?”
기자의 쓸데없는 참견에 이인영은 묘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발을 그렇게 자주 다쳤나? 작년 시즌엔 턱뼈에 금이 가는 부상도 당했는데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건지, 나름대로 해명에 나섰다.
“그리스 신화에서 무적이라 불린 아킬레우스도 발목에 약점이 있었습니다. 저처럼 완벽한 선수라도 어느 정도 약점은 있는 겁니다.”
“하하~ 그런 겁니까?”
“예, 그런 겁니다.”
이날부터 필라델피아 팬들은 이인영을 아킬레우스로 불렀다.
최후의 전쟁에서 발목에 독화살을 맞고 죽은 아킬레우스, 내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별로 깊지도 않은 지식을 뽐내다 무덤을 판 기분, 괜한 말을 했다며 후회했지만 야구에만 집중하며 잊어버렸다.
[따악~!!]
“네!! 그렇죠!! 그렇죠!! 우중간에 떨어지는 안타!! 이인영 선수가 올 시즌 200번째 안타를 기록합니다!! 거침없는 진격!! 부상도 이 선수의 발목을 잡지 못합니다!!”
“그런데 부상은 이제 거의 나았다고 하네요. 딱히 그 부분을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시간은 흘러 9월 12일, 이인영은 애틀랜타와의 원정 경기에서 시즌 200번 째 안타를 적립했다.
한 때 6경기 차로 지구 1위 자리를 달리던 애틀랜타는 필라델피아의 추격에 3경기 차로 몰린 상황,
여기서 좁히겠다는 필라델피아의 의지와 도망치겠다는 애틀랜타의 의지는 정면충돌했고, 이인영도 개인 기록보다는 팀 승리에 집중했다.
‘절대 뛰면 안 됨.’
와이즈 감독은 3루 코치를 통해 사인을 냈다.
발목 부상을 털어낸 선수에게 도루를 지시하는 건 어리석은 일, 가만히 내버려둬도 한 시즌에 20도루는 할 수 있는 선수지만 지금은 가만히 있어주길 바랐다.
이인영도 그게 낫다고 판단, 하지만 후속 타자 오스틴 카터가 병살을 치면서 기회가 무산됐다.
애틀랜타의 견고한 투수진에 막혀 고전을 거듭하고 있는 필라델피아 타선, 5회까지 4안타를 쳐냈지만 한 점도 내질 못했다.
[따악~!!]
“아~ 이 타구가 중견수 앞에 떨어지는 군요. 2루 주자가 홈으로 들어오면서 애틀랜타가 추가점을 냅니다. 스코어 3대 0, 경기가 조금 씩 기울고 있습니다.”
“안타깝네요. 이런 말 해봤자 아무 의미 없다는 건 알고 있지만, 역시 부상 선수의 공백은 채울 수가 없네요.”
언제까지 이렇게 끌려가는 경기를 해야 하는가.
7회 초, 볼넷으로 출루한 이인영은 도루를 감행,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으로 2루를 훔쳐냈다.
후속 타자 오스틴 카터가 적시타를 치면서 드디어 득점, 하지만 와이즈 감독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내가 도루하지 말라고 했잖나?”
“도루해서 득점 났잖아요? 다친 것도 아닌데 너무 민감하게 굴지 말라고요.”
이기고자 하는 마음은 같은데 추구하는 방향이 다른 게 문제,
코칭스태프의 지시를 어긴 건 미안하게 생각하지만 이인영은 자신의 플레이를 승리라는 명분으로 정당화 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