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화. 안 되면 되게 하라 (6)
[이인영, 3년 연속 올스타 선발 출장 확정]
6월 23일 오전 11시, MLB 네트워크에서 2028올스타 멤버를 발표했다.
이인영은 460만 표를 받아 3년 연속 선발 출장을 확정, 다만 이 과정에서 약간 논란이 일어났다.
우익수로 출장하다 은근슬쩍 1루로 갈아탄 시즌, 6월 들어서는 대부분 1루수로 출장하고 있다.
그런데 팬 투표 포지션은 우익수로 기재, 샌디에이고 여론은 이것 때문에 브래들리 리바스가 불이익을 봤다는 주장을 내놨다.
■ 이인영
= 타율 0.348, 홈런 17개, 51타점
■ 브래들리 리바스
= 타율 0.296, 21홈런, 47타점
리바스는 올스타전에서 우익수로 선발 출장할 만한 성적을 올렸다.
홈런을 제외하면 이인영이 전체적으로 우위에 있는 건 사실이지만 68경기 중 48경기만 우익수로 뛰었다.
그에 비해 리바스는 우익수로 67경기 출장, 이런데 이인영이 우익수 부문 최다 투표자로 불릴 자격이 있는가. 샌디에이고 여론은 사무국에 대안을 제시했다.
“포지션에 상관없이 최다 투표를 기준으로 선수를 선출하자. 포지션 배정은 그 다음에 하면 된다.”
투표수를 기준으로 올스타 선수를 선출하자는 것,
어떤 선수는 330만 표를 받고도 포지션 경쟁에서 밀려 최종투표까지 몰리고, 어느 선수는 275만 표를 받고 올스타에 합류, 이게 옳다고 할 수 있나.
올스타 선정 방식으로 한창 시끄러운 메이저리그 하지만 이인영은 여론과 거리를 뒀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모르겠어요. 솔직히 신경 안 씁니다.”
“그래도 한 말씀 해주시죠. 다른 선수들도 한마디씩 하고 있는데 너무 무신경 한 거 아닙니까?”
끈질기게 따라다니는 기자들, 옅은 한숨을 내쉰 이인영은 속마음을 드러냈다.
“어떤 방식으로 투표를 하든 분명한 건 뽑힐 선수는 뽑힌다는 거죠. 제가 1루수로 후보에 나섰다고 올스타 투표에 탈락했을까요?”
“뭐 … 그건 아니겠죠.”
“성적이 확실한 선수는 투표 방식에 문제 제기할 필요 없습니다. 어떤 식으로 투표해도 뽑힐 테니까요. 다른 설명이 필요합니까?”
성적과 인기가 어중간한 선수들에겐 문제가 될 수 있는 투표 방식, 그런데 이미 올스타에 뽑힌 내가 무슨 말을 해야 되는 건가.
어떤 말을 해도 논란이 될 뿐, 이인영은 그 논의는 내가 끼어들 일이 아니라며 선을 그었다.
가뜩이나 성적 때문에 고민이 많은데 왜 그런 질문을 하는 건가. 기자들을 뒤로 하고 클럽하우스에 입성했다.
최근 3연패를 당하며 동부지구 2위로 추락한 필라델피아, 선수들이 나름 선전하고 있지만 부상선수 속출과 뒷심 부족으로 선두권 싸움에서 멀어지고 있다.
여기서 버티지 못하면 추락은 확실, 올스타 논쟁처럼 사소한 일은 옆으로 치워버렸다.
“저 오늘부터 2번으로 출장하고 싶습니다.”
“2번으로 말인가?”
“네, 그렇게 해주세요.”
경기를 앞두고 와이즈 감독과 면담을 나눴다.
안타는 어느 정도 쳐주고 있지만 발바닥 부상 때문에 현저히 떨어진 장타력, 공을 때릴 때 오른 발로 지면을 차주는 동작으로 힘을 극대화 했는데 이제는 그게 통하질 않는다.
상체 근육으로 에너지를 모아도 하체가 고정된 자세에서 때려내질 못하는데 장타가 나오겠나.
이런 폼으로 3번을 쳐 봤자 의미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자네 성적을 보라고, 타율 0.348에 홈런도 17개야. 우리 팀에서 자네 말고 3번을 칠 수 있는 선수가 있다고 생각하나?”
하지만 와이즈 감독은 반대했다.
장타력이 떨어졌다? 여론이 워낙 기대를 높게 잡아서 그렇지 이인영은 올 시즌도 장타율 0.582을 기록하고 있다.
팀 내 1위, 메이저리그 전체를 기준으로 잡아도 12위, 이런 선수가 장타력이 떨어진다고 비난한다면 그 뒤에 늘어선 수 백 명의 선수들은 뭔가. 홈런은 조만간 나올 거라며 다독였다.
팀이 연패에 빠졌으니 조급해서 그런 거겠지, 감독의 설득에 이인영도 고집을 꺾었다.
* * *
“자 1회 초, 원정 팀 필라델피아의 선공으로 경기가 시작됩니다. 선두 타자는 프랭크 토마스, 올 시즌 타율 0.272, 홈런 6개, 20타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최근 필라델피아 타선이 힘이 많이 빠졌거든요. 최근 10경기 평균 득점이 3.9점 … 나쁜 건 아닌데 딱 평균입니다. 투수진이 고전하고 있는 걸 생각하면 조금 더 힘을 내줘야 할 텐데 말이죠.”
토마스는 2구를 때렸지만 내야를 넘기지 못했다.
컨택 능력은 뛰어나지만 떨어지는 장타력 때문에 대성하지 못하고 있는 선수, 피터 와이즈 감독은 구렛나루를 긁적거리며 아쉬움을 표했다.
하지만 다음 타자 잉글리시아는 좌중간에 떨어지는 안타로 출루, 이인영이 타석에 들어섰다.
‘몸 쪽으로 던지는 게 좋겠지.’
신시내티의 선발 닉 수아레즈는 예정대로 볼 배합을 밀고 나갔다.
상대는 작년 시즌 133경기에서 38홈런, 2루타 39개를 때려낼 정도 매서운 장타력을 뽐냈던 선수다. 그런데 올 시즌은 확실히 떨어진 장타력, 몸 쪽 승부를 두려워할 이유가 사라졌다.
물론 이인영도 이런 볼 배합은 예상, 차분히 초구를 기다렸다.
[딱~!]
“우측!! 파울입니다. 역시 몸 쪽이군요.”
“지금 이인영 선수의 자세에 주목을 해야겠네요. 지금처럼 몸 쪽에 붙은 공을 때리면 골반이 일찍 열리면서 스윙궤적이 날아오는 공과 멀어질 수가 있는데, 이인영 선수는 의도적으로 팔을 길게 늘리면서 컨택을 하고 있단 말이죠. 파울은 됐지만 역시 배트 컨트롤은 누구도 따라올 수가 없습니다. 지금도 손목이 약간 일찍 돌아가서 그렇지, 타이밍은 괜찮았어요.”
박한우 위원은 스윙만 보고도 양아들의 컨디션을 체크했다.
매일 분석하고 팬들에게 보고하는 게 내 임무인데 그걸 모르겠나. 부진이 길지 않기 때문에 최고의 선수로 군림할 수 있는 것, 오늘은 기대를 해 봐도 좋을 거라고 단언했다.
‘이거 위험할 지도 모르겠는데’
신시내티 배터리는 신중히 사인을 교환했다.
땅볼이 돼야 할 타구가 외야로 뻗어나가다니, 바깥쪽으로 하나 뺐지만 이인영은 앞발을 뒤로 살짝 빼며 스윙을 돌렸다.
[따아악~!!]
“자!! 밀어낸 타구가!! 좌중간으로 멀리!! 계속 뻗는 타구!! 중견수가 따라붙지만 지켜볼 뿐입니다!! 이인영 선수의 시즌 18호 홈런!! 5경기 만에 홈런을 추가합니다!! 스코어 2대 0!! 필라델피아에 선취점을 가져옵니다!!”
“그러니까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오늘 감이 좋다니까요!!”
오늘 따라 유독 신이 난 박한우 위원, 하지만 이인영의 활약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번 째 타석에선 느린 커브를 받아쳐 중견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 3번 째 타석에서도 빠른 공을 잡아당겨 2루 주자를 홈으로 불러들였다.
벌써 3안타 게임, 하지만 6회 말 수비에서는 아쉬운 장면이 나왔다.
3루수 프랭크 토마스의 송구가 바운드로 들어왔는데, 이건 실수가 아니라 어깨가 약한 선수의 안정적인 송구 방식이다.
당연히 잡아줬어야 했는데 한 번에 공을 캐치하지 못하면서 세이프, 이 실책이 화근이 되면서 대거 2점을 내주고 말았다.
앞 선 활약을 모두 잊게 만드는 실책, 털어버려야지 어쩌겠는가.
7회 초 팀이 5대 4로 쫓기는 상황에서 네 번 째 타석을 맞이했다.
“자, 신시내티가 여기서 투수를 교체하는군요. 로날드 브라우니 선수가 올라옵니다. 올 시즌 27경기 등판 승패 없이 평균자책점 2.72, 33이닝 동안 볼넷 11개, 탈삼진은 39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건 승부하겠다는 뜻이죠. 도망치겠다고 브라우니 선수를 올리진 않았을 겁니다.”
주자 한 명 없는 그라운드, 대기 타석에서 몸을 풀던 이인영은 천천히 타석에 들어섰다.
‘분명 빠른 볼 생각하고 있겠지?’
브라우니는 포수에게 느린 볼 사인을 냈다.
이퓨즈는 단독으로 쓰면 위력이 없다. 패스트볼을 노리고 있는 타자에게 슬며시 건네줘야 최선의 효과를 발휘하는 구종, 손을 떠난 공은 첫사랑을 고백하는 소녀의 마음처럼 살포시 미트에 안착했다.
‘아마추어도 아니고 우리 좀 더 화끈하게 놀아보자고’
이인영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이퓨즈는 메이저리그에서 구종으로 쳐주지도 않는 사이비, 스트라이크를 먹었지만 잊어버렸다.
따아악~!!
“와아아~!!”
2구는 98마일 빠른 볼, 이인영은 배트를 집어던졌다.
홈런을 확신했을 때만 나오는 포즈, 신시내티로 날아온 메뚜기 떼들은 격한 날갯짓을 시작했다.
믿었던 브라우니의 붕괴에 신시내티 벤치는 초상집,
실수는 있었지만 이 날 4타수 4안타 2홈런, 4타점 게임을 펼친 이인영은 팀을 3연패 위기에서 구해냈다.
내가 왜 올스타에 뽑혀야 하는지 보여준 경기, 클럽하우스 앞에서 기자들의 인터뷰에 응했다.
“이인영 선수, 오늘 경기 활약과 승리 축하드립니다.”
“예, 감사합니다.”
“오늘 토마스 선수의 송구 실책으로 팀이 역전 위기를 … ”
“잠깐만요. 뭐라고요?”
내가 잘못한 건데 왜 그 책임을 토마스에게 돌리는 건가. 이인영은 그건 잘못된 질문이라며 수정을 요구했다.
“토마스는 원래 그렇게 송구를 하는 친구입니다. 원래는 2루수를 봐야 하는 친구인데, 팀 사정 때문에 3루수를 보고 있죠. 그리고 당시는 바운드로 송구하는 게 맞는 상황이었습니다. 제가 포구를 잘못한 거지 그 친구가 잘못한 건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제가 질문을 잘못 했군요.”
쩔쩔 매던 기자는 바로 문제를 수정, 생각을 잠시 정리하고 다시 인터뷰에 나섰다.
“6회에 실점하면서 팀이 역전 당할 위기에 처하지 않았습니까? 다음 타석에서 바로 도망가는 홈런을 쳐냈는데, 내가 뭔가 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낀 겁니까?”
“뭐 … 당신도 알고 있겠지만 지금 팀 사정이 좋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부상 선수도 많고 시즌이 중반에 접어들면서 체력도 조금씩 떨어지고 있죠. 하지만 우리만 어려운 건 아닙니다. 그런 문제는 다른 팀들도 시즌을 치르다보면 겪는 일이죠. 중요한 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느냐는 겁니다.”
실책이 나왔다고 의기소침하고 포기해버리면 거기서 끝, 인생을 살다보면 좋은 일보다 나쁜 일이 더 많지 않은가.
하지만 위기를 극복하고 성과를 냈을 때 진정한 성취감을 느끼는 법,
이인영은 지금 겪는 어려움도 이겨내면 더 기억에 남는 추억이 될 거라는 답을 내놨다.
“이번에는 제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오늘 당신은 4안타를 추가했는데요. 혹시 경쟁자를 의식한 타격을 한 겁니까?”
다음 기자의 질문, 지금까지 이인영은 69경기에서 92안타를 때려냈다.
229안타 페이스, 아메리칸 리그의 상황도 흥미롭긴 마찬가지다.
작년 시즌 173안타를 기록하며 두각을 드러내더니, 올 시즌은 228안타 페이스를 달리고 있는 휴스턴의 크레이그 로지.
혹시 로지의 추격에 위협을 느끼고 적극적인 스윙을 한 게 아닐까. 이인영은 그건 아니라고 답을 했다.
“여러분들도 아시겠지만 저는 27살에 메이저리그에 데뷔했습니다. 너무 늦었죠. 한 타석 한 타석이 중요한데 볼넷으로 타석을 낭비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타격에 조금 더 집중을 하는 것뿐입니다.”
“결국 경쟁자는 자신뿐이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그건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날 넘어서지 못하면 다른 선수도 넘어서지 못하는 겁니다.”
이 자리에 서기까지 다들 얼마나 이를 악물고 노력을 했겠나.
올해 거두고 있는 성적은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덕분, 예전엔 다른 선수들을 의식하며 경기를 했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최고가 되진 못해도 작년의 날 뛰어 넘는다면 그것도 나름 의미 있는 한 해가 아니겠나.
특별히 라이벌 의식을 품는 선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