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화. 안 되면 되게 하라 (4)
[필라델피아 부상 선수 속출]
[애틀랜타와의 순위 경쟁 버틸 수 있을까]
어느새 5월에 접어든 시즌,
32게임을 치른 시점에서 필라델피아는 20승 12패, 애틀랜타와 동부지구 1위 자리를 두고 어깨를 나란히 했다.
문제는 양 팀의 저력 차, 애틀랜타는 팜 랭킹 2위를 기록할 정도로 유망주들이 넘쳐난다.
필라델피아도 유능한 젊은 선수들이 많지만 이건 메이저리그에 국한된 개념, 팜 랭킹은 메이저리그 전체 13위에 그치고 있다.
부상 선수가 속출했을 때 빈자리를 버틸 수 있는 역량이 떨어진다는 건데, 특히 투수진의 이탈이 문제가 됐다.
[휴 스트러프, 시즌 아웃 될 수도]
[팔꿈치 수술 결정되면 시즌 아웃]
스트러프는 뼈가 신경을 건드리는 문제가 일어나 정밀 검사를 받았다.
수술을 안 받아도 최소 몇 주는 부상자 명단에 있어야 하는데 이런 몸 상태라면 복귀해도 제대로 투구를 할 수 있을 리 없다.
여기에 불펜진의 축을 이루는 로버트 필도 옆구리 근육이 찢어지는 부상을 입으며 DL행, 발등에 불이 떨어진 필라델피아 구단은 트레이드 전력 보강을 택했다.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이인영은 구단의 정책에 불만을 표했다.
선수를 영입하는 건 좋은데 소문에 따르면 그 대상이 뉴욕 퀸스의 5선발 제이슨 메릴이라는 게 문제
작년 시즌은 10승 11패 평균자책점 3.84를 기록했지만 그건 작년 기록일 뿐, 올 시즌 2승 2패 평균자책점 4.54에 그치고 있다.
필라델피아 팜이 아무리 얇다고 해도 4점 대 중반짜리 투수도 수혈을 못하는 건가. 이인영은 그런 선수 영입해 봤자 애틀랜타에겐 아무런 위협도 되지 못한다며 노골적인 발언을 쏟아냈다.
“우리 팜에도 제이슨 메릴만큼 던질 투수는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무의미한 트레이드입니다. 재고해주길 바랍니다.”
필라델피아 여론의 반응도 마찬가지, 메릴을 영입하기 위해 유망주를 내주는 건 바보짓이라고 못 박았다.
어떻게 구단이 일개 선수보다 못한 판단을 내리는 건가. 여론의 비난이 거세지자 필라델피아 구단은 트레이드 논의는 소문일 뿐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결국 트레이드는 없었던 일이 됐고, 제프 야쿠보우스키가 콜 업 됐다.
순위 경쟁이 걸린 시기라 야쿠보우스키의 활약은 선택이 아닌 필수, 피터 와이즈 감독은 바로 선발 출격을 명했다.
“2점 이하로 막는다고 생각해. 그 이상은 용납 못하니까.”
이인영은 신입에게 부담을 팍팍 지웠다.
우리 팀 투수진은 형편없으니 공격력을 믿으라고 말해야 하나. 그건 투수진을 무시하는 행위, 네가 1점 대 평균자책점을 찍으면 팀 방어율도 내려갈 거라는 립 서비스도 덧붙였다.
“내가 1점대를 찍을 수 있을까?”
“안 되면 되게 해.”
“말도 안 돼, 나한테 너무 부담 주지 말라고”
“부담이 아니라 너한테 거는 기대가 그만큼 크다고 생각하라고, 뭐든 좋게 생각할 수 있잖아?”
야쿠보우스키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용기를 주는 건 고마운데, 내가 정말 그렇게 던질 수 있을까. 하지만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다.
* * *
“자, 오늘 필라델피아는 제프 야쿠보우스키 선수를 마운드에 올립니다. 오늘이 메이저리그 첫 등판, 올 시즌 마이너리그에서는 7경기 등판 4승 1패, 평균자책점 3.68, 42이닝 동안 볼넷 17개, 탈삼진은 49개를 기록했습니다.”
“한눈에 봐도 체격이 대단하죠. 프로필에 따르면 키 198cm에 몸무게 107kg인데, 비공식 기록이지만 105마일을 던진 적도 있습니다. 정말 메이저리그는 괴물들만 모인 것 같습니다. 100마일은 아무나 던지는 것 같아요.”
마운드에 선 야쿠보우스키는 초구부터 97마일 빠른 볼을 선보였다.
요즘 보기 드문 오버스로우 투구 폼, 척추 축이 기울어진 만큼 위력적인 공을 던지지만 그만큼 팔의 뒤틀림도 심하다.
거짓말 조금 보태 팔이 한 바퀴 회전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 그런데 어떤 투수들이든 공을 던지면 팔이 이렇게 돌아간다.
나는 기본에 충실한 투구를 할 뿐, 야쿠보우스키는 차분하게 투구를 이어갔다.
‘공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느낌인데’
2구를 지켜본 맥 코핀(산호세 소속)은 혀를 내둘렀다.
2m에 가까운 선수가 저렇게 높은 타점에서 공을 던지는데 공이 제대로 보이겠나. 요즘 투수들은 팔을 내리는 게 유행인데 정 반대의 길을 택한 야쿠보우스키, 이런 특징은 장점으로 드러났다.
“바깥쪽!! 크게 휘두릅니다!! 카운트는 원 볼 투 스트라이크!!”
“지켜보는 팬 여러분들은 빠른 공만 던지는데 왜 못 치나 이런 생각이 들 수 있는데요. 실제로 선수가 던지는 공을 받아보면, 빠른 볼도 휘어져 들어옵니다. 똑바로 들어오는 공은 하나도 없어요.”
“저도 선출이지만 처음엔 그게 정말 신기하더라고요. 직구라고 말을 하는데 절대 직구가 아닙니다. 거기다 98마일… 저는 이런 공을 마주한 적은 없지만 실제로 봤다면 움직이지도 못했을 겁니다.”
맥 코핀은 4구를 받아쳐 안타를 만들어 냈다.
저런 공을 던지는 투수도 대단한데 그걸 치는 타자들은 더 대단하지 않나. 이런 리그에서 3할 5푼이 넘는 타율을 기록하고 있는 아들, 이인호 위원은 아들이 얼마나 대단한 선수인지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괜찮아!! 나쁘지 않았다고!!”
산체스 포수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생각보다 훨씬 쓸 만한 빠른 볼, 안타를 맞았지만 이 정도면 과감하게 던져도 된다고 판단했다.
이 선택은 멋지게 맞아들었고, 야쿠보우스키는 삼진 하나를 추가하며 성공적인 스타트를 끊었다.
이어지는 필라델피아의 공격, 조시 빌라가 안타로 출루하고 브런들이 볼넷으로 출루했다.
최악의 상황에서 맞이한 완벽한 타자, 산호세 배터리는 신중하게 사인을 주고받았다.
‘투구 폼에 차이가 있다고?’
타석에 서기 전, 이인영은 분석 팀의 판단을 되새겼다.
오늘 산호세의 선발은 잭 글래노스,
분석에 따르면 이 선수는 직구를 던질 땐 글러브가 높고, 커브를 던질 땐 글러브 위치가 낮다는 결론이 나왔다.
하지만 이인영은 별 다른 차이를 잡아내지 못했다.
현미경을 들이대고 약점잡기 좋아하는 메이저리그, 이인영도 눈썰미가 좋은 편이지만 이번에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초구는 커브, 지켜봅니다. 카운트는 노 볼 원 스트라이크”
“글쎄요. 글래노스 선수가 빠른 볼 평균 구속이 97마일, 메이저리그 전체 1위거든요. 이렇게 빠른 볼과 낙폭이 좋은 커브를 던지고 있는데, 필라델피아 선수들은 마치 알고 있다는 것처럼 반응하고 있습니다.”
필라델피아의 보먼 코치는 이인영에게 사인을 줬다.
이번에는 빠른 볼이라는 것, 사인을 확인한 이인영은 별 반응 없이 정면을 응시했다.
‘맞았다고 해줘야 되나?’
2구는 빠른 볼, 정말 내가 눈치 못 챈 차이가 있는 건가. 이인영은 이번에도 보먼 코치의 사인에 주목했다.
‘어? 이건 나도 모르겠는데’
이번에는 긴가민가, 보먼 코치는 아무 사인도 주지 않았고 이인영은 3구를 힘껏 때렸지만 좌익수 플라이로 끝났다.
“왜 사인 안 준 거예요?”
더그아웃으로 돌아온 이인영은 보먼 코치를 잡고 대화를 나눴다.
정말 투구 폼을 읽어냈다면 정확한 정보를 줘야 하는 거 아닌가. 궁지에 몰린 보먼 코는 오리발을 내밀었다.
“날 너무 믿지 말라고, 자네는 메이저리그 최고의 타자잖아?”
“와아~ 진짜 무책임하시네. 이럴 거면 사인에 집중하라는 말을 하지 마세요.”
이인영은 불만을 쏟아내고 돌아섰다. 역시 아무 차이도 없는 게 확실, 다음 타석은 내 마음대로 하겠다고 선포했다.
양 팀 투수들이 호투를 펼치면서 3회까지 무득점,
이인영은 4회 말 1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2번 째 타석을 맞이했다.
[딱~!]
“초구!! 파울입니다. 97마일, 꾸준히 이 구속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글래노스 선수가 작년 시즌 176이닝을 던지면서 삼진을 204개나 잡아냈거든요. 초반에 살짝 흔들렸지만 구위는 역시 메이저리그 최고 수준입니다.”
글래노스를 지켜보던 보먼 코치는 다음 공은 커브라고 확신했다. 바로 사인을 줬지만 이인영은 깨끗이 무시, 바깥쪽 빠른 볼을 지켜봤다.
‘이런 엉터리 코치’
보먼 코치는 선수의 손가락질을 외면했다.
다른 선수들도 재미있다는 반응, 하지만 이런 게 야구 아니겠나. 미소를 거둔 이인영은 다음 공에 집중했다.
[따아악~!!]
“잡아당긴 타구가!! 우측으로 멀리!! 계속 뒤로 가는 타구!! 담자~ 앙!! 위로 사라집니다!! 이인영 선수의 시즌 6호 홈런!! 필라델피아가 선취점을 가져갑니다!!”
“지금은 82마일 커브였는데, 와~ 이걸 넘기네요!!”
타구를 확인한 글래노스는 글러브에 욕설을 퍼부었다.
아까부터 계속 사인을 주고받던 필라델피아 벤치, 쓸데없는 짓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타이밍에 커브를 던질 거란 걸 예상했단 말인가.
확인할 길이 없는 상대 팀의 사인,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음 투구에 집중했다.
‘뭐라고?!!’
하지만 다음 타자 오스틴 카터에게도 좌중간을 넘어가는 홈런을 얻어맞았다.
올 시즌 32경기에서 54홈런을 퍼붓고 있는 필라델피아, 잘 버티던 글래노스는 고비를 넘기지 못했다.
반면 야쿠보우스키는 무게감이 떨어지는 산호세 타선을 상대로 7이닝 1실점, 11탈삼진의 활약, 3대 1로 앞선 상황에서 마운드를 넘겼다.
‘나는 할 만큼 했어.’
2실점 밑으로 막으라는 게 이인영의 요구사항 아니었나. 나 자신도 놀랄 정도의 투구, 동료들과 주먹을 맞부딪치며 분위기를 냈다.
따악~!!
이어지는 7회 말 공격, 이인영은 바뀐 투수 제레미 린도어의 2구를 받아쳐 멀티 히트 게임을 적립했다.
이번에는 96마일 빠른 공을 받아친 결과, 어떻게 저렇게 잘 칠 수 있는 걸까. 6이닝 3실점 투구를 하고 마운드를 내려온 글래노스는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구속에 변화를 줘도 안타를 때려내는데 이게 가능한가.
그게 아니라면 우리 팀의 볼 배합이 상대팀에게 읽히고 있다는 뜻이겠지, 경기 후 인터뷰에서도 그 점을 강조했다.
“아무리 뛰어난 타자라도 구속에 차이를 주면 반응을 못합니다. 그런데 오늘 필라델피아 타자들은 나름대로 잘 대응을 하더군요. 아무래도 볼 배합이 읽힌 것 같습니다.”
“사인이 읽혔다고 말하고 싶은 겁니까?”
“예, 그것밖엔 없습니다. 다음 맞대결은 반드시 갚아주겠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이인영은 그건 착각이라고 단언했다.
투구 폼을 읽는 시도를 한 건 사실이지만 실패로 돌아간 작전, 글래노스는 상대하기 어려운 투수라는 입장을 밝혔다.
“보먼 코치가 계속 사인을 준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더군요. 이런 걸 사인이 읽혔다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럼, 당신은 눈으로 보고 타이밍을 잡았다는 겁니까?”
“예, 빠른 볼에 집중하려고 노력 했죠. 타격은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빠른 공이 들어오면 그대로 치면 되고, 변화구가 들어오면 거기에 맞춰 타이밍을 조절하는 것뿐입니다.”
“그런데 그게 마음대로 안 되는 거 아닙니까?”
“저는 가능합니다. 다음에도 글래노스와 마주한다면 빠른 볼을 노릴 겁니다. 다른 비결은 없습니다.”
기자들은 수집한 정보를 토대로 기사를 냈다.
분명한 건 이인영이 엄청난 타격재능을 지녔다는 것, 글래노스의 커브를 그렇게 정확한 타이밍에 칠 수 있는 타자가 몇 명이나 있을까.
변화구에 약간 약점이 있다는 전문가들의 주장은 오늘 경기를 기점으로 폐기처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