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화. MVP (4)
[MVP 논쟁]
[당신이라면 누굴 뽑겠는가]
시즌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포스트 시즌 진출 팀과 개인타이틀 확정자가 조금씩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가장 흥미로운 주제는 역시 리그 MVP, 내셔널리그 후보자는 2명으로 좁혀졌다.
필라델피아의 이인영과 LA의 마이클 헤인스, 두 선수를 두고 유권자들은 어떤 평가를 내렸을까. 가상투표 결과 차이는 약간 갈렸다.
“저는 마이클 헤인스에 투표를 했습니다.”
“이유가 뭔가요?”
“아마 유권자들은 팬 그래프나 다른 사이트에서 WAR나 wRC +, DRS 등 이런 저런 데이터를 분석하는데 시간을 보냈을 겁니다. 그게 선수의 가치를 평가하는 지표라고 믿을 테니까요. 하지만 MVP는 패배하는 팀의 선수가 차지할 상은 아닙니다.”
LA의 지역기자 폴 보그먼은 나는 가상 투표에서 마이클 헤인스에게 투표했다고 선언했다.
MVP의 뜻이 뭔가. 가장 가치 있는 선수, 가치 있는 선수는 팀을 승리로 이끄는 선수 아닌가.
LA는 현재 내셔널리그를 대표하는 최강팀, 그 팀에서 MVP가 나오는 건 당연하다는 논리를 앞세웠다.
[시대가 변해도 사람의 생각은 변하기 어렵다.]
폴 보그먼의 인터뷰를 두고 미국 현지 여론은 격론을 벌였다.
현재 이인영은 WAR 7.6, 마이클 헤인스는 6.3을 기록하고 있다.
WPA(승리기여도)는 이인영이 5.3, 마이클 헤인스가 4.8, 득점기여도도 이인영은 62를 기록하고 있는 마이클 헤인스를 70으로 따돌리고 있다.
그런데 폴 보그먼은 무슨 근거로 마이클 헤인스를 찍은 건가. MLB 네트워크에 참석한 전문가들도 이건 억지소리라며 폴 보그먼을 비난했다.
“현 시대에서 전문가들은 타율은 MVP 선정에 의미가 없는 기록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팬들을 보세요. 타율 1위가 누구인지 관심이 없나요? 아니죠. 이 선수에게 MVP를 주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두안 넬슨은 작년 이쯤에도 이인영의 아름다운 비율 스탯을 극찬했다.
요즘 시대에 3할 5푼이 넘는 고타율과 30홈런을 칠 수 있는 선수가 몇 명이나 되나.
다들 눈에 보이는 기록보다 WAR나 WPA처럼 전문적인 지표를 내세우고 있는데, 솔직히 팬들은 그런 거 잘 모른다.
누가 가장 높은 타율을 치고, 가장 많은 홈런을 치고, 가장 많은 타점을 올렸는지 관심을 가질 뿐이다.
팬들은 다 이인영이 MVP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하는데, 왜 일부 기자들은 자기만의 기준을 만들고 거기에 선수의 가치를 끼워 맞추는 건가. 그렇게 해서라도 내 마음에 안 드는 선수를 깎아내리고 싶은 건가.
두안 넬슨은 이건 기자단의 횡포고, 이런 문제가 앞으로도 계속 투표 방식을 다시 고려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 문제는 조금 더 생각을 해 봐야 합니다.
반면 랄프 페리는 중립적인 소감을 밝혔다.
누구든 MVP는 가장 가치 있는 선수가 받는 게 중요하다는 것, 그런데 그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은 사람들마다 다 다르다.
그건 개인 기록이 될 수도 있고 팀 성적이 될 수도 있겠지, 뭣보다 아직 한 달이라는 많은 시간이 남아 있다.
그 사이에 마이클 헤인스가 이인영을 능가하거나 비슷한 기록을 세울 수도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NL 최강팀 소속인 헤인스가 MVP를 받을 수도 있겠지, 논쟁의 답은 지금 내릴 때가 아니라는 입장을 내놨다.
“선수의 가치는 냉정하게 평가 받아야 합니다. 개인의 감정으로 그 가치를 깎아내려선 안 되죠. 분명한 건 리(Lee)가 모든 지표에서 마이클 헤인스를 앞서고 있다는 겁니다. 그것만은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도 마지막엔 개인적인 생각을 덧붙였다.
LA 지역기자라고 해도 양심이 있다면 현재 진행되는 가상 투표에선 이인영을 택하는 게 맞는 거 아닌가.
선수의 가치가 개인의 주관적인 감정으로 평가된다면 그것만큼 잘못된 판정도 없겠지, 그리고 며칠 후 가상투표 결과가 공개 됐다.
이인영은 63%의 지지를 받으며 27%를 기록한 마이클 헤인스를 큰 차이로 따돌렸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 기자들은 경기를 앞둔 이인영 앞에 마이크를 들이밀었다.
“가상투표에서 이런 결과가 나왔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큰 의의는 두지 않겠습니다.”
한 달이나 남은 시즌, 그 사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누가 아나.
이런 일에 일희일비 해봤자 의미 없고 지금은 팀 승리에 집중하겠다는 소감을 밝혔다.
“저는 폴 보그만의 의견도 일리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패배하는 팀에서 MVP가 나와 봤자 초라할 뿐이죠. 다만 필라델피아를 한 수 아래로 취급한 건 인정 못합니다.”
작년 시즌, 필라델피아는 LA 원정 3연전에서 싹쓸이 승리를 거뒀고 그때부터 양 팀의 천적 관계는 바뀌었다.
최근 2년 동안 전적은 12승 6패, 필라델피아가 우위에 있다. 그런데 폴 보그만은 이인영의 MVP 수상을 두고 패배하는 팀에선 MVP가 나와선 안 된다는 발언을 했다.
이게 뭘 뜻하겠는가.
LA가 필라델피아를 꺾고 우승을 차지한다는 뜻, 이인영은 착각은 자유라며 보그만과 대립각을 세웠다.
“LA가 올 시즌 86승으로 내셔널리그 최다승을 거두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정규시즌에서 몇 승을 했던 그게 포스트 시즌 승리로 이어지는 건 아니죠. 저는 다 받아갈 생각입니다. 월드시리즈 우승도 NL MVP도 뭣 하나 양보할 생각 없습니다.”
필라델피아 여론은 이 인터뷰에 박수를 보냈다.
승리하는 팀에서 MVP가 나와야 한다면 필라델피아가 월드시리즈 우승하면 되는 거 아닌가.
원래 세상은 승자가 다 가져가는 구조, 필라델피아 지역기자들도 젊은 선수의 당찬 목소리에 지지를 표했다.
* * *
[LA, 샌디에이고에게 내리 3연패]
[이대로는 우승 장담 못한다]
시간은 흘러 9월에 접어든 시즌, LA는 같은 서부지구에 소속된 샌디에이고에게 3연패를 당하며 흔들렸다.
1차전부터 졸전이었다.
선발 존 킨사이드가 7회까지 무실점 호투를 펼치며 1대 0으로 앞서나갔지만, 8회에도 마운드에 오른 킨사이드는 안타와 볼넷을 내주며 흔들렸고 1루수의 실책까지 나오면서 무사 주자 만루 위기에 몰렸다.
뒤를 이은 투수들이 방화를 저지르며 순식간에 4실점,
그렇게 첫 경기를 내준 LA는 복수에 나섰지만 샌디에이고 타선은 5회까지 매 이닝 득점을 내며 7대 0으로 앞서나갔다.
9회 초, 마이클 헤인스의 솔로 홈런이 나왔지만 너무 늦은 추격이었다.
3차전은 연장까지 가는 혈투 속에 7대 5패배, 샌디에이고보다 6개나 더 많은 15안타를 치고도 5득점 밖에 못 내는 변비 야구를 하면서 개망신을 당했다.
“LA의 최고 승률은 허상이다.”
“서부지구는 LA 외엔 승률 5할을 넘는 팀이 하나도 없다.”
이 때를 기다렸다는 듯, 필라델피아 여론은 반격을 개시했다.
NL 서부지구에 강팀이 어디 있나. 콜로라도 - 산호세 - 애리조나 - 샌디에이고 모두 다 승률 5할을 밑도는 약체들뿐이다.
반면 필라델피아가 소속된 중부지구는 필라델피아 - 피츠버그 - 애틀랜타 3팀이 5할 승률을 넘기고 있다. 약체 팀 상대로 승수 쌓기나 하는 주제에 MVP는 승리하는 팀에서 나와야 한다니, 코미디 좀 작작 하라며 비웃음을 날렸다.
[필라델피아, 극적 승리]
[자신의 가치 증명했다]
반면 필라델피아는 꾸준한 상승세를 이어갔다.
9월 2일, 워싱턴과의 경기에서 그적인 역전승을 거둔 것, 출발은 그렇게 좋지 않았다.
2회 말, 1사 주자 만루 상황에서 적시 2루타를 맞고 2대 0으로 뒤쳐진 필라델피아, 그러나 3회 초 산체스가 투런 홈런을 날리며 경기를 원점으로 돌렸다.
이후 필라델피아는 잉글리시아의 2점 홈런, 산체스가 다시 솔로 홈런을 작렬시켜 5대 2로 앞서나갔다.
하지만 워싱턴은 7회 말, 척 개리슨의 쓰리 런 홈런으로 동점을 만들었고, 8회 말 다시 대타 대니슨 엘리치의 적시타로 기어이 경기를 뒤집었다.
딱~!!
하지만 9회 초, 경기 내내 침묵을 유지하던 이인영이 우중간을 가르는 2타점 적시타를 날리며 경기가 다시 뒤집혔다.
결승점이 된 한 방, 1차전에서 힘을 쏟아 부은 워싱턴은 별 다른 저항도 못하고 2차전까지 내주고 말았다.
특히 득점권에선 귀신 같이 안타를 뽑아내는 이인영은 워싱턴 팬들에게 악마 같은 존재로 각인 됐고, 그 공포는 3차전에서도 이어졌다.
“자, 이인영 선수가 오늘 경기 첫 타석에 들어섭니다. 올 시즌 타율 0.351 - 홈런 34개 - 113타점을 올리고 있습니다.”
“클래식 지표가 의미가 있다 없다 말이 많은데, 아무리 세이버매트릭스가 중요한 시대라도 안타를 치고 타점을 올려야 팀이 이기는 겁니다. 통계놀음 백 날 해보라고 하십쇼. 그래봤자 트리플 크라운의 가치는 떨어지지 않습니다.”
박한우 위원은 클래식 지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인영은 홈런을 제외한 모든 지표에서 마이클 헤인스를 앞서고 있다. 오늘 홈런 하나 추가하면 NL 홈런 공동 1위, 이런 선수 앞에 통계를 들이미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트리플 크라운 해버리면 통계고 지랄이고 따질 명분도 없겠지. 여기서 한 방 시원하게 날려주길 기대했다.
“지켜봅니다. 역시 이 선수가 지켜보면 볼이군요.”
“스트라이크 존에 대한 감각이 있는 선수입니다. 이러니 3할 5푼이 넘는 타율을 유지하고 있는 거겠죠.”
“하지만 그것만이 비결은 아닐 겁니다. 당신 말대로 스트라이크 존에 대한 감각도 뛰어나지만 이 선수는 자신의 특성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있어요. 리(Lee)가 올 시즌 153안타를 치고 있는데 그 중 내야안타가 22개나 됩니다. 주루 능력이 타율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겠지만 무시할 수는 없죠. 지금 수비 위치를 보세요.”
미국 현지 중계석도 이런저런 대화를 이어갔다.
좌타자에게 많이 걸리는 시프트, 특히 이인영은 올 시즌 483타석을 소화했고 그 중 무려 340번이나 상대 팀의 시프트를 상대했다.
메이저리그에서 3번째로 많은 시프트, 그렇다면 결과는 어땠을까.
0.351라는 타율이 그 답 아니겠나. 수비수가 정상적인 위치에 있는 게 오히려 이상해 진 메이저리그, 이런 시대에서 이인영은 내야안타를 22개나 때려내며 고타율을 유지하고 있다.
좌타자라는 이점과 빠른 발을 이용해 타석에서 1루까지 3.87초를 끊고 있는데, 그렇다면 이것도 내 장점으로 살릴 수 있지 않을까.
주자가 없는 상황에서는 밀어 쳐서 내야안타를 만들 수 있는 선수, 워싱턴 내야진은 좌측에 그물망을 집중시켰다.
공은 당연히 스트라이크 존 바깥쪽으로 오겠지, 볼 배합을 읽은 이인영은 스윙 한 번 하지 않고 1루를 밟았다.
“뛰었어요!!”
“2루에 가볍게 안착합니다!! 이인영 선수의 올 시즌 22번 째 도루!! 2아웃에서 팀에 득점권 기회를 만들어 줍니다!!”
“이런 선수가 MVP를 못 받는다고요? 마이클 헤인스에게 투표한 83명도 반성해야 됩니다. 누가 봐도 MVP는 정해져 있잖아요?”
볼넷에 이은 도루, 후속 타자 오스틴 카터가 적시타를 때려내면서 이인영은 홈을 밟았다.
메이저리그 최고 수준의 베이스 러닝 스피드, 이날 올해 최고 순간 스피드 33.9km를 찍었는데, 이건 유럽의 축구 스타들에 비교해도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기록이다.
야구선수가 축구 선수 뺨치는 발을 가지고 있다는 뜻, 짧은 안타에도 홈까지 파고드는 질주에 워싱턴 선수들은 할 말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