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일은 일인자-175화 (175/309)

175화. shit happen (7)

“닥쳐라 아가야.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모든 말은 마음속으로 하렴

내가 화나면 누군가가 다칠지도 몰라

나는 인내심이 많지 않아, 불만이 있다면 거기로 찾아갈게

이런, 오늘도 쏴 버렸어. 이보다 더 기분 좋은 일은 없을 거야.”

계속되는 경기, 등장음악의 주인공은 천천히 타석에 들어섰다.

오늘 애틀랜타의 선발 채드 브래드는 이인영에게 위협구를 던졌다가 우측 당장을 넘어가는 대형 홈런을 얻어맞았다.

수틀리면 총을 쏴 버리는 갱(Gang)을 상대하는 기분이랄까. 도발하면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해주는 선수, 필라델피아 팬들은 등장음악을 따라 부르며 위협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초구는 바깥쪽입니다. 카운트는 원 볼 노 스트라이크”

“역시 이인영 선수의 등장곡이 바뀐 게 맞네요. 혹시 무슨 노래인지 아십니까?”

“글쎄요… 나중에 물어보면 되겠죠. 저는 영어에 많이 약합니다. 그런 곤란한 질문은 좀 봐주시길 바랍니다.”

이인영이 선택한 곡은 진짜 갱이었던 래퍼 라오 진의 데뷔곡이다.

흉기, 동물학대, 마약소지, 절도, 난폭운전, 알코올 중독 등 범죄계의 새 역사를 쓴 인간쓰레기의 유산

하지만 이인영은 얼마 전 시카고 원정에서 이 음악을 접하고 마음에 들어 등장 곡으로 채용했다.

죄는 사람이 지었지 음악이 무슨 죄인가.

뭣보다 수틀리면 바로 복수해버리는 내 성깔을 아주 잘 녹여낸 음악, 라오 진 특유의 거친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질 때마다 피가 끓어올랐다.

“한 방 쏴주고 그 얼굴에 침을 뱉어!!”

“난 네가 총을 들기 전에 널 죽일 수 있어!!”

“이 시간이 지나면 너와 내가 보는 세상은 달라질 거야!!”

“젠장!! 이보다 더 기분 좋은 일은 없어!!”

음악은 그쳤지만 필라델피아 팬들은 후렴구를 계속 불렀고, 마운드 위의 채드 브래드는 뺨을 타고 흐르는 식은땀을 닦아냈다.

다른 구장에선 상상도 못할 분위기, 이래서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필라델피아에 발을 들이기도 싫어한다.

하지만 이인영은 달랐다.

때 묻지 않은 아이처럼 주위의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고 해야 하나. 한국에서는 얌전한 팬들 사이에서 그럭저럭 모범적인 선수로 생활했지만, 지옥의 악마를 방불케 하는 필라델피아 팬들 사이에선 철저한 악마로 돌변했다.

그리고 그게 팬들이 사랑을 받는 이유, 3구를 받아쳐 2루 방향으로 보냈다.

[따악~!!]

“강한 타구!! 몸을 날려 막아냅니다!! 그 사이 2루 주자는 3루까지!! 타자 주자만 1루에서 잡아냅니다!! 투 아웃, 이인영 선수가 득점권 기회를 살리지 못합니다. 2루수 호지스의 수비가 한 점을 막아내는 군요.”

“오늘 홈런도 쳤고, 잘 해주고 있는데… 그래도 프로라면 2안타를 치면 3안타, 3안타를 치면 4안타, 이런 욕심이 있어야 하는 거죠.”

아웃을 확인한 이인영은 헬멧을 그라운드에 집어던졌다.

우리 선수라도 득점권에서 안타를 못 치면 야유를 보내는 필라델피아 팬들, 하지만 슈퍼스타는 그런 팬들보다 더 독했다.

‘건드리지 말자.’

필라델피아의 와이즈 감독은 더그아웃에 입성하는 악마의 엉덩이를 쳐 주거나 어깨를 쓰다듬는 짓은 하지 않았다.

잘못 건드렸다간 진짜 대폭발, 동료들도 알아서 그 곁을 피했다.

안타나 홈런을 치고 들어오면 어떤 농담이든 받아주지만 그 외엔 건드리지 않는 게 최선, 그렇게 경기는 흘러 6회 말, 5대 3으로 앞선 필라델파아의 공격이 시작됐다.

“자, 원 아웃 주자 없는 상황에서 애틀랜타가 다시 투수를 교체하는 군요. 마이클 스코긴 선수가 올라왔습니다. 올 시즌 13경기 등판, 승패 없이 평균자책점 5.14, 14이닝 동안 볼넷 7개, 탈삼진은 14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삼진 능력은 괜찮지만, 기록으로 보면 알 수 있듯이 제구가 그렇게 좋지 않죠. 이런 선수를 상대할 땐 공을 쫓아 다닐 필요 없습니다. 괜히 타격감이 흐트러질 뿐이죠.”

하지만 공은 타자를 쫓아왔다.

2구, 151km 빠른 볼이 얼굴로 날아왔고, 이인영은 고개를 돌렸지만 공이 턱 근처를 쓸고 지나갔다.

1회에도 비슷한 상황을 겪었고 거기다 얼굴에 입은 상처라 이번에는 참지 않았다.

‘저게 미쳤나?’

상황을 살피던 마이클 스코긴은 마운드로 날아오는 배트를 피했다.

미친 황소처럼 돌진해 오는 타자, 배트 투척에 흥분한 스코긴은 마운드에서 내려왔지만 눈가로 날아드는 강펀치를 맞고 쓰러졌다.

난장판이 된 그라운드,

양 팀 선수들이 개입하면서 싸움은 종료됐지만 스코긴은 얼굴을 움켜쥐며 고통을 호소했다.

“건드리지 마!! 건드리지 말라고!!”

애틀랜타 트레이너는 스코긴의 부상을 살폈다.

안구를 보호하는 뼈는 튼튼하지만 그보다 약간 아래에 있는 뺨과 입 주변의 뼈는 부서지기 쉽다. 골절되면 원래대로 붙이기도 어려운 구조, 아니나 다를까 진단결과 광대뼈 함몰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이인영, 턱뼈 금이 간 채로 마운드로 돌진했다]

하지만 필라델피아에 진영에서 날아온 내용은 더 충격적이었다.

진단 결과 이인영은 턱뼈에 골절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런 몸으로 어떻게 투수에게 돌진할 생각을 했을까.

회복에 최소 4~ 6주가 걸린다는 충격적인 진단, 배트 투척에 격분했던 애틀랜타 여론은 입을 다물었다. 상대 선수 턱뼈를 부숴놓고 우리가 피해자라고 하는 건 어불성설, 오히려 필라델피아가 공세를 이어갔다.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입니다. 반드시 복수하겠습니다.”

분노로 타오르는 필라델피아 일대,

구단주, 단장, 팬들 할 것 없이 애틀랜타를 비난했지만 특히 세스 브런들은 격한 반응을 표했다.

채드 브래드에 이어 마이클 스코긴까지 특정 선수 얼굴에 볼을 던졌는데, 이걸 우연이라고 할 수 있나.

명백한 테러 행위고 반드시 죄값을 치르게 해주겠다며 이를 갈았다.

[됐어, 주먹 한 방으로 끝난 일이야.]

하지만 이인영은 문자를 보내 세스 브런들을 다독였다.

배트 투척에 광대뼈 함몰로 갚아줬는데 뭘 더 어쩌라는 건가. 한 성깔 하는 성격이지만 복수를 했다면 그걸로 만족하는 성격, 팬들에게도 조만간 복귀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경기 하다보면 뼈도 부러질 수 있는 거죠. 흔한 일 아닌가요?”

“아니요. 아니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당분간은 안정을 취하셔야 합니다.”

“보호대 차고 뛰면 되나요? 그렇게 심각한 것 같지도 않은데요.”

이인영은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출장 의지를 드러냈다.

통증은 있지만 말도 그럭저럭 할 수 있고, 딱히 불편한 것도 없다. 하지만 태평양 너머의 가족들에겐 경악할 만한 행보, 특히 어머니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넌 엄마 속을 그렇게 뒤집어 놔야겠니?]

“엄마, 운동선수가 경기 하다보면 다칠 수도 있는 거죠. 뛸 만 해서 뛰는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엄마가 이렇게 부탁한다. 그냥 나을 때까지 쉬면 안 되겠니?]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에 약간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잘 나가던 팀이 부상 선수 속출로 무너진다면 그것도 선수 입장에선 괴로운 일이다.

일단 지켜보겠지만 상황이 좋지 않다면 복귀하기로 했고, 그렇게 일주일이 흘렀다.

[필라델피아 최근 9경기 3승 6패, 상승세 한 풀 꺾여]

[내셔널리그 중부 지구 1위 자리도 위험]

아니나 다를까. 주축 야수 2명의 이탈은 결과로 드러났다.

공격의 핵을 잃어버린 타선은 갈 곳을 잃고 표류, 그렇다고 턱 뼈 부러진 선수에게 복귀하라고 아우성 칠 순 없는 일 아닌가. 그리고 이때, 이인영은 부상 이탈 열흘 만에 그라운드 복귀를 선언했다.

의사 진단보다 3주나 빠른 복귀, 필라델피아 여론은 염려를 표했지만 슈퍼스타는 턱뼈 부러진 건 타격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며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턱뼈가 산산조각 났을 때 미식축구 페이스 마스크를 쓰고 타격을 한 선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정도는 아닙니다. 그저 살짝 금이 갔을 뿐이죠. 이렇게 말도 잘 하지 않습니까? 단축 시즌 때문에 저는 이미 22경기를 손해 봤습니다. 그런데 부상 때문에 또 많은 경기를 거를 순 없죠. 올 시즌은 반드시 포스트 시즌 진출할 겁니다.”

이 소식을 접한 필라델피아의 얼굴 마담 글렌 화이트는 경의를 표했다.

글렌 화이트의 필라델피아 구단 지분은 2.2%에 불과, 그래도 보스턴에서 선수로 뛰던 시절, 승리를 향한 격렬한 투지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괜히 회사에서 이 사람을 얼굴 마담으로 내세웠겠는가.

부러진 턱뼈를 보호하기 위해 미식축구 페이스 마스크를 쓰고 경기에 뛴 그 선수가 바로 글렌 화이트다.

출장을 강행해 준 건 구단 입장에선 고맙고도 미안한 일, 하지만 이인영은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선수가 시즌을 치르다 보면 부상 한 두 가지는 달고 다니는 겁니다. 별로 감사하실 것 없습니다.”

“고맙네. 자네 같은 선수가 있는데 팀이 포스트 시즌 진출을 못한다면 다 우리 잘못이야.”

화이트는 이날부터 모든 경기를 직접 관람했다.

솔직히 얼굴 마담이라 별로 할 일도 없고, 선수가 저런 의지를 보이는데 내가 팀을 위해 뭘 할 수 있겠나.

지든 이기든 지켜봐주는 것, 필라델피아 팬들의 마음도 다르지 않았다.

“닥쳐라 아가야. 아무 말 하지 말고 모든 말은 마음속으로 하렴

내가 화나면 누군가가 다칠지도 몰라

나는 인내심이 많지 않아, 불만이 있다면 거기로 찾아갈게.”

오늘도 울려 퍼지는 지옥의 장송곡,

검투사 헬멧을 뒤집어 쓴 선수의 등장에 관중석은 환호로 뒤덮였다.

하지만 전사는 천천히 타석에 들어설 뿐, 헬멧을 벗어 감사를 표하거나 감성팔이도 하지 않았다.

"자!! 이인영 선수가 열흘 만에 그라운드에 복귀합니다!! 올 시즌 타율 0.359 - 홈런 9개 37타점, 타율은 메이저리그 전체 1위, 홈런은 내셔널리그 4위, 타점은 메이저리그 전체 2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부상으로 빠진 공백이 뼈아프죠. 다치지만 않는다면 얼마든지 자기 역할을 할 수 있는 선수입니다.”

“얼마 전 필라델피아에서는 집회도 열렸죠. 이제 이인영 선수는 이 곳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얼마 전, 필라델피아 팬들은 교회에서 신을 협박하는 집회를 열었다.

그 선수를 지켜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지옥으로 가 당신을 천국에서 끌어내겠다는 저주, 그 정도로 팬들의 지지는 대단했다.

이 정도면 상대하는 입장에서도 부담이 되는 타자, 마이애미의 선발 이스마엘 웨슨은 바깥쪽 빠른 볼을 던졌지만 배트는 나오지 않았다.

열흘이나 쉬었는데 지랄 맞을 선구안은 여전, 바깥 쪽 변화구를 떨어트렸지만 역시 반응은 없었다.

[딱~!!]

“밀어낸 타구가!! 좌중간으로 향하는군요!! 몸을 날리지만 잡지 못합니다!! 리(Lee)는 그 사이 1루를 지나 2루에 들어섭니다!! 돌아온 걸 환영합니다!!”

“제가 이곳에서 중계를 한지 올해로 19년이 됐는데 이런 함성은 2008년 월드시리즈 우승 때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 선수는 이만한 대우를 받을 자격이 충분합니다.”

필라델피아 현지 중계석은 칭찬을 쏟아냈지만 이인영은 표정 없는 얼굴로 2루에서 멀어졌다.

안 좋은 일은 언제나 일어나는 법, 이겨내면 그만 아닌가.

앞으로도 이보다 더 큰 시련이 날 기다리고 있겠지, 그까짓 거 내가 이긴다는 독기를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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