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일은 일인자-174화 (174/309)

174화. shit happen (6)

‘오늘도 경기가 잘 풀리네.’

계속되는 경기, 5회 초 세 번째 타석에서 멀티 히트를 적립한 세스 브런들은 1루 코치에게 보호대를 넘겼다.

현재 스코어는 7대 2 필라델피아의 리드, 오늘도 무난하게 승리를 거두지 않을까.

조시 빌라가 부상으로 이탈하는 사고가 벌어졌지만 세스 브런들에겐 그렇게 나쁘지 않은 하루, 최근 야구도 잘 되고 있고 딴 곳으로 눈이 돌아갔다.

‘오 ~ 괜찮은데’

마침 눈에 들어온 매력적인 미녀, 윤기가 있는 검은 머리와 불륨감이 돋보이는 라인에 마음을 빼앗겨버렸다.

마침 더그아웃과 멀지 않은 곳에 자리를 잡은 그녀, 일단 찜 해두고 1루에서 멀어졌다.

“자, 이인영 선수가 오늘 경기 3번째 타석을 맞이합니다. 오늘 첫 타석 볼넷, 두 번째 타석에서 내야 안타. 100% 출루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1사 주자 1루에서 11타수 6안타, 상당히 강했거든요. 이번 타석도 기대를 해 볼만 합니다.”

[따악 ~ !]

“자!! 외야로 보낸 타구!! 멀리 가지만 좌익수가 잡아냅니다!!”

“아?!! 이게 뭔가요?!! 이게 뭡니까?!!”

여기서 어이없는 실책이 일어났다.

2아웃도 아니고 굳이 일찍 스타트를 끊을 이유가 없었던 상황, 하지만 브런들은 안타라고 지레짐작하고 2루를 지나 3루까지 가고 있었다.

아무리 7대 2로 이기고 있는 상황이라도 용납이 안 되는 플레이, 이인영은 버럭 성질을 내며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미안해, 안타인 줄 알았어.”

“저리 가. 얼굴도 보기 싫어.”

뒤 따라온 대역죄인은 거듭 용서를 빌었다.

정신이 다른 곳에 팔려서 나도 모르게 딴 생각을 했다고 솔직히 말했고, 이인영은 그 문제의 여자를 살폈다.

“평범한 플라이에 3루까지 가는 멍청이가 꼬실 수 있는 여자가 아니니까. 포기해.”

“와하하하 ~ ”

원색적인 비난에 발칵 뒤집힌 필라델피아 더그아웃, 약간 심기가 불편했던 피터 와이즈 감독도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내가 꼬시면 어떻게 할래?”

“뭐? 어떻게 하라고? 난 네가 저 여자 꼬시든 말든 관심 없어.”

남이 연애를 하든 말든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인가.

이인영은 관심을 끊었고, 그 사이 세스 브런들은 문제의 관중에게 접근했다.

“이봐요. 오늘 날씨 좋죠?”

“저 남자친구 있어요.”

이런 일이 한 두 번이 아닌지 바로 철벽을 치는 여자, 필라델피아 선수단은 멍청이를 비웃었지만 브런들은 꿋꿋하게 작업을 이어갔다.

“당연하겠죠. 당신 같이 멋진 분이 애인이 없다면 이상한 일이죠.”

“그런데 왜 말을 거는 거예요?”

“멋진 여성에게 관심을 주는 건 남자의 의무죠.”

“저는 제 남자친구의 관심이면 충분해요.”

“그럼 그 친구도 당신에게 매일 아름답다고 말해주나요?”

여성 관중은 약간 움찔했다.

솔직히 요즘 내게 관심이 멀어진 것 같은 느낌, 얼마 전에도 스타일을 살짝 바꿔줬는데 애인은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귀찮아서 떨쳐내려고 했는데 남자에게 아름답다는 말을 들어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고, 조금 더 놀아주기로 했다.

“당신은 원래 경기 중에도 여자들한테 말을 걸고 그러나요?”

“뭐, 팬서비스 차원이죠. 필라델피아 여자들이 왜 아름다운지 아세요?”

“왜죠?”

“남자들이 매일 아름답다고 칭찬해주기 때문이죠. 관심을 주고 물을 줘야 꽃이 피는 것과 같은 이치죠.”

“우웩 ~ 저 자식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우리까지 부끄럽게 하지 말라고!! 멍청아!!”

곁에 있는 필라델피아 선수들은 아우성을 쳤다.

같은 남자가 봐도 영 아닌 작업 스타일, 하지만 문제의 여성은 재미있다며 흥미로운 반응을 보였다.

‘세상엔 참 신기한 일이 많구나.’

상황을 살피던 이인영은 코웃음을 쳤다.

저런 멘트에 넘어오는 여자가 정말 있었을 줄이야. 어쨌든 브런들은 이후에도 틈이 날 때마다 문제의 여성과 대화를 주고받았고, 경기가 끝난 후 식사를 하기로 약속까지 잡았다.

[애인 있는 여자 건드리지 말라고 전해주십시오. 이게 마지막 경고입니다. 경기 중에 피 보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군요.]

그렇게 별 문제없이 지나가나 했는데, 며칠 후 일이 제법 심각하게 돌아갔다.

익명의 남자가 필라델피아 구단에 협박성 편지를 보낸 것,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이라 필라델피아 구단 관계자들은 바짝 긴장했다.

그리고 문제의 여성과 연락을 끊으라고 요구했지만 브런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제가 뭘 잘못했습니까? 어떤 남자를 택하든 그녀의 권리 아닙니까? 그녀는 제게 남자친구에게 질렸다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논란에 휩싸인 브런들은 기자들 앞에서 공식 입장을 밝혔다.

여론은 애인이 있는 여자를 건드렸다고 날 나쁜 인간 취급하는데, 남자를 선택하는 건 그녀의 몫이다.

그런데 무슨 권리로 그 남자는 구단에 그런 경고를 보낸 건가. 브런들은 앞으로도 그녀를 계속 만날 거라 분명히 밝혔고, 어떤 위협을 가해도 물러서지 않겠다며 당당히 가슴을 폈다.

“야, 너 그러다 총 맞을 수도 있어.”

“그냥 포기해라.”

필라델피아 선수들은 브런들을 말리고 나섰다.

재수 없어서 미친놈한테 칼부림이라도 당하면 나만 손해 아닌가. 하지만 브런들은 내가 하는 일에 간섭하지 말라며 귀담아 듣지 않았다.

‘뭐, 별 일이야 있겠어. 주위에 구단 경호원들도 있고’

이인영은 별 생각 없이 경기에 나섰다.

그 남자가 구단에 협박 편지를 보냈다고 하는데, 그럼 총이라도 들고 야구장으로 쳐들어 올 건가.

뭣보다 여자가 이미 마음이 돌아섰다는데 구질구질하게 달려드는 건 루저일 뿐, 신경 쓰지 않았다.

“남자다!!”

“브런들 너는 남자야!!”

오늘도 반복되는 경기, 필라델피아 홈 팬들은 브런들에게 응원의 메시지가 담긴 목소리를 내질렀다.

그런 위협까지 당했으니 어깨가 움츠러들만한데 이렇게 당당하게 나올 줄이야, 한때 브런들을 입이 가벼운 촐랑이로 여겼던 남성 팬들도 다시 봤다며 박수를 보냈다.

좋다고 캡을 벗어 환호에 답하는 브런들, 이인영은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고 말았다.

1회 초 원정팀 애틀랜타의 공격은 득점 없이 종료, 필라델피아의 1회 말 공격이 시작됐다.

“자, 세스 브런들이 타석에 들어섭니다. 올 시즌 타율 0.317, 홈런 5개, 12타점, 드디어 만년 유망주 허물을 걷어내고 있습니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역시 미국은 미국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KBO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지 않았습니까?”

“그렇죠. 제가 대놓고 실명을 말할 순 없지만, 그 선수도 짝이 있는 분을 만난 게 문제가 됐는데 결국 팬들에게 비난만 받고, 2군으로 강등됐거든요. 그런데 미국은 역시 쿨 하네요. 경기 중 애인 있는 사람이랑 연애 했다고 강등당하는 일은 없었으니까요.”

첫 타석부터 안타를 쳐낸 브런들은 어딘가에서 이 장면을 보고 있을 그녀에게 사랑의 세리머니를 날렸다.

정말 못 말리는 얼간이, 그래도 미워할 수 없는 활약에 필라델피아 팬들은 환호를 보냈다.

다음 타자는 스캇 브라운, 브라운은 2구를 받아쳐 좌측 깊숙한 타구를 날렸지만 멀리 가지 못하고 잡혔다.

2루를 앞두고 멈칫 멈칫 하다 제 자리로 돌아가는 세스 브런들, 지난 시카고 원정에서 본 헤드 플레이로 병살타를 만들었던 몸이라 주루 플레이에 신중을 기했다.

“홈런 쳐!! 홈런!!”

브런들은 타석에 들어서는 친구에게 응원의 목소리를 높였다.

홈런 치면 여유 있게 홈으로 들어올 수 있지 않나. 루상에서 집중력을 유지하는 건 은근 힘든 일, 우측 담장을 넘어가는 시원한 홈런을 기대했다.

‘뭐, 그렇게 쉽게 되진 않겠지만’

기대에 응하고 싶었지만 이인영은 바깥쪽 변화구를 지켜봤다(스트라이크 판정).

요즘 철저하게 변화구 위주의 승부를 하고 있는 배터리, 내가 빠른 공에 강점이 있다는 걸 인정받은 거지만, 덕분에 요즘 볼넷이 너무 늘어났다.

타격을 좋아하는 입장에선 환영하고 싶지 않은 대접, 하지만 주자가 있는 상황이라 성급한 타격도 할 수 없었다.

“이번에는 몸 쪽이군요. 슬라이더로 보이죠?”

“그렇습니다. 이인영 선수가 올 시즌 슬라이더 상대 타율이 0.250, 표본은 적지만 어쨌든 투수들이 재미를 봤거든요. 여기서 힘으로 밀어붙이는 전개는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궁지에 몰린 콜로라도 배터리는 힘과 힘의 대결을 택했다.

3구는 몸 쪽 높게 들어오는 92마일 빠른 볼, 얼굴 근처로 날아오는 궤적에 이인영은 급히 몸을 틀었다.

시즌 초, 위협구에 투수 강습 타구를 날려 복수를 했는데 또 그래야 하나. 하지만 일일이 인상 구기며 대응하는 것도 피곤하고 결과로 갚아주기로 했다.

“다시 몸 쪽, 카운트는 쓰리 볼 원 스트라이크가 됩니다.”

“이인영 선수가 역시 멘탈이 대단하네요. 저렇게 얼굴 쪽으로 공이 날아오면 어떤 선수든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거든요. 이번에도 몸 쪽 깊숙이 날아왔는데 전혀 흔들림이 없습니다.”

“공이 날아오면 입으로 잡고 씹어 먹을 선수죠. 절대 도망칠 성격은 아닙니다.”

[따아악 ~ !!]

“자!! 말씀 드리는 사이!! 우측으로 멀리 가는 타구!! 한참을 날아!! 담장 너머로 사라집니다!!!! 이인영 선수의 시즌 9호 홈런!! 투런 홈런으로 장식을 합니다!! 올 시즌 36타점 째!! 메이저리그 전체 타점 1위 자리도 굳건합니다!!”

“이런 게 진짜 복수죠. 얼굴로 공 던지는 게 정정당당한 게 아니라는 건 투수가 더 잘 알고 있습니다.”

박한우 위원의 말대로 홈런을 맞은 채드 브래드는 고개를 숙였다.

보복 타구가 날아오는 걸 각오를 하고 던진 위협구, 그런데 이렇게 호되게 당할 줄이야. 영화 속의 3류 악당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썩 좋진 않았다.

어쨌든 그 사이 1루 주자 세스 브런들은 유유히 홈에 입성, 이인영도 홈을 밟았지만 브런들과 거리를 뒀다.

“왜 날 무시하는 거야?”

“너하고 같이 있다가 봉변당하기 싫어.”

잠잠해졌지만 어쨌든 조심해서 나쁠 것 없지 않은가.

막말로 옆에 있다 재수 없이 테러라도 당하면 누구에게 하소연을 하나. 친구가 나부터 살자는 식으로 나오자 브런들은 코웃음을 쳤다.

“너는 그런 루저의 협박이 신경 쓰이는 거야?”

“됐고, 총은 너 혼자 맞아라. 나는 이번 사건하고 관련 없어.”

“실망이야. 나는 네가 그렇게 겁이 많은 줄 몰랐어.”

“겁 많은 놈이 위협구 이겨내고 홈런 치겠냐?”

오늘도 계속되는 더 선수의 신경전, 어쨌든 그렇게 경기는 흘러갔고 3회 초 애틀랜타의 공격이 시작됐다.

3번 타자 애런 힉스가 3구를 잡아 당겼지만 너무 떠버린 타구, 좌익수 세스 브런들은 앞으로 나가다 뒷걸음질 치며 타구를 잡아냈다.

‘뭐야?’

그런데 여기서 돌발 상황이 일어났다.

관중석에서 날아온 물체가 브런들 쪽으로 날아온 것, 타구에 집중하던 상황이라 브런들은 등 뒤에서 다가오는 위협을 눈치 채지 못했다.

다행히 빗겨갔지만 위험천만했던 순간,

주위에 있던 팬들이 문제의 남성을 붙잡았고 마침 주위에 경계를 서고 있던 구단 경비원이 사건현장으로 달려갔다.

역시 그 남자의 범행인가. 팬들의 관심은 끌려가는 남자에게 집중됐지만 브런들은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루저 자식, 한다는 복수가 겨우 이거였냐?’

차라리 총을 쐈다면 모르겠는데, 겨우 맥주 캔 투척이라니 이런 걸로 그녀를 향한 내 마음을 꺾을 수 있다고 생각했나.

이 정도 위협엔 꿈쩍도 하지 않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