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일은 일인자-168화 (168/309)

168화. 맞느니 때린다 (3)

“아주 비겁한 행동이다.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경기가 끝난 후 워싱턴의 애쉬 하디 감독은 기자들 앞에서 불만을 표했다. 1루 커버를 들어가느라 방비가 전혀 안 돼 있던 투수를 가격하는 게 정당화 될 수 있는가.

정정당당하게 마운드로 돌전했다면 모를까, 그런 행동은 아주 비열하고 치사한 행위라며 슈퍼 루키의 행위를 깎아내렸다.

“개소리 집어 치우라고 하십시오.”

물론 이인영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출장정지 처분을 받아 경기에는 나서지 못했지만 자신이 왜 그런 해동을 했는지 따지고 들었다.

“투수는 아주 유리한 입장에서 싸움을 겁니다. 일단 공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있죠.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 타자를 맞출 수 있습니다. 그런데 타자는 뭘 할 수 있죠? 일단 한 대 맞을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어제 제레미 마타는 제게 위협구를 2번 연속 던졌습니다. 3루 코칭 박스에 앉아 있던 릭 버드 코치도 이걸 알아채고 항의를 했죠. 그렇지 않습니까?”

기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1루로 달려오는 투수를 가격한 게 비겁한 행동이라고? 그럼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가 타자에게 위협을 가하는 건 정당화 될 수 있는가.

투수가 시비를 걸어와도 타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다.

기껏해야 고의로 배트를 던지거나 타구를 투수 쪽으로 날리는 건데, 투수가 타자에게 던지는 공은 ‘의도가 없었다.’라는 그럴 듯한 명분으로 포장될 수 있다.

하지만 타자가 투수에게 던지는 배트는 비신사적인 행위로 취급받는 게 현실, 가만히 보면 타자는 빈볼 시비에서 대부분 방어적인 입장이다.

이인영은 그런 게 싫었고, 자기 방식대로 위협구에 대한 보복을 한 것 뿐 비겁이니 뭐니 따지는 건 의미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마운드로 직접 돌진할 수도 있지 않았습니까?”

“그건 바보 같은 짓이죠. 제가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슈퍼루키는 이어지는 질문에도 공격적으로 답했다.

높은 곳에서 싸움을 시작하는 쪽이 유리한 건 당연, 왜 투수는 빈볼을 맞고 성이 난 타자가 마운드로 달려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까.

답은 간단하다.

그 쪽이 훨씬 유리하기 때문, 공이라는 흉기와 마운드라는 우위를 점거하고 있는 투수에게 왜 타자가 먼저 달려들어야 하나.

처음부터 불리한 조건에서 시작하는 싸움, 이인영은 내가 추구하는 보복은 완벽한 복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저는 타구를 1루로 보내 제레미 마타를 마운드에서 끌어내렸습니다. 그리고 그 자식은 제 의도대로 1루로 달려왔죠. 저는 절대 불리한 조건에서 싸우지 않습니다. 유리한 상황에서 상대에게 최대의 피해를 주는 싸움을 하죠. 모든 것이 뜻대로 된 싸움이었습니다. 결과에 만족합니다.”

기자들은 헛웃음을 지었다.

이렇게까지 무섭고 치밀할 줄이야, 한 기자는 혹시 다음에도 비슷한 상황이 나오면 똑같은 행동을 할 거냐는 질문을 했다.

“당연한 거 아닙니까? 분명히 말하는데 앞으로 제게 위협구를 던진 투수에게는 그만한 보복이 따라올 겁니다. 비겁하다고요? 그딴 것 저한테 묻지 마세요. 위협구를 던졌다는 것 자체가 이미 비겁한 행동이니까요. 그런 놈은 어떤 수를 써서라도 병원으로 보내버릴 겁니다.”

이 인터뷰는 메이저리그에 엄청난 후폭풍을 불러 일으켰다.

현재 MLB 투수의 평균 빠른 볼 구속은 93마일까지 올라왔다. 선발의 평균 구속은 91~ 2마일 정도지만, 불펜은 95마일은 가볍게 던지는 투수들이 넘쳐난다.

이런 상황에서 타자들에게 빈볼이 얼마나 큰 위협인지 두 말 하면 잔소리 아닌가.

그런데도 타자는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투수가 살인흉기를 대놓고 던지는데 타자는 방망이를 들고 마운드로 난입하면 안 되는 건가.

타자에게 너무 불리한 싸움, 일부 선수들은 위협구에 대한 단호한 대처가 필요하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투수가 공을 던지듯이, 타자도 배트를 투수에게 던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당연한 거 아닙니까? 투수가 위협구를 던지는 건 합법이고 타자가 배트를 집어던지는 건 불법인가요? 뭐 그런 논리가 다 있습니까?”

특히 세인트루이스의 베테랑 타자 지미 멘더슨은 배트 투척 허용을 적극 지지했다.

멘더슨은 유독 몸에 맞는 공이 많은 편,

지난 9월 22일, 시카고와의 경기에서도 몸에 맞는 볼 2개를 추가하며 시즌 15번 째 몸에 맞는 공을 기록했다.

그나마 이것도 작년에 비해 줄어든 수치다.

작년에는 무려 21개를 맞았는데, 특히 6월에만 몸에 맞는 볼 11개를 기록하며 메이저리그 기록을 경신하기까지 했다.

“빈볼을 던지고 투수들이 하는 말이 있죠. 그 답은 한결 같습니다. 고의가 아니라고요. 하지만 타자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타석에서 공을 보다보면 그게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 훤히 보입니다. 그런데도 그 친구들은 고의가 없었다며 피해자를 이상한 사람으로 몰고 가죠. 분명히 말씀드리는데 타자들도 저항해야 합니다. 네가 공을 던지면 우리는 배트를 던질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합니다.”

때 아닌 배트 투척 논란, 배트 투척은 투수에게 상당히 위협적인 행동이다.

일단 공을 던지면 중심이 앞으로 쏠린 상황이라 타자가 배트 투척을 시전하면 피하기가 어렵다.

실제로 부러진 배트에 발목이나 팔을 다쳐 부상을 입는 경우도 많고 투수에겐 상당히 민감한 행동, 많은 투수들이 배트 투척에 반대하고 나섰지만, 야수들도 더는 참지 않겠다며 들고 일어났다.

그렇게 시작된 투수와 야수 간의 신경전,

그러건 말건 논란에 불을 지핀 이인영은 2경기 출장정지 처분을 마치고 그라운드에 복귀했다.

“어이, 너 요즘 완전 유명해 졌다?”

“뭐가?”

“요즘 팬들이 너 끝내준다고 열광하고 있잖아. 몰라?”

“됐어. 털 달린 남자XX들이 반하는 건 사절이야.”

슈퍼루키는 복귀하자마자 클럽하우스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렸다.

저런 성격으로 어떻게 한국에서 조용히 지냈던 걸까. 너 한국에서도 원래 그런 성격이었냐는 질문이 쏟아졌다.

하지만 이인영은 피식 웃을 뿐 아무 답도 하지 않았고 그대로 그라운드로 발걸음을 옮겼다.

“와아아~!!”

“휘이이~ 휘이~ ”

참전용사 복귀에 버금가는 홈팬들의 환호, 하지만 이인영은 표정 없는 얼굴로 외야를 누볐다.

1회 초, 원정 팀 마이애미의 공격은 득점 없이 종료 필라델피아의 1회 말 공격이 시작됐다.

“자, 조시 빌라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올 시즌 타율 0.249, 홈런 24개, 75타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막판에 페이스를 끌어올리고 있죠. 75타점은 커리어 하이입니다.”

초구부터 몸 쪽 깊은 공, 타석에서 한 발 벗어난 조시 빌라는 마운드에 경고의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크리스 필립스는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느냐는 반응, 배트 투척 논란이 벌어진 게 불과 3일 전이라 홈팬들은 야유를 퍼부었다.

‘내가 봐도 이게 더 긴장감이 있네.’

주심은 투수와 타자 양 쪽 모두에 경고를 줬지만, 내심 이런 분위기가 싫지 않았다.

심판 입장에서도 너무 지루했던 야구 경기, 그런데 한국에서 건너온 루키가 타자도 보복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면서 그라운드에 묘한 긴장감이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게 관중들의 흥미를 부추기고 있는 것도 사실,

가만히 앉아서 감자튀김과 맥주를 즐기던 팬들도 이제는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고 야유를 퍼붓는게 일상화 됐다.

‘이거야 원 … 무서워서 몸 쪽 던지겠나.’

포수가 던져준 공을 받아든 크리스 필립스는 인상을 구겼다.

대놓고 배트 투척하겠다는 타자들, 그럼 투수는 뭘 어쩌라는 건가. 어쨌든 몸 쪽 깊숙한 공이 들어간 건 사실, 바깥쪽으로 하나 뺐지만 존에서 너무 벗어났다.

“또 던져 보라고!!”

“왜?!! 배트 맞고 병원가기는 싫냐?!!”

사방에서 쏟아지는 팬들의 야유와 도발, 약간 욱한 필립스는 몸 쪽 승부를 했지만 좌중간에 떨어지는 안타를 허용하고 말았다.

[No 2!! Right Fielder!! In Young Lee!!]

"와아아아~!!“

그분의 등장에 뒤흔들리는 관중석, 남녀 팬들 할 것 없이 환호성을 보냈지만 라이브 무대에 선 주인공은 표정 없는 얼굴로 배터 박스에 들어섰다.

“자, 이인영 선수가 출장정지 처분을 마치고 복귀합니다. 올 시즌 타율 0.362, 홈런 31개, 99타점!! 100타점까지 앞으로 1개뿐입니다.”

“역대 이인영 선수가 지금까지 649타수 235안타를 치고 있거든요. 오늘 경기까지 3게임이 남았는데 5안타를 추가하면 1975년, 스테픈 미첼 선수의 239안타, 필라델피아 구단 신기록을 경신하게 됩니다.”

“출장정지가 약간 뼈아프긴 했는데, 그래도 3경기에서 5개면 해 볼 만 합니다.”

마이애미 배터리는 신중하게 사인을 주고받았다.

단순히 타율만 높은 타자가 아니라 한 방까지 있으니, 섣불리 몸 쪽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

바깥쪽 체인지업으로 승부를 봐야 하는데, 그러려면 공을 높게 던지거나 몸 쪽으로 던져야 한다.

결국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카운트를 잡기 위한 공이 들어갔다.

따아악~!!

귓가를 맴도는 맑고 고운 소리, 타구를 잠시 바라보던 이인영은 배트를 옆으로 내던졌다.

배트 플립에 크리스 필립스는 기분이 상한 얼굴, 하지만 이인영은 투수 쪽으로 던지지 않은 걸 고맙게 생각하라는 눈빛을 보냈다.

시즌 32호 홈런이자 시즌 100타점 돌파를 축하하는 한 방, 필라델피아 홈팬들은 한 목소리로 슈퍼스타의 컴백을 환영했다.

‘우리는 할 수 있다. 내년에는 가능하다.’

필라델피아 구단주 도널드 오넬리는 우리가 정말 대단한 선수를 영입했다는 걸 확신했다.

저런 선수를 6년 5000만 달러로 쓸 수 있는 필라델피아는 축복 받은 팀, 조금만 더 투자를 하면 내년에는 강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슈퍼 루키의 활약과 끓어오르는 관중석은 내년 시즌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끌어올렸다.

‘그까짓 239안타’

이인영은 마지막 3경기에서 무려 7안타를 추가하며 242안타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최종 성적은 타율 0.366 - 홈런 32개 - 104타점, MVP를 받아도 할 말 없는 성적에 전문가들은 입을 다물었다.

2할 후반 대 타율만 쳐도 대성공이라는 의견은 쥐구멍으로 들어갔고, 슈퍼스타는 클럽하우스 앞에서 무사히 시즌을 마친 소감을 밝혔다.

“올 시즌 아주 대단한 활약을 펼치셨는데, 만족하십니까?”

“뭐 … 인간적인 시즌을 보낸 것 같아 만족합니다.”

“인간적이라고요?”

“저는 한국에서 평균 3할 8푼에 40홈런을 밥 먹듯이 쳤습니다. 그것 때문에 인간이 아니라는 말도 자주 들었죠. 하지만 올 시즌 32홈런 밖에 못 쳤으니 인간적인 매력을 발산했다고 할 수 있겠죠.

기자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올 시즌 거둔 성적도 충분히 괴물인데 앞으로는 어떤 활약을 펼칠까. 혹시 2년 차 징크스는 없을지, 내년 활약이 더욱 기대됐다.

“앞으로의 일정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글쎄요. 만나 볼 사람도 있고 … 일단 귀국은 잠시 미룰 생각입니다.”

“만나볼 사람이라고요? 그게 누군가요?”

“노 코멘트”

마지막까지 여운을 남긴 인터뷰, 필라델피아 팬들은 비명을 질렀다.

팀이 포스트 시즌에 진출했다면 이 끝내주는 악당의 활약을 더 즐길 수 있었을 텐데, 구단은 당장 돈 다발을 풀어 투자에 나서라는 시위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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