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화. 맞느니 때린다 (1)
[MVP 경쟁 구도 점입가경]
[후보 대략 3명으로 좁혀졌다]
시즌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MVP 경쟁도 치열해 졌다.
아메리칸 리그는 스티븐 오어가 타율 0.306, 홈런 39개, 98타점을 기록하며 독주 체제를 달리고 있지만 내셔널리그는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레이스가 이어졌다.
■ 찰리 해리슨(밀워키)
= 타율 0.283, 홈런 39개, 102타점
■ 지미 멘더슨(세인트루이스)
= 타율 0.322, 홈런 29개, 89타점
■ 이인영(필라델피아)
= 타율 0.366, 홈런 24개, 81타점
수상 후보는 이 세 명으로 좁혀졌다.
사실 전반기까지만 해도 지미 멘더슨의 통산 3회 MVP 수상에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었다.
전반기 성적은 타율 0.377, 홈런 22개, 출루율 0.428, 장타율 0.658, 누가 봐도 압도적인 페이스였다.
하지만 후반기에 굴러 떨어지면서 이제는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입장, 그나마 팀이 중부지구 1위를 달리면서 순위권 후보는 유지하고 있다.
MVP는 개인 성적도 중요하지만 팀 성적이 가장 큰 영향을 차지한 건 당연, 밀워키와 세인트루이스는 치열한 순위경쟁을 치르고 있지만 필라델피아는 중권에 처져 있다.
상대적으로 이인영이 불리한 입장, 그리고 홈런과 타점 페이스도 뒤지고 있는 상황이라 전문가들은 MVP 투표에서 3위를 차지할거라 예상했다.
“지금 여론이 이런데 당신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분명한 건 당신들에게 표를 달라고 아부할 생각은 없다는 겁니다.”
슈퍼 루키는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개인적인 소감을 밝혔다.
나는 별 생각이 없는데 기자들이 더 신이 난 느낌이랄까. 아마 넌 안 될 거라는 식으로 말을 하고 있는데 성질을 내서 뭘 어쩌겠나.
나는 상 도착증 따윈 없는 인간이라고 선을 그었다.
“해리슨과 멘더슨 중 누가 받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해리슨은 살 좀 뺐으면 합니다. 그런 비대한 몸으로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해봤자 하나도 멋이 나질 않으니까요. 그리고 멘더슨은 팀 성적 덕분에 수상 자격을 유지하고 있는 겁니다. 스스로 떳떳해지려면 조금 더 분발해야겠지요? 이상입니다.”
표 구걸 없이 경쟁자들을 향한 저격으로 끝난 인터뷰,
일부 보수주의자들은 상대 선수를 인정할 줄 모르는 발언이라고 비난했지만, 많은 팬들은 넌 안 될 거라는 식으로 질문을 던진 기자들을 더욱 비난했다.
“찰리 해리슨은 반쪽 선수.”
“이인영이 MVP를 받아야 한다.”
발끈한 한국 팬들도 팬심을 발휘했다.
해리슨이 47홈런, 122타점 페이스를 달리고 있지만 수비가 엉망인 반쪽 선수라는 것, 해리슨은 올 시즌 1루 자리에서 실책을 18개나 저질렀다.
공격이 워낙 좋아서 안 쓸 수는 없는 선수,
이것 때문에 밀워키도 해리슨을 좌익수로 전향시키려 했지만 지금은 포기했다.
데뷔 때만 해도 115kg이었는데 4년 사이 무려 10kg이 넘게 찐 것, 현재 체중은 127kg이나 된다.
전문가들도 이런 형편없는 몸 관리로 어떻게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지 불가사의하다는 의견, 하지만 체중 얘기만 나오면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해리슨 때문에 기자들은 그 부분은 어지간하면 안 건드린다.
그 역린을 한국에서 건너온 겁 없는 루키가 건드린 것, 해리슨은 인터뷰를 통해 반격에 나섰다.
“그 친구 체중이 대략 얼마나 되죠?”
“대략 198(90kg)파운드 정도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너무 말랐군요. 제 몸무게의 반도 안 되니까 홈런도 그 정도 밖에 못 때리는 겁니다.”
반도 안 된다는 말은 과장이지만 두 선수가 체중에서 많은 차이가 나는 건 사실이다.
그리고 이인영은 키에 비해 마른 체형인 게 사실,
세인트루이스의 멘더슨은 178cm의 작은 키에 92kg 체중을 유지하고 있다. 데뷔 시즌 때만 해도 80kg 밖에 안 됐지만 한계를 느끼고 근육량을 늘린 것, 근육과 체중을 이용해 타구에 힘을 실으면서 장타력도 상승했다.
반면 이인영은 허리의 유연성과 배트 스피드를 이용해 장타를 만들어 내는 편, 그렇다고 레그 킥을 해서 장타를 양산하는 스타일도 아니다.
24홈런을 치고 있지만 전체적인 타격 스타일은 교타자에 가까운 편, 해리슨은 그런 타격으론 40홈런을 치고 MVP가 될 순 없다고 충고했다.
“그런데 그런 타격으로 24홈런을 기록하고 있는 게 대단한 거 아닙니까?”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하는 거죠?”
“당신 말대로 그 선수는 정확한 타격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그런 타격으로 30홈런을 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몸무게가 90kg 밖에 안 나간다고 힘이 떨어진다고 단정 할 수 있을까.
정확하게 치고 있는데도 29홈런 페이스를 달리고 있는 그 선수, 한 기자는 몸무게가 홈런을 보장할 순 없는 거 아니냐며 반박했다.
“시간 다 됐습니다. 그만 하시죠.”
눈치를 살피던 밀워키 구단 관계자가 인터뷰를 끊었다.
몸무게 얘기만 나오면 민감해지는 해리슨, 소동이 일어나기 전에 차단해버렸다.
때 아닌 체중 논란이 불러온 대립구도, 필라델피아의 에이스 휴 스트러프는 슈퍼 루키에게 좀 더 많은 홈런을 요구했다.
“야, 너 정도면 메이저리그에서 40홈런 칠 수 있어. 그 건방 떠는 돼지 XX 콧대를 꺾어버리라고.”
“그런 건 네가 알아서 해.”
“뭐라고?”
“그 자식 콧대를 꺾는 건 네가 할 일이야.”
이인영은 스트러프가 해리슨에게 약하다는 걸 잘 알았다.
통산 상대전적은 19타수 5안타, 타율은 0.263으로 그저 그렇지만 홈런을 4개나 얻어맞았다.
올 시즌도 홈런 하나를 헌납, 같은 지구라 자주 만날 일은 없지만 만났다 하면 홈런을 허용하는데, 이인영은 네 사소한 복수에 신경 쓸 만큼 한가롭지 않다는 입장을 내놨다.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야. 3할 6푼 쳐봤자 40홈런 치는 녀석 앞에선 별 관심 못 끈다고, 너도 홈런을 쳐야 돼.”
“알았으니까 볼 일 보세요.”
동료들과 투닥거린 이인영은 평소처럼 그라운드에 나섰다.
내색은 안 했지만 최근 홈런 페이스가 떨어진 건 사실, 특히 집요한 몸 쪽 승부가 계속되면서 장타가 줄어들었다.
안타는 어떻게든 때려내고 있지만 이런 식이라면 내년 시즌도 고전하겠지, 나름대로 해결책을 마련했다.
“플레이볼!!”
1회 초 필라델피아의 공격으로 시작된 경기, 선두 타자 조시 빌라가 좌익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를 날리면서 순조롭게 출발했다.
“자, 이인영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올 시즌 타율 0.364, 홈런 24개, 81타점, 여전히 아름다운 비율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어? 자세가 약간 달라진 것 같은데요?”
양아들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넘치는 박한우 위원은 바로 변화를 알아챘다.
오프 스탠스는 처음부터 왼쪽 다리에 체중이 실려 있어 안정성이 높은 편, 다만 체중이 실려 있는 만큼 운동성이 낮은 게 문제다.
지금까지 특유의 유연성과 운동신경으로 타격을 해왔는데 갑자기 이런 변화를 택한 이유가 뭘까.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뜻은 알겠는데… 굳이?’
타격을 지켜본 박한우 위원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좌타자가 오프 스탠스를 잡으면 골반이 오른쪽으로 돌아가 있는 자세가 된다.
타격을 하려면 골반을 우회전해야 되는데, 이렇게 이미 골반이 우측으로 꺾여 있으면 많은 힘을 끌어내기가 어렵다.
하지만 앞발을 쭉 뻗는다면 어떨까?
이렇게 되면 골반이 좌측으로 회전하게 되는데 그 반작용으로 우측으로 밀려 있던 골반도 강하게 회전하게 된다.
한 마디로 허리 스윙을 좀 더 실어주는 타격 폼이 된 것, 물론 단점이 없는 건 아니다.
예전엔 앞발을 크게 쓰지 않아 중심이 덜 흔들렸는데, 자칫 파워와 정확도까지 잃어버리는 거 아닌가.
시즌 중에 타격 폼을 바꾸는 건 방망이가 안 맞는 선수들이나 하는 짓, 그런데 양아들은 딱히 잘못하고 있는 게 없다.
왜 갑자기 이런 타격을 하게 된 걸까.
후반기 들어 떨어진 홈런 페이스 때문에? 너무 잘하려다 오히려 고꾸라지는 게 아닌지, 살짝 걱정이 됐다.
[따아악~!!]
“자!! 이 타구는!! 모두!! 일어나!! 소리를!! 지르십시오!! 우측 담장을 넘어가는 투런 홈런!! 이인영 선수가 시즌 25호 홈런포를 쏘아 올립니다!!”
“지금 이인영 선수의 폼을 보세요. 야구에 관심 없는 사람이 봐도 시원하다는 느낌이 드는 호쾌한 스윙인데 이렇게 할 수 있는 선수가 왜 그 동안 장타력을 억제한 겁니까?!! 너무 건방져요!! 사람 놀리는 것도 아니고 말이죠!!”
박한우 위원은 목덜미가 찌릿해지는 환희에 휩싸였다.
설마 했는데 정말 해버릴 줄이야. 뭣보다 타구에 실리는 파워가 예전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 이런 비기를 숨겨 놓고 왜 쓰지 않은 건가.
자기도 모르게 원망을 하고 말았다.
‘잘 된 건가?’
한편, 홈에 입성한 이인영은 조시 빌라와 손뼉을 마주쳤다.
집요한 몸 쪽 승부를 대비해 연마한 기술, 시즌 중반까지만 해도 몸 쪽 승부를 걸어오는 투수는 많지 않았다.
동양에서 놀다 온 너 정도 타자는 바깥쪽만 잘 던져도 잡아낼 수 있다고 생각한 것, 하지만 이제는 어림도 없다.
몸 쪽 승부가 많아지면서 몸에 맞는 볼도 많아지고 있는데, 맞을 바엔 때리는 게 낫지 않나?
홈 플레이트에 바짝 붙는 건 타격이 안 되는 선수들이나 하는 짓, 이인영은 정면 돌파를 선언했다.
‘우연인가?’
한편, 폴 모랄레스(뉴욕 퀸스) 포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94마일 빠른 볼, 타자 허리 근처로 들어가긴 했지만 나름 몸 쪽으로 잘 붙였다.
그런데 이걸 받아쳐 우측 담장을 넘길 줄이야. 한 시즌에 40홈런 넘기는 타자도 몸 쪽 붙은 공을 넘겨버리는 건 드물다.
다소 어이가 없는 전개, 우연이라고 웃어넘기기엔 너무 강렬한 한방이었다.
“다시 바깥쪽입니다. 카운트는 투 볼 노 스트라이크.”
“역시 몸 쪽 승부 못하죠. 그렇게 거한 한방을 맞았는데 또 들어가긴 어려울 겁니다.”
2번 째 타석부터는 신중한 승부가 이어졌다.
철저하게 바깥쪽을 찌르는 볼 배합, 결국 이인영은 나머지 타석에서 타격할 기회를 잡지 못했다.
때려낸 안타는 하나뿐이지만 결승 홈런을 때리면서 팀 승리에 공헌, 클럽하우스 앞에서 기자들을 마주했다.
“이인영 선수, 일주일 만에 25호 홈런을 쏘아 올리셨는데 이제 장타력이 회복된 건가요?”
“회복된 게 아니라 접근법이 약간 달라진 것뿐입니다.”
“어떻게 말인가요?”
“최근 투수들이 몸 쪽 승부를 많이 한다는 걸 느꼈거든요. 하지만 맞고 나가가는 게 제가 할 일은 아니죠. 맞을 바엔 때리는 게 낫다고 생각했고 나름대로 대책을 마련했는데…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습니다.”
이인영은 이 자리에서 모든 투수들에게 경고를 날렸다.
나는 맞을 바엔 상대를 죽을 때까지 때리는 성격이라는 것, 앞으로 내게 몸 쪽 공을 던지겠다면 홈런이나 주먹을 쳐 맞게 될 거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말했지? 쳐 맞게 될 거라고.’
슈퍼 루키는 다음 날 자신의 경고가 농담이나 허세가 아니라는 걸 증명했다.
상대 투수 우반 클린스만의 95마일 빠른 볼을 담장 너머로 날려버린 것, 우연 아닐까. 하지만 그 대가는 연타석 홈런으로 되돌아왔다.
이틀 사이에 3홈런을 추가하며 33홈런 페이스
해리스, 멘더슨이 주춤하는 사이 벌인 퍼포먼스라 기자들에게 주는 임팩트는 더욱 강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