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일은 일인자-156화 (156/309)

156화. 제대로 붙었다 (4)

“자, 1사 주자 1루에서 필라델피아의 공격은 계속 됩니다. 타석에는 오스틴 카터, 작년 시즌 성적은 타율 0.271, 홈런 26개, 74타점을 기록했습니다.”

“작년 시즌 필라델피아 타선의 희망이었죠. 올해는 좀 터져야 할 텐데 말이죠.”

오스틴 카터는 지난 2022년, 메이저리그 유망주 3위 평가를 받으며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큰 키와 탄력 있는 몸에서 나오는 운동능력이 인상적인 선수, 하지만 데뷔 첫 30경기에서 볼넷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선구안에서 심각한 문제점이 드러났다.

거기다 삼진은 무려 27개, 필라델피아 구단은 오스틴을 마이너리그로 내려 보내 선구안을 가다듬도록 했다.

마이너와 메이저를 오르내리길 3년, 그러다 작년 시즌 114경기에서 26홈런을 때려내며 기나길 터널을 뚫고 나왔다.

하지만 심각한 볼삼 비율은 여전(22/104), 올 시즌은 폭발할 것인가. 와이즈 감독도 심각한 얼굴로 타격을 지켜봤다.

따아악~!!

“와아아~!!!!”

초구부터 힘차게 돌아간 방망이, 맞는 순간 홈런을 직감한 카터는 배트를 그 자리에 내려놓고 유유히 베이스를 돌았다.

이번 시범경기에서 19승 12패 전체 4위를 거둔 필라델피아, 올해는 뭔가 다른 건가.

극성 홈 팬들은 베이스를 밟은 두 선수에게 열렬한 환호를 표했다.

“아~ 기분 좋다!!”

동료들과 하이파이브를 나눈 카터는 레게머리를 흔들며 더그아웃을 휘저었다.

홈런을 날린 후 반드시 하는 세리머니, 이때 슈퍼루키가 태클을 걸고 나섰다.

“그거 비듬 뿌리기 세리머니냐?”

폭탄 발언에 뒤집어진 더그아웃, 동료들의 비웃음에 당황한 카터는 내 머릿속은 깨끗하다며 반발했다.

“어디에 비듬이 있다는 거야?!! 잘 보라고!!”

“됐고, 여기서 털지 말고 딴 데서 털어. 청소하는 사람들 입장도 생각하라고.”

카터는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뒤돌아섰다.

하필 그런 지저분한 비유를 들다니, 신경이 쓰였는지 더그아웃 뒤편에 있는 거울을 힐끗 거렸다.

그 사이 끝난 필라델피아의 1회 말 공격, 장비를 갖춘 이인영은 자기 자리로 들어갔다.

[따악~!!]

“아 … 이 타구가 다시 내야를 빠져나가는 군요. 스트러프 선수가 1회에 이어 2회에도 선두타자를 내보냅니다.”

“최근 패스트볼 구위가 눈에 띄게 떨어지면서 고전하고 있거든요. 변화구 컨트롤이 좋아서 어느 정도 버티고 있지만, 지켜보는 입장에선 안타깝네요.”

필라델피아의 에이스 휴 스트러프는 프로 12년 차에 접어든 베테랑,

전성기는 최고 97마일까지 나오는 포심과 체인지업, 커브, 커터 등을 던지며 에이스로 군림했다.

하지만 지금은 평균 91마일까지 떨어진 포심, 무브먼트는 전성기 시절과 다를 게 없지만 구속이 떨어지면서 피안타율이 급증했다.

그래도 작년 시즌 10승 12패, 평균자책점 3.82, 팀에서 가장 많은 186이닝을 소화한 투수, 어떻게든 끌고 가겠다며 발악했다.

따악~!!

“우우~ 우~ .”

“이 멍청아!! 여기서 홈런 맞고 동점이냐?!!”

연속 안타가 나오면서 무사 주자 1 - 3루, 사방에서 쏟아지는 야유에 이인영은 미소를 지었다.

‘여기서 홈런 맞으면 역전인데?’

무사 주자 1 - 3루에서 홈런 맞으면 3대 2 아닌가, 계산이나 제대로 하고 욕을 할 것이지, 무작정 야유부터 보내는 게 웃겼다.

따악~!!

이번에는 우익수 쪽으로 날아오는 타구, 안타가 될 확률은 타구지만 이인영은 거침없는 전진스텝을 밟았다.

“비켜!!”

계속 가까워지는 2루수 데이브 가반, 우익수의 외침을 들은 가반은 자리를 피했다.

“우익수!! 우익수가 달려오면서 잡아냅니다!! 움직이지 못하는 주자들!! 이인영 선수가 타구를 낚아챕니다!!”

“달려오면서 잡았기 때문에 3루 주자가 뛰긴 애매했죠. 그리고 지금은 정면에서 달려오는 선수가 잡는 게 맞는 겁니다. 2루수가 잘 피해줬어요.”

타구를 확인한 마이클 셰퍼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정도 타구면 우익수는 보통 속도를 줄이지 않나.

하지만 글러브로 들어간 타구, 안타를 예상한 3루 주자는 홈으로 뛰다 급히 3루로 돌아갔다.

태그 업을 하지 않았으니 그대로 뛰었다면 2아웃 적립, 그 정도로 잡기 어려운 타구였다.

‘생각보다 훨씬 잘하는데’

마운드 위의 휴 스트러프는 캡을 꾹 눌러썼다.

아시아 선수가 하면 얼마나 하겠나 했는데 저렇게 쉽게 처리할 줄이야.

뭣보다 타구를 두려워하지 않는 저돌성이 인상적, 수비의 도움도 받았겠다 바깥쪽 낮은 체인지업으로 병살타를 유도하며 위기를 넘겼다.

3회 초까지 2대 0 필라델피아의 리드, 이인영은 3회 말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두 번째 타석을 맞이했다.

“초구, 지켜봅니다. 카운트는 노 볼 원 스트라이크.”

“제가 잠깐 딴 소리를 잠깐 하겠습니다. 이인영 선수가 한국에서 6년 동안 타율 0.382, 273홈런을 쳤고, 필라델피아도 그 실력을 인정해서 마이너리그 거부권을 줬거든요. 그런데 본인은 못하면 스스로 마이너리그에 내려가겠다고 인터뷰를 했죠.”

“저도 기억납니다. 그런데 그런 말은 굳이 안 해도 됐을 텐데요. 어차피 마이너리그 거부권은 팀에서 보장한 조건 아닙니까?”

“그런데 이 선수는 한국에 있을 때부터 주전 자리는 보장된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매년 40, 50홈런을 쳤으면 주전 자리는 당연히 내 것이라는 생각을 할 법도 한데, 그런 게 없었어요. 매일이 전쟁이고 내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싸워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선수입니다. 저희는 그냥 보고 즐기지만, 이 선수는 저 한 타석에 모든 걸고 싸우는 거죠. 보통 독종이 아닙니다.”

[따악~!!]

“말씀드리는 사이!! 이 타구는 센터 쪽으로!! 멀리!! 아~!! 중견수가 잡아내는 군요. 이인영 선수가 두 번째 타석은 플라이로 물러납니다.”

타구를 확인한 루키는 허공에 발길질을 날렸다.

26살에 메이저리그 커리어를 시작한 만큼 한 타석 한 타석이 소중한데, 잘 맞은 타구가 아웃이 됐으니 아쉬움이 컸다.

그래도 마음을 다잡고 경기에 집중, 경기는 어느덧 5회 초에 접어들었다.

따악~!!

다시 높게 날아가는 타구, 스트러프는 외야로 시선을 돌렸다.

경험이 많이 쌓이다보니 야수만 봐도 이게 안타가 되는지 아웃이 되는지 감이 온다.

뒤돌아서서 전력 질주하는 우익수, 스트러프는 아웃을 확신했다.

“뒤로 가는 타구!! 계속 뒤로!! 우익수가 펜스 앞에서 잡아냅니다!! 이번에도 좋은 수비!! 이인영 선수가 안정적인 수비를 선보입니다!!”

“지금 스트러프 선수는 마운드에서 움직이지도 않았어요. 아웃이 될 걸 알고 있었던 건가요?”

박한우 위원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통 이렇게 큰 타구가 나오면, 투수는 외야수의 악송구에 대비해 파울 라인 존으로 향한다.

그런데 미동도 하지 않다니, 기자실에 앉은 기자들도 이런저런 말을 주고 받았다.

“방금 봤어? 저 친구 엄청난 수비를 하고 있는데?”

“그러게 말이야. 벌써 2점은 막지 않았어?”

1회에 나온 수비는 우연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연도 반복되면 실력, 필라델피아가 엄청난 선수를 영입했다는 걸 직감했다. 어쨌든 수비의 도움을 받은 스트러프는 5회 초도 무실점으로 막고 내려갔다.

이어지는 5회 말 필라델피아의 공격, 이인영은 1사 주자 1 - 2루에서 3번째 타석을 맞이했다.

두 번째 타석에서 아웃은 됐지만 타구 질은 나쁘지 않았던 편, 와이즈 감독은 여기서 쐐기를 박는 한 방을 기다렸다.

따악~!!

“와아아아~!!”

1루수가 몸을 날렸지만 빠져나가는 타구, 선행 주자 데이브 가반과 조시 빌라는 모두 홈을 밟았고 타자 주자는 2루를 지나 3루로 내달렸다.

미끄러지듯 베이스를 터치하는 주자, 사방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지만 이인영은 덤덤한 얼굴로 3루 코치와 손뼉을 마주쳤다.

이제 스코어는 4대 0, 승리를 직감한 와이즈 감독은 박수를 치며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이날 필라델피아는 스트러프의 6이닝 무실점 호투, 중심 타선의 활약에 힘입어 6대 0 완승을 거뒀다.

필라델피아가 개막전 승리를 거둔 건 무려 3년 만, 홈 팬들은 승리의 하이파이브를 나누는 선수단에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그리고 이어지는 인터뷰, 휴 스트러프는 기자들의 질문에 답했다.

“질문 드리겠습니다.”

“예, 말씀하십시오.”

“5회 초에 특이한 행동을 하셨는데 이유가 뭡니까?”

악송구에 대비해 파울 라인 밖으로 이동했어야 했는데 왜 그러지 않았냐는 질책, 스트러프는 피식 웃으며 마이크에 입을 댔다.

“외야수의 수비 범위는 공이 날아가는 방향으로 얼마나 스타트를 빨리 하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타구가 날아가는 순간 이미 방향을 잡고 있더군요. 그때 저는 생각했습니다. 아, 이 타구는 잡히겠구나. 그리고 루상에는 아무도 없었죠. 파울 존으로 이동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그럼 당신은 아웃이 될 줄 알고 있었다는 겁니까?”

“당연하죠.”

기자들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정말 그렇게 생각했단 말인가. 타구를 잡은 선수의 입장도 들어봤다.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꽤 빠른 타구였습니다. 그런데도 그런 확신이 들었나요?”

“날아가는 방향만 파악하면 어지간한 타구는 다 잡아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프로라면 그렇게 할 줄 알아야죠.”

스트러프와 일치하는 발언, 천재는 천재를 알아본다 이런 건가.

수비뿐만 아니라 타석에서도 인상적인 활약을 한 루키, 사방에서 질문 이 날아들었다.

“출발이 아주 좋습니다. 올 시즌 당신은 어떤 선수가 될 건가요?”

“뭐라고요? 질문을 이해 못하겠습니다.”

느닷없이 어떤 선수가 될 거냐고? 이인영은 무슨 말을 듣고 싶어서 그런 말을 한 거냐며 리플레이를 요구했다.

“팬들이 보내는 환호를 당신도 들었을 거 아닙니까? 그들에게 어떤 존재가 될 건지, 물어본 겁니다.”

“아~ 처음부터 그렇게 말을 했어야죠. 헷갈리잖아요.”

웃음으로 들썩이는 주변, 잠시 생각을 정리한 이인영은 입장을 밝혔다.

“나라는 국민의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얻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당신도 들어 봤겠죠?”

“그렇습니다.”

“야구팀도 마찬가지입니다. 팬이 쓰레기라면 팀에는 쓰레기 같은 선수들이 넘쳐나겠죠. 저는 한국에서 정말 멋진 팬들과 선수생활을 함께 했습니다. 멋진 팬들 덕분에 저도 멋진 선수가 될 수 있었죠. 하지만 여기는 팬들 수준이 어떤지 아직 파악이 안 됐습니다. 제가 팬들에게 어떤 선수가 될지는 팬들 하기 나름이겠죠. 이상입니다.”

기자들은 폭소를 터뜨렸다.

필라델피아 팬덤은 메이저리그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지금 이 선수 논리라면 쓰레기 팬은 쓰레기 선수를 얻는다는 건데, 그럼 본인도 쓰레기가 되겠다는 거 아닌가.

기자는 진심으로 하는 말이냐며 되물었다.

“뭘 자꾸 물어보세요? 팬이 가운데 손가락을 들면 저도 가운데 손가락을 들 겁니다. 당신이 절 욕하면 저도 꺼지라고 욕을 할 거고요. 이상입니다. 더 다른 말이 필요합니까?”

“아닙니다. 말씀 잘 들었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거친 입담, 이 인터뷰로 이인영은 첫날부터 메이저리그 팬들의 주목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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