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화. 제대로 붙었다 (2)
‘내가 그 자식 때문에 밀려 났다고?’
한편, 세인트루이스에서 애틀랜타로 트레이드 된 닉 카펜터는 자신을 둘러싼 의혹에 불쾌감을 표했다.
작년 시즌 부진하긴 했지만 어쨌든 나는 올스타 출전 경험도 있는 선수, 그런데 아시아에서 이름 좀 날린 선수를 영입하기 위해 세인트루이스가 날 트레이드 시켰다는 건가.
그저 시기가 우연히 겹쳤을 뿐, 카펜터는 SNS를 통해 소설 쓰지 말라는 입장을 밝혔다.
[나는 MLB에서 45홈런을 쳤고, 올스타 출전 경험도 있다. 그에 비해 그 친구는 여기서 이룬 게 뭐가 있나? 단,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그 친구에게 아무 원한도 감정도 없으니까. 다만 쓸데없이 논란을 부추기는 사람들에게 불쾌함을 느낄 뿐이다.]
최대한 태연하게 말했지만 어쨌든 MLB 신입생과 비교되는 게 불쾌하다는 거 아닌가.
세인트루이스는 아직 아무런 입장 발표도 없는 상황, 그런데 느닷없이 카펜터를 영입한 애틀랜타가 조롱의 대상이 됐다.
[돈이 없으니까 저런 폐기물을 사들이는 거지]
[거지 구단에 트레이드 됐다고 하소연하는 걸로 밖엔 안 들려]
애틀랜타는 메이저리그에서 손꼽히는 가난한 구단이다.
문제는 중계권,
구단주가 방송사 사장이었는데, 애틀랜타를 매입하면서 자기 방송사와 구단 중계권 계약을 헐값에 묶어버렸다.
문제는 구단주가 야구 운영에 손을 떼면서부터 일어났다.
인기 없고 관중동원력도 형편없는 탬파베이가 매년 9천만 달러의 중계권료를 받는데, 애틀랜타는 전임 구단주가 맺은 노예 계약 때문에 매년 4천만 달러의 중계료만 받는다.
메이저리그 구단 수익이 팀 수입의 절반이 넘어가는 현 시대에서 이건 풀리지 않는 저주나 마찬가지, 심지어 현 구단주 브라이언 벨은 아예 투자를 안 하고 있다.
각 구단에서 버림 받은 선수를 모아 시즌을 치르고 있는데 성적이 나오는 게 이상한 거 아닌가.
노예 중계권 계약이 풀리는 2029년까지 버티겠다는 건지, 아니면 정말 투자할 생각이 없는 건지 의문,
어쨌든 이런 배경 때문에 애틀랜타는 팬들 사이에서 거지구단이라는 인식이 박혀 있다.
그런 팀으로 팔려갔으니 선수 입장에선 자존심이 상하겠지, 거기다 메이저리그 경력이 없는 선수와 비교를 당했으니 속이 쓰리는 건 당연했다.
‘오해는 하지 말라고?’
이인영도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나는 그 친구와 원한도 없다? 하지만 45홈런을 친 내가 그 친구와 비교 당하는 건 불쾌하다?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가.
결국 나와 비교되는 게 싫다는 건데, 무슨 말을 그렇게 장황하게 늘어놓는 건지, 어쨌든 세인트루이스는 카펜터가 필요 없으니 애틀랜타로 트레이드 시킨 거다.
그런데 거기에 왜 날 끌어다 붙이는 건가.
결국 본인이 나보다는 낫다고 말하고 싶은 건데, SNS를 통해 도발을 날렸다.
[카펜터, 당신은 올 시즌 연봉 400만 달러를 받고 나는 800만 달러를 받는다. 당신이 무슨 뜻으로 날 예로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애틀랜타 구단이 당신에게 거는 기대는 400만 달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는 뜻이다. 어디 두고 보자고, 당신이 정말 나보다 낫다고 할 수 있는 실력인지 말이야.]
인사도 없이 훅 치고 들어오는 도발, 약간 당황했지만 카펜터는 차분하게 대응했다.
[그래, 선수는 연봉으로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는 존재지, 네가 800만 달러를 받을 자격이 있는지 지켜보겠어. 나보다 400만 달러나 더 받으니 분명 좋은 성적을 거두겠지?]
-> 기대하라고, 너보다 2배는 더 잘 할 테니까.
-> 나는 올 시즌 30홈런 칠거야. 그럼 너는 60홈런은 쳐야겠네?
-> 넌 30홈런 친 적 없잖아? 연애 한 번 못한 자식이 여자랑 키스했다고 허세 떠는 거하고 뭐가 달라?
-> 그럼 너는 메이저리그에서 홈런 쳐 봤냐? 나는 여기서 45홈런 쳤어
-> 너 4년 동안 45홈런 쳤잖아? 그게 자랑이냐? 잘 모르는 것 같아서 알려주는데 한국에서 온 박혁 선수가 필라델피아에서 3년 동안 46홈런 쳤다. 그리고 난 그 선수보다 한국에서 더 좋은 성적을 거뒀지. 너보다는 훨씬 잘 할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서로 인사도 안 했는데 초반부터 치고받는 날선 공방, 어쨌든 필라델피아 팬들은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방망이 실력은 아직 지켜봐야겠지만 입 터는 실력만큼은 메이저리거 급, 정말 6년 5천만 달러짜리 활약을 할 수 있을까.
어쨌든 쥐꼬리만 했던 기대감이 개꼬리 수준으로 올라왔고, 존재감을 발휘한 이인영은 필라델피아 클럽하우스에 발을 들였다.
‘저 자식이 그렇게 대단하다고?’
‘나는 인정 못해.’
신입생을 바라보는 눈빛은 경계심에 가까웠다.
이 자식이 도대체 뭔데 구단은 마이너리그 거부권까지 보장해 준 건가.
우리는 마이너리그를 거쳐 이곳에 올라왔는데, 저 자식은 스윙 한 번 안 하고 메이저리거라니, 계약서에 사인한 잉크가 마르기는 한 걸까.
거기다 연봉도 팀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야, 왜 내 이름을 팔아? 그냥 두고 보자고 하면 되는 거 아냐?”
“그 자식이 절 자꾸 한 수 아래로 보잖아요. 선배 이름을 판 건 죄송하게 생각해요.”
반면, 박혁은 환영의 악수를 건넸다.
친한 동료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말이 통하는 한국인이 옆에 있다는 게 든든했다.
“다들 인사하라고 내 동생이나 다름없는 녀석이야.”
박혁은 이곳에서 클럽하우스 이곳저곳을 누비며 후배를 소개 시켜줬다.
동양인 선수는 메이저리그 질을 떨어트린다는 발언을 한 조시 빌라도 그 중 한 명, 겁 없는 루키는 그 앞에서 고개를 빳빳이 들었다.
“지난 일은 잊어버리라고, 이 친구가 우리 팀에 있다는 걸 잠깐 잊은 것뿐이니까.”
조시 빌리는 급히 뒷수습에 나섰다.
평소 말도 없고 조용한 박혁과 달리 감정표현에 주저함이 없는 루키, 거기에 구단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으니 건드려서 좋을 게 없다고 판단했다.
“미안하지만 난 한 번 기억한 원한은 안 잊어버려.”
“하~ 그래? 그럼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하지?”
“팀 수준 떨어트리는 플레이 하지 말라고, 네가 그렇게 강조했던 말이니까.”
조시 빌라는 할 말을 잃었다.
건방짐을 넘어 괘씸할 정도, 바로 전쟁을 선포했다.
“넌 우리 팀에서 5번째로 높은 연봉을 받는 선수야. 너도 그에 걸맞은 활약을 하라고, 루키라고 이해해주지 않을 거야.”
“걱정하지 마. 난 돈 값은 확실히 하는 선수니까.”
“그래, 어디 한 번 두고 보겠어.”
첫날부터 거창했던 환영식, 어쨌든 그렇게 팀 훈련이 시작됐다.
‘음 … 입만 산 선수는 아니군.’
필라델피아의 감독 피터 와이즈는 이인영의 타격을 유심히 지켜봤다.
라커룸의 벽을 허무는 스윙이라고 해야 할까.
마이너리그에서 이런 스윙을 하는 선수가 있다면 당장 업어 와야 할 정도, 왜 구단 관계자들이 저 선수에게 마이너리그 거부권을 보장해 줬는지 이해가 됐다.
문제는 수비, 1루수에 좌익수와 우익수까지 가능하다고 하는데 실제로 본 적이 없으니, 내친 김에 송구 능력도 평가해 봤다.
“1루로 던져보라고요?”
“무슨 문제라도 있나?”
“아니요. 저 정도 거리면 홈으로 직접 던지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
와이즈 감독은 끝을 모르는 허풍에 헛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어깨가 강한 선수라면 충분히 시도할 만 한 거리, 어디 해 보라며 외야에 풀어줬다.
‘엇?!’
가상의 주자 조시 빌라는 2루에서 홈으로 파고들다 멈춰 섰다.
정확하게 포수 미트로 꽂힌 송구, 그대로 뛰어들었다면 아웃은 확실했다.
조시 빌라 뿐만 아니라 모든 선수들의 입을 다물게 하는 어깨, 와이즈 감독도 감탄사를 연발했다.
이 정도 어깨에 수비 범위까지 갖췄다면 우익수로 투입해도 좋겠지, 그렇게 하루 만에 포지션이 결정됐다.
‘타고난 밸런스 형이다. 못 하는 게 없어.’
와이즈 감독은 직접 본 이인영을 이렇게 평가했다.
요즘 메이저리그에는 타격은 되도 수비나 주루가 안 되는 선수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이 선수는 아니다.
타고난 운동 신경으로 타격 - 주루 - 수비를 모두 소화해내는데 보고서에 적힌 내용은 저 선수의 실력을 70%도 담아내지 못했다.
직접 봐야만 가치를 알 수 있는 선수, 왜 잭 앵거스 고문이 이 선수에 그렇게 공을 들였는지 이해가 됐다.
문제는 실전에서 이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느냐는 거겠지, 어쨌든 훈련에서 보여준 모습만으로도 기대감은 확실히 높아졌다.
* * *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곳은 2026 메이저리그 시범 경기가 열리는 애리조나 스프링필드 구장입니다. 저는 캐스터 이찬우, 해설에는 박한우, 이인호 위원께서 도움을 주시겠습니다.”
시즌 개막을 앞두고 한국 중계 팀은 미국 현지로 날아갔다.
국내에서 메이저리그 시범경기가 중계되는 건 당연하지만 이렇게 현장 중계를 나서는 건 역대 처음, 그 정도로 이인영의 메이저리그 도전기는 국내 팬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박한우 위원님, 드디어 마음 놓고 편파해설을 하실 수 있게 됐네요.”
“아~ 아주 기분 좋습니다. 아들이 출세하니까 저도 같이 출세한 기분이랄까요? 이인영 선수가 앞으로도 메이저리그에서 좋은 활약 이어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저도 이런 기회가 많아질 거 아닙니까?”
이젠 대놓고 아버지 행세를 하는 박한우 위원, 진짜 아버지는 그 옆에서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인호 위원님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와이즈 감독이 이런 말을 했다죠. 이인영 선수의 스윙은 메이저리그 라커룸의 벽을 허물 정도라고 말이죠. 정말 그 정도 실력이 있는지 팬 여러분들도 지켜봐 주십시오.”
시간이 되자 스프링필드 구장 곳곳에 태극기가 휘날렸다.
코리안 메이저리거가 2명이나 선발 출장하는 경기, 한국 팬들은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선두 타자는 조시 빌라,
작년 시즌 타율 0.262, 홈런 11개로 부진했지만 건강하다면 20홈런은 쳐 줄 수 있는 리드오프다.
하지만 첫 타석은 내야 땅볼, 대기 타석에서 몸을 풀던 이인영은 천천히 타석에 들어섰다.
“월드스타 파이팅!!”
“글러브를 뚫어 버려!!”
과격한 입담은 팬들도 마찬가지, 초구(볼)를 지켜본 월드스타는 차분하게 다음 공을 기다렸다.
“다시 바깥쪽입니다. 카운트는 투 볼 노 스트라이크.”
“탐색을 하겠다는 의미인가요. 들어가질 못하고 있습니다.”
“글쎄요. 시범경기니까 이런 저런 구질을 시험해 보겠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따아악~!!]
“자!!! 말씀 드리는 사이!! 외야로 뻗어나가는 이 타구가!!!! 담장~ 밖으로 넘어갑니다!!!! 이인영 선수의 솔로 홈런!!!! 시범경기 첫 타석부터 센터를 넘기는 파워를 보여줍니다!!!!”
“역시 메이저리그의 벽을 허물 선수가 맞네요!! 지금은 브루너 선수도 어? 이게? 라는 표정이에요!!”
박한우 위원의 말대로 조시 브루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92마일 바깥쪽으로 붙인 공, 이걸 이렇게 밀어서 넘기는 선수가 메이저리그에 몇 명이나 있을까.
더 지켜봐야겠지만 경계해야 할 선수라는 건 인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