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이별은 또 다른 시작 (3)
“동양인 영입은 리그 수준을 떨어트린다. 그런 점에서 동양인 선수를 2명이나 영입한 뉴욕 퀸스는 수준이 떨어지는 팀이라고 할 수 있다.”
이곳은 필라델피아, 간만에 팀 승리를 이끈 조시 빌라는 거친 말을 쏟아냈다.
얼핏 들으면 인종 차별처럼 들리는 발언이지만, 사실은 같은 지구 라이벌 뉴욕 퀸스(Qn)를 깎아내리는 뜻으로 한 말이다.
뉴욕 퀸스는 올해 일본에서 투수 2명을 영입, 특히 이시미츠 아키야는 올스타에 뽑힐 정도로 큰 활약을 하고 있다.
지난 3년 동안 평균 승률 0.383을 찍은 필라델피아, 강성 팬들은 라이벌 대전이 벌어질 때마다 전쟁 같은 분위기를 뿜어냈다.
이런 상황에서 팀 승리에 일조한 조시 빌라는 무슨 말을 해도 용서받았고, 다른 팀 팬들도 필라델피아는 원래 그런 곳이라 크게 문제 삼지 않고 넘어갔다.
“야!! 똑바로 해!! 너도 한국으로 꺼지고 싶어?!!”
“너에게 이 무대는 100년은 이르다고!!”
하지만 다음 날 경기에서 조시 빌라는 4타수 무안타로 침묵, 영웅에서 역적으로 떨어졌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최근 5년 동안 필라델피아에서 뛰던 선수 중 무려 6명이 KBO 무대를 밟았다.
필라델피아 팬들은 그 따위로 하면 너도 저질리그로 굴러 떨어질 거라며 폭언을 퍼부었고, 조시 빌라는 말없이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내가 아무리 몰락해도 그 따위 리그에서 커리어를 보내겠나.
솔직히 한국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팬들에게 야유를 받는 게 하루 이틀이 아니라 그러려니 넘겼다.
[한국으로 가는 선수들은 메이저리그에 적응하지 못한 패배자다. 나는 패배자가 아니라 그곳으로 갈 이유가 없다. 짖는 개들은 한국으로 갈지도 모르겠다. 그곳 사람들은 개를 아주 좋아하니 말이다.]
조시 빌라는 더욱 거친 발언을 쏟아냈다.
그런데 이 발언이 한국까지 전해지면서 KBO 팬들은 불쾌한 반응을 보였고, 필라델피아를 거친 케빈 클레빈저(ST 위너스)는 개인적인 입장을 보였다.
[거긴 모든 게 XXX입니다. 소녀 팬에게 오바이트를 쏟아내고 도망치는 놈들도 있고, 하여간 인간이 사는 동네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필라델피아에 비하면 한국은 천국이지요. 저는 이곳이 너무 마음에 듭니다. 팬들은 친절하고 선수들도 예의가 바릅니다. 필라델피아는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 사는 곳입니다. 개 짖는 소리에 울컥하지 마세요.]
케빈 클레빈저 SNS에 올린 글은 많은 호응을 받았다.
하긴 노동자에 극성좌파가 우글거리는 도시가 한국에 대해 뭘 알겠는가. 무식쟁이들이 지껄이는 헛소리, 교양 있고 수준 있는 문화국이 어울릴 도시가 아니라며 선을 그었다.
‘그 동네 왜 이래?’
한편, 이인영은 이번 소동에 경악했다.
분명 박혁 선배가 4년 2600만 달러 계약을 맺고 필라델피아 선수로 뛰고 있다.
팀에 한국선수가 있는데 어떻게 저런 발언을 할 수가 있는 건지, 물론 지금 선배는 재활에 집중하느라 로스터에 포함되진 않았다.
그렇다고 쳐도 도를 넘은 발언, 정말 그 도시는 막 되먹은 짐승들만 우글거리나.
한 마디 하고 싶었지만 박혁 선배에게 피해가 될까봐 입을 다물었다.
‘이건 우리가 생각했던 시나리오가 아닌데’
필라델피아 구단 스카우터 잭 앵거스는 한국 내에서 높아지는 목소리에 당황했다.
박혁은 지금까지 필라델피아에서 타율 0.251, 홈런 40개, 120타점을 올렸다. 올해는 부상에 부진까지 겹치면서 별 다른 활약을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몸값은 해주고 있다.
동양인에 대한 편견을 깬 활약, 필라델피아는 올 시즌이 끝나면 포스팅 자격을 얻는 이인영도 영입할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점 점 이상한 쪽으로 분위기, 그래도 앵거스는 이인영의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았다.
“자, 이인영 선수가 오늘 첫 타석을 맞이합니다. 타율 0.393, 홈런 33개, 83타점, 다시 4할에 도전할 수 있는 시즌을 보내고 있습니다.”
“전반기 페이스가 62홈런을 기록했던 재작년보다 더 좋거든요. 이대로라면 커리어 하이를 다시 쓸 것 같습니다.”
“자꾸 한국야구 수준이 떨어진다고 하는데, 여기서 4할 기록하고 메이저리그에서 2할 타자된다는 법 없습니다. 정말 내년에 본때를 보여줬으면 좋겠네요.”
“하하~ 박한우 위원님이 화가 많이 나신 것 같네요.”
“제가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인영 선수는 분명 성공합니다. 어디 두고 보라지요.”
얼마 전, 미국 현지에서 등가타율(EQA)을 근거로 메이저리그 타자와 다른 리그 타자들의 수준을 비교한 기사가 나왔다.
일본에서 3할 40홈런 100타점을 3년 연속으로 기록하고,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나오이 이토무는 NPB에서 통산 EQA 0.354를 기록했다.
이를 MLB 기준으로 변환하면 0.271, 이 정도면 메이저리그에서 주전급으로 활약할 수 있는 수준이다.
실제로 올 시즌 타율 0.287, 16홈런, 67타점을 기록하며 제 몫을 다 하고 있는 이토무, 그렇다면 이인영은 어떤 평가를 받았을까.
이인영은 KBO에서 통산 EQA 0.401을 기록했다. 메이저리그 기준으로 환산하면 0.281, 주전급을 넘어 상당히 우수한 편으로 평가 받았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숫자 놀음, 메이저리그 현지 전문가들은 이인영의 컨택 능력에 의문을 표했다.
한국 타자들의 가장 큰 문제는 파워가 아니라 컨택,
한국에서 통산 타율 3할 2푼을 넘긴 박혁은 메이저리그에서 타율이 거의 7푼이나 하락했다.
대신 파워가 좋고 눈 야구로 떨어지는 컨택 능력을 보완해 어느 정도 활약을 해주고 있지만, 낮은 공, 특히 몸 쪽으로 떨어지는 변화구에 약점을 보이며 한계를 드러냈다.
한국에서 3할 후반대 타율을 기록한 이인영이지만 메이저리그 투수들 앞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일지 의문,
그래도 3할 근처는 치지 않겠냐는 의견도 있지만, 2할 6푼대 근처를 오르내릴 거라는 평가가 압도적으로 많다.
아직 보여준 게 없으니 당연, 이인영은 그런 잡음은 신경 쓰지 않았다.
직접 가서 부딪쳐보면 알 일, 눈앞의 공에만 집중했다.
‘2할 8푼에 20홈런만 쳐줘도 대성공이다. 그 이상은 바라지도 않아.’
스카우터 잭 엉거스는 나름의 기준으로 기대치를 잡았다.
저 선수가 나오이 이토무보다 낫다는 보장도 없지만 떨어진다는 근거도 없다. WBC에서도 메이저리그 급 선수들에게 강점을 보였으니 기대치는 확실한 편, 대략 4년 4천만 달러 정도면 단장도 납득할 수 있지 않을까.
필라델피아 현지에서 무슨 헛소리를 하든, 내년에 반드시 영입해야 할 선수라는 건 분명했다.
[따아악~!!]
“잡아당긴 타구가!! 우익수와 중견수 사이에 떨어지는 군요!! 그 사이 타자 주자는 2루까지 들어갑니다.”
“너무 잘 맞았죠. 오~ 지금 타구 속도가 187km가 나왔습니다.”
“올 시즌 메이저리그에서 타구 속도가 한번이라도 185km를 넘긴 선수는 20명도 안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장담 드리는데 이 선수의 파워는 여느 메이저리거에 뒤지지 않습니다. 컨택만 따라준다면 30, 40홈런도 꿈이 아니에요.”
“마침 또 중계석을 비춰주네요. 스카우터들이 눈 여겨 보고 있습니다.”
다들 너에게 관심 있다는 눈빛,
이인영은 이날 홈런은 치지 못했지만 타구 스피드가 모두 150km를 넘겼다.
타구가 높이 뜨지 않은 건 아쉬웠지만 인상적인 타격, 현지 조사를 마친 앵거스는 미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지난 3년 동안 한국 - 일본을 오가며 많은 선수를 지켜봤지만 저만한 선수는 보지 못했다. 보고서는 칭찬 일색, 필라델피아의 단장 도널드 머피도 관심을 보였다.
“그런데 정말 1루로 돌려도 괜찮겠나?”
“제 보고서를 보셨다면 그런 질문은 하실 이유가 없습니다.”
앵거스는 보고서에 이 선수는 좌익수 중견수, 1루수까지 소화할 수 있는 수비 능력을 갖췄다고 적었다.
보고서만 따져본다면 거의 올스타 급 선수, 다른 팀 스카우터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까.
도널드 머피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말이야… 자네 보고가 맞다면 다른 팀도 이 선수를 노리고 있을 거 아닌가?”
“그렇겠지요.”
“그럼 4년 4천만 달러는 조금 불안하지 않나?”
“그건 최소치입니다. 여유가 된다면 더 불러도 상관없겠죠.”
참고로 나오이 츠토무는 보스턴과 6년 7천 5백만 달러 계약을 맺었다.
어지간한 현역 메이저리거를 능가하는 규모, NPB보다 한 수 떨어지는 KBO 선수에게 그만한 투자를 할 가치가 있을까.
필라델피아가 생각하는 적당가는 4년 4천만 달러, 계약기간을 늘린다면 6년 5천 8백만 달러까지는 생각해 볼 수 있다.
설마 이 이상을 부르는 팀은 없겠지, 대략적인 수치를 정해놓고 시즌이 끝나길 기다렸다.
* * *
[박혁, 시즌 7호 홈런 작렬]
[최근 네 경기 연속 홈런, 부진에서 완전 탈출]
어느덧 9월에 접어든 시즌, 심각한 발목 부상으로 시즌을 거의 날린 박혁은 막판에 페이스를 바짝 끌어올렸다.
9월 10일 복귀전에서 4타수 1안타를 치며 감을 잡더니, 2경기 연속 쓰리 런 홈런을 때리며 필라델피아의 승률을 4할 위로 끌어올렸다.
동양인 영입이 리그 수준을 떨어뜨린다는 망언을 깨끗하게 지워버리는 한 방, 하지만 필라델피아 팬들은 박혁을 용서하지 않았다.
[연봉을 6백 50만 달러나 받는 놈이 겨우 7홈런? 부끄럽지도 않냐?]
[15홈런 넘길 때까지는 용서하지 않을 거야. 내일도 야유 한 발 장전한다.]
[타율도 너무 낮아 2할 6푼까지는 올려야지]
[삼진도 너무 많아, 163타석에서 35삼진이면 쓰레기지. 너 같은 XXX 는 마이너리그에 얼마든지 있어.]
좀 더 잘 하라는 응원을 이렇게 밖에 못하는 건가.
하지만 이게 필라델피아 팬들의 방식, 지난 3년 동안 겪은 일이라 박혁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따아악~!!]
“자!! 당긴 타구가!! 좌측 뒤로~!! 펜스를 넘어갑니다!!!! 박혁 선수의 시즌 8호 홈런!! 필라델피아가 경기를 원점으로 돌립니다!!”
“도대체 누가 수준을 떨어뜨린다는 겁니까? 그 수준 떨어지는 선수에게 홈런 맞는 게 누구냐고요? 메이저리그 투수들 아닙니까?”
다음 날, 박혁은 3타수 무안타로 침묵하다 마지막 타석에서 호쾌한 스윙을 뽐냈다.
보기만 해도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한 한 방,
필라델피아 팬들은 연속 홈런 구단 타이 기록을 세운 박혁에게 환호성을 보내줬다.
정말 칭찬 받기 어려운 놈들, 그래도 마음이 착한 박혁은 헬멧을 벗어 코튼 콜에 예를 표했다.
나름 애를 써봤지만 연장 12회 승부 끝에 패배한 필라델피아, 5타수 1안타 1홈런으로 하루를 마무리 한 박혁은 한국인 기자들 앞에서 인터뷰를 했다.
“박혁 선수, 5경기 연속 홈런 축하드립니다.”
“예, 감사합니다.”
“너무 아쉽습니다. 부상만 안 당하셨다면 올 시즌 30홈런 노려볼 수 있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안 드시나요?”
과도한 칭찬에 박혁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솔직히 너무 떨어지는 컨택력, 최근 홈런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타율은 0.244에 머물고 있다.
그리고 만약이란 없는 법,
겨우 43경기 소화한 선수가 무슨 30홈런을 논하겠는가. 산술적으로 34홈런까지 가능한 시즌이었지만 큰 의미를 두진 않았다.
“올 시즌이 끝나면 이인영 선수도 메이저리그 진출을 할 텐데요. 뭔가 해주실 말씀은 없습니까?”
“뭐… 같은 팀에서 뛰자는 말은 못하겠네요. 알아서 잘 하겠지만, 좋은 팀 찾길 바랍니다.”
농담이 아니라 진심으로 하는 말,
한 성격 하는 놈이 여기서 팬들과 잘 지낼 수 있을까. 팬들과 멱살잡이 안 하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