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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일인자-149화 (149/309)

149화. 이별은 또 다른 시작 (2)

[저하고 훈련 같이 하실래요? 거부하실 거면 답장은 주지 마세요.]

1월 중순, 이인영은 도전장 비슷한 문자를 받았다.

NA 자이언츠의 신성 이찬용이 보낸 문자, 작년 시즌 마지막 등판에서 라이온즈를 만나 난타를 당하고 눈물을 짜더니 무슨 일일까.

아직 시즌 전이고 개인훈련을 하는 시간이라 만나주기로 했다.

“그런데 왜 날 보자고 한 거냐?”

“적을 이기려면 적을 알아야하는 법이죠.”

초면부터 이찬용은 건방진 말을 늘어놨다.

상대는 올 시즌이 끝나면 포스팅 신청은 당연한 한국야구 역대 최고의 선수, 떠나기 전에 승부를 내야 하지 않겠나.

그날 대선배는 왜 내 공에 손도 대지 않은 걸까? 그리고 어떻게 그렇게 쉽게 도루를 했는지도 궁금했다.

“손 댈 가치가 없었어. 칠 수 있는 공을 던져야 치든지 말든지 하지.”

“엇~ 그렇게 심한 말을… .”

“난 사실을 말한 것뿐이야.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 싶냐?”

“네, 부탁드립니다.”

이찬용은 자존심을 굽혔다. 내 흠은 나보다는 남이 더 잘 아는 편,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에 귀를 기울였다.

“너 그날 볼 배합 어떻게 했는지 기억 나냐?”

“글쎄요. 잘 기억이… .”

“변화구를 바깥쪽으로 던지라고 하진 않았냐?”

“그런 말을 한 것 같기도 하고… .”

이인영은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이 자식은 생각이라는 걸 하고 플레이를 하는 건가. 어쨌든 내 목을 치겠다고 온 녀석, 재주를 부려보라는 뜻으로 설명을 이어갔다.

“일단 네가 중심이 너무 빨리 넘어온 것도 있었는데, 포수도 문제였어.”

그날, 자이언츠의 포수 김성일은 바깥쪽 변화구 사인에 허리를 숙이는 모습을 보였다.

시선이 높으면 공을 잡을 때 몸이 따라 움직이고, 미트를 위에서 아래로 내리면서 포구를 하게 된다.

스트라이크 콜을 받을 가능성은 그만큼 떨어지겠지, 그래서 떨어지는 변화구를 받아낼 때 포수는 조금 자세를 낮추기도 한다.

그런데 너무 눈에 띄면 상대 팀도 알아차리는 법, 그날 이인영이 도루를 4개나 할 수 있었던 건, 김성일의 투구 폼도 문제였지만 포수까지 실책을 저지른 게 결정적이었다.

한 쪽이 문제여도 도루를 내줄 가능성이 높은데 파트너 둘이 사이좋게 삽질을 하고 있었으니, 눈 뜨고 코 베이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하지만 이찬용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렇게 세세한 것까지 분석하나? 일단 김성일 선배에게 전화를 걸어 사실 확인에 나섰다.

[네가 갑자기 무슨 일이냐?]

“그날 코치님이 볼 배합 어떻게 하라고 했죠?”

[뭐가?]

“우리 시즌 막판에 도루 4개 내줬잖아요. 그때 코치님이 볼 배합 어떻게 하라고 했죠?”

[그걸 나한테 왜 물어. 괜히 짜증나게]

“아니 실은 제가 지금 이인영 선배랑 같이 있거든요. 그 데 막~ 선배 흉을 보는 거예요. 변화구를 던질 때 자세가 이렇다 저렇다 하는데 저는 이해를 못하겠어요.”

[…… 잠깐만 기다려 봐]

김성일은 바로 삼자대면을 요구했다. 내가 변화구를 포구할 때 그런 문제가 있다니,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었다.

“너 진짜 내 자세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당연하죠. 저랑 내기 하실래요?

그렇게 시작된 내기, 이인영은 가상의 1루에서 배터리의 투구를 지켜봤다. 어떤 볼을 던질지 알아맞히는 시험, 김성일은 설마 하는 표정으로 자세를 잡았다.

“지금!! 지금 변화구.”

“뭐?!!”

김성일은 경악했다.

정확하게 잡아낸 볼 배합, 우연이겠거니 했는데 이인영은 30개중 변화구 7개를 정확히 골라냈다. 이 정도면 소름이 돋을 지경, 도대체 어떻게 알아낸 거냐며 취조에 나섰다.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선배는 몸이 움직이는 게 보여요.”

“아니, 그게 보여? 진짜?”

“네, 한 번 더 할까요?”

작년 시즌, 자이언츠는 도루저지율 35%를 기록했다.

43%를 기록한 한진 타이거스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중간은 했던 편, 이인영은 이런 팀을 상대로 작년 시즌 막판에 도루 4개를 훔쳐내는 기염을 토했다.

그 원인이 드디어 밝혀지는 순간, 김성일은 망부석처럼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야, 네가 사람이냐? 어떻게 그걸 눈으로 보고 알아?”

“자세히 보면 보여요. 그러니까 올해도 당하기 싫으면 수정 하세요.”

아무리 들어도 어이가 없는 설명, 나는 지금 도깨비에게 홀린 건가.

어쨌든 이번 일을 계기로 이찬용- 김성일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저 사람이 야구를 보는 시선은 우리와 다르다는 것, 그런 사소한 것도 신경 쓰며 경기를 하는 줄은 몰랐다.

어쨌든 내기에서 완패한 자이언츠 2인조는 약속대로 저녁을 샀고, 그렇게 담화가 시작됐다.

“야, 솔직히 아까 네가 변화구!! 했을 때 소름 돋았다. 내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서 진짜… 와아~ .”

“고치면 되죠. 물론 잘 될지는 선배 노력에 달려있겠지만요.”

김성일은 건방진 후배의 조롱을 안주삼아 술잔을 기울였다.

전지훈련만 가면 지겹도록 하는 게 포구 연습, 도루 저지율이 리그 평균은 돼서 나름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난 7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된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이번 전지훈련은 정말 마음 독하게 먹고 하겠다는 의지를 세웠다.

“이 자식은 약점 없냐? 내 눈에는 허점투성이인데.”

“당연하죠. 사실은 이 자식이 제일 큰 문제에요.”

김성일이 자리를 깔아주자 이인영은 이찬용을 마구 물어뜯었다.

사실 도루를 내준 가장 큰 원인은 이찬용, 투수가 던지는 변화구가 얼마나 형편없으면 포수가 눈에 띄게 허리를 낮췄겠는가.

일단 몸 쪽 변화구를 못 던진다는 게 문제,

제구가 좋은 투수는 바깥쪽 빠른 볼로 유인하고 몸 쪽 변화구로 승부를 결정짓는 경우가 있다.

특히 이인영처럼 삼진을 잡기 어려운 타자가 타석에 섰다면 더욱 필요한 볼 배합, 몸 쪽 변화구는 헛스윙을 이끌어 내기 어렵지만 타자 입장에서도 제대로 치기 어렵다.

하지만 바깥쪽으로 던지는 변화구는 거의 다 볼이고 카운트를 잡기도 어렵다.

불리한 볼 카운트에서 던지는 바깥쪽 변화구는 최악의 선택, 이인영이 그날 이찬용의 볼에 스윙을 하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였다.

“넌 이번 전지훈련에서 땀 좀 빼야 된다. 제구 못 잡으면 올해 정말 피 볼 거다.”

“넵, 새겨듣겠습니다.”

이찬용은 고개를 넙죽 숙였다.

작년 10월까지만 해도 이 사람을 반드시 넘어서겠다는 의욕을 불태웠는데, 직접 만나보니 내가 얼마나 좁은 우물 안의 개구리였는지 깨달았다.

던질 수 있는 공이 한정적이니 타자는 함정을 파놓고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죽을 때까지 도망쳐 봤자 언젠가는 함정에 걸려들 뿐, 작년 시즌 이찬용은 그 짓거리를 반복했을 뿐이다.

그런 실력으로 이 사람을 잡아내겠다고 달려든 것부터가 건방진 생각,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여 경의를 표했다.

“그런데 선배님은 올 시즌 끝나면 정말 포스팅 신청하는 건가요?”

“그래야지, 왜?”

“아니요. 정말 가시면 제가 선배랑 붙을 수 있는 기회는 올해가 마지막이잖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지, 너도 실력 키워서 메이저리그 가면 되잖아.”

“제가요? 그렇게 될까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 누가 알아. 목표가 있어야 성장도 하는 거지.”

이찬용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다니 가능한 일일까. KBO 무대도 만만치 않은 현실, 하지만 목표가 있어야 성장한다는 말도 일리는 있었다.

“야, 넌 거기서 얼마나 잘 할 자신 있냐?”

이때 김성일이 화제를 틀었다.

한국에서 날고 기었던 ST 위너스의 박혁, 그런데 미국에선 그저 그런 선수가 됐다.

작년 시즌 성적은 타율 0.258 - 홈런 17개 - 59타점, 하위 타선이라고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성적이지만, 동양인 타자에게 메이저리그 벽은 높다는 게 다시 한 번 증명됐다.

이인영도 그 꼴 나지 않을까.

메이저리그에 가지도 못하는 실력으로 이런 참견하는 건 실례라고 생각했지만 김성일은 도전을 앞둔 후배의 속마음을 캐물었다.

“열심히 뛰면 어떻게든 되겠죠.”

“그건 너무 일반적인 말 아니냐?”

“스티븐 오어도 열심히 뛰는 게 비결이라잖아요.”

5년 연속 30홈런을 기록한 스티븐 오어는 3000타석 이상을 소화한 현역 선수 중 내야 안타 비율이 14.4%나 된다.

거기다 스티븐 오어는 좌타자도 아니고 우타자다.

그렇게 불리한 조건에서도 열심히 뛰어 안타를 만들어 냈다는 것, 정말 훌륭한 자세 아닌가?

이인영은 지금까지 선수 생활을 하면서 롤 모델을 정해두지 않았다.

KBO에서는 내가 최고인데 누굴 롤 모델로 삼겠나?

하지만 메이저리그는 아니다. 나보다 더 야구를 잘 하는 선수들도 얼마든지 있겠지, 스티븐 오어처럼 검증된 슈퍼스타도 땅볼을 치면 뛰는 것부터 생각하는데, 도전을 앞둔 내가 홈런 타구를 감상하며 산책 플레이를 해야겠나?

정말 건방진 생각, 차분하게 각오를 다졌다.

“솔직히 저는 KBO에서 땅볼 타구에 전력 질주한 기억이 별로 없어요. 쳤다하면 거의 다 외야로 뻗어 나갔으니까요. 그런데 메이저리그는 그렇게 쉽게 되지 않겠죠. 땅볼 하나에도 최선을 다한다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김성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든 프로에 올라오면 장타를 치고 싶어 하기 마련, 그런데 이 녀석은 그 반대다.

이런 정신무장에 실력까지 갖췄으니 성공할 수밖에 없었겠지, 이찬용도 그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땅볼 하나에도 최선을 다한다… 인가.’

나는 지금까지 저런 자세로 야구를 했는가.

첫 해부터 신인왕 2위를 차지하며 두각을 드러냈으니, 야구를 조금 만만하게 봤던 게 사실 그런데 정말 건방진 생각이었다.

KBO를 평정한 선수도 이런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데, 나는 도대체 뭘 했다고 건방을 떨었던 걸까.

이래저래 부끄러웠다.

나는 지금까지 땀이 어린 노력이라는 걸 해 봤을까. 지나간 시간을 되돌아보면 조금 부끄러웠다.

“어쨌든 올 한 해, 우리 모두 후회 없이 보내보자. 나도 이번엔 정말 뭔가 해 봐야겠다.”

분위기를 살피던 김성일은 조용히 건배를 권했다.

시진을 앞두고 있으니 다 각자의 목표가 있겠지, 각자의 야망이 담긴 술을 목구멍에 털어 넣었다.

* * *

“야, 너 왜 이렇게 무리하냐?”

“무리하는 거 아니에요. 할 일 하는 거지.”

전지훈련을 앞두고 시행된 체력 테스트, 발목 부상을 털어낸 이인영은 건재함을 과시하며 트랙을 질주했다.

한국보다 더 열심히 뛰어야 하는 메이저리그 무대, 테스트가 끝나고 소중한 발목을 충분히 풀어주는 스트레칭도 잊지 않았다.

“야, 적당히 해. 그냥 테스트인데 뭘 그렇게 무리하냐?”

“저는 적당이라는 걸 몰라요. 언제나 진지하니까요.”

“쳇~ 그래. 너 잘났다.”

이날 대구 운동장에는 1천 여 명의 팬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오늘 따라 힘이 넘치는 월드스타, 이인영은 팬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환호를 유도했다.

“아아~!!”

“그러지 마요!! 정말!!”

넘어지는 시늉을 하자 환호에서 원성으로 바뀐 목소리, 날 그만큼 걱정해 준다는 뜻 아닌가.

이인영은 다시 손을 흔들어 감사를 표했다.

저 환호에 보답하는 길은 멋진 추억을 선사하는 것 뿐, 다른 건 생각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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