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일은 일인자-146화 (146/309)

146화. 다 내 탓이오 (6)

[한국시리즈 2차전, 관중간의 폭력 시비로 번져]

사건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경기를 마치고 귀가하던 양 팀 팬들의 신경전이 몸싸움으로 번졌고, 경찰이 출동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어디서부터 꼬여버린 건지, 입원한 이인영은 병실에서 이번 사태를 두고 생각을 정리했다.

솔직히 화도 많이 났지만 시간이 지나면 가라앉는 법, 사건의 원인은 둘 째 치고 이번 일이 팬들이 주먹다짐까지 해야 할 일인지 따져봤다.

‘나는 그 정도로 중요한 일을 하고 있나?’

야구 경기, 솔직히 일상생활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그런데도 프로 선수들이 많은 돈을 벌고 스타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건 그걸 좋아는 팬들이 있기 때문, 솔직히 50홈런을 치든 60홈런을 치든 팬들이 관심을 안 주면 의미가 없다.

그런데 지금 그 팬들이 서로 주먹다짐까지 하고 있다.

나는 지금 그만큼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건가. 솔직히 그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즐기기 위한 프로야구가 서로 얼굴 붉히고 상처를 주는 무대가 된다면 더는 존재할 의미가 없다.

내 부상에 분노하고 걱정해주는 팬들은 고맙게 생각했지만 이렇게까지 할 일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사람은 의욕이 넘치면 분위기 파악을 못하게 되죠]

이인영은 SNS를 통해 첫 입을 뗐다.

왜 성운 라이온즈 선수들은 베어스의 2루수 김환희에게 위험한 슬라이딩을 반복한 건가.

다 이기고자 하는 의욕이 과했던 탓, 베어스의 김동환은 왜 1루 베이스를 열어두지 않았을까. 우리도 기 싸움에서지지 않아야겠다는 의욕이 과했던 탓, 덕분에 한국시리즈라는 최대의 축제를 앞두고 분위기 파악도 못하는 짓을 저질렀다.

팬들이 서로 주먹질을 해야할 정도로 우리는 지금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건가. 일단 그것부터 생각해보자며 봉합에 나섰다.

[야구는 팬들이 있기 때문에 존재합니다. 그런데 양 팀 선수들은 지금 팬에게 즐거움을 주지 못하고 눈살 찌푸리는 행동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전 야구를 좋아하지만 팬들이 서로 주먹다짐을 할 만큼 가치가 있는 일이라곤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뭘 위해 경기를 하고 있는지, 생각해 봐야하지 않겠습니까? 제발 분위기 파악 좀 합시다.]

모두의 입을 틀어막은 짧고 굵은 한 방,

여론을 의식한 KBO는 분쟁을 일으킨 선수들에게 중징계를 내렸다.

최지환, 김환희, 김동환을 포함해 주먹다짐을 벌인 선수들은 남은 한국시리즈에서 뛸 수 없게 됐고, 각각 사회봉사 144시간, 벌금도 따로 부과 받았다.

기싸움의 희생양이 된 이인영은 여론의 동정을 받았지만, 그래봤자 한국시리즈에서 이탈한 아쉬움은 무엇으로도 위로받지 못했다.

“몸은 좀 어떤가?”

“그냥 그러네요.”

이틀 후, 라이온즈의 단장 차명석이 문병을 왔다.

사실 베어스와 화해를 할 생각 따윈 없었다.

연봉만 10억을 주는 선수에게 그런 더러운 반칙으로 부상을 입혔으니, 화가 안 나는 게 이상한 거 아닌가. 하지만 야구가 왜 존재하는지, 팬들이 주먹을 주고받을 만큼 중요한 일인지 생각해보라는 이 선수의 충고 때문에 마음을 접었다.

“지금 팀 분위기는 어떤가요?”

“자네는 이 상황에서도 팀이 걱정되나?”

“당연하죠. 제가 말은 그렇게 했어도 이기고자 하는 마음은 누구보다 강하니까요.”

이인영은 단장 앞에서 진심을 털어놨다.

부상을 당했는데 팀이 패배까지 하면 너무 비참하지 않나. 2승을 선점했으니 남은 경기에서 반타작만 거둬도 우승,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말을 동료들에게 전해달라며 단장의 손을 꼭 붙잡았다.

“걱정하지 말게. 다들 지금 열이 바짝 올랐거든, 분명 좋은 소식 가져다 줄 거야.”

“그럼 다행이고요. 아, 그리고 치료비는 구단에서 부담해 주시는 거죠?”

차명석 단장은 씩 웃고 말았다.

이 상황에서도 농담을 하다니, 성격이 좋은 건가 짓궂은 건가.

어쨌든 경기 중 선수가 부상을 입은 건 구단에서 책임져야 할 일, 치료비는 걱정하지 말라며 씁쓸한 미소를 남겼다.

[그 사람 사과하러 왔니?]

“아니요.”

[아니 어떻게 그렇게 사람이 뻔뻔하니?]

단장이 돌아간 후, 이인영은 어머니의 날카로운 목소리를 상대했다.

자식이 다쳤는데 속이 안 뒤집어질 사람이 어디에 있나, 어머니는 100번 사과를 해도 받아줄까 말까인데 지금까지 연락이 없다는 건 인간이 덜 된 거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엄마 그만하세요. 사과할 마음이 없는 사람한테 사과하라고 해봤자 이 쪽만 비참해져요.”

[넌 그런 일을 당했는데 아무렇지도 않니?]

“저까지 흥분하면 엄마 속이 더 쓰릴 거 아니에요. 엄마가 목소리 낮추면 제가 대신 화를 낼 게요.”

[얘가 정말 … ]

어머니는 겨우 뛰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내 자식 다치게 하고 너는 얼마나 잘 사나 두고 보자라며 저주를 퍼부었는데, 아들이 이런 식이라면 할 말이 없지 않은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아들~ 너무 속상해 하지 마. 누가 뭐라고 해도 엄마는 우리 아들 편이야.]

“편 안 들어 주셔도 돼요. 제 편들어주는 사람 은근 많아요.”

그냥 예라고 한 마디하고 끝낼 것이지 오늘 따라 억지로 밝은 척을 하는 아들, 그렇게 통화가 끝나고 이인영은 할 일 없이 휴대폰만 만지작거렸다.

[야, 미안하다. 나 때문에]

이때 문자 한통이 날아왔다. 김환희 선배의 전화, 이번 사건의 피해자가 왜 이런 말을 하는 건가. 진짜 사과를 해야 할 사람은 김동환, 선배가 미안해 할 건 없다며 답장을 보냈다.

계속 문자를 주고 받다보니 자연스럽게 이어진 전화 통화, 이인영은 본격적으로 적진 탐색을 나섰다.

“솔직히 저한테 미안해하는 분위기는 아니죠?”

[그렇지 뭐]

“그럴 줄 알았어요. 솔직히 별 기대도 안 했고요.”

내가 이렇게 해야 팀 사기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선수들이 있다.

김환희 선배의 다리를 붙잡은 최지환 그리고 태클을 건 돈 부머도 마찬가지, 팀 승리를 위해서라는 확실한 명분이 있기에 아무 거리낌 없이 상대팀 선수를 다치게 할 수 있는 거다.

한번 시작되면 절대 고칠 수 없는 행동, 정식으로 사과는 못 받았지만 오히려 마음은 편해졌다.

[오히려 편하다고?]

“네, 저는 솔직히 김동환 그 사람 죽일 만큼 밉거든요? 그런데 미안해하지 않는다면 마음껏 증오해도 되잖아요? 어설픈 사과를 할 바엔 차라리 그렇게 행동해주는 게 마음이 편해요.”

김환희는 할 말을 잃었다.

여론 앞에서는 대인배처럼 행동하더니 뒤에서는 이런 앙심을 품고 있었을 줄이야. 하지만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

* * *

“자, 1회 초 베어스의 공격으로 한국시리즈 3차전의 막이 오릅니다. 선두 타자는 이재영 선수, 김환희 선수를 대신해 2루수로 출전했습니다.”

“야유가 대단한데요. 지금 중계박스가 관중석과 제법 먼 곳에 있는데 이게 다 들립니다.”

박한우 위원은 PD에게 사인을 보냈다.

관중석에서 쏟아지는 욕설이 다 들리는데 이걸 그대로 내보내도 될까.

그 정도로 달아오른 관중석 분위기, 베테랑도 버티기 힘든 폭언과 야유에 이재영의 어깨는 잔뜩 움츠러들었다.

“제가 다시 말씀드리지만 2차전과 같은 일은 절대 반복 되선 안 됩니다. 이인영 선수도 그러지 않았습니까? 야구는 팬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존재하는 스포츠입니다. 누가 먼저 잘못했는지 따지기 전에, 왜 선수들이 이곳에서 경기를 하고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말씀이 나와서 말인데 이인영 선수와 전화 통화는 해 보셨습니까?”

“아니요. 안 했습니다.”

이인호는 쓰린 속을 겨우 다스렸다.

아들이 그렇게 부상을 당했는데 어느 아버지가 분노하지 않겠나.

말은 그렇게 했지만 녀석도 지금 속이 뒤집어 졌겠지, 하지만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중계석에서 냉정한 해설을 이어가는 거 아닌가.

다른 건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진행되는 3차전, 1회 초를 무실점으로 막아낸 라이온즈는 상위 타선의 활약을 앞세워 3경기 연속 선취득점을 냈다.

‘왜 이렇게 일이 안 풀리냐’

베어스의 이재학 감독은 머리를 연식 긁적였다.

1차전 7대 1 패배, 2차전도 8대 0패배, 이게 투타 모두 완벽하다는 평가를 받는 베어스의 성적인가.

정말 말도 안 되는 주장이지만 일부 팬들은 승부조작까지 제기,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하면 포상금이 얼마인데 어느 선수가 승부보작에 가담하겠나. 그런 말이 나올 정도로 심각한 게임, 뭣보다 내야 수비의 한 축을 책임지고 있는 김환희가 빠진 건 치명적이었다.

[따악~!!]

“자!! 이 타구가 다시 한 번 내야를 빠져 나가는군요!! 3루 주자는 홈으로!! 2루 주자까지 홈으로 들어!! 옵니다!! 박한수 선수의 적시타!! 스코어는 이제 8대 0입니다!!!”

“무너졌네요. 지금 4회에만 5실점을 내주고 있는데, 도저히 정규 시즌 1위 팀이라곤 볼 수 없는 플레이를 하고 있습니다.”

“이번 이닝에 투수 교체만 3번이거든요. 뭔가 홀린 듯이 와르르 무너지고 있습니다.”

감독도 선수들도 이미 승기가 꺾인 상황,

2만 5천 석을 점령해 버린 푸른 유티폼을 입은 라이온즈 팬들의 응원가만 높게 울려 퍼졌다.

5회 초에 들었을 때 스코어는 이미 11대 0, 이 정도면 그만 할 법도 한데, 라이온즈 선수단은 의욕을 불태웠다.

“이제 그만 할까?”

“아니, 몇 점 더 내야지.”

“맞아. 그 자식도 병원에서 이 경기 보고 있을 거 아냐. 완벽하게 이겨야 돼.”

라이온즈는 결국 2점을 더 내고 13대 0 완승을 거뒀다.

베어스 역사상 기록적인 대패, 경기가 끝난 후 박한우 위원은 베이스볼 채널에서 베어스가 얼마나 형편없는 경기를 하고 있는지 낱낱이 분석했다.

“베어스가 이번 시리즈에서 낸 득점이 겨우 1점입니다. 앞으로 몇 경기가 더 남아있긴 한데, 만약 이대로 시리즈가 끝낸다면 세계 야구 역사에 불명예 기록을 남기게 되는 겁니다.”

“세계 기록인 건가요?”

“네, 역대 월드시리즈 최소 득점이 2점입니다. LA가 지난 2017년에 월드시리즈에서 6게임을 치르면서 딱 2점을 냈거든요. 지금 베어스는 우승이 문제가 아니라 망신을 덜 당해야 하는 입장인 거죠.”

한국보다 월등히 긴 역사를 지닌 메이저리그에서도 보기 힘든 기록, 거기다 베어스 타선은 3경기에서 한 개의 홈런도 기록하지 못했다.

이것도 옆 나라 일본이나 메이저리그 역사를 다 뒤져봐도 전례가 없다.

3경기에서 28점을 내주면서 평균자책점은 9.33, 참고로 베어스는 정규시즌에서 승률 0.650을 기록한 강팀이다.

성운 라이온즈가 정규 시즌 2위를 기록한 강팀이라고 해도 이 정도로 일방적인 경기가 펼쳐질 수 있는 건가.

몇몇 팬들은 이인영의 저주라는 의견을 쏟아냈다.

[이건 저주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 이인영 다 용서한다고 하지 않았나? 뭔가 원망한 적 있어?

-> 선수들이 뭘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라고 했잖아. 따지고 보면 용서한 건 아니지

-> 그런데 진짜 이 정도면 무섭다. 우승은 당연히 라이온즈가 하겠지만, 내일 베어스 한 점도 못 내면 진짜 개망신이지

-> 기네스 협회에서도 사람 왔다더라 기록 체크 하려고, 영원히 고통 받는 흑역사가 될 듯

최근 5년 동안 4번이나 우승을 한 왕조가 이렇게 무너지는 건가.

비난을 쏟아냈던 팬들도 이제는 욕설보다 베어스가 어떤 마무리를 지을지 관심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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