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일은 일인자-144화 (144/309)

144화. 다 내 탓이오 (4)

따악~!!

선두타자 김환희는 아웃됐지만 후속타자 정인규가 안타를 치면서 베어스는 아쉬움을 만회했다.

다음 타자는 3번 페르난데스, 이인영은 스탠스를 최대한 좁게 잡았다.

유격수나 2루수는 넓은 곳을 커버해야 하고 거기다 송구도 해야 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스탠스를 넓게 잡아야 한다.

하지만 1루수는 수비 범위도 넓지 않고 강한 타구를 막아내야 하는 입장, 스탠스를 넓게 잡을 필요가 없다.

최대한 공이 빠져나갈 구멍을 좁힐 뿐, 다른 건 생각하지 않았다.

[따악~!]

“밀어 낸 타구가!! 계속 뒤로 갑니다!! 우익수가 펜스 앞에서!! 잡지 못하는 군요!! 그 사이 1루 주자는 2루를 지나 3루!! 홈으로 내달립니다!! 홈 승부!! 판정은 아웃입니다!! 아웃!!!! 홈에서 저격당하는 정인규 선수입니다!!”

“지금 이인영 선수의 릴레이를 보세요. 이미 여기서부터 스텝이 홈으로 향하고 있잖아요. 기본을 정확히 지킨 플레이입니다.”

박한우 위원은 여기서도 기본을 강조했다.

외야에서 송구를 받고도, 기본을 지키지 않아 홈 승부를 못하는 선수들이 의외로 많다.

하지만 이인영은 우익수 송구가 날아오기 전부터 때부터 스텝을 홈 쪽으로 향해 뒀다.

공을 받자마자 바로 던질 수 있는 자세가 돼 있던 것, 겉보기엔 화려하지 않지만 기본을 정확히 지킨 플레이로 베어스의 득점을 막아냈다.

좋은 야구선수는 기본을 지키는 선수, 지금 플레이는 그 기준에 딱 맞아 떨어졌다.

‘하아~ 저걸 어떻게 저렇게 … ’

베어스의 이재학 감독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지금은 정인규가 잘못한 게 아니라 라이온스의 릴레이가 너무 완벽했다. 내가 베어스의 감독이 아니라 제 3자 입장이었다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을 플레이, 적이지만 인정할 건 인정해야 했다.

‘How come XXXX are so good at it?'

= 저 자식은 뭔데 이렇게 야구를 잘 하는 거야?

2루에 자리를 잡은 페르난데스도 어이가 없긴 마찬가지, 홈런이 안 된 건 아쉬운 일이지만 어쨌든 이 정도면 득점이 나왔어야 했다.

이인영은 지난 3년 동안 좌익수로 뛰었던 선수, 1루에서 저 정도 수비를 발휘할 줄은 예상도 못했다.

짜증나지만 야구는 진짜 잘하는 놈, 한국에서 선수생활을 하는 동안 멋대로 라이벌 의식을 품었지만 이제야 인정을 했다.

“아주 잘 했어!!”

“멋지다 멋져!!”

베어스의 1회 말 공격은 결국 무실점으로 끝났다.

이성한 감독은 멋진 릴레이 플레이를 보여준 박한수와 이인영을 칭찬, 멋진 호수비 덕분에 라이온즈 벤치 분위기는 더욱 달아올랐다.

따아악~!!

“와아아~!!”

2회 초 공격에서 박한수가 깜짝 솔로 홈런을 날려주자, 1루에 자리 잡은 라이온즈 응원단의 기세는 더욱 달아올랐다.

전문가들의 예상과 달리 원정팀의 우위로 흘러가는 경기, 초반 기세에서 밀린 베어스는 어이없는 실책까지 저질렀다.

[딱~!!]

“땅볼, 아!! 여기서!! …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습니다. 일단 3루심은 아웃 판정을 내리지 않은 걸로 보이는데요.”

“지금은 최지환 선수의 발 위치가 문제가 될 것 같은데요. 그건 그렇다고 치고, 지금 허수완 선수의 플레이는 이해가 안 됩니다. 충분히 5 - 4 - 3병살 플레이가 될 수 있던 상황이었거든요.”

문제의 장면은 3회에 나왔다.

최지환이 볼넷으로 나가고 임완수가 안타로 출루, 무사 주자 1 - 2루에서 홍현구는 3루 쪽 땅볼을 때렸다.

2루로 던지는 게 정석, 하지만 허수완은 3루로 달려오는 최지환에게 태그를 시도했다.

최지환은 몸을 틀며 태그를 피했고, 3루심은 주자의 발이 라인을 밟지 않았다고 판단, 그 사이 타자 주자가 1루를 밟으면서 무사 주자 만루가 되고 말았다.

완벽한 판단 미스, 베어스의 이재학 감독은 주자의 발이 잔디 밖으로 나갔으니 주루 선상을 이탈한 거 아니냐고 따졌지만 3루심의 입장은 확고했다.

“3피트 라인을 안 넘었잖아요.”

“아니 발이 잔디 위로 넘어갔는데 어떻게 라인을 안 넘어 갔냐고?!! 이렇게 심판 볼 거야?!!”

이재학 감독은 모자까지 벗고 열을 냈다.

문제는 3피트 라인의 기준이 엿장수 마음대로라는 것, 줄자를 가져와서 정말 3피트를 넘었는지 따지는 건 아니다.

논란이 될 수밖에 없는 장면, 이재학 감독은 3루심과 핏대를 세우다 퇴장조치 당했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홈 팬들의 야유, 몇 몇 관중이 쓰레기를 투척하면서 경기는 잠시 중단됐다.

‘나는 그저 경기에 집중할 뿐’

이인영은 대기 타석에서 스윙을 돌리며 경기가 재개되길 기다렸다.

이런 상황에선 그냥 가만히 있는 게 정답, 더그아웃의 동료들도 쓸데없이 상대 팀을 자극하진 않았다.

“자, 경기가 재개되는 군요. 이인영 선수가 무사 주자 만루에서 타석에 들어섭니다. 오늘 첫 타석에서 좌중간을 가르는 2루타, 후속 타자 돈론 선수의 안타로 득점까지 했습니다.”

“여기서 한 방 나오면 그대로 경기가 기울 수도 있습니다. 베어스가 올 시즌 144경기에서 실책이 77개 밖에 없었던 팀이거든요. 그런데 오늘 벌써 실책 2개입니다. 집중력이 많이 떨어져 있어요.”

초구는 바깥쪽 볼, 바운드가 됐고 오건무 포수는 몸을 던져 막아냈다.

그냥 1점 줄 뻔 했던 상황, 베어스의 선발 댄 서든도 깜짝 놀라 홈으로 향하다 마운드로 돌아왔다.

최악의 상황에서 맞이한 최악의 타자, 퇴장당한 이재학 감독을 대신해 코치진이 볼 배합을 짜냈지만 이렇다 할 대안은 없었다.

그저 운에 모든 걸 맡길 뿐, 베어스의 운명은 공 하나로 막을 내렸다.

따아악~!!

“와아아아~!!”

“우우우~ 우~"

우측으로 멀리 뻗어나가는 타구, 사방에서 환호와 야유가 동시에 쏟아졌다.

최지환이 태그아웃 되고 병살 플레이가 이뤄졌다면 무실점으로 넘어갔을 이닝, 화를 참지 못한 베어스 팬이 그라운드 난입을 시도하면서 다시 경기가 중단됐다.

이와 별개로 하나 둘 홈에 차곡차곡 적립되는 주자들, 마지막으로 홈을 밟은 이인영은 동료들과 소소한 세리머니를 나누고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뭐가?!! 뭐가?!! 뭐?!!”

이때,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최지환이 자신에게 욕설을 하는 팬과 말싸움을 하기 시작한 것, 깜짝 놀란 이인영은 후배를 끌어냈다.

“그만 해라.”

“아!! 저게 자꾸 욕하잖아요!! 내가 뭘 잘못 했다고!!”

여기도 저기도 통제가 안 되는 상황, 이성한 감독까지 뛰쳐나와 최지환을 끌어냈다.

5대 0으로 이기고 있으면 속으로 웃으면 되는데 뭐 하러 싸워서 욕을 버나, 그런데 최지환은 6회 초 공격에서도 논란이 되는 플레이를 했다.

2루로 슬라이딩을 하면서 팔로 2루수 김환희의 다리를 터치한 것, 중심을 잃은 김환희는 넘어질 뻔 했다.

송구방해냐 아니냐를 두고 또 시작된 논란, 중계석에서도 이런 저런 말이 오고갔다.

“자 … 이 장면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글쎄요. 다른 말없이 규정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처럼 손을 뻗는다는 건 송구를 방해할 목적이 있었다는 거죠. 그런데 송구가 된 후에 접촉이 이뤄졌기 때문에 … 송구 방해를 주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반칙인데 반칙 아닌 플레이, 어린 선수가 벌써부터 이런 짓을 해도 되는 건가.

누군가가 주의를 줘야 하는 행동, 경기가 끝난 후 1차전은 6대 1 성운 라이온즈의 완승으로 끝났지만 이인영은 후배를 앞에 두고 잔소리를 했다.

“야, 네가 이렇게 행동하면 선배들이 욕 먹어. 후배 선수 잘못 가르쳤다고, 너도 뭐가 문제인지 알고 있잖아? 아니야?”

최지환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기가 죽으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벌인 플레이, 실제로 반칙인데 반칙 아닌 플레이로 상대 팀 기를 죽여 놓고 팀을 승리로 이끄는 선수들이 있다.

문제는 이런 이미지가 계속 쌓이다보면 선수 이미지가 안 좋아질 수 있다는 것, 이인영은 후배가 그런 길을 가는 건 원치 않았다.

“이기고 싶어서 … ”

“이기고 있었잖아? 그런데 왜 그런 행동을 해? 다음에는 절대 그러지 마, 팀 뿐만 아니라 너한테도 안 좋아. 어차피 하는 선수생활이라면 팬들에게 사랑받는 선수가 돼야 할 거 아냐?”

“이미 이미지 안 좋아 졌는데요 뭐”

“이게 진짜 … 자꾸 말 대답 할래? 내가 목소리 높여야겠어?”

대선배의 질책에 최지환은 고개를 숙였다.

평소 날 구박하는 선배지만 절대 악의가 담긴 행동은 아니다. 오히려 애정이 담긴 관심의 다른 표현, 그런데 오늘은 정말 화가 난 눈치라 꼬리를 내렸다.

‘그런데 내가 이런 말 자격이 되는지 모르겠다.’

후배에게 훈계를 했지만, 이인영도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나는 지금까지 상대 선수의 부상을 노린 적이 한 번도 없었나? 의도적으로 투수 쪽으로 강습 타구를 보낸 적도 있고, 지난 WBC에서는 상대 선수의 발목을 말 그대로 아작 낸 적도 있다.

물론 상대팀이 먼저 잘못은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나는 깨끗하다고 할 수 없는 입장, 평생 얼굴 안 볼 사이도 아니고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죄송해요. 제가 알아듣게 잘 훈계했어요.”

[네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왜 사과를 하냐?]

“후배 가르치는 것도 제 몫이잖아요. 선배는 후배가 잘못했는데 가만히 계실 거예요?”

[쩝 … 그건 그렇지, 나이 먹는 게 죄다. 어쩌겠냐.]

솔직히 서운했지만 김환희는 이해한다고 답했다.

후배 훈계하면 꼰대라고 욕하고, 그냥 놔두면 후배교육 잘 못한다고 하고, 팬들은 베테랑이 되면 편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팀에 문제가 생기면 가장 먼저 화살이 향하는 곳이 어디인가.

경력이 쌓일수록 높아지는 책임감, 이인영도 어느덧 프로 5년차다. 25살이면 사회에선 한창 인생을 즐길 때지만 지금 이 자식이 그럴 때인가. 후배가 잘못하면 다독여야 하는 입장, 김환희도 캡틴으로서 그 심정은 충분히 이해했다.

[야, 그런데 너 1회에 굉장히 비열해 보였다. 그건 알아 둬라.]

“뭐가요?”

[아웃 잡고 나 보면서 씩 웃었잖아? 그건 내가 용서 못한다.]

“손으로 잡은 것보다는 훨씬 낫죠.”

[그래, 끝까지 반성 안 한다 이거지? 어, 두고 봐. 내가 어떻게 하나.]

“내, 두고 볼 게요. 어떻게 하시나”

그럭저럭 마무리 된 분위기, 하지만 팬들이 지핀 논란은 더욱 달아올랐다.

최지환이 김환희의 다리를 손으로 쳐 중심을 무너뜨린 건 사실, 몇 몇 베어스 팬들은 라이온즈에 저주를 퍼부었다.

[두고 봐라. 이번 시리즈에서 누구 한 명 크게 다칠 거다. 그게 이인영이라면 더 좋겠지]

->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냐? 이인영이 김환희한테 태클 했냐?

-> 혹시 또 모르지, 이인영 지난 WBC에서 일본 선수 발목 날렸잖아. 후배에게 대신 시켰을 수도 있어.

-> 너 지금 댓글 캡처 했다. 라이온즈 구단에 넘길 테니까 고소 한 번 먹어 봐라.

->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다. 알아서 자삭해라. 문제 커지기 전에

당사자들이 별 거 아니라고 웃어넘겼는데 쓸데없이 논란을 키우는 팬들, 이어지는 2차전에서도 몇 몇 홈팬들은 다소 위협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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