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일은 일인자-143화 (143/309)

143화. 다 내 탓이오 (3)

“여기도 좀 봐주세요.”

이곳은 한국시리즈가 열리는 서울 UA 어반 스타디움, 창원 레이더스를 4승 무패로 꺾은 성운 라이온즈는 UA 베어스와 한국시리즈 우승을 놓고 격돌하게 됐다.

이인영은 팀을 대표해 미디어 데이에 참가, 기자들의 요청에 따라 이리저리 시선을 돌려가며 포즈를 잡았다.

본격적으로 시작된 인터뷰,

베어스의 주축 선수 김환희에게 첫 질문이 돌아갔다.

“김환희 선수, 최근 베어스가 5년 동안 우승 4번을 차지했는데요. 베어스가 너무 독주를 해서 재미가 없다, 이런 말을 하는 팬 여러분들이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실력이 있으니까 우승을 하는 것뿐입니다. 베어스가 우승하는 게 불만이라면 저희보다 떨어지는 다른 팀들의 실력부터 탓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초반부터 강하게 나오는 김환희, 다소 논란이 될 수도 있는 발언이지만 최근 5년 동안 어느 팀도 베어스의 아성을 넘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성운 라이온즈도 마찬가지, 3년 전 한국시리즈까지 올라갔고 나름 잘 싸웠지만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하고 무너졌다.

프로 세계에선 실력이 전부, 이인영도 그렇게 생각했다.

“이번엔 이인영 선수에게 질문 드리겠습니다.”

“예”

“통산 두 번째 한국시리즈 도전인데요, 올해는 우승 자신하십니까?”

“해야 됩니다. 저에겐 이제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어느덧 프로 5년 차, 내년에도 기준 일수를 채우면 포스팅 자격을 얻고 메이저리그 문을 두들길 수 있다.

메이저리그 진출은 평생의 꿈, 그 전에 라이온즈에 우승을 안겨줘야 하지 않겠나. 우승 목전에서 2번이나 미끄러진다면 그것만큼 비참한 것도 없겠지. 반드시 우승하고 메이저리그 진출하겠다는 각오를 세웠다.

“음 … 저런 선수들이 우승 못하고 메이저리그 가던데요.”

이때 김환희가 태클을 걸고 나섰다.

메이저리그 진출 전, 우승을 약속한 선수들이 몇 명 있긴 있었다.

2년 전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ST 위너스의 박혁도 그중 하나, 하지만 끝내 우승을 선물하지 못했다. 약속은 어디까지나 약속일 뿐, 저런 건 믿을 게 못 된다며 도발을 했다.

“우승하고 메이저리그 못 가는 선수들도 있죠.”

이인영도 바로 반격에 나섰다.

김환희는 미국에서 돌아온 임선우가 차기 메이저리거로 손꼽은 선수다.

하지만 냉정히 말해서 김환희는 포스팅을 신청해도 좋은 대우를 받기 어려운 입장, KBO에서는 뭐하나 빠질 게 없다는 평가를 받는 내야수지만 현실은 냉정하다.

당장 이웃 나라 일본만 봐도, 최근 2년 동안 내야수 3명이 포스팅 신청을 했지만 냉정한 평가 앞에서 꿈을 접었다.

김환희 선배가 메이저리그 구단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까. 이인영은 힘든 일이라며 심기를 건드렸다.

“쟤가 뭘 몰라서 저런 말을 하는 것 같은데요. 저 올해 끝나고 메이저리그 포스팅 선언 할 겁니다. 두고 보세요.”

“망신당할 텐데 그냥 가만히 계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야, 내가 여자 친구도 소개시켜줬는데 계속 신경 건드릴래요?”

“선배가 먼저 시비 걸었잖아요.”

미디어 데이부터 이어지는 유치한 신경전, 그래도 다 장난으로 하는 말이라 훈훈한 분위기로 넘어갔다.

‘그런데 진짜 시간이 없다.’

기자들 앞에서 웃고 떠들어도 경기를 앞둔 마음만큼은 진지했다.

내년에 메이저리그 진출하면 언제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지만 만약 실패해서 돌아온다면? 그런 기량으로 팀 우승을 이끌 수 있을까.

이인영은 부상으로 날려먹은 데뷔 시즌을 제외하면 지난 4년 동안 KBO 최고의 선수로 군림했다.

이런 선수가 있어도 우승을 못 한다면 그건 누구의 책임인가.

최고의 선수가 되는 것도 좋지만 이기는 팀의 선수가 되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 나는 팀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선수인가?

그 답은 우승이라는 결과로 증명해야 했다.

“후우~ ”

1차전을 앞두고 이인영은 스트레칭을 하며 더그아웃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3년 전에 치러봤지만 그래도 긴장되는 한국시리즈, 머리가 복잡할 땐 몸을 움직이는 게 최고라 이곳저곳을 쑤시고 다녔다.

“정신 사납게 왜 그러냐? 역시 너라도 긴장 되냐?”

“저보다는 감독님이 더 긴장하신 것 같은데요?”

선수의 반격에 이성한 감독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3년 전에는 코치 자격으로 이 무대에 섰지만 지금은 감독, 그해 준우승을 거둔 한승규 감독은 한국시리즈가 끝나자마자 경질 됐다.

감독은 책임을 지기 위한 자리, 준우승의 후폭풍이 얼마나 거센지 이성한 감독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위기를 넘어섰을 때 누리는 영광은 달콤한 법,

현재 10개 구단 감독 중 한국시리즈 우승 경험이 있는 감독은 베어스의 이재학 감독뿐이다.

그것도 역대 최다우승(4회), 이재학 감독은 올해 계약이 끝나면 3년 28억 계약이 종료 된다.

계약금만 7억에 연봉도 7억 원, 올해 또 우승을 하면 몸값이 얼마나 뛰겠나. 그런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인가? 이성한 감독은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나 우승 좀 시켜줘라. 이번 기회에 노후 대비 좀 해 두게.”

“죄송하지만 전 그런 봉사활동은 흥미 없어요.”

이인영은 매정한 말을 남기고 돌아섰다.

하지만 승리를 원하는 건 나도 마찬가지, 내가 활약해서 우승하면 겸사겸사 감독님에게도 득이 되지 않겠나.

어쨌든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시리즈, 약간 긴장된 몸으로 주심의 콜이 울리길 기다렸다.

“자!! 1회 초!! 성운 라이온즈의 선공으로 한국시리즈 1차전의 막이 오릅니다!! 타석에는 임완수 선수, 이 날을 위해 지난 3년 동안 칼을 갈았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그동안 유독 베어스를 상대로 약한 모습을 보였거든요. 이번 시리즈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지켜보겠습니다.”

베어스의 2루수 김환희는 우측 깊숙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임완수를 지독히 괴롭혔던 시프트, 아마추어도 아니고 같은 작전에 계속 당해야 되나.

보란 듯이 센터 쪽을 노리고 타격을 했다.

[딱~!!]

“2루 쪽으로 가는 타구!! 잡아서 1루에!! 아웃입니다!! 김환희 선수의 멋진 수비!! 선두 타자 출루를 저지합니다!!”

“김환희 선수의 수비 범위를 가늠할 수 있는 플레이가 나왔죠. 포기할 법도 한데 끝까지 따라가서 잡아내지 않습니까? 송구가 살짝 불안하긴 했는데 이걸 또 김동환 선수가 잘 잡아냈습니다.”

“김환희 선수가 올 시즌 통산 WAR 38을 돌파했습니다. 올 시즌 전까지만 해도 역대 2루수 1위는 임성수 선수의 35.2였는데, 이걸 넘어선 거죠. 역대 KBO 최고의 2루수입니다.”

임완수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돌아섰다.

본인도 2루수지만 볼 때마다 감탄이 나오는 수비 범위, 기싸움에서 밀리면 안 되는데 초반부터 크게 한 방 먹고 말았다.

“괜찮아!! 괜찮아!!”

“나쁘지 않았어!!”

이성한 감독과 코치진은 박수를 치며 별 거 아니라는 반응을 보였다.

선수 개개인의 기량을 따져봤을 때 명백히 밀리는 라이온즈, 힘든 싸움이 될 거라는 건 처음부터 예상하지 않았나.

다음 타자 홍현구도 우중간을 노리는 스윙을 했다.

‘이것도?!!’

제법 강하게 맞은 타구, 하지만 김환희는 몸을 날려 타구를 막아낸 뒤 1루 송구로 주자를 잡아냈다.

경기 시작부터 안타 성 타구 2개 삭제, 홈 팬들이 필승을 연호하면서 초반 분위기는 베어스 쪽으로 넘어갔다.

“자, 이제 이인영 선수의 타석으로 이어집니다. 타격 7관왕의 위엄을 달성한 올 시즌, 남은 건 한국시리즈 왕좌뿐입니다!!”

“김환희 선수가 놀라운 수비력을 보여주고 있지만, 타자가 담장을 넘기면 아무 소용없거든요. 이인영 선수는 그게 가능합니다.”

귀찮은 상대의 등장에 베어스 내야진은 바짝 긴장했다.

3년 전 한국시리즈에서 4홈런을 퍼부은 그 지긋지긋한 괴물, 그 날의 악몽을 기억하고 있는 이재학 감독은 몸 쪽 승부는 하지 말라는 사인을 냈다.

문제는 올 시즌 저 자식이 빠른 볼은 밀어치고 변화구는 잡아당기는 타격으로 재미를 봤다는 것, 좋은 결과는 장담할 수 없었다.

‘아~ 저건 내가 못 잡지.’

외야로 뻗어나가는 타구, 김환희는 좌중간을 가르는 타구를 지켜봐야 했다.

유유히 1루를 지나 2루까지 진입하는 괴물, 이인영은 라이온즈 더그아웃을 향해 손가락 두 개를 흔드는 여유를 부렸다.

‘너 3루 도루 할 거냐?’

김환희는 입을 다물었지만 사실은 이렇게 묻고 싶었다.

이인영은 올 시즌 3루 도루만 15개를 해냈다.

전체 도루의 1/3이 약간 못 되는 수치, 이런 선수를 2루에 두고 몸 쪽으로 떨어지는 변화구를 던지는 건 위험하다.

주력도 뛰어나 단타가 나와도 바로 실점, 이인영은 루상에서도 귀찮은 존재감을 발휘했다.

‘몸 쪽은 신경 끈다.’

타석에 들어서는 돈 부머는 철저하게 바깥쪽을 노렸다.

저 자식이 2루에 있는데 몸 쪽 공을 던지겠나. 예상대로 초구는 바깥쪽, 빠지는 공을 골라냈다.

“다시 바깥쪽입니다. 카운트는 투 볼 노 스트라이크”

“부머 선수가 올 시즌 주자 2루에서 타율 0.353를 기록했거든요. 정규시즌 타율보다 약 5푼 정도 더 높았습니다. 거기다 타격 범위도 넓고 섣불리 들어가긴 어렵겠죠.”

[따악~!!]

“말씀드리는 사이!! 밀어 친 타구가 우익수 옆에 떨어집니다!! 이인영 선수는 3루를 돌아 홈으로!! 홈으로!! 들어옵니다!!!! 선취 득점!! 라이온즈가 2사에서 득점을 올립니다!!”

“역시 이 두 선수의 콤비 플레이는 대단하네요. 김환희 선수의 호수비가 나올 때만 해도 분위기는 베어스 쪽이었는데, 역시 야구 모릅니다.”

안타 2개에 뒤바뀐 흐름,

성운 라이온즈 선수단은 더그아웃 밖으로 나와 영웅을 맞이했다.

전체적인 전력은 떨어진다고 해도 우리에겐 이 녀석이 있지 않은가. 타석에 서 있기만 해도 든든한 선수, 세리머니를 마친 이인영은 표정 없는 얼굴로 더그아웃에 들어섰다.

경기는 이제 막 시작됐을 뿐, 과한 감정표현은 자제했다.

‘네가 치면 나도 치고, 네가 가면 나도 간다.’

1회 초 라이온즈의 공격은 여기서 종료, 베어스의 1번 타자 김환희가 타석에 들어섰다.

자꾸 선배는 메이저리그 못 간다고 하는 건방진 후배, KBO에서 이룰 건 다 이뤘으니 메이저리그에 도전할 생각은 있다.

하지만 장타력 없는 내야수가 스카우터에게 매력을 어필할 수 있을까.

사실 김환희도 반쯤 포기하고 있던 상황, 그런데 후배가 계속 자극을 주다보니 오기가 생겼다.

‘별 관심 없음.’

애석하게도 관중석에 앉은 스카우터들의 눈엔 이인영만 보였다.

1루수와 좌익수를 모두 볼 수 있는 수비에 장타력과 주루능력, 여기에 젊은 나이까지 뭐하나 빠질 게 없지 않은가.

수비 좋은 2루수는 얼마든지 있는 메이저리그, 안타를 치든 말든 처음부터 관심이 없었다.

[따악~!!]

“당긴 타구!! 3루수가 잡아 1루에서~!! 아웃입니다!! 3루수 김상규 선수의 멋진 송구!! 까다로운 타자를 잡아냅니다!!”

“지금도 이인영 선수의 전매특허 다리 찢기가 나왔네요. 키도 큰데 다른 선수보다 한 발 더 나와서 잡으니까 안타도 아웃으로 둔갑되는 거죠.”

아웃 판정에 김환희는 펄쩍 뛰었다.

분명 세이프라고 생각했는데 포구가 빨랐다는 1루심, 뒤를 슬쩍 돌아봤더니 후배의 얄미운 미소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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