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일은 일인자-142화 (142/309)

142화. 다 내 탓이오 (2)

[따악~!!]

“당긴 타구!! 아~ 하지만 유격수가 잡아 1루로 송구하는 군요. 최지환 선수의 첫 타석은 이렇게 마무리 됩니다.”

“지금은 칠만한 공을 친 거죠. 결과에만 연연할 필요 없습니다.”

3구를 힘껏 당긴 최지환은 1루 베이스를 밟은 뒤 아쉬움을 표했다.

원하는 공에 원하는 스윙을 했는데 결과가 나오지 않았으니, 뜻대로 되질 않아 속이 상했다.

‘그래, 그렇게 하면서 크는 거지.’

벤치에 앉은 이인영은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어느덧 프로 5년차, 많은 시즌을 뛴 건 아니지만 그럭저럭 많은 동료들과 인연을 맺었다.

다양한 얼굴이 오르내리는 기차역 같은 더그아웃, 저 녀석은 이곳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눈에 띄었다.

신인 이상의 신인이라고 해야 할까, 1군에서 한 경기도 안 뛰었는데 여론의 주목을 끌었던 녀석, 프로 입성 첫날부터 최지환은 엄청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따악~!!

따악~!!

이인영은 후배의 타격 연습을 처음 봤던 기억을 떠올렸다.

공이 방망이에 짝 달라붙는 느낌이랄까, 한 눈에 봐도 거포 기질이 있던 녀석, 수비는 다소 아쉬웠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얘가 뭔데 선발 출장을 하는 거지?]

-> 나라면 안 써

[타격도 그냥 그렇고 수비는 더 안 되잖아? 얠 왜 쓰지?]

댓글을 보면 가끔 저 녀석을 비꼬는 내용도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별로 하는 것도 없는데 왜 주전으로 기용하느냐는 의견,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세상을 우습게 본다.

저 녀석이 누리는 특권이 아무 노력 없이 이뤄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타인의 성공을 누군가의 뒷배로 깎아내리고 능력에 비해 필요 이상의 대우를 받는다고 폄하하다니, 그 사람들이 진정한 노력을 해봤을까.

최지환은 자격이 되니까 포스트시즌에서 주전으로 쓰이는 것, 눈에 안 띄는 곳에서 얼마나 노력하는지는 선수들이 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인영도 누구보다 관심을 주는 후배, 당장 결과를 내고 팬들의 환호를 받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마음대로 안 되는 게 이 그라운드, 그저 지켜봐줄 수밖에 없었다.

따악~!!

성운 라이온즈의 3회 말 공격은 득점 없이 종료, 창원 레이더스의 4회 초 공격이 시작됐다.

좌측 라인 선상을 타구 흐르는 타구, 최지환이 공을 잡자 2루수 임완수는 바로 커버를 들어갔다.

‘너라면 괜찮을 거다.’

저 녀석은 저 위치에서 2루 송구를 수도 없이 연습했다.

부족하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했던 녀석, 송구가 빗나갈 거란 불길한 예언은 하지도 않았다.

“자!! 여기서 바로 2루로 송구!! 태그!! 아웃입니다!! 최지환 선수의 멋진 송구!! 득점권 위기를 지워냅니다!!”

“지금은 굉장히 인상적인 수비가 나왔네요. 최지환 선수가 처음부터 라인 선상 근처에 있었거든요? 이게 코치진의 지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굉장히 정확한 송구가 나왔습니다.”

“수비가 안 좋다는 평가를 받은 선수 맞나요? 올 시즌 좌익수로 출전한 경기도 3경기 밖에 안 되는데 … 역시 감독의 기용에 토를 다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이인호 위원은 빠르게 사죄를 표했다.

솔직히 저 선수를 왜 좌익수로 기용했는지 이해가 안 됐다.

하지만 선수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 감독, 해설위원이 뭘 안다고 그 기용에 토를 달겠나.

감독도 못 해 본 내가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 빠른 사죄 덕분에 마음은 편해졌다.

“아자!!”

타석에서의 아쉬움을 호수비로 떨쳐낸 최지환은 주먹을 불끈 쥐며 포효 했다.

수비가 약하다는 편견을 지워낸 송구, 성운 라이온즈 더그아웃도 박수를 치며 어린 선수의 활약을 독려했다.

이제는 선배들이 뭔가 보여줄 차례, 이인영은 4회 말 공격에서 선두타자로 나섰다.

초반에 잠깐 흔들렸던 이홍기는 1실점 호투를 이어가는 상황, 바깥쪽을 찌르는 볼 배합이 통하질 않았으니 이번에는 초구부터 몸 쪽으로 들어오지 않을까.

만일을 위해 앞발을 평소보다 조금 더 열어뒀다.

[따아악~!!]

“초구 타격!! 우익수는 움직이지 못합니다!! 계속 뒤로 뻗어가는 이 타구!! 담자~ 앙!! 넘어갑니다!!!! 이인영 선수의 벼락같은 솔로 홈런!! 스코어 2대 1!! 팀에 다시 리드를 안겨줍니다!!”

“지금은 노렸다는 듯이 배트가 나왔거든요!! 역시 수 싸움을 할 줄 아는 선수에요!!”

타격이 된 순간, 최지환은 더그아웃 밖으로 튀어나와 만세를 불렀다.

내가 친 홈런도 아닌데 왜 이렇게 가슴이 뛰는 건지, 홈을 밟고 돌아온 선배를 향해 가슴을 활짝 열어젖혔다.

하지만 이인영은 하이파이브만 해주고 그 곁을 지나쳤고, 다른 선수들에게도 같은 서비스를 베풀었다.

“그러지 말고 우리 포옹 한 번 해요.”

“왜?”

“아~ 선배님, 우리가 보통 인연이에요? 한 번 해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따라붙는 녀석, 이인영은 마지못해 포옹을 허락했다. 여자 친구와도 아직 포옹을 못했는데 이 녀석과 하고 있으니, 후배의 까까머리를 거칠게 쓸어 넘기며 무안함을 달랬다.

“자!! 자!! 아직 경기 안 끝났다!! 집중!!”

이성한 감독은 박수를 치며 들뜬 분위기를 단속했다.

레이더스의 저력을 알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방심할 수 없는 승부, 선수들도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내친 김에 방망이도’

경기는 흘러 6회 말 성운 라이온즈의 공격, 타석에 들어선 최지환은 좌측 먼 곳을 응시했다.

마지막 홈런 맛을 본 게 벌써 한 달 하고도 사흘, 최근 집요하게 바깥쪽 승부를 하는 투수들 때문에 힘을 싣는 타격을 못하고 있다.

투수 탓이 아니라면 내 타격기술이 아직 부족하다는 뜻이겠지, 욕심을 버리고 출루에만 신경 썼다.

“초구!! 들어옵니다. 카운트는 노 볼 원 스트라이크”

“지금은 나가도 되지 않았나요? 계속 바깥쪽에 신경쓰다보니까 적극적인 스윙을 못하는 것 같습니다.”

“타자는 자기만의 히팅 존이 있어요. 어느 코스를 쳤을 때 안타가 나왔는지 하나하나 그려나가야 됩니다. 그 지도가 완성되면 그때부터는 이런 공을 놓치지 않겠죠.”

박한우 위원은 기다려주자는 말을 반복했다.

스트라이크 존은 정해져 있지만 그 코스를 타자가 모두 커버할 순 없는 법, 보물찾기를 하는 것처럼 어떤 공을 어떻게 쳐야 안타가 나오는지 하나하나 파악해야 한다.

그래서 경험이라는 게 중요한 법, 내 안타 지도는 언제 완성되는 걸까.

최지환은 차분하게 다음 공을 기다렸다.

따악~!!

“어?!”

내가 치고도 믿을 수 없는 타구, 1루로 향하던 애송이는 좌중간에 떨어진 타구를 향해 오른손을 높이 들어올렸다.

간만에 밀어 쳐서 만든 안타, 이런 게 하나 둘 늘어나면 밀어치는 홈런도 나온다고 하는데 정말일까.

통산 9개의 홈런을 모두 잡아당겨서 만들어 냈으니, 그게 어떤 느낌인지는 상상에 맡겼다.

‘한 점 더 따면 된다.’

한편, 이성한 감독은 후속타자 임완수에게 보내기 번트를 지시했다.

많은 득점이 나지 않는 경기, 대량득점보다 확실하게 한 점을 얻는 길을 택했다.

임완수가 1루 쪽으로 타구를 굴리면서 최지환은 2루에 안착, 1사 주자 1루에서 홍현구가 타석에 들어섰다.

[따아악~!!]

“밀어낸 타구가!! 센터 쪽으로 높게!! 담장을 넘어 갑니다!!! 홍현구 선수의 투런 홈런!! 성운 라이온즈가 4대 1로 점수 차를 벌립니다!! 결정적인 한 방!! 잘 버티던 이홍기 선수를 무너뜨립니다!!”

“지금은 체인지업을 던지려고 했던 것 같은데, 회전이 걸렸어요. 완벽한 실투였습니다.”

131km의 느린 빠른 볼, 이 하나가 양 팀의 운명을 갈랐다.

회전이 덜 걸려서 떨어지게 하는 게 체인지업, 그런데 회전이 걸리면서 이도 저도 아닌 빠른 볼이 되어버렸다.

잘 던졌지만 2% 부족했던 투구, 이홍기는 동료들의 위로를 받으며 더그아웃에 들어섰다.

지난 7년 동안 그렇게 많은 체인지업을 던졌는데 하필이면 여기서 실수가 나올 줄이야. 동료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고개도 들지 못했다.

오늘 지면 모든 건 다 내 탓, 팀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했다.

‘이건 너무 잔인한가.’

한편, 타석에 들어선 이인영은 레이더스 내야진을 훑어 봤다.

때론 말보다 더 많은 정보를 주는 몸짓, 지금 3루수 주창호는 멍한 눈으로 바뀐 투수를 바라보고 있다.

오늘 경기는 힘들겠다며 포기해 버린 건가.

점수 차가 벌어진 경기에선 번트를 안 대는 게 예의라고 하는데, 4대 1이 두 다리 뻗고 잘 수 있는 스코어도 아니고, 기습 번트를 대버렸다.

순식간에 깨진 내야진의 평화, 이 번트로 성운 라이온즈는 한 점을 더 냈고 포스트 시즌 1차전은 반전 없이 막을 내렸다.

[이인영, 그 상황에서 꼭 번트 대야 했나?]

기자들은 별것도 아닌 일로 트집을 잡기 시작했다.

홈런 타자는 번트 대면 안 되는 건가.

선수들도 아무 말을 안 하는데 열을 내는 레이더스 팬들, 이인영은 SNS를 통해 입장을 밝혔다.

[화가 날 땐 주위를 둘러봐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가만히 있는데 나만 화를 내고 있을 수도 있죠. 이런 때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내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제가 번트를 댄 게 레이더스를 농락하기 위해서였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 것 같은데, 저는 살기 위한 번트를 댈 뿐, 상대를 자극하는 번트는 대지 않습니다.]

얼마나 내야수가 경기 에 집중을 못 했으면, 정규 시즌 46홈런을 때린 선수가 기습 번트를 댔을까.

이건 타자가 내야수를 농락한 게 아니라 상대의 허점을 찌른 것 뿐, 그런데 왜 팬들이 화를 내는 건가.

이런 비뚤어진 애정이 패배한 선수들을 더욱 비참하게 한다는 걸 모르는 건가?

한 순간도 방심해선 안 되는 게 프로, 타자가 번트를 대면 잡아서 아웃시키면 되는 거 아닌가. 실제로 주창호는 경기 중 불쾌한 반응을 보이지도 않았고 지금까지 이렇다 할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열을 내고 있는 건 일부 팬과 논란거리가 되길 원하는 기자들 뿐,

일을 크게 부풀리고 있는 건 당신들이 아니냐는 지적에 다들 입을 다물었다.

[제가 집중하지 못한 탓입니다. 모두에게 미안합니다.]

결국 사건이 터진 후 12시간 만에 주창호는 정식으로 팬들에게 사죄를 표했다.

다음에 실수하면 안 되겠다 이렇게 넘어갔을 일인데, 팬들이 괜히 이인영을 깎아내리면서 입장이 난처해졌다.

내가 실수해서 일어난 일인데 왜 저 선수가 욕을 먹어야 하는 건지, 이인영에게 정식으로 미안하다는 입장을 표했다.

[괜찮아요. 제가 홈런을 쳤어야 했는데 번트를 대서 일이 이렇게 된 거니까요. 다음 경기에서는 홈런만 칠게요.]

이인영은 비뚤어진 팬들의 가슴에 쐐기를 박았다.

홈런 칠 놈이 번트 댔다고 다들 욕 하는 거 아닌가. 그럼 다음 경기에서 홈런만 치면 그만, 2차전에서 보란 듯이 4타수 2안타 1홈런을 기록하며 팀 승리를 이끌었다.

“선배님은 진짜 멋있는 거 같아요.”

“뭐가?”

“한다면 진짜 하잖아요. 저는 그렇게는 못할 것 같아요.”

“됐어. 나도 그냥 큰소리 한번 쳐 본 거야.”

이인영은 후배의 아부에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냥 웃어 넘겼어도 됐을 텐데 자기도 모르게 욱해버렸으니,

선수가 팬들하고 말싸움해서 이기면 뭐 할 건가. 성숙해지려면 아직 멀었다는 걸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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