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일은 일인자-141화 (141/309)

141화. 다 내 탓이오 (1)

“아~ 배고프다.”

이곳은 플레이오프 1차전을 앞두고 있는 라이온즈 파크, 훈련을 마친 선수들은 하나 둘 식당으로 이동했다.

경기 시작 두 시간 전에 먹는 중간식, 일본에서 영입한 요리사는 덮밥이나 채소 위주의 식단을 내놨다.

고기는 소화가 잘 안 되기 때문에 경기 직전엔 금지하는 게 라이온즈 구단 영양사들이 지키는 철칙, 하지만 한참 먹을 젊은이들은 남의 살을 요구했다.

“고기 없어요? 고기?”

“여기 불판 좀 가져다주세요.”

구단 식당에서 잔치라도 벌일 기세, 계속되는 밥투정에 영양사들은 직접 고기를 구워주겠다고 했다.

“에이~ 그러면 분위기가 안 나요.”

“우리가 직접 구워 먹는 재미도 있는데”

아들이면 가서 한 대 때려주기라도 하지, 어쩜 이렇게 말을 안 듣는 걸까. 영양사들은 결국 불판과 소갈비 한 짝을 내줬다.

그렇게 시작된 소소한 연회, 오키나와 캠프에서 고기 굽는 실력을 인정받은 이인영은 오늘도 집개를 손에 쥐었다.

“선배, 아직 멀었어요?”

“기다려 인마.”

“지금은요?”

“내가 기다리라고 했냐 안 했냐?”

최지환은 덜 익은 고기를 건드렸다가 선배의 눈총을 받았다.

그렇게 인고의 시간을 지나 겨우 내려진 은총, 어린 선수들은 게 눈 감추듯 고기를 먹어치웠다.

그리고 다시 시작된 기다림, 최지환은 또 선배의 신경을 건드렸다.

“야 인마!!”

“아 … 안 댔어요. 그냥 좀 보려고 … ”

불호령에 벌벌 떠는 어린 것들, 베테랑과 코치진들이 너무 그러지 말라며 편을 들어줬지만 이인영은 일발 잔소리를 연장했다.

“으이그~ 이렇게 참을성이 없으니까 야구를 못하지.”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세요?”

“너 박한우 위원께서 하는 말씀 못 들었냐?”

성운 라이온즈는 타선은 작년 시즌 47.2%의 스윙률을 기록했다.

KBO 10개 구단 중 무려 2위, 그만큼 적극적인 타격을 했다는 뜻일 수도 있지만, 달리 생각하면 성급하게 배트가 나갔다는 뜻이다.

올 시즌은 어땠을까. 46%로 여전히 높았던 스윙률, 출루율은 0.339로 전체 구단 중 5위를 기록했다.

출루율 0.473을 찍은 이연영을 제외하면 전체 구단 중 6위, 너무 소극적인 것도 문제지만 타자들이 좀 더 참을성을 발휘해야 공격력도 살아난다는 게 중론이다.

특히 최지환은 지적을 받아 마땅한 입장,

올 시즌 72경기에서 타율 0.253, 홈런 9개를 기록하며 가능성을 보여줬지만, 35삼진(197타석)을 당하는 동안 볼넷은 겨우 9개 얻어냈다.

하위 타선에 배치됐다고 막 돌리면 되겠나, 신중한 타격으로 상위타선에 찬스를 넘겨줘야 했다.

“넌 내가 먹으라고 할 때까지 먹지 마.”

“네?!!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이인영은 먹이를 앞둔 개를 조련시키는 것처럼 후배를 닦달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고문인지, 최지환은 너무한 것 아니냐며 투덜거렸지만 대선배의 엄명이라 촉촉해진 눈을 깜빡거렸다.

“너 포스트 시즌에서 잘하면 내가 설날에 한우 세트 보내줄게.”

“오?!! 진짜요?”

“내가 누군 줄 아냐? 그 정도 선물은 껌이지.”

돈 잘 버는 선배답게 월드스타는 다른 후배 선수들에게도 거한 공약을 걸었다.

다들 통장 잔고를 지워버릴 기세, 이인영은 그러려니 웃어 넘겼다.

우승만 하면 배당금이 얼만데 그까짓 몇 백 만원 못 쏘겠나. 이길 수만 그것보다 더 한 것도 해줄 수 있었다.

“플레이 볼!!”

그렇게 시간은 흘러 포스트 시즌 1차전의 막이 올랐다.

라이온즈의 상대는 준 플레이오프에서 한진 타이거스를 꺾고 올라온 창원 레이더스, 국가대표 선발투수 이홍기 외에도 기량이 좋은 선수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만만히 보면 큰 코 다칠 상대, 라이온즈 선수단은 1회 수비에 최선을 다했다.

‘리더의 실수는 선수들의 삽질을 부른다.’

1루에 자리를 잡은 이인영은 마음속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정식으로 캡틴 완장을 찬 건 아니지만 어쨌든 팀의 주축 선수, 내가 실수를 하면 선수단 전체에 미치는 여파가 얼마나 크겠나.

이글거리는 눈으로 타구에 집중했다.

[딱~!!]

“초구 타격!! 유격수가 잡아 1루로 송구합니다!! 아웃!! 이인영 선수가 놀라운 유연성을 발휘합니다!!”

“지금은 홍현구 선수가 잘 잡긴 했는데, 송구가 너무 옆으로 치우쳤어요. 그런데 이걸 또 잡아냈습니다.”

0.1초가 승부를 가르는 송구에서 1루수의 다리 찢기는 기본적인 플레이다.

하지만 유연성이 없으면 할 수 없는 플레이, 팬들은 1루수하면 덩치가 크고 둔한 선수를 떠올리는데 그건 편견이다.

살만 찌고 운동신경도 없는 선수가 1루를 본다?

그런 선수들은 그나마 타격이 돼야 지명타자로 써주는 편, 이인영은 어깨 웨이브 세리머니로 호수비를 자축했다.

덕분에 다른 선수들의 긴장감도 풀렸고, 라이온즈는 무사히 1회 초를 넘겼다.

‘나는 잘 하면 선물 안 주나?’

타석에 들어서는 임완수는 잠시 딴 생각을 했다.

후배들은 설날에 한우 세트 선물한다고 했는데, 나는 뭐 없는 건가. 연봉도 2억 4천만 원이나 받지만 공짜는 사양 안 하는 편, 일단 결과부터 내고 협상을 하기로 했다.

“지켜봅니다. 카운트는 투 볼 원 스트라이크, 임완수 선수가 차분하게 볼을 고르고 있습니다.”

“임완수 선수가 스트라이크 존에 들어오는 볼을 칠 확률은 52%가 조금 넘습니다. 소극적인 타격을 한다는 뜻이죠. 이런 성향 때문에 루킹 삼진도 많이 당하지만, 스윙을 했을 때 컨택률은 91%나 됩니다. 스윙이 나오면 긴장해야 됩니다.”

임완수는 4구를 받아쳐 2루 베이스 쪽으로 타구를 날렸다.

임완수의 올 시즌 타구 비율은 우중간 쪽으로 52%, 데이터를 믿고 시프트를 펼친 레이더스는 양날의 검에 베이고 말았다.

다음 타자도 우중간에 타구가 집중된 홍현구, 이번에도 시프트인가.

레이더스 내야진은 코치가 보내는 사인에 집중했다.

‘기다리라 이거지?’

홍현구는 차분하게 공을 골랐다.

딱히 선물 세트를 노리는 게 아니라 홍현구는 예전부터 박한우 위원에게 성급한 스윙을 지적받았다.

적극적인 배팅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나쁜 볼은 골라내야 할 것 아닌가. 임완수 다음으로 많은 타격 기회를 얻는데 떨어지는 출루율은 팀에 해가 될 뿐, 달라진 타격 접근법에 레이더스 배터리는 혼란에 빠졌다.

‘너 원래 이렇지 않았잖아?’

공을 받아든 선발수투 이홍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바깥쪽으로 떨어지는 체인지업에 약점을 보였던 홍현구, 같은 패턴은 더는 안 통한다는 건가. 빠른 볼을 우겨 넣었다.

[따악~!!]

“타격!! 다시 한 번 센터 쪽으로 날아갑니다!! 1루 주자는 2루를 지나 3루까지!! 일단 3루에서 멈춰섭니다!! 무사 주자 1 - 3루!! 성운 라이온즈가 득점 기회를 잡습니다!!”

“제가 그동안 수도 없이 말했던 게 바로 이거거든요. 기다리면 칠 수 있는 공은 옵니다. 홍현구 선수가 드디어 깨달은 건가요?”

옛 제자의 활약에 박한우 위원은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크라고 계속 조언을 주는데 못 받아먹고 못 크면 지도자 입장에서 그것만큼 속상한 일이 있을까.

이인영 만큼 가파른 상승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지만, 착실히 성장하는 옛 제자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뿌듯해 졌다.

“우야꼬(어찌하나)~ 우야꼬~ ”

“인영인데 우야꼬~ ”

한편, 이인영의 등장에 대구 팬들은 동정을 표했다.

올 시즌 타율 0.382, 홈런 46개, 137타점을 쏟아 부은 괴물의 등장, 계속 들으면 은근 짜증나는 도발이라 이홍기는 미간을 찌푸렸다.

“바깥 쪽, 볼입니다. 카운트는 원 볼 노 스트라이크”

“이인영 선수가 올 시즌 바깥 빠지는 코스에서 스윙을 한 확률은 7.7%밖에 안 됩니다. 별 의미가 없다는 걸 알고도 던지고 있는 거죠.”

이홍기는 한국을 대표하는 우완선발, 이 정도 선수가 도망치는 승부를 한다는 게 뭘 의미하겠나.

이 일을 정말 어찌해야 할지, 레이더스의 김호균 감독도 손을 턱에 괜 채 긴장된 얼굴로 승부를 지켜봤다.

‘웃차~ ’

바깥쪽으로 떨어지는 체인지업, 빠른 볼에 타이밍을 잡고 있던 이인영은 뛰쳐나가는 배트를 붙잡았다.

계속 바깥쪽으로 던지고 있었으니 타자의 초점은 이미 그곳에 맞춰져 있었다.

그런데 변화구를 던진다? 스윙이 짧게 돌아 나오는 선수라면 낚일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스윙이 짧게 돌아 나와 바깥쪽으로 멀어지는 타자에게 이런 볼 배합은 별 소용이 없다.

체인지업을 떨어트릴 생각이었다면 몸 쪽으로 붙인 뒤에 하는 게 나았을 텐데, 레이더스 배터리의 볼 배합은 선구안을 흔들지 못했다.

“다시 벗어납니다. 카운트는 쓰리 볼 노 스트라이크”

“이러면 승부를 할 이유가 없죠. 한 번 끌려 나올 법도 한데 정말 안 나오네요.”

결국 포수는 팔을 옆으로 뺐다.

이렇게 무사 주자 만루, 4번 돈 부머가 타석에 들어섰다.

친구가 앞에서 타점을 다 쓸어먹었지만 그래도 부머는 올 시즌 100타점을 기록했다.

볼넷으로 나간 친구가 2루 - 3루 도루를 해버리니 득점권 기회도 많았던 편, 특히 올 시즌 만루에서 14타수 5안타, 8타점을 올릴 정도로 강한 면모를 보였다.

여기서 한 방 나오면 쉽게 갈 수 있겠지, 라이온즈 팬들은 만루 홈런을 연호하며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따악~!!]

“아!! 유격수 정면!! 2루에 송구!! 다시 1루에서~!! 아웃입니다!! 더블 플레이!! 그 사이 3루 주자는 홈을 밟습니다. 스코어 1대 0 … 라이온즈 입장에선 다소 아쉬운 결과입니다.”

“부머 선수가 올 시즌 병살타가 23개가 있긴 했었지만 그래도 이건 조금 아쉽게 됐네요.”

찬물을 맞고 조용해진 그라운드, 더그아웃으로 향하던 이인영은 친구 뒤통수에 폭언을 날렸다.

“넌 다음 설날에 국물도 없을 줄 알아 인마.”

“그건 좀 너무 심한 말 아냐?”

한국생활 2년 차에 접어들면서 부머는 이곳 문화에 익숙해졌다.

올 시즌도 가족이 머물고 있는 아파트에 배달된 구단의 성의 표시, 가능하다면 내년에도 계약을 맺고 한국 생활을 이어가고 싶었다.

그런데 국물도 없다는 건 아예 안 보자는 뜻 아닌가.

왜 나만 미워하냐며 투정을 부렸다.

다 가라앉은 분위기 풀자고 한 짓, 이인영도 더는 시비를 걸지 않았다.

‘하아~ 생각보다 너무 안 풀렸는데’

라이온즈는 결국 무사 만루 기회에서 1점만 얻어냈다.

여기서 확 몰아붙여 끌어내렸어야 했는데, 역시 국가대표는 국가대표라는 건가. 아쉽지만 잊어버리기로 했다.

2회는 양 팀 모두 득점 없이 종료, 레이더스는 3회 초 공격에서 득점을 내며 경기 균형을 맞췄다.

이어지는 성운 라이온즈의 3회 말 공격, 타석에 들어선 최지환은 몸을 틀며 헬멧을 고쳐 쓰는 특유의 자세를 잡았다.

한 방은 있지만 아직 가다듬어지지 않은 애송이, 이홍기는 전매특허인 바깥쪽 체인지업을 택했다.

‘이런 건 기다리라고 선배가 가르쳐 줬어요.’

최지환은 초구를 가볍게 골라냈다.

생각해보면 최근 갑자기 늘어난 바깥쪽 유인구, 경험 있는 투수들은 루키에게 어려운 공을 던져주지 않는다.

일단 탐색을 해보고 잘 친다 싶으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이빨을 드러내는데, 최지환도 초반에는 잘 나갔지만 바깥쪽으로 떨어지는 유인구에 약점을 드러냈다.

바보도 아니고 이런 공에 계속 당하면 프로 실격,

딱히 명설 선물을 받겠다는 게 아니라, 본인의 장래를 위해서라도 변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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