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완전체 (9)
[50 - 50 도전기 이대로 종료?]
[최근 페이스 급격히 떨어져]
시즌 종료 일주일을 앞두고 여론은 이인영의 활약에 아쉬움 섞인 반응을 보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48 - 48 페이스였는데 현재 성적은 42홈런 45도루, 도루는 어떻게든 될지 모르겠지만 6경기에서 홈런 8개를 때려내는 건 어렵다는 전망이 쏟아졌다.
최근 15경기 성적은 타율 0.286, 홈런 1개, 5도루로 평범한 편, 성적 부진 원인으로 몇 가지 원인이 지목됐다.
그 중 하나가 연애, 몇 몇 팬이 수상한 여자와 함께 있는 모습을 제보하면서 연애 하느라 성적이 떨어졌다는 지적을 받았다.
‘웃긴 소리지. 그냥 내가 못하는 건데’
이인영은 속으로 피식 웃었다.
44일 동안 딱 두 번 만났는데, 연애가 성적과 무슨 연관이 있다는 건가.
정말 질리도록 만났다면 억울하진 않았을 텐데, 약간 속이 상했다.
[정말 나 때문이야?]
“그럴 리가 없잖아.”
남친의 부진이 신경 쓰였는지 혜진 씨는 문자를 보내왔다.
야구를 못하고 있는 건 난데 왜 이 사람이 전전긍긍하는 건지, 속상해 할 것 없다며 다독였다.
“괜찮아. 지금 못하고 포스트 시즌에서 잘 하면 돼.”
[그런 거야?]
“어, 원래 타격은 흐름이라는 게 있거든, 지금 못해도 마지막에 잘하면 팬들은 그걸 기억해. 그러니까 신경 쓸 거 없어.”
[그래도 뭔가 내가 도움이 될 게 없을까?]
“야구는 내가 하는데 … ”
이인영은 말을 하다가 끊어버렸다.
야구는 내가 하는데 네가 무슨 도움을 주냐는 말이 나올 뻔 했다.
그래도 날 위해 뭐든 하겠다고 하는데 그렇게 말할 것 까진 없지 않은가. 상대는 사소한 말 한 마디에도 상처받기 쉬운 사람, 시즌 끝나면 웃으면서 보자는 말로 고마움을 표했다.
‘이건 부진 원인이 아니야.’
통화를 마치고 다시 부진 원인을 분석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스윙을 할 때 뒷발이 들린다는 걸 지적하는데 이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메이저리그 역사를 들여다봐도, 강한 스윙을 하는 타자들은 스윙이 끝날 무렵 뒷발이 들리는 현상을 보인다.
골프 선수가 드라이버를 칠 때 뒷발이 들리는 것과 같은 원리, 그렇게 강한 스윙을 하는데 뒷발이 지면에 붙어있다고 생각해 보자.
몸이 회전하는데 뒷발은 그대로 땅에 붙어 있으니 힙이나 고관절에 부담이 가는 건 당연, 바꿔 말하면 지금 나는 몸에 무리가 갈 정도로 파워스윙을 돌리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스윙을 조금 약하게 하면 안 될까? 월드스타는 자신에게 던진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하면 안타 밖에 더 나오겠어?’
밀어 쳐도 홈런을 만들 수 있는 파워를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그건 어쩌다 가끔 나오는 보너스다.
의도적으로 밀어 쳐서 홈런을 만드는 타자가 세상에 어디에 있나?
실제로 3년 전, 메이저리그에서 53홈런을 때린 리차드 벤트스는 밀어 친 홈런만 18개를 기록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3개 중 1개를 밀어서 넘겼으니 당연한 일, 그런데 다음 시즌 홈런이 41개로 줄어들더니, 올해는 26개에 그치고 있다.
이게 뭘 뜻하겠는가.
53홈런을 기록한 시즌은 운이 좀 따라줬을 뿐, 홈런을 치려면 당겨 쳐야 한다는 게 다시 증명됐다.
파워스윙을 하는 게 문제인가 아니면 공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건가. 냉정하게 생각해 봤다.
‘앞발을 살짝 열어두고 그대로 내지른다.’
방에서 수건을 붙잡고 연습스윙을 돌렸다.
파워스윙을 하는 선수들은 대부분 앞발을 살짝 열어두는 편, 앞발을 닫아놓고 치는 선수들도 있는데, 이러면 그만큼 몸에 무리가 간다.
가뜩이나 몸에 무리가 되는 스윙을 하는데 앞발을 닫아두면 몸이 자연스럽게 회전 할 수가 있겠나.
유연성이 받쳐주는 선수라면 어떻게든 되겠지만 커리어를 길게 보면 좋지 못한 자세, 이게 옳다는 확신은 흔들리지 않았다.
* * *
“자, 1회 초 성운 라이온즈의 공격으로 경기가 시작됩니다. 선두 타자는 임완수 선수, 올 시즌 타율 0.292, 홈런 4개, 45타점, 올 시즌도 좋은 활약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역시 우측에 시프트가 집중돼 있죠. 조금 더 강하게 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성운 라이온즈와 UA 베어스의 시즌 13번 째 맞대결, 박한우 위원은 임완수의 한계를 지적했다.
앞발을 닫아 놓고 몸통 회전을 최소화 한 스윙, 3할에 가까운 타율을 기록하고 있지만 타구 질은 좋다고 할 수 없다.
이런 선수들은 나이가 들어 스피드가 떨어지면 성적도 급락,
조금 더 나은 선수가 되기 위해 스윙을 가다듬어야 할 텐데, 3년 동안 똑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건 아쉬웠다.
따악 ~ !
밀어 쳤지만 힘없이 굴러가는 타구, 2루수 김환희는 능숙한 자세로 1루 송구를 마쳤다.
김환희는 수비 범위가 워낙 넓어 우중간으로 밀어치는 타구는 쉽게 처리하는 편, 이런 극악의 상성 때문에 임완수는 베어스를 만나면 이렇다 할 성적을 못 내고 있다.
고작 땅볼 하나지만 우습게 넘길 수 없는 프로의 세계, 후속타자 홍현구는 마음을 다잡고 타석에 섰다.
임완수처럼 우중간을 향해 밀어치는 스타일이지만 장타도 제법 칠 줄 아는 선수, 바깥쪽 약간 낮은 공을 잡아당겼다.
[따악 ~ !!]
“당긴 타구가!! 좌익수 앞에 떨어집니다!! 홍현구 선수의 안타!! 이렇게 되면 14경기 연속 안타죠?”
“역시 타격은 확실히 눈을 떴네요. 문제는 수비인데 완벽한 선수가 어디 있겠습니다만 … 그래도 좀 아쉽습니다. 수비만 좋으면 나무랄 게 없는 선순데 말이죠.”
박한우 위원이 아쉬움을 표하는 사이, 이인영이 타석에 들어섰다.
최근 페이스가 떨어져 있는 선수, 베어스 배터리는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는 강수를 뒀다.
따아악 ~ !!!
엄청난 파열음과 함께 외야로 뻗어나가는 타구, 맞는 순간 결과를 직감한 타자는 배트를 놔버렸다.
외야 관중석을 직격하고 튀어나온 홈런 볼, 공을 잡으려고 했던 관중은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하고 타구를 피했다.
“오 ~ 지금은 아찔한 장면 아니었나요?”
“지금은 잘 생각하셨네요. 이런 타구가 나오면 잡으려고 하면 안 됩니다. 무조건 피해야 되요. 큰 일 날 뻔 했습니다.”
스탯 캐스트에 따르면 이번 타구는 무려 194km로 외야를 직격했다.
선수도 처리하기 힘든 타구에, 제대로 된 장비도 없는 일반인이 달려들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홈런 볼이 떨어진 외야가 침묵에 휩싸인 그때, 이인영은 유유히 베이스를 돌아 홈을 밟았다.
12일 만에 추가한 시즌 43호 홈런, 드디어 답을 찾은 걸까.
하지만 경기는 이제 막 시작됐을 뿐, 다음 타석에서도 집중력을 유지했다.
‘쟤는 도대체 뭐냐.’
3회 초 성운 라이온즈의 공격, 베어스의 선발 투수 임선우는 포수 사인에 고개를 끄덕였다.
저 자식에게 내준 피홈런만 통산 9개, 메이저리그에서도 저렇게 강한 타구를 날리는 선수는 손에 꼽을 정도다.
드라이브로 펜스를 넘길 수 있다는 건 말 그대로 하늘이 내린 재능, 작전을 바꿔 바깥쪽으로 도망쳤다.
따아악 ~ !!!!
“어?!!”
바깥쪽으로 나름 잘 붙은 공, 그런데 이 타구마저 좌중간 담장을 넘어갔다.
이젠 화도 안 나고 어이가 없을 지경, 임선우는 분노를 미소로 승화했다.
‘보너스 ~ 보너스 ~ ’
이인영은 미소 없는 얼굴로 홈을 밟았다.
바깥쪽이라 밀어 쳤는데 넘어간 홈런, 어쩌다 나오는 행운이라 쓸데없이 우쭐거리지 않았지만, 박한우 위원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이인영 선수가 지금까지 44홈런을 치고 있는데, 그중 10개 밀어 친 홈런이거든요. 그런데 전부 다 빠른 볼이었습니다. 변화구는 잡아당기고, 빠른 볼은 밀어서 넘기고 있다는 뜻이죠.”
“그런데 그게 상식적으로 가능한 타격인가요?”
“힘이 워낙 좋으니까 가능한 거죠. 그런데 이인영 선수는 자신의 파워를 과신하지 않습니다. 제가 전에 왜 계속 빠른 볼을 밀어 치냐고 물어봤는데, 바깥쪽으로 들어와서 어쩔 수 없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그런데 치면 넘어가요. 이 정도면 본인의 파워를 인정할 법도 한데 말이죠.”
이인영은 다음 타석에서도 바깥쪽 빠른 공을 밀어 쳐 좌중간을 가르는 장타를 날렸다.
툭 치는데 맞으면 대형사고, 여차하면 3루까지 가려고 했지만 중견수가 후속플레이를 잘 해내면서 2루에 멈췄다.
몇 번이나 봤지만 다시 봐도 경이로운 파워, 김환희는 후배에게 질투 어린 농담을 건넸다.
“힘 좋아서 좋겠다.”
“그게 무슨 소리에요?”
“네 애인이 좋아하겠다고, 잘 해 줘라.”
이 선배는 또 무슨 이상한 소리를 하는 건지,
한마디 할까 했지만 이인영은 웃어 넘겼고, 팀이 지고 있는 상황이라 김환희도 농담은 이 정도로 끝냈다.
성운 라이온즈는 여기서 돈 부머가 적시타를 치면서 6대 3으로 앞서나갔지만, 베어스는 6회 말 공격에서 김환희와 페르난데스의 연속 2루타로 한 점 따라붙었다.
역시 한 경기도 그냥 지는 법이 없는 베어스, 이런 팀을 꺾어야 한국시리즈 우승을 할 수 있다는 거 아닌가.
김성태 회장과 우승하고 기념촬영 한 잔 찍자고 약속했는데, 사나이가 한 번 뱉은 말은 지켜야겠지.
이인영은 7회 말 네 번째 타석에서도 집중력을 유지했다.
“초구는 바깥쪽입니다. 볼, 이인영 선수가 확실히 살아났네요.”
“지난 2주 동안 부진에 빠지면서 팀이 치고 나가질 못했거든요. 아직 2위까지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인영 선수가 조금 더 분발을 해줘야 돼요.”
2구도 바깥쪽으로 완전히 빠지는 볼, 타석에서 잠시 물러나 숨을 골랐다.
스트라이크 비슷한 공이 들어와야 선구안이 유지가 되는데, 이렇게 계속 빠지는 볼이 들어오면 아무래도 감이 떨어진다.
2주 동안 부진에 시달린 것도 스트라이크 존 감각이 떨어진 게 원인, 자신만의 존을 허공에 그려 놓고 벗어나는 공은 외면했다.
[따아악 ~ !!]
“다시 한 번!! 잡아당긴 타구가!! 오른 쪼옥 ~ 멀리 ~ !! 당장 위로 사라집니다!!!! 오늘 경기 세 번째 홈런!! 시즌 45호 홈런입니다!! 스코어 8대 4!! 라이온즈가 다시 점수 차를 벌립니다!! 다시 깨어난 흑곰의 포효!! 차원이 다른 파워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금은 변화구였고 몸 쪽으로 떨어지잖아요. 역시 변화구는 마음먹고 잡아당기고 있습니다. 절대 던져선 안 될 공을 던졌어요.”
타구를 확인한 함주덕 투수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벤치 지시대로 정확히 던진 공, 그런데 맞아버렸다. 사실 베어스 코치진은 이인영이 몸 쪽 공을 잡아당긴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몸 쪽으로 떨어트려 범타를 유도한 것, 이것마저 쳐버리면 방법이 없었다.
이 날 3홈런 포함 5타점 게임을 펼친 이인영은 수훈선수로 선정됐고, 시간이 되자 리포터가 마이크를 들이밀었다.
“이인영 선수, 굉장히 오랜만에 뵙는 것 같네요.”
“그동안 제가 부진하긴 했죠. 이 자리를 통해 팬 여러분들께 사과의 말씀 드립니다.”
별로 잘못한 것도 없는데 느닷없는 대국민 사과, 분위기를 살피던 리포터는 다음 질문을 던졌다.
“오늘 베어스를 상대로 홈런 3개를 기록하셨는데요. 최근 베어스가 10경기에서 피 홈런이 한 개도 없었거든요? 그런 투수진을 상대로 좋은 타격을 할 수 있었던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글쎄요. 사랑하는 사람의 응원 덕분이었다고 말하면 욕먹을까요?”
몸이 오그라드는 발언에 동료들은 야유를 퍼부었지만, 이인영은 얼른 들어가라며 손짓을 했다.
“그럼 애인이 앞으로도 응원해주면 50 - 50 가능한 건가요?”
“거기까지 하시죠. 더 하면 저 오늘 무사하기 어려울 것 같네요.”
가뜩이나 예쁜 애인 생겼다고 동료들에게 미움 받고 있는데 여기서 더 나가면 문제, 일방적으로 인터뷰를 끝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