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일은 일인자-137화 (137/309)

137화. 완전체 (7)

[이번 시리즈에서 40 - 40 도전]

[달성하면 아시아 최초 기록]

이제 8월에 중반에 접어든 시즌,

전반기에 30홈런 29도루를 달성한 이인영은 후반기 25경기에서 9홈런 10도루를 추가하며 40 - 40을 눈앞에 뒀다.

아시아 야구에서 40 - 40에 가장 근접했던 기록은 1986년, 유모토 토시시게가 세운 44홈런 38도루, 마지막 경기에서 어떻게든 기록을 채우려고 했지만 끝내 실패로 돌아갔다.

이후에도 몇 몇 선수가 40 - 40에 도전해 봤지만 투고 타저 현상이 극명해지면서 30 - 30도 보기 어려워졌고, 지금도 일본 프로야구에서 40 - 40은 누구도 달성하지 못한 대기록으로 남았다.

그건 한국 야구도 마찬가지, 1996년 30 - 30을 기록한 김진명은 처음이자 마지막 30 - 30 달성자로 남았다.

그런데 올 시즌 이인영은 97경기 만에 30 - 30을 돌파, 116경기 만에 39홈런 39도루를 기록했다.

남은 28경기에서 어떤 기록을 남길 것인가.

산술적으로 따지면 48홈런 48도루 페이스, 정말 50 - 50까지 가는 건가. 외신도 그 행보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한국 야구의 수준이 의심스럽다. 이런 기록은 현대야구에서 나와선 안 된다.”

그런데 이때, 외부에서 잡음이 들려왔다.

1986년, 44홈런 38도루를 기록한 유모토 토시시게의 발언, 현대 야구에서 30 - 30도 어려운데, 50 - 50이 웬 말인가.

한국 여론은 지금 잔칫집에 찬물 끼얹는 거냐고 반발했지만, 일본 여론은 NPB가 한국보다 수준이 높기 때문에 그런 기록이 안 나오는 것뿐이라며 은근 조롱을 표했다.

지금까지 가만히 있다가 40 - 40을 앞두고 왜 이런 언론 플레이를 하는 건가.

하지만 일본에서 툭 건드려 준 덕분에 이인영의 도전기는 더욱 큰 관심을 받았다.

‘정말 수준이 떨어져서 그런 건가?’

필라델피아 구단 스카우터 잭 앵거스는 이인영의 주력에 집중했다.

지금은 한국 야구도 스탯캐스트를 활용하는 시대, 선수를 분석하겠다면 못할 게 뭐가 있을까. 메이저리그 포수의 평균 송구 구속은 78마일, 한국도 큰 차이는 없었다.

‘저 거리에서 도루를 할 수 있나?’

그런데 지난 8월 13일 경기에서 앵거는 눈에 띄는 장면을 포착했다.

베이스에서 대략 7피트 정도 떨어진 주자,

얼마나 리드 폭을 벌려야 하는지 절대적인 기준은 없지만, 키가 190이나 되는 선수의 리드 치고는 너무 좁았다.

물론 이게 전부는 아니다.

투구가 투구 모션을 할 때 2차 리드를 하는데, 이건 병살을 방지하거나 발 빠른 주자들이 2루를 훔치기 위해 하는 플레이다.

문제는 2차 리드를 아무나 잘 할 순 없다는 것, 투수가 발을 올린 상태에서 공을 던질지 견제를 할 지 어떻게 아나.

경험이 쌓인 선수만이 할 수 있는 과감할 플레이, 그런데 이인영은 그날 2차 리드에서 무려 12피트를 전진했다.

1차 리드까지 합쳐 스텝만으로 19피트(5.79m)를 전진했다는 뜻, 1루와 2루 사이의 거리는 대략 27m, 과장 약간 보태서 1/3은 먹고 들어갔다.

저 타이밍에 도루를 막아낼 수 있는 포수가 메이저리그에 있을까? 메이저리그 평균 송구 구속을 대입해보면 2루에서 살 가능성은 100%였다.

딱히 KBO 수준이 떨어져서 도루가 많이 나오고 있는 게 아니라는 뜻, 잭 앵거스는 이후에도 이인영의 주루 플레이에 집중했다.

타격은 원래 성공 가능성이 높은 선수, 이제는 수비나 주루능력 등 부가적인 능력을 검증할 때라고 판단했다.

“자, 이인영 선수가 오늘 경기 첫 타석을 맞이합니다. 올 시즌 타율 0.383, 홈런 39개, 108타점, 생애 3번 째 트리플 크라운을 향해 전진하고 있습니다.”

“지금 트리플 크라운이 문제가 아니죠. 이 기세라면 타율, 홈런, 타점, 득점, 장타율, 출루율, 도루까지 무려 8관왕 달성입니다.”

“일본에서도 8관왕은 없지 않습니까?”

“그런 말 하지 마세요. 그 동네는 여기 낄 자격 없습니다.”

박한우 위원은 노골적으로 일본을 저격했다.

남의 잔치에 축하한다고 한 마디 못 해 줄 거면, 입 다물고 있는 게 예의 아닌가.

그런데 KBO는 투수력이 이러쿵저러쿵 레벨이 어쩌고저쩌고, X물 한 바가지 얻어맞고 싶은 건가. 마음 같아선 그렇게 해주고 싶었지만 화를 억눌렀다.

따악~!!

“와아아~!!”

좌익수 앞에 떨어지는 깨끗한 안타, 홈 팬들은 약속한 듯 ‘뛰어!!’를 연호했다.

반면 이인영은 1루에 약간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을 뿐, 도루에 관심 없는 척 연기를 이어갔다.

‘하아~ 진짜 신경 쓰이네.’

GM 가디언즈의 선발 신성우는 곁눈질로 1루를 살폈다.

상식적으로 절대 2루를 훔칠 수 없는 리드, 그냥 무시해 버릴까. 일단 투구에 집중했다.

‘나는 내가 할 일을 할 뿐’

이인영은 투구에 맞춰 리드를 벌렸다.

타자는 스윙 후 몸이 뒤틀리기 때문에 바로 뛸 수가 없다. 거기다 리드 폭이 웬 말, 방망이를 던지고 90피트를 달려 1루에 안착해야 한다.

그에 비해 주자는 어떤가. 리드 폭을 할 수 있고 인 플레이 상황이라면 언제든 뛸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다.

이런 특권을 낭비한다는 건 야구선수로서 범죄행위, 2사 주자 1루라 병살을 방지할 상황은 아니지만, 한 베이스라도 더 가겠다는 의지는 꺾지 않았다.

‘안 뛰나?’

초구를 지켜본 돈 부머는 1루를 살폈다.

2사 주자 1루라 바로 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잠잠한 녀석, 그러려니 하는 얼굴로 자세를 잡았다.

[따악~!!]

“당긴 타구가!! 유격수 옆을 빠져 나갑니다!! 그 사이 1루 주자는 벌써 3루까지!! 그대로 홈으로 내달립니다!! 득점!! 이인영 선수가 엄청난 주루 플레이를 선보입니다!!”

“와아~ 지금은 말이 안 나오네요. 유격수가 몸을 날리기 전에 이미 2루에 가 있었어요. 이건 뛰는 게 말 그대로 순간이동입니다.”

짧은 안타로 1루 주자가 홈까지 들어오는 게 가능한가.

그런데 그걸 진짜 해버린 선수,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잭 앵거스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이너리그에 수많은 유망주가 있지만, 저렇게 공격적인 주루 플레이를 하는 선수는 없다고 봐도 좋다.

다들 장타를 치려고 하지 뛰려는 생각을 안 하는 편, 하지만 야구의 기본은 누가 뭐라고 해도 뛰는 거다.

뛰는 야구의 중요성을 증명한 플레이, 앵거스는 표정 없는 얼굴로 스카우팅 리포트를 채워나갔다.

“다음에 도루 할 거야?”

“왜?”

“뛸 거면 스윙 안 하게.”

1회 말 공격이 끝나고 분주하게 돌아가는 더그아웃, 돈 부머는 외야로 나가려는 친구를 붙잡았다.

어차피 오늘 경기에서 40도루 채울 거 아닌가. 이인영은 그걸 내가 어떻게 아느냐며 돌아섰다.

“다음 타석에 출루한다는 보장도 없잖아. 물어서 뭐 하게?”

“그럼 다음 타석 때 좋은 공 들어오면 쳐도 돼?”

“아니, 그러니까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알아서 해.”

열심히 뛰어서 타점 하나 올려줬더니 도루 왜 안 하냐고 항의하는 건 뭔가. 진짜 웃긴 자식이라며 면박을 줬다.

그렇게 경기는 돌고 돌아 3회 말 성운 라이온즈의 공격, 이인영은 1사 주자 1 - 2루에서 바깥쪽 초구를 골라냈다.

도루는 마음먹으면 언제든지 할 수 있지만 홈런은 그게 안 되는 법, 차분하게 볼을 고르며 때를 기다렸다.

“다시 바깥쪽입니다. 카운트는 투 볼 노 스트라이크.”

“이인영 선수가 최근 10경기에서 타율 0.417, 홈런도 5개가 있거든요. 그런데 이 중 3개가 밀어서 넘긴 홈런입니다. 이러니 투수는 확실히 도망칠 수밖에 없는 거죠. 걸어 나가면 도루를 하고 … 이게 이인영 선수의 일상입니다.”

“투수 입장에선 정말 짜증나겠죠. 그래도 지금은 승부해야 됩니다. 거르면 만루에서 부머 선수 타석이에요.”

신승우는 포수와 신중히 사인을 주고받았다.

또 바깥쪽으로 빼 봤자 방망이는 안 나온다. 몸 쪽으로 하나 붙여보는 게 낫겠지, 손을 떠난 공은 몸 쪽 약간 높은 곳으로 들어왔다.

‘얼른 가라. 뒤돌아보지 말고’

잡아당긴 타구는 낮고 빠른 포물선을 그리며 외야로 뻗어나갔다.

우익수가 몇 발자국 움직여 봤지만 담장 너머로 사라진 공, 시즌 40호 홈런이 확정되는 순간 관중석은 폭동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들썩였다.

“비켜 봐!! 거기 비키라고!!”

“거기 있어?!!”

“악!! 누가 내 발 밟았어?!!”

홈런 볼을 두고 벌어진 쟁탈전, 그러건 말건 이인영은 유유히 베이스를 지나 동료들과 하이 파이브를 주고받았다.

KBO 역사상 최초 3년 연속 40홈런 달성, 숫자에 신경 쓰며 야구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대기록의 초석이 될 홈런이라 느낌이 새로웠다.

“안 나오면 쳐들어간다!! 으쌰!! 으쌰!!”

“얼른 나와라!! 나와!!”

이어지는 관중의 커튼 콜, 분위기를 살피던 이인영은 더그 아웃 밖으로 나가 팬들의 환호에 감사를 표했다.

하지만 끝내 40도루는 추가하지 못하고 수훈선수 인터뷰에 나섰다.

“이인영 선수, 오늘 40홈런 달성하신 거 축하드립니다.”

“예, 감사합니다.”

“40도루도 추가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네요.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괜찮습니다. 오늘 40도루 못했으니 내일 팬 여러분들은 여기 또 오셔야겠죠.”

“그럼 처음부터 오늘은 도루 할 생각이 없었던 건가요?”

“그렇죠. 일괄 판매는 하지 않습니다.”

사방에서 야유 아닌 야유가 쏟아졌다.

40홈런과 40도루를 따로 팔겠다는 건가? 괘씸하긴 한데 안 살 수가 없는 티켓, 덕분에 예약은 빠르게 이뤄졌다.

그리고 다음 날 경기에서 이인영은 시즌 40호 도루를 달성, 118경기 만에 달성한 대기록에 홈 팬들은 찬사를 보냈다.

* * *

[인영 씨, 대기록 축하드려요]

그날 밤, 혜진 씨는 사심이 가득 담긴 문자를 보냈다.

마음에 들지만 야구 선수라 자주 만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대놓고 접근하면 부담스러워 할 거 아닌가.

가끔 이렇게 보여주는 관심이 상대의 마음을 끄는 법, 상대가 워낙 대어라 신중하게 공략했다.

[혜진 씨, 오늘 경기 보셨어요?]

바로 날아오는 답장, 이 사람도 나한테 관심이 있다는 증거 아니겠나. 휴대폰을 잡은 손가락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당연히 봤죠. 대구에 살았으면 직관 갔을 텐데 ㅠㅠ]

[시간 있으면 주말에 직관하러 오세요. 제가 식사라도 대접할 게요]

[정말이요?]

[네, 약속시간 잡을까요?]

혜진 씨는 침대 위에서 발을 구르며 승리를 자축했다.

생각보다 순조롭게 진행되는 작업, 그날 승부를 보는 게 좋을까? 아니면 좀 더 기다릴까? 친한 언니에게 조언을 구했다.

[망설일 게 뭐 있어? 술 한 잔 하자고 해]

“여자가 먼저 술 마시자고 하면 좀 그렇지 않아?”

[그렇긴 뭐가? 남녀가 커피 마셨으면 그 다음은 술이지. 그리고 너 술 잘 마시잖아?]

“언니, 그 사람은 그런 거 몰라.”

혜진 씨는 소개팅 자리에서 도도하고 우아한 태도를 유지했다.

그런데 두 번째 만남에서 술 마시고 실수했다가 그 사람이 실망하면 어떻게 하나.

가식적인 모습이라도 지금은 여자다움을 앞세우고 싶었다.

[내숭 떠는 거 보니 너 진짜 마음에 든 모양이다?]

“어 … .”

[그럼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단, 이건 명심해라]

“뭐가?”

[네 진짜 모습을 나중에 한꺼번에 보여주면 그 사람 정말 실망할 수도 있어, 그러니까 알아서 공개할 건 공개해라]

통화를 마친 혜진 씨는 고민에 빠졌다.

내 진짜 모습을 조금씩 보여주면 그 사람도 받아들일 거라는 거 아닌가. 언제까지 내숭만 떨 수도 없는 노릇, 일단 쉬운 것부터 차근차근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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