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일은 일인자-135화 (135/309)

135화. 완전체 (5)

[이인영 역대 최단기간 20 - 20, 달성]

[아무도 그를 막을 수 없다.]

어느 덧 6월 중반에 접어든 시즌, 개인 기록도 점차 윤곽이 잡히기 시작했다.

이인영은 62경기에 모두 출장, 타율 0.381, 홈런 21개, 64타점, 59득점, 22도루, 출루율 0.481, 장타율 0.772, OPS 1.253이라는 괴악한 수치를 기록했다.

그렇다면 이 기록은 얼마나 대단한 걸까.

박한우 위원은 득점 생산능력을 기준으로 이인영의 가치를 제시했다.

“현재 이인영 선수가 기록하고 있는 득점 생산력은 220입니다. 참고로 작년 시즌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높은 득점생산능력을 선수의 수치가 193이었죠. 물론 직접적인 비교는 안 되겠지만, 이인영 선수가 지금 KBO리그에서 어떤 활약을 하고 있는지 대략 감은 잡히실 겁니다.”

“그럼 1번부터 9번까지 이인영 선수를 배치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 건가요?”

“제가 계산을 해 봤는데 경기당 대략 15.8점 정도가 나오더군요. 상대 팀 입장에선 야구하기 싫어지겠죠?”

하지만 라인업을 이인영 9명으로 채울 순 없는 법,

어디까지나 이론일 뿐이다. 야구는 팀 게임, 아무리 혼자 잘 해도 팀원들의 협조가 없으면 의미가 없다.

이렇게 뛰어난 선수가 있는데 왜 성운 라이온즈는 지난 4년 동안 우승을 하지 못했던 걸까. 역시 중요한 건 팀플레이, 이인영은 인터뷰에서도 그 점을 분명히 강조했다.

“솔직히 저는 야구를 잘 하는 것보다 초심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초심이요?”

“네, 여기서 아무리 잘 한다고 해도 세계에서 야구를 제일 잘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늘 겸손해야 발전을 하는데, 여론에서 계속 넌 최고다, 널 이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렇게 칭찬해주면 저도 사람이라 가끔 우쭐하는 때가 있거든요.”

돈 부머는 자신감이 너무 부족해 경기 중에도 ‘난 최고다. 난 최고다.’ 이렇게 최면을 건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는 법, 이인영은 계약금 7억 5천만 원을 받고 입단한 슈퍼 루키다.

데뷔 시즌에 불의의 부상을 입으며 신인왕을 놓쳤지만 이후 단숨에 KBO를 대표하는 간판타자로 성장하며 승승장구 하고 있다.

연봉도 급격히 올라 이제는 어지간한 FA 선수들과 비슷한 수준, 이렇게 잘나가면 누구라도 우쭐 할 수밖에 없다.

‘내가 짱이지. 내가 다 이겨, 아무도 뭐라고 말 못해.’

실제로 이런 생각을 한 적도 있다.

하지만 이런 오만함이 정말 날 위하는 길인가, 그래서 내가 왜 슈퍼스타가 됐는지, 왜 야구를 열심히 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세상은 노력하면 다 된다고 하는데, 솔직히 재능은 타고 나야 되는 거 같아요. 저는 야구의 재능을 타고 난 거고요. 그런데 왜 제가 그 재능을 타고 났는지 나름대로 생각을 해 봤습니다.”

“그게 뭔가요?”

“저 혼자 잘 먹고 잘 살라고 하늘이 그런 재능을 내리진 않았겠죠. 저는 봉사활동을 하면서 그 이유를 찾았습니다. 제가 성적을 내고 돈을 벌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그런데 그 재능을 자신만을 위해 쓴다면 언젠간 벌을 받지 않을까요? 그래서 저는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게 가장 중요하고요.”

정말 뛰어난 재주를 타고 난 사람을 천부적인 재능이라고 하는데, 말 그대로 하늘이 준 재능이다.

그럼 그 위대한 하늘이 너 혼자 잘 살라고 그런 재능을 줬겠는가?

팬들은 이인영이 야구를 잘 하는 이유는 아버지의 우월한 유전자를 물려받은 덕분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 재능은 하늘이 내게 준 것, 그러니 고귀한 곳에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신감과 오만함은 별개의 영역, 자신감은 선수로서 당연히 갖춰야 한다.

하지만 재능을 믿고 오만하게 굴면 언젠간 벌을 받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자신의 재능을 가볍게 볼 수 없었다.

“사람은 누구나 각자 재능을 타고 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걸 악용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거죠. 그것만 깨닫는다면 본인도 행복해지고 세상은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팬들은 이 인터뷰에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결국 나는 하늘이 내린 인재라는 거 아닌가, 그런데 그걸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능력, 이인영 만큼 봉사활동을 많이 하는 선수가 또 어디에 있나.

자신의 재능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사회에 베풀 줄 안다는 것, 나이는 어리지만 정신적으로 성숙됐다는 걸 증명했다.

“여러분은 지금 하늘이 내린 선수를 보고 계십니다.”

이날부터 캐스터는 이인영의 활약에 쓸데없는 농담을 덧붙였다.

그런데 정말 하늘이 내린 야구선수라고 해도 믿을 만한 실력, 한진 타이거스의 김해수 감독은 인터뷰에서 억울함을 표하기도 했다.

“팬 여러분들은 제가 이인영 선수 타석 때 볼넷을 너무 많이 지시한다고 하는데, 사실 그것 밖에 방법이 없습니다. 섣불리 몸 쪽으로 승부하면 장타를 맞는데, 그럼 바깥쪽으로 리드하면서 볼넷이나 단타를 주는 게 효율적인 작전 아닙니까?”

“그런데 요즘 이인영 선수가 열심히 뛰고 있잖아요. 이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죽겠습니다. 그런 선수가 도루까지 하면 반칙이죠.”

그런데 올 시즌은 볼넷으로 나가면 도루를 해버리니 이걸 어떻게 해야 되나, 김해수 감독은 난 비겁한 게 아니라 현명한 작전을 하는 것뿐이라며 변론에 나섰다.

어쨌든 이렇게 이인영은 천부적인 재능을 발휘하며 팀 공격을 주도,

올스타전을 일주일 앞둔 경기에서 시즌 27홈런 27도루를 동시에 달성했다.

이러다 전반기에 30 - 30을 찍을 기세, 각 팀들도 도망치는 승부는 포기했다.

차라리 한 방 맞고 끝내는 게 속편하지, 1루에서 3루까지 돌파해버리는 주루플레이에 시달리는 건 사양하고 싶었다.

* * *

[너 약속 있냐?]

“아니요. 왜요?”

[그럼 나 좀 잠깐 보자]

올스타전을 이틀 앞두고, 이인영은 아는 선배와 전화를 나눴다.

UA 베어스의 주전 2루수 김환희, 올스타 기간이라 쉬고 싶었지만 이 사람이 또 심심해서 날 찾는 건가. 예상은 빗나갔다.

[내가 전에 소개시켜준다고 한 사람 있지?]

“하아~ 또 그 소리에요?”

[선배가 말씀하는데 한 숨 쉬지 마 인마]

“네~ 네~ 알겠습니다.”

김환희는 진짜 괜찮은 사람이라며 설득을 이어갔다.

그리고 그 쪽에서 허락을 안 했으면 이런 말을 하겠나, 김환희는 후배가 잘 됐으면 하는 말에 몇 가지 충고를 덧붙였다.

[식사 먼저 하고, 그다음에 커피 한 잔 하자고 해.]

“꼭 그렇게 해야 되요?”

[당연하지, 여자는 밥은 굶어도 커피는 마셔야 되거든]

“어떻게 그렇게 잘 아세요?”

[너와 달리 경험이 있으니까]

김환희는 자신만의 여심 공략 법을 전수했다.

남자가 술 한 잔 하자고 하면 선뜻 받아들일 여자가 몇 명이나 될까. 마음만 급하고 경험이 없는 수컷들은 여자에게 술을 먹여 속전속결로 해치우길 원하는데 그건 아마추어들이나 하는 짓이다.

하지만 식후의 커피 한 잔이라면 어떨까?

남자가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 이상, 커피 권유를 거절할 여성은 별로 없다.

커피를 물처럼 마시는 사람은 없다. 누구든 천천히 시간을 들여 그 향과 맛을 음미, 커피를 사이에 두면 남녀는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 수 있게 된다.

커피의 한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인내심 있는 남자, 김환희는 그런 사람이 여자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제 보니 선배가 볼을 잘 고르는 이유가 있었군요?”

[그걸 이제 알았냐?]

김환희는 인내심이 강하기로 유명한 선수, 리드오프지만 작년에도 볼넷 73개를 골라내며 출루율 0.411을 찍었다.

그 비결은 여자의 마음을 얻는 기술의 연장선이었단 말인가.

이것도 재능이라면 재능, 별로 연애를 할 생각은 없지만 선배의 성의를 봐서 한 번 만나보기로 했다.

‘와~ 어떻게 이런 데를 약속 장소로 잡았냐?’

그런데 눈앞에 펼쳐진 장면은 예상과 많이 어긋났다.

약속 장소는 시내의 평범한 식당, 목소리 걸걸한 아저씨들이 탕 안주에 소주 한 잔 걸칠 것 같은 분위기에 꽃다운 아가씨가 웬 말인가.

좀 당황스러웠지만 일단 자리를 함께 했다.

“김혜진 씨 맞으시죠?”

“네~ 안녕하세요.”

한 눈에 봐도 기품이 있고 아리따운 아가씨, 조금 민망했지만 이인영은 그 앞에 자리를 잡았다.

할 말도 없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일단 주문부터 하기로 했다.

“어떤 거 드실래요?”

“여기 곱창전골 맛있게 한다고 해서 왔는데요.”

여기 온 목적이 뚜렷했던 아가씨, 그럼 난 여기에 왜 온 건가?

김환희 선배가 밥 친구나 하라고 부른 건 아닐 텐데, 월드스타는 순간 당황했지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내가 퍼 줘야 되나? 아니지, 저 사람 손발이 없는 건 아니잖아?’

전골 하나를 두고도 고민은 계속됐다.

이런 때는 남자가 성의를 더 보여야 하나, 야구를 할 때도 이렇게 머리를 쓴 적이 없는데 답은 의외로 쉽게 나왔다.

“먼저 드세요.”

“정말요?”

“인영 씨가 사시는 거잖아요. 제가 양보해야죠.”

내가 언제 그런 약속을 했었나, 일단 국자를 들긴 했는데 접시를 어느 쪽에 놔야 할지 잠깐 망설이다 여자 분 앞에 놔드렸다.

“인영 씨는 이런 거 좋아하세요?”

“좋아하는 건 아닌데 싫어하는 것도 아니에요. 먹자고 하면 먹는 편이죠.”

“으음~ 그러시구나.”

그리고 다시 끊긴 대화, 원래 이런 건가?

낯선 여자와 이렇게 오랫동안 얼굴을 마주하는 것도 처음, 어쨌든 식사를 마친 이인영은 계산을 하고 식당 밖으로 나왔다.

이쯤에서 커피 마시자고 권하는 게 김환희 선배가 알려준 2단계 작전, 타이밍을 재고 있는데 직구가 훅 하고 들어왔다.

“커피 드실래요?”

“네, 그러죠.”

천하의 내가 타이밍을 빼앗기다니, 난 연애에 재능이 없는 건가.

그래도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길 줄 아는 인내심을 발휘하라는 선배의 조언은 잊지 않았다.

평범한 찻집에서 이뤄진 2차전, 먼저 포문을 연 쪽은 아가씨였다.

“인영 씨는 본인 이름 마음에 드세요?”

“네? 뭐가요?”

“아니, 인영이 하면 왠지 여자 이름 같잖아요. 어린 시절에 친구들한테 놀림 안 당하셨어요?”

“놀리면 저한테 죽죠.”

피식 웃는 아가씨, 혹시 먹힌 건가.

자신감을 얻은 이인영은 대화를 이어갔다.

“그런데 어떻게 여기 나올 생각을 하셨어요?”

“아는 언니가 괜찮은 사람 있다고 만나라고 했거든요.”

“아~ 그러시구나. 저도 선배가 좋은 사람 있다고 해서 왔어요.”

맞장구를 쳐 준 뒤 자연스럽게 커피 잔을 입에 댔다.

그래서 괜찮아 보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내입으로 하면 재수 없지 않은가. 상대도 뭔가 느낀 게 있었겠지, 먼저 말을 걸 때까지 기다렸다.

“인영 씨는 원래 말이 없으신가요?”

“아니요. 친한 사람한테는 말 많이 해요.”

“그럼 저는 아직 친한 사람이 아닌 거네요?”

의외의 역습에 월드스타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차라리 야구가 쉬운 편, 이건 뭐 말을 던질 때마다 긴장이 되니, 뒤 따르는 질문은 더 어이가 없었다.

“인영 씨는 무슨 일 하세요? 학생이세요?”

자칭 월드스타인데 지금 듣보잡 취급당한 건가?

나름 유명인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걸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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